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36회 상수범행원 (20:25)

Buddhastudy 2012. 9. 30. 21:53

  방송 보기: 불교TV

 

여기는 잘 아시다시피 아주 오래된 사찰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나무아미타불 정근기도를 원을 세우신 선조들이 계십니다. 스님들이. 31인이 여기서 오랫동안 그러니까 즉 30년 가까이 기도 수행하고 살아서 육신이 살아있어서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오르면서 몸을 벗어버리시고 영혼만 부처님의 연화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이걸 등공대라고 있습니다. 새벽에 몸이 허락하신 분들은 여기서 한 20분 정도 있거든요. 해탈의 길이라고 명명이 돼 있는 좋은 기도처가 있습니다. 그리 아침에 새벽에 가실 수 있어요. 그런데 등공이라는 것은 몸이 살아있는 채로 그대로 법신을 연화세계. 즉 극락세계로 그대로 영혼세계를 옮긴 육체를 벗어버리시고 그러한 것을 여기가 만일 염불을 한 터입니다.

 

그래서 금강산 건봉사라고 말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 건봉사에는 치아사리가. 그러니까 부처님의 진신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고 그 전당 속에 다섯과를 모신 자리입니다. 사실은 이게 한 번만 치아 사리가 계신 곳을 스쳐만 가도 과거 전세에 업장을 없앤다. 이러셨거든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선근들이 깊으셔서 멀리 이곳에 참여해주시고 동참해주신 인연공덕이 크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리를 옮겨와 주고 또 마음을 일으켜주셔서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거듭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만일염불을 하라는 게 건봉사에서 시조가 됐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17. 그러니까 759년 무술년에 발징화상께서 원각사를 준수하고 만일염불회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것이 한국불교에서 만일염불의 최 효시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건봉사 염불회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스님들이 발징화상이 정신, 양순등 31명이 염불을 드렸는데 뜻을 같이 하는 신도가 1,820명이 환희심을 일으켜서 지원을 하셨어요. 어떤 어떤 것을 지원을 했냐 하면 그 가운데 120명이 의복이나 이불 같은 거 베게 같은 걸 보시하셨고, 나머지 1,700여명이 음식을 준비하고 쌀을 공양하고 초를 올리고 이렇게 음식을 시주해서 주야로 쉬지 않고 같이 기도를 했는데 신라 원성왕 3년에 787년에 만일 염불해서 선행을 닦던 스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정토에 그대로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건 저의 기록이 아니라 역사 안에 문헌에 고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대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여기서 약 20분 정도 올라가면은 등공대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해탈의 길과 거기 가면 해탈을 한답니다. 그렇죠. 그죠. 그래서 거기가 등공대라고 표적을 해놓은 게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게 군부대하고 자유로이 참석을 할 수가 없어서 하루에 두 번만 1030분하고 오후 2시죠. 그때쯤 이렇게 올라가실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주고 계십니다. 2시 맞나요? 그것은 불교를 가르치면서 불교가 시작한 이래로 그 뜻이 뭔가? 이렇게 살펴보면은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해탈해지기를 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시 얼굴 들어 저 좀 보세요.

 

그러면 저 가난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거거든요. 저 병고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재정적인 압박이라든가, 재정적인 결핍이라든가, 재정적인 뭐죠? 재정적인 손해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가 자유로워지지 않잖아요. 몸이 아파도 재정이 허락되지 않으면은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또 인생이 아주 곤궁하게 살아가는데도 그것으로 부터 회복이나 치유를 받을 수 없는 이런 인생이 너무나 많은 거죠. 우리가 현실에 살잖아요. 절에 멀리까지 오셔서 기도하고 참여해 주시고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내주신 것만 해도 대단히 고맙고 감사한 거에요. 대단히 고맙고 감사한 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얻으셔야 되냐 하면 해탈을 하셔야 되요. 벗어나셔야 되요. 해탈한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거거든요.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해탈한다는 말은 풍족해지는 거에요. 기억을 거꾸로 하셔야 됩니다. 자유라는 것이 몸이 마음대로 오고 가는 이것도 자유이지만 정말로 자기가 해탈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기도라고 하는 삶을 택하고, 순례도 행하고, 명상도 하고, 수련회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모든 삶 가운데 내용 중의 하나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답이 바로 해결되지 아니하면 기도는 뭣 때문에 하고, 예경은 뭣 때문에 하고, 효는 뭣 때문에 할까요?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깊이 생각해 보셔야 돼. 그러면 해탈한다는 게 뭔가? 이 해탈한다는 내용은 뭔가 하면은 풍족해지는 겁니다. 그렇죠. 그죠. 둘째로 건강하게 사는 거에요. 너무 쉽게 설명 드리고 있어요.

 

풍족해야 돼. 먹고 사는 것에 좀 풍족함을 느끼셔야 돼. 두 번째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거에요. 몸 건강은 자기 책임이에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 병들게 하고 우리 스스로 뭐죠? 부족하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 병들게 만드는 거어요.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가 만들 뿐이지 사실은 그 어떤 누구도 나를 가난하게 만들었거나 또는 또 어떤 경우라도 나를 병들게 하거나 그런 요소가 없는 거에요. 다만 이런 내용들이 이렇게 불행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런 것들이 다 해탈하지 않은 거잖아요. 세 가지만 정리를, 더 하면 기억을 못 하시니까 세 가지만 이번 법회에 읽으면서 세 가지만 꼭 정리를 합니다. 첫 번째 뭐죠?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나아가고 아미타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뭔가? 그것은 풍족해지는 거에요.

 

두 번째 건강하게 사는 거에요. 세 번째 뭐죠?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행복감을 느끼는 거에요. 그래서 해탈하지 못한 것은 뭐예요? 그것이 무엇이냐고 거꾸로 얘기하면은 늘 재정적인 압박에 결핍 속에 사는 것 이게 해탈하지 못한 거죠. 두 번째 뭐죠? 병 때문에 신음 고통 하는 거에요. 세 번째는 뭐죠? 불행감을 느끼고 사는 거에요. 그게 해탈하지 못한 거에요. 거꾸로 얘기하면은 절에 순례를 하든, 기도를 하든, 템플스테이를 하든, 모든 불교적인 수행이나 내용이나 이런 것들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 안에서 들여다보면은 즉신성불하셔야 돼. 오늘 이 법문 듣고 여기 와서 주무시는 일 기도하는 일이 모든 것을 통해서 즉시 지금, 지금이 몸이 좋아져야 돼.

 

지금이 정신이 좋아져야 돼.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혼, 이 자체가 좋아지셔야 돼. 좋아지지 않는 삶은 거부해야 돼요. 억지로 참으면 안 됩니다. 가난한 것을 참으려고 하지 말고 좋은 것을 더 문을 여시면 되요. 그럼 보십시다. 그러면 사람이 왜 결핍이 생기는가? 왜 부족함이 느끼는가? 요거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누이 누누이 감사명상을 진행하고 있고 불설아미타경을 통해서 1년 내내 하고 있거든요. 내용은 똑같은 거에요. 경전 내용은 조금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뭐에요? 첫째 부족함이 생기는 일이 왜 나한테 부족한 일이 생기는가? 왜 행복이 부족하고 건강이 만족하지 않은 거, 또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자기에게 채워지지 않는 것은 다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자기 마음에서 감사함을 잊어버리는 거에요. 자기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감사한 것을 배워야 되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은 이유를 불문하고 부조건 풍족한 삶의 문이 열립니다. 그렇죠. 그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감사를 통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명상을 수행하고 기도하는 것이 다 그거잖아요. 그래서 감사행을 행하면 감사한 일이 스스로 스스로에게 오게 돼 있어요. 몸은 저절로 건강해져요. 단지 병자가 이병 이병 끌어안고 있지 아니하고, 오직 감사하다는 감사의 생각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호전되고 좋아지고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우를 엄청나게 보잖아요. 그걸 불교적 얘기로는 뭐죠? 해탈이 열리는 거죠. 그리고 이 해탈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내가 해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돼요. 그게 해탈, 해탈지견이죠. 다 들여다보면 아는 거에요. 이 세 가지만 오늘 딱 정리를 잘해 놓으시면은 복력이 생겨요.

 

그러려면은 우리가 하나씩 찾아봅시다. 뭘 찾아야 되냐 하면 아미타경에 여기 교재가 지금 없으시지만, 그냥 들으시고 또 TV에서 보시는 분들을 위해서 내용을 드리면 47쪽에 36번째 常修梵行願상수범행원이거든요. 상수에요. 상수는 (항상할 상)자에다가 (닦을 수)자 거든요. 항상 닦아야 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오늘 세수했으면 내일 세수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오늘 기도했으면 내일도 기도해야 된다는 거에요. 기도할 때 어두운 것을 기도하지 말고 밝은 것을 기도하셔야 돼. 내가 안 되는 것을 자꾸 좋게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좋은 것을 기도를 하는 거에요. 너무 기가 막히잖아요. 안 되는 것을 자꾸 되려고 애쓰지 말고 요걸 반대로 하셔야 돼.

 

쉽게 표현을 드리면 예컨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뭔가 안 되니까 절에 가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예경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생각을 바꾸라는 거에요. 어떻게 바꾸어야 되냐 하면 오늘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다라고 내가 좀 만족한 삶을 더 살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딱 드시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나아지려고 발원하지 말고, 그러니까 안 돼 있는 것만 자꾸 머리에 한 번 탐착하고 기억이 되고 애착이 되고 집착이 되가지고 거기서부터 못 벗어나는 것이 중생이거든요. 해탈하지 않은 상태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는 거에요. 조금만 불편함이 있는 것을 낫게 하려고 하지 말고, 나머지 좋은 것을 더 감사하게 공부를 하셔야 된다는 거에요.

 

부처님께서 내가 예를 들어서 팔이 어디가 잘못 되가지고 상처가 생겼어요. 상처가 여기 조금 났어요. 조금 난 것만 낫게 해달라고 자꾸 매달리지 말고, 요거 상처 난 것은 인연이니까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고치면 돼요. 사고가 돼서 잘렸어도 한쪽이 없어졌어도. 없어져도 나머지가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기도를 부처님께 올릴 수 있는 그런 불자가 되셔야 돼요. 사고가 생겼어. 울고불고하고 난리가 나죠. 조금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겼지, 실패가 생기지, 어려운 일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매일 해야 되는 일 중듸 하나라는 거에요. 절 좀 보세요. 어려운 일은 매일 생기는 거에요. 괴로운 일은 매일 생길 수 있고요. 아픈 일이 가슴이 아픈 일이 매일 매일이 생길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거든요.

 

불자는 그걸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와도, 그런 어려움이 와도 자식이 잘못되는 일이 있어도, 괴로운 일이 있어도, 집안에 불편한 일이 있어도, 요걸 바꾸는 거에요. 뭐라고요? 나머지 좋은 것에 대해 남아있는 것을 더 감사하게 여기고 저 나무아미타불께 의존하고 예경할 줄 아는 마음의 태도의 넉넉함을 배우는 것. 이렇게 하나하나씩 그렇게 되게끔 원을 세우게 하는 것이 저 아미타불의 기도고, 저 지장보살의 원력이고, 저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시라는 거죠. 감사하는 마음에는 감사하는 은혜가 들어오고. 제가 적어놓은 겁니다. 미워하는 마음에는 원망심이 돌아와요. 원망심만 돌아와요. 그렇죠. 그죠. 사신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언어가 자기가 사용하는 말이죠.

 

우리가 사용하는 말. 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말조심해야 돼요. 자기언어가 행복을 만들어낸다는 거에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행복을 자꾸 내보내거든요. 부딪히면 감사합니다.’ ‘잘 오십시오.’ ‘공양하십시오.’ 밥 먹고 나오면은 커피 드세요.’ 이러면 다 해결이 다 돼요. 자신의 언어가 행복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행위가 사람들을 평안으로 평안으로 인도해주는 것이에요. 그렇죠. 그죠.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감사한 씨앗을 심으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연습을 하셔야 돼. 적응이거든요. 그래서 이 적응하는 방법이 곧 기도에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하는 동안 불교적 차원으로 종교적 차원으로 이걸 들여 다면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은혜 공덕이 깃들어있어요.

 

무수히 많은 가피 지묘력이, 저 아미타불의 공덕이, 저 지장보살님의 원력이,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한 중생을 **** 하겠다는 원력이 거기 깃들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왜 그걸 부르지 않는가? 이렇게 말해요. 재미있는 현상이 있어요. 우리 집에 강아지가 둘 있거든요. 하나는 봉숙이고 하나는 봉달이 거든요. 강아지도 네가 더 잘생겼다.” 이러면은 바로 옆에서 봉숙이가 질투를 내요. 이래 혼자 봉달이 예쁘다.” 그러면 생전 안 오거든. 그런데 남 만지고 앉았으면 쫓아와. 와서 지도 머리 디밀어. 재미있어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은 거기에는 아주 미묘한 세계가 보여요. 감사한 일이 저절로 생겨요. 봉달이가 와서 얼마 안되 거든요. 주인이 저걸 데려다 주면서 2주 만 메어놓으라 그랬어. 2주만, 2주 동안 매달아 놓잖아요.

 

그러면 먼저 있던 집에 가지도 않고, 그러고 나서 풀어놓으면 안 갑니다. 여기가 자기 집인 줄 알아요. 요게 기도에요. 요게.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이 7일 기도고, 20일 기도고, 100일 기도에요. 그러니까 헐 짓을 안 해야 되요. 스스로를 억제하는 거에요. 그죠. 이때 스스로 억제하는 게 뭐냐 하면 지나친 탐욕을 부리지 않는 거에요. 성질 부리는 걸 7일만 안 해 버릇해요. 기도를 3일만 하면 사람은 행복해지거든요. 정말로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 3일을 우리는 못해요. 여기가 건봉사입니다. 누누이 누누이 강좌 하면서 감사드린 게 건봉이란 말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봉황이 사는 데에요. 여기 와서 하루 저녁 주무시는 것만으로도 제업장이 소멸됩니다. 좋아집니다. 법칙이에요.

 

왜 그게 되느냐하면 우리 각자 각자 불자님들 가슴마다 다 불성이 깃들어 있고 그 불성은 해탈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에요. 단지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작용이 어둡게 쓰기 때문이거든요. 그 어둠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하나에요. 여러 방법이 있는 중 하나가 뭐냐 하면 감사할 줄 아는 거에요. 자기 머리카락에 감사하고. 자기 가슴에 감사하고. 심지어는 병든 것도 감사하세요. 가난에 대해서도 감사하세요. 원망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내가 봤어요. 실질적으로. 마음의 예경 속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니까 법장비구께서 아미타경을 통해서 뭘 성명했냐하면 상수라 그랬어요. 상수는 뭐에요? 항상 다루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범행이에요. 범행이라는 것은 일상생활에 움직임이라든가 말하는 거 생각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범행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