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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_ 세 가지 종류의 깨달음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8. 30. 18:43

 

 

 

오늘은 금강경 의법출생분 제8_ 법에 의해 가르침이 나온다.

 

지난 시간에요, 무등무설분이라고 하는데서

무유정법 여래가설이라 이 말이 있었어요.

부처님이 설법을 하신 것은 어떤 정해진 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정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정해진 법, 이 법은 말을 하고 이 법은 말을 하지 않고

그게 아니라는 거죠. 무유정법 여래가설이라.

정해진 법을 여래가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여래설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죠.

요것만은 분명히 여래가 말씀하셨다이렇게 되야 설법을 중요하게 여길 텐데

여래가 꼭 말한 것이 없다. 이러니까

여래설법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반야바라밀에서는 그런 게 아니거든요.

얻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이 없다라고 했을 때

얻은 거 없죠, 분명히.

그러면 그 다음에 뭔 말이냐?

얻지 않은 것이 없거든요.

그게 깨달음입니다.

 

얻은 것도 없고, 얻지 않은 것도 없다.

말한 것도 없고, 말하지 않은 것도 없다.

 

그게 실상반야에요_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관하는 지혜

무지무부지_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무설무불설_ 말한 것도 없고 말하지 않은 것도 없다.

그 경지를 실상반야라고 그럽니다, 실상, 실상의 세계.

 

그러니까 부처님이 무유정법이 여래가설이라해서

일정한 것을 설법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부처님 설법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까

오늘 의법출생분 법문을 하신 겁니다.

 

수보리야 어의운하오_ 수보리야 생각이 어떠하냐?

약인이_ 만약에 어떤 사람이

만삼천대천세계한 칠보를_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이용보시하면_ 그것으로 보시를 한다면

시인 소득복덕이_ 이 사람이 얻는바 복덕이

영위다부아?_ _ 얼마나, 이런 뜻인데요, 이게 어찌라고 하는, 어찌 하 라는 의미도 있고, 어떠하냐, 얼마냐 하는 의미도 있고 그래요.

얼마나 많음이 되겠느냐? 얼마나 많겠느냐? 이런 뜻입니다.

 

수보리언 심다니다, 세존이시여_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심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즉비 복덕성이라_ 곧 복덕의 성품(바탕)이 아닌지라

시고로 여래설 복덕다니라_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금강경이 이렇기 때문에 어렵다고 그럽니다.

도대체 이게 뭔 말이냐?

첫째, 이걸 말하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이 많은 것이 있다면 뭘까?

칠보를 칠보라고 하는 것은 물질 중에서도 제일 좋은 물질을 칠보라고 그럽니다.

금은, 유리, 차거, 마노, 산호, 호박, 신주 등.

그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이 제일 많은 거죠.

제일 좋은 물질을 제일 많이 보시한 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이 소리입니다.

 

삼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이용보시하면_ 그것을 보시에 쓴다면

소득복덕이_ 얻는 복덕이

영위다부아_ 얼마나 많겠느냐.

그러니까 이 세상에 제일 좋은 물질을 제일 많이 한 복덕이니까

뭐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거 아니에요.

 

그런데 심다세존_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오.

하이고요_ 왜냐하면

시복덕이 곧 복덕성이 아닐세 이런 고로 여래가 복덕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_복덕성이 아니라는 얘기는 뭔가?

칠보를 보시한 복이 보배 보, 보시할 시, 보시 복인데

이 보시 복은 최고로 이 세간법에서 많은 복인데, 삼계영역에 밖에 속하지 않아요, 삼계영역.

중생세간에 밖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걸 유루복이라고 그럽니다_ 없어지는 복이다.

그런데 복중에 제일 큰 복이 칠보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운 복이죠.

그런데 그런 복이라도 문제는 삼계, 중생윤회에 속하는 복이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곧 복덕성이 아니다 이렇게 한 것에요.

무슨 복덕성이 아니라는 말인가?

출세, 세간법을 초월한 해탈복이 아니다. 이 소리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래가 세간법에 의지해서 복덕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입니다.

여래설복덕다, 이 말은.

세간 복이 없다는 게 아니에요.

출세간_ 해탈복이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해탈복이. 그걸 얘기하는 거예요.

 

유루복이라는 게 과거에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현재 가난하고

또 현재에 복 많이 받는 사람이 미래에 가난하게 돼요.

이게 삼계윤회라는 거예요.

(삼계윤회_ 중생이 이 세계를 윤회하면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하는 것)

과거에 다 부자가 지금 가난하죠.

지금 부자가 앞으로 가난해지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해요.

과거에 젊던 사람이 지금 나이 많아요.

그럼 지금 젊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되요? 나이 많아지는 거예요.

이게 유루복이라는 겁니다.

이게 보배를 보시한 복이, 복이 없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복이고, 그 보다도 높을 수 없는 복인데

문제는 그것만 가지고는 해탈을 하지 못한다. 이 소리예요.

그래서 무루복이 안된다, 이거에요.

 

그러면 그다음에는 뭐냐?

약부유인이_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어차경중해서_ 이 경 가운데서

수지내지사구게등하야_ 마지막에 이르러서, 사구게 등을 수지해서

내지는_ 더 나아가서는, 끝에 가서는, 전체가 아니고 내지라는 것은, 더 나아가서 마지막에 이르러서, 뭐 이런 얘기죠.

사구게 등을 수지해서

위타인설하면_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하면

기복덕이 승피니_ 그 복이 저 칠보를 보시한 복덕보다 더 수승하니

저보다 더 낫다.

저라는 건 보배를 보시한 복이거든요. 저거는.

저 복보다 이 복이 낫다 그러면 이 복이 뭐냐?

수지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이거거든요.

_ 경을 배우는 것, 간직할 지_ 내가 잘 실행하는 것,

위타인설_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연설이라고도 하고 해설이라고도 하고 그런 말을 씁니다.

해설을 한다든지 그것을 펼쳐서 설명하는 것인데

이 복을 가질 지, 경 경, 지경복이라고 그럽니다.

 

복에는 보배를 보시하는 보시복이 있고

그냥 보시라는 게 아니고요, 보배 보 보시할 시, 보배복

보배를 보시하는 보시복이 있고

경을 수지하고 해설하는 지경복이 있어요. 지경하는 복이 있다.

그런데 이 보배보시한 보시복이 지경복에 비교를 하면 그거 복도 아니다. 이걸 말하는 거예요.

그게 물질 보시한 게 복 안된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 물질 보시한 그 복보다 경을 수지하고 해설한 그 복이 훨씬 더 높다, 이 말이죠.

그게 성피죠. 저보다 더 나은이라. 이 말이거든요.

왜그러냐? 왜 나으냐?

보배를 보시한 그 복만 가지고는 해탈을 못해요.

경전을 수지독송하고 위인해설하면 법신불을 얻어서 실상반야에 들어가고

또 보신불 화신불을 얻어서 원만성불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지경하는데는

이걸 여러운 말로 아는 공덕이 있고 만드는 공덕이 있다, 이래요.

아는 공덕을 알 요, 수료한다는 마칠 요, 원인 인, 요인.

요인이라는 아는 인이 된다.

경을 잘 수지독송하고 위인연설하면 그 실상반야를 알게 되요, 깨닫게 된다.

또 그러면 그게 법신불이에요.

실상반야를 깨달으면 그것이 법신불이다.

 

수지독송하고 위인연설하면 자수용신_ 자기만이 몸을 받아서 몸을 쓰는 자수용신을 얻는데 그걸 보신불이라고 그럽니다.

보답할 보, 보신불.

그다음에 다른 이를 위해서 많은 변화의 공덕을 일으킬 수가 있는데 그걸 타수용신_ 변화신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런 삼종보리_ 3가지 종류의 깨달음, 삼종불신을 지경 공덕에서 다 이루게 된다.

그 이루는 것을 지을 작, 원인 인, 작인이라고 그래요. 요인, 작인.

 

지혜로서 아는 게 있고, 노력으로서 만드는 게 있어요.

노력으로 만들어 나가는 걸 보신불, 화신불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신불은 만드는 게 아니에요. 요인이에요, 알아서 증득하는 거죠. 요인.

 

그런데 보배를 보시한 공덕만 가지고는 알 수 없어요.

그건 만드는 거지.

작인은 되는데 요인이 안된다, 이 소리예요.

이거 이해가 잘 되셔야 하는데요. 이 부분은.

 

복을 많이 짓는 건 만드는 거예요. 작인이에요. 짓는 행위다.

아는 그 인연을 못 짓는 거예요. 요인을 못 짓는다, 직인만 짓지.

그러니까 지은 것은 사라지고 조작성은 파괴성이다, 파괴되요.

조작은 반드시 파괴가 되요.

 

지금 친한 사이는 앞으로 반드시 멀어져요.

이거 안 믿으면 발심 못하는 거예요.

지금 젊은 사람은 반드시 늙고요,

지금 늙은 사람은 반드시 죽고요

이걸 알아야 불생불멸 법신불을 알고자 하는 요인을 짓는 거예요.

지금 왕성한 사람은 반드시 쇠약하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이게 지으면 또 사라지고, 지으면 또 사라지고

이런 조작성이기 때문에 보배로 보시한 것만 가지고는 세속적인 복이다, 이거예요.

 

그런데 지경복은 불생불멸, 법신을 아는 요인도 되고 자수용신과 변화신을 일으키는 그런 작인도 거기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경복이 훨씬 더 높다. 이걸 설명한 거예요.

 

부처님이 설법한 바가 없지만

설법을 안 한 바도 없기 때문에 경전이 이렇게 중요하다.

 

하이고요, 수보리야 일체제불급 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개종차경출이니라_ 다 이경으로부터 나왔느니라.

부처님 설법에 의해서 일체제불이 나오고, 제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법이 나왔다.

다 이경으로부터 나왔다. 이 말인데요

 

이게 결정적으로 경전의 그 숭고함을 설명하는 아주 결정적인 대목입니다.

부처님 설법이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는 설법이기 때문에

삼세제불이 반야바라밀에 의해서 나온다.

 

반야심경에도 삼세제불이 의반야바라밀다고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반야바라밀다에 의해서 나온다.

 

그러니까 일체제불이 반야바라밀다에 의해서 나오고

또 일체제불 아뇩다라삼보리법이 반야바라밀다에 의해서 나오기 때문에

그 반야바라밀다 경이 이 경이다, 이 말이죠.

다 이 경으로부터 나오나니라.

 

수보리야, 소위불법자는 즉비불법이니라_ 그럼 여기서 반야바라밀다의 반야경에서 나오는 이 불법이 도대체 뭐냐?

즉비불법이라_ 이것은 뭔 소리인가.

말과 문자로 설명되어지는 경 뿐만이 아니다. 이 소리에요.

곧 불법이 아니다, 이 말은 부처님 만이 알 수 있는 불법이지, 일반 범부가 알 수 있는 법이 아니다.

그래서 곧 불법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 밑에 시명불법이라 라는 말, 시명불법이라는 말을 다른 경에서 넣은 경도 있어요.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시명불법, 이런 식으로

거기서 시명불법_ 그러므로 참으로 불법이다.

즉비불법_ 범부가 알 수 없는 불법이다.

 

아까는 즉비복덕이라는 게 열반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복덕이 아니다라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범부가 알 수 없는 불법이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고 그랬어요.

이러니까 어려운 거예요.

즉비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는 이렇기 때문에 곧 아니고

이런 경우에는 이렇기 때문에 곧 아니다.

범부가 모른다고 그래서 즉비불법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참으로 불법이다, 이게 시명불법이에요.

 

복덕성은 복덕성인데 삼계에 속하는 복덕이고,

출세간 해탈을 얻지 못하는 복덕이니까 곧 복덕이 아니다. 이런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