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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 52. 중생은 뿌리고 깨달음은 열매다 – 깨달음의 길

Buddhastudy 2021. 11. 15. 18:53

 

 

 

 

대방광불화엄경 세계성취품 제4로다

나무아미타불~~

 

잠시 본문 게송을 새겨보겠습니다.

 

일체 찰해의 모든 장엄이

무수한 방편과 원력으로 생기었고

일체 찰해가 항상 광명을 비추는 것이

한량없는 청정업으로 일어났도다.

오랜 세월의 선지식을 친견하고

함께 닦은 선업이 다 청정하고

자비의 광대함이 중생에 두루하니

이로써 모든 세계를 장엄함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세계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세계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요.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세계가 깨끗해지거든요.

 

이 세계는 각심소현이라.

각심_ 보리 마음, 정각의 마음,

각심이 나타나는 것이 세계이지 각심을 떠나서 세계는 없다 이거거든요.

 

그러면 이 청정한 세계가 어디로 나왔냐?

전부 청정각심에서 나온 거죠. 청정심에서.

그래서 거기에 대한 게송입니다.

 

일체 찰해 제장음이

찰해_ 모든 세계, 제망찰해, 한량없는 세계의

장엄_ 꾸며진 거죠. 여러 가지로 꾸며진 것이

무수방편의 원력으로 생이라_ 한량없는 방편 원력이라.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데는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셔야 하거든요.

부처님의 어머니, 부처님의 아버지

실닷타의 어머니는 마야부인이고, 실닷타 존자의 아버지는 정반왕인데요

화엄경 처음으로 정각을 이룬 부처님은 그 실닷타가 아니에요.

부처님이에요.

 

그럼 부처님은 마야부인하고 정반왕에서 태어난 분이 아니에요.

부처님은 일각적조_ 일각이 고요하면서 모든 세계를 다 비추는 그 세계가 부처님이다 이거죠. 일각적조.

그럼 일각이 적조하면 그 세계가 부처님인데 일각이 적조하면 어떠냐?

찰해가 엄정이라_ 시방의 모든 찰해가 다 장엄이 되어 있는데, 그 장엄 하나하나가 청정해요.

일각이 적조에 찰해가 엄정이라_ 다 장엄하고 청정하다 이 말이죠.

 

그래서 세계를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세계가 그대로 청정세계가 되는 거죠. 청정세계.

화엄경에 시성정각이라_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 하면서 바로 나오는 게

그 땅이 견고해서 금강으로 ..라 이게 나와요.

금강이라는 것은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빛나고 항상 유익한 게 금강이거든요.

시성정각의 금강도량이에요. 이게 화엄경이에요.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고 나니까 그 도량이 금강도량이 된 거예요.

 

그래서 내가 깨달음을 얻으니까 시방이 전부 장엄이고 시방이 다 청정하다.

이게 화엄이거든요.

화엄이라는 게 이런 거예요.

 

그래서 모든 세계가 어디서 나오느냐?

자기 그 광명, 광명에서 나오고 자기 공덕에서 나오죠.

그래서 여기 일체찰해의 모든 장엄이 여러 가지 방편 원력으로 나온다.

이 방편 원력이라는 게 정각의 활용인데

방편 원력은 정각에서 저절로 나오게 돼요.

그러면 이 방편 원력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 그 아버지인 거예요. 방편이.

방편이 없으면 아버지가 없어요. 부처님에게.

 

그러면 어머니는 누구냐?

색이 공함을 보는 반야, 그게 부처님의 어머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의 어머니는 반야다.

그래서 반야가 불모에요. 불모.

방편이 불부에요. 방편이 부처님의 아버지에게요.

 

그래서 부처님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야로서

색이 공함을 탁 보는 조견수행, 택법관공_ 어떤 법이든지 선택을 해서 공임을 보는 거예요.

공이란 뭐예요? 불생불멸이거든요.

일체만법이 불생불멸임을 보는 것이 반야입니다.

거기서 부처님이 탄생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반야로부터 탄생한 부처님을 키우는 것은 방편이에요.

또 그 방편을 잘 끝까지 해나가는 건 원력입니다.

방편원력이 없으면 그 반야관공에 의해서 태어난 부처님을 키워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아버지는 방편이고, 부처님의 어머니는 반야다.

 

그러면 반야로서 뭐까지 하느냐?

반야심경에 보면

무색수상행식, 색수상행식이 몸뚱이, 이것이 공함을 보는 게 반야에요.

색수상행식 몸뚱이가 불생불멸임을 보는 게 그게 반야구요.

안이비설신의, 입눈코귀, 안이비설신의가 공함을 보는 게 반야이고

그 반야심경 있죠?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다 있잖아요. 그게 공이 불생불멸이거든요.

 

의식계 안식계, 육식이 다 공함을 보는 게 반야이고

역무노사, 늙고 죽고 하는 것이 없는 걸 보는 게 반야에요.

여기서 부처님이 나오는 겁니다.

 

또 무지역무득_ 그 공함을 아는 지혜까지도 없는 걸 보는 게 반야구요

또 거기서 얻은 열반, , 열반까지도 불생불멸임을 보는 게 반야에요.

그럼 이런 공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부처를 잘 길러내는 게 방편이라고 그랬거든요. 방편.

 

그래서 부처님은 반야가 불모이고, 방편이 불부입니다.

그래서 방편을 통해서 여러 가지 공덕을 닦음으로 말미암아 구경각을 이루게 되는 거죠.

그런데 태어나기는 반야조견_ 비추어본다. 반야관조_ 보아서 비춘다.

여기서 부처가 태어나요.

 

그러니까 성불하고 싶으면

색이 공함을 보는 반야조견을 하면

거기서 부처가 태어나는 거죠.

 

그래서 방편을 자꾸 닦으니까,

이 방편이라는 얘기는 일체가 수행인 거예요. 일체가.

보시를 하는데 복보보시를 하면_ 내가 오늘 복을 지으면 다음 복을 받는다. 이건 복보보시 거든요.

자식을 잘 키우면 자식 덕을 본다, 이건 복보보시에요.

은행에 예금하면 나중에 찾잖아요, 이거와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수행은 방편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키우면 뭘 받기 위해서 키우는 게 아니라

그게 하나의 지혜를 닦는 방법이에요.

보시를 하면 그것이 나중에 보답을 받는 게 아니라 지혜를 닦는 방법이 그게 보시입니다.

그래서 뭘 하든지 다 지혜를 닦는 대로 돌려요.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내 지혜를 닦는 거다.

요것이 전부 바라밀행이거든요.

그래서 이 바라밀이라는 건 전부 성불하는 행위를 바라밀이라고 그래요.

부처의 세계로 가는 거,

그러니까 이 세계가 다른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전부 공덕에서 나왔고

그 공덕은 원력에서 나왔죠. 원력.

 

그러니까 이런 집을 떡 보면, 이 집이 어디서 나왔냐?

여기 기둥이 있고 다 있는데, 이 집을 지을 때의 원력은 안 보이거든요.

그러면 눈이 있으면 이 집을 보면 이 집의 모양만 볼 게 아니라, 이 집 지을 당시의 원력을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건 나의 공덕입니다. 그게.

 

여기 나이 많으신 분들은 혹시 경험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게 있어요.

나이가 들다 보면 눈앞에 뱅뱅뱅뱅 뭐 도는 게 나타나는 병이 있어요. 뱅뱅뱅 돌아요.

그런데 그걸 경에서는 털 모, 바퀴 운, 털바퀴라고 그래요. 털바퀴가 왔다갔다,

안과에서는 비문이라고 그러더라고, 날아다니는 문양, 날아다니는 물체.

 

뱅뱅뱅뱅 도는데, 이게 뭐가 있어서 뱅뱅 도는 게 아니에요.

노안이 되니까 눈이 늙어서 도는 거예요.

눈이 건강하고 깨끗하면 절대로 안 돌죠.

눈이 노쇠하고 건강치 못하니까 눈앞에 털바퀴가 왔다 갔다, 노랑나비가 왔다 갔다 하고

이런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면

세계가 아주 청정하고 아름다워요.

세계를 맑히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맑히는 거,

그게 아주 중요하고

부처님이 하신 게 바로 그거다, 이거에요.

 

세계 얘기를 왜 하냐?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명하려고 세계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거는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야기 하는 거다, 이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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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리중생하야 성행하야_ 중생을 이롭기 위해서 수승한 행을 닦아서

복덕광대가 상증장이라_ 복덕의 과한대가 항상 불어난다.

그것이 마치 비어운포가 등허공하니_ 비유하건대 구름이 허공과 같이 넓어진 것처럼 나타나니

일체의 찰해를 개성취로다_ 일체 세계를 다 이룬다.

 

중생을 위해서 뭘 한다,

그럼 이게 불교에서는 중생을 위해서 뭘 하는 것이 중생을 위해서 무슨 일을 돕는 게 아니고요

중생을 위해서 공덕을 닦으면 그것이 성불하는 방법이에요.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성장하듯이 성불하는 데는 중생을 위해서 닦는 것이 뿌리가 되어서

보리의 열매가 열린다.

중생은 뿌리요, 깨달음은 열매다, 이거죠.

 

일체중생이 나를 성불시켜주는 뿌리가 되는 거죠.

그게 대승불교의 발심입니다.

중생 속에서 수행하는 게 홀로 수행하는 거 보다 몇천 배 어려운 것에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사람 말 안 들어요. 절대 말 안 들어요.

그런데 사람만 말 안 듣는게 아니라 동물들도 말 안 들어요.

고양이란 놈, 참 버르장머리 없고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누워 잘 때요, 사람이 아무리 옆에 가도 일어나지도 않아요.

사람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고양이보다는 버릇이 있어요.

아무리 잘해줘도 가고 싶으면 그냥 가버려요. 인정사정 그런 거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그걸 야속하게 생각한다든지, 뭘 대가를 바라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전부 좋게 보는 거예요.

고양이가 그렇게 하는 것도 다 예쁘게 보고

또 사람이 뭐라고 해도 그걸 전부 좋게 보는 거예요. 좋게.

 

그래서 원력을 가지고 방편으로 공덕을 닦는 사람은 섭섭한 마음이 없어요.

? 전부 좋게 보니까.

그런 원력으로 그렇게 닦아가면 그게 수행이에요.

그것이 대승불교 수행입니다.

 

그래서 그런 원력과 공덕으로 세계가 다 이루어져요.

그래서 이와 같이 되는 세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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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무등일체법하고_ 그 평등함이 없는 똑같음이 없는 전부 차별한 그런 일체법을 다 닦고

생기무변의추료행하야_ 한량없는 지혜를 닦아가는 방편도 지혜를 닦아가는 지혜도, 이거를 일으켜서

종종방편으로 화군생하니_ 가지가지 방편으로 군생을 교화하니

그럼 발심수행하는 보살의 경지는 말로는 이타행이 있는데, 이타라는 게 전부 자리에요.

타라는 게 없어요. 타라는 게.

모든 것이 자기에요.

이것이 불심입니다. 다른 이가 없어져 버렸다. 다른 이가.

내가 보는 건 다 나에요.

아 이거참 ㅎㅎ

 

타는 없어요.

그래서 온갖 공덕을 닦는 것이 남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기 지혜 닦는 거예요. 자기 지혜.

그 온갖 공덕 닦는 것이 보현행이라고 그러는데, 보현행은 온갖 공덕을 닦는 거거든요.

그러면 온갖 공덕을 닦는 보현행을 자꾸 실천해 나가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성불하는 거예요. 성불.

그래서 보현행원품에 이 보현행으로써 오보리라_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는다는 법문이 있어요.

 

그러니까 중생을 가까이하는 것은 보리의 씨앗을 심는 거다.

그 씨앗이 점점 자라서 보리의 열매가 열리는 거다,

이게 화엄수행이고 이것이 보현수행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력수행이에요.

이런 거로서 국토를 장엄한다_ 여시로 장엄 국토해로다. 이렇게 돼요.

 

공양일체제여래하야_ 일체 모든 여래에게 공양을 해서

국토의 무변이_ 한량없는 국토가

실청정이로다_ 다 청정해진다.

 

공양이라는 것도 부처님한테 뭘 갖다 드리는 게 아니고

나의 지혜를 닦는 그게 공양입니다.

그게 바로 보현행이고 그게 방현행이에요.

그런 보현행, 방편행, 공양행을 통해서

반야에 의해서 태어난 그 부처가 성장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