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Danye Sophia] 팔만대장경, 그 속엔 깨달음이 없다!

Buddhastudy 2021. 11. 17. 19:10

 

 

 

 

옛날 옛적에 맹인들만 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들은 코끼리를 신앙하고 있었는데

특히 수행자들의 코리끼리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코끼리 연구에 바치며 세월을 보냈고

이들이 남긴 연구물은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점점 방대해졌습니다.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은

도서관을 가득 채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난파선을 통해

이방인 한 명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은 맹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방인은 산책을 하던 중

광장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맹인 수행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코끼리에 대해 묘사하고 있었는데

 

특히 귀에 들어왔던 내용은

코끼리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면 견성

훤히 떠오르면 성불이라는 대목입니다.

 

토론의 열기가 가열하게 타오를 무렵

허연 수염을 배꼽까지 늘어뜨린 반백의 사내가

광장 한편에 마련된 단상 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자

수백 명의 수행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에 잠겼습니다.

반백의 사내는 잠시 귀를 쫑긋 세운 뒤

수염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코끼리는 적당한 노력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핵심 경전을 천 번 만 번 정독해서

그 이치를 훤히 꿰뚫어야 합니다.

어떤 수행자는 코끼리의 코만 붙잡고는 깨달았다고 하고

또 어떤 수행자는 코끼리의 팔다리만 파악해

한 소식 들은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평생을 수행해도 기약할 수 없어요.

팔다리와 몸통, 그리고 긴 코와 나풀거리는 귀는 기본이고

피부의 갈라진 틈새에 낀 먼지와

심지어 풀냄새 가득한 똥까지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나는 과거 선사들이 남긴 기록과 비교해 가며

직접 코끼리 똥 맛까지 보면서 연구했습니다.

이렇게 용왕매진 수행한 결과

코끼리의 전체상을 한눈에 그릴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쯤 되어야 깨달음을 논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팔다리나 잡고, 코에나 매달려

아는 체를 해선 안 됩니다.”

 

반백의 사내가 말을 마치자

수행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명상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구경하던 이방인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파열음에 높은 톤의 웃음은

한눈에 봐도 비웃음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반백의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거친 입을 열었습니다.

 

누가 감히 나의 말에 비웃음을 내비친 것이오?

내 이론에 이견이 있으면 숨지 말고 당당히 말해보시오.”

 

이방인은 웃음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코끼리를 그렇게까지 연구할 필요가 있나요?

코끼리는 그냥 코끼리인 것을요.”

 

코끼리가 그냥 코끼리라니요?

코끼리가 얼마나 웅대하고 심오한데 그런 무식한 얘기를 하는 것이오?

도서관에 있는 코끼리 경전을 달달 외워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거늘

반백의 사내의 어조는 호통조 일색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방인은 모기소리 만하게

코끼리 경전이야 그냥 코끼리 얘기일 텐데..”

하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실 이방인이 코끼리에 대해 할 말을 떠올려도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코끼리는 그냥 코끼리이니까요.

 

그러자 반백의 사내가 묵직한 어조로 말을 이었습니다.

뉘 신지는 모르나 코끼리에 관한 핵심 경전만이라도 읽고

코끼리를 논해야 하오.

기본 공부가 되면 나를 다시 찾아오시오.

내가 제대로 된 코끼리 법문을 내릴 터이니

 

말을 마친 반백의 사내는

때마침 기울어지는 석양의 노을을 향해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겼고

멋쩍어진 이방인은

엷은 미소를 띠며 광장을 벗어났습니다.

 

이때 어디선가 코끼리 울음소리가 적막을 갈랐고

수행자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참배하였습니다.

 

이방인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무려 2천여 년 동안 대를 이어가며

코끼리 연구에 매진한 사람들의 노력이 가상했지만

한편으론 왜들 저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코끼리는 그냥 코끼리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도서관을 채울 정도로 이론을 만드는 것이며

또한 코끼리를 진정으로 알려면

눈을 뜨는 법에 힘쓰면 될 것을

왜들 저러나 싶었습니다.

 

오늘밤 따라 유난히도 밝은 별빛 부스러기들이

코끼리를 그려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