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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8분 만에 정리하는 UFO의 역사

Buddhastudy 2022. 1. 19. 18:27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UFO의 출현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아직 있습니다.

여러가지 목격담, 사진과 영상, 납치, 생체실험과 같은 증거들도 꾸준히 돌아다닙니다.

 

외계인과 UFO 관련 증거 중 95%는 가짜로 판명 되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솔깃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해결되지 못한 5%의 수수께끼가 있다는 점 때문에

UFO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음모론과 연결됩니다.

 

외계인들은 여기 와있고 정부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증거를 알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증거들은 이미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었거나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역사 속에서 UFO는 미디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 오늘은 외계인, UFO, 음모론이 언제부터 형성되었고

대중매체와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 그 역사와 배경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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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생명체와 대중매체가 처음 만난 때는 19세기 초였습니다.

1835, 새로 출범한 타블로이드 신문 '뉴욕 선'은 달 표면 관측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선이 묘사한 달에는 넓은 숲과 바다, 네발짐승과 날개 달린 인간형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라디오나 전보조차 없던 시절에

달을 실제로 관측했다는 기사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경쟁 신문들이 미친 듯이 재탕 기사를 찍어내고, 유럽에도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결국 뉴욕 선의 기사는 실제 관측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사기극으로 밝혀졌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외계인은 이미 대중문화의 주류에 화려하게 합류한 뒤였습니다.

 

달 다음으로 대중을 강타한 것은 화성이었습니다.

1877,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들이 화성에 수로처럼 보이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수로를 뜻하는 까날리는 영어로 인공적 운하를 뜻하는 카날로 오역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우주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성인의 침공을 다룬 '우주 전쟁'이 크게 히트하고 화성인 관련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09년에 윌슨 산 천문대가 화성의 운하는 착시 현상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대중은 과학계처럼 재빨리 화성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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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대중 미디어가 발달하고 전운이 감도는 20세기에

외계인은 그들의 교통수단을 타고 지구를 방문할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4,

독일 상공을 날아가던 B-17 조종사들이 빛나는 공 모양의 물체를 발견합니다.

 

비행기와 나란히 날아가거나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빛!

당시 조종사들은 이 빛을 '크라우트 파이어볼', 혹은 '푸 파이터스'라고 불렀습니다.

 

푸 파이터스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이 제시되었습니다.

1. 대공포에 의한 착시현상

2. 코로나의 방전

3. 독일공군의 대공포 조준점용 빛

 

끝내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푸 파이터스는 이후 UFO 추종자들에 의해

외계인 출현의 첫 증거로 채택됩니다.

어쨌든 최초의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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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워싱턴 주에서 개인 비행기를 몰던 케네스 아놀드는

하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날아가는 연꼬리 모양의 물체를 목격했습니다.

 

아놀드의 이야기를 들은 지역 신문은 비행체의 모양을 제멋대로 바꾸어 기사를 올렸습니다.

아이다호 비행사가 초음속 비행접시를 목격하다.

비행접시라는 역사적인 단어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부터 연꼬리가 아닌 접시처럼 생긴 비행체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쏟아졌습니다.

목격담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그 목격담이 거짓임을 폭로하는 뉴스가 뒤따랐습니다.

1947년은 온통 비행접시의 해였습니다.

 

결국 모두가 실증나는 수준까지 도달하자 신기하게도 목격담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뉴멕시코의 조그만 도시 로스웰에 추락한 비행접시였습니다.

 

 

추락한 비행접시에서 외계인 시체를 수거해 51구역으로 옮겼다.

한때 '이 로스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외계인이다'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로스웰은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외계인 음모론의 핵심 아이콘이었습니다.

사실 로스웰의 유명세는 비행접시가 추락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스웰도 1947년의 여러 목격담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추락한 물체는 기상관측장비' 라는 해명 기사가 나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진 일이었습니다.

 

로스웰의 유명세가 시작된 것은 사건 이후 31년 뒤였습니다.

1978, 한 잡지가 남는 지면을 채우기 위해 로스웰 기사를 그대로 재수록 합니다.

30년 전 기사가 슬슬 인기를 얻자 그때부터 주기적인 우려먹기가 시작됩니다.

 

1979년에는 TV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다시 10년 뒤에는 새로운 다큐멘터리도 방영되었습니다.

1991년에는 책 '로스웰의 UFO 추락' 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로스웰 이야기는 몽땅 이 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로스웰 우려먹기의 정점은 1995년이었습니다.

폭스TV가 방영한 외계인 해부 영상을 무려 천 2백만 명이나 시청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본 로스웰 주민들은 정작 사건의 진위여부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로스웰의 UFO 박물관은 매년 엄청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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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들어서자 비행접시도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비행 접지를 목격만 해도 효과가 있었지만

이젠 비행접시에 탑승하거나, 납치되거나, 생체실험 정도를 당해줘야 사람들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조지 애덤스키라는 묘한 인물은 금성인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왔다고 주장하면서

금성인의 허락하에 비행접시 사진까지 찍어 공개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잠수함의 창문과 알루미늄 재질처럼 보이는 동체를 가진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이 사진은 이후 모든 비행접시 모양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애덤스키의 금성인 접촉 이야기도

사이언톨로지와 같은 외계인 관련 종교가 탄생하는 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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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등등한 UFO도 약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UFO들은 정말 기가 막힌 우연으로 20세기 중반에만 집중적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약점도 곧바로 보완이 됩니다.

 

성경의 에제키엘 전차를 비롯해

고대문명의 유명한 기념비들이 모두 외계인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속속 나온 것입니다.

 

지금 보면 익숙한 이 주장들은 사실 1968년에 출간된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책의 저자이자 사기 전과가 있는 폰 데니켄은

책이 2천만 권이나 팔리는 대박을 친 뒤에야 책의 내용이 모두 거짓으로 꾸며낸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고대 외계인 설은 1968년부터 UFO 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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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살펴본 외계인과 UFO 이야기들을 정리하면 몇 가지 특징이 보입니다.

우선 시기적으로 20세기 중반에 집중적으로 유행하고 사그러졌다는 점

대중매체에 의해 상업적으로 크게 소비되었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비과학적인 증거와 목격담에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UFO를 믿는 사람들은 100가지 과학적 가능성보다

한 가지 목격담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외계인에게만 후한 물리 법칙을 적용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불가능해 보이는 광속 여행이나 초공간 이동도

외계인에게는 손쉬운 일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초월적인 존재가 지구의 들판에 추락하고

지구인에게 잡혀 해부를 당합니다.

그 보복인지 몰라도 수십 년 동안 지구인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을 합니다.

 

외계인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입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영상은 외계인과 UFO 현상을 현실적으로 분석한 책, '에일리언 유니버스'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