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41회 제근구족원

Buddhastudy 2012. 11. 4. 21:14

방송 보기: 불교TV

 

잘 지내셨습니까? 저 뒤에 잘 들리나요? 사람이 하루를 사는 것이 이게 이제, 하찮은 거 같잖아요. 그런데 하루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어요. 24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저 달이 지구를 한 바퀴를 도는 시간이에요. 24시간 동안이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이렇게 돌잖아요. 그게 24시간 돌고요.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데 1년에 365일을 돕니다. 그래서 일력과 달력이 생기게 된 거거든요. 그런데 만일에 저~ 우리 지구나 달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서로 인력이 서로 닿고 서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고약한 것은 피하고 좋은 것은 택하고 그렇잖아요. 그죠?

 

그게 모든 종교가 그렇게 가르쳐옵니다. 그러나 불교만큼은 오직 저 고약한 것도 자기 업에 의해 왔으니까 좋은 것으로 바꿔서 써야지. 이렇게 표현양식을 그렇게 바꾸어 가는 것이 이제 불교의 가르침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마음이나 몸이나 정신이나 감정이나 이런 것들이 늘 살아있어야 되요. 움직이고 있어야 살아있는 거에요. 그렇죠. 그죠. 그렇게 몸은 자꾸 움직여지지 않으면 우리들 안에 들어있는 세포단위 하나하나가 아~ 이것은 좋은 분열이나 좋은 복제를 할 필요가 없구나. 그래서 새로운 세포를 적게 만듭니다. 그러면 빨리 병이 들고, 빨리 늦게 들고, 빨리 늙어지게 되고, 빨리 죽음에 도달하게 되죠. 왜냐하면, 생산력이 떨어지니까.

 

그래서 움직이셔야 돼. 생각도 움직여야 되고, 말도 살아있어야 돼. 그러니까 말은 자기 말이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살리는 그런 언어로 자기를 바꾸어 가셔야 돼요. 그러시죠? 그죠? 그런데 이게 자꾸 연습이 돼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자기 입이, 자기 말, 언어 그 자체가 자기를 망하게 하는 말을 스스로 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가 실패하는 인생을 자꾸 만들어 가고 괴롭고 힘들고 억울한 인생을 자기가 스스로 자기 언어로 만들어요. 그렇죠. 그죠. 그건 살아있는 말이 아니라 죽음의 말을 하는 거요. 어른들 보면 배찬 소리 하잖아요. 배찬 소리 아시죠? 그죠?

 

뭐라고 조금만 불편한 일이 생기고 자기한테 생기면 내가 먼저 죽어야지.’ 이게 다 배찬 소리에요. 아무 의미 없는 소리인데 들으면서는 기가 막힌 거거든요.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말을 자기를 살리는 말을 해야 돼요. 그렇죠. 그죠. 말은 자기 말이 자기를 살리는 말을 자기가 사용을 할 줄 알아야 되요. 그게 연습을 그동안 안 했기 때문에 세상을 살리고 자기 자신을 살리는 일, 가족을 살리는 요런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절에 와서 배우셔야 되고, 그 과정을 통해서 기도수행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여서 수행함으로 해서 살리는 말을 해야 돼. 그러니까 거꾸로 얘기하면 우리가 살아있어야 된다는 거에요.

 

내가 살아서 움직이어야만 육체 내 세포도 자기 복제를 해주는 것처럼, 요게 안으로 육체가 이루어지는 것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저 우주 삼라만상도 다 내 이 마음의 하나의 일부거든요. 안 믿어지시죠. 그죠? 접속이 안 돼요. 저 달하고 태양하고 나하고 무슨 관계냐. 이러잖아요. 그죠? 태양이 빛을 내고 있지 않으면 우리 오래 못삽니다. 바로 죽습니다. 며칠 내로 영하 50100도씩 금방 떨어져 버립니다. 연료 때는 사람 때다가 그거로 끝나. 그러니까 태양 빛이 얼마나 감사한 거에요. 그런데 그 빛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걸 천체 적으로 무시하게 살고, 그걸 빛이라든가 달빛이라든가 별빛이라든가 이런 게 우리한테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걸 쉽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주고, 나를 지금까지를 연결시켜주는 무수히 많은 조상들. 무수히 많은 사람들. 무수히 많은 생명체 인연에 의해서 내가 오늘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게 삶에 대한 움직임이 다른 시각에서 보실 필요가 있으세요. 불교를 택하고, 불교를 신행하고, 불교를 수행하고, 불교를 통해서 기도라고 하는 방편을 얻으신다면, 단순하게 이 세상에 단순한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만큼 귀한 존재로 이 세상에 와 있는 거죠. 그렇죠. 그죠. 그러니까 안으로 내 이것이 아까 말씀드렸죠? 내 정신의 영역. 또는 뭐죠? 언어의 영역. 또는 뭐라고 표현해요? 행동의 양식.

 

이런 모든 것들을 불교적 개념으로는 단 한마디로 정의를 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되죠. 그래서 지금의 우리 마음상태가 곧 자기 마음을 지배해줘요. 몸뚱아리가 제 스스로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 몸뚱아리를 통해서 일어나는 부와 가난도 깃들어오는 것도 역시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태의 유지에 따라 다르다. 요것만 깨우치는 사람이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이 사람들은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병 불행에 휩싸여서 살게 되지 않는 그런 오묘한 것을 체득하게 되요. 이게 굉장히 쉬운 건데도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얼른얼른 깨어나지 못하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안 돼도 그렇다. 그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뭘 하느냐? 조금이라도 생활 속에서 흐트러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회복이 되면 뭐가 생겨야 되요? 사람한테는 꼭 필요한 것이 뭐가 필요한가? 집중의 세계가 좀 있으셔야 되요. 우리는 전부 흩어져있어요. 생각도 흩어져있고, 마음 상태도 전부 헤이해져 있고, 정신 준비도 전혀 안 돼 있고, 어떤 말은 해야 되는지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지 구분조차도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거든요. 그러면 사실은요, 자기가 말을 가지고 자기 생활을 해도 자기가 자기로서의 자기를 자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죽을 때는 임명종시할 때는 돌아가실 때는 어떻게 한다고요? 평생 80, 90 살았죠. 당신 어떻게 살았어요? 하니까. 다 한판 꿈속 같데.

 

확인해 봐요. 그건. 가서 100명의 중환자실에 가서 찾아보면은요, 다 꿈같이 살은 거에요. 지금은 막~ 그냥 여기에서 눈이 뜨이고, 억울하고, 분한 것 그것을 칼 들고 쫓아다니면서 난리죠. 그런데 시간 지나가 봐요. 실제 있어요? 실제 하지 않는 것을 평생 괴로워하고 사는 거에요. 가난과 병과 불행이 본래 없는 거거든요. 반야심경에는 육체 그 자체가 본래 없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현재 지금 그 육체가 있잖아요. 그죠? 고통 받는 건 누가 받아요? 자기 육체가 받죠. 그죠.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기 마음의 양식이 자기의 아픔을 스스로에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러시죠? 그죠? 하여튼 그렇다 그러고.

 

그래서 인생에 필요한 것이 뭐가 필요한가라고 물어보니까 조금씩은 집중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해요. 이거는 석가세존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역대 조사님들도 다 이렇게 말을 해요. 참선을 하는 이유는 다 집중을 얻기 위한 거거든요. 기도를 하는 것도 다 뭐에요? 집중을 얻기 위한 거에요. 그렇죠. 그죠. 보시를 하는 것도 뭐죠? 결국은 집중을 얻게 하는 거에요. 집중은 나쁜 집중을 얻으면 안 되고 좋은 집중을 얻으려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셔야 된다. 요런 뜻이거든요. 그런데 반비례해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집착하기를 좋아하지, 집중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살아요. 집착하고 집중하고 차이가 있거든요.

 

집중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좀 더 쉽게 표현 하면은요, 기도가 많이 자기에게 잘 이루어지는 사람한테는 뭐가 생겨요? 집중이 생겨요. 그게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선정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리고 더 깊어지면 초견성에 이른다.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자기가 이제 스스로에게 그거는 자기가 스스로 알게 돼요. 기도를 잘 해보시면 좋은 일이 저절로 생겨요. 이게 뭐냐 그러면요. 우리가 살면서 평생을 살면서 다 허망하게 살아. 꿈속에서 살듯이 진실로 자기를 한 번도 보지를 못하는 거에요. 자기의 본성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에요. 절 좀 보세요. 저는 24시간을 상황실, 그러니까 응급상황실에. 응급실에 며칠 전에 24시간을 앉아서 봉사를 해 봤어요.

 

그날 별거를 다했어요. 주사 놓는 것만 빼고 나머지는 다했어요. 붕대 감는 거, 들어주는 거, 옮기는 거, 미는 거, 그리고 기저귀 바꾸는 것. 54세 된 거사님이 오셨는데 뭐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바짝 말라가지고 암환자라는 거에요. 그런데 냄새가 진동을 해요. 간호원도 간호보조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다하거든요. 참으로 놀라운 것을 봤어요. 한 번도 찡그리지 않고, 한 번도 씨소리 안내고. 그래서 저도 장갑, 비닐장갑에 일회용이 있어요. 저도 그걸 빼가지고 가서 해봤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항문이 조여지지가 않아요. 24시간 계속 나오는 거에요. 24시간을 내가 치우고 나서 와서 보니까. 너무 감사한 거 있죠. 치질이 좀 있어도 감사해.

 

아니 이건 체험 안 해보면 모르는 거에요. 불자님들이요. 우리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우리 스스로 대단한 걸 보셔야 되요. 눈이 어두워지셔 가지고 안 좋은 거를 자꾸 들여다보는 거에요. 추한 것을 자꾸 들여다봐요. 괴로운 면을 자꾸 들여다보고 살아요. 어떤 분 나한테 오늘 아침에 올라오는데 저저 전화하기 이렇게 말을 해요. 자기는 이제 셋째 아들을 모시고 사는데, 첫 번째 시아버지가 임종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은 자기 본부인도 아니시고 재처들어오신 분인데 이분이 돌아가시자마자 제사를 자기가 할 수 없다. 선언해버린 거에요. 나한테 그걸 물어요. 묻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요걸 나도 피해 갈까? 말하는 투에서 뒤에서 들려오는 거에요.

 

내가 거꾸로 얘기했어요. 제사는요, 막내가 됐든, 큰아들이 됐든, 둘째가 됐든 제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복이 생깁니다. 못 차려도 괜찮아요. 사과 하나라도 좋고, 나물이라도 좋고, 김치만 하나 있어도 좋습니다. 서로 의논해가지고 일 년에 한 번씩 기제를 각자각자하기 어려워지면, 가족끼리 모여가지고 한 번이라도 조촐하게 하더라도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한테는 그 사람한테는 가훈이 일어나고 복이 생기고 자식이 잘됩니다. 받아들일 복일 세상에 우리는 갖지 못해요. 꼭 불교식이라고 해서 그것만이 옳다라고 주장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 나무아미타불 한번 부르는 공덕은요 세세생생에 자기 업장을 녹여주고, 금생에 자기 생명을 채워주고, 이 육체를 뭐죠?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에 극락세계에 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불설아미타경은 그렇게 하나하나씩 설명하고 있거든요. 저 좀 보십시다. 집착은 그만 그치십시다. 비난은 그만 그치십시다. 원망도 인제 그만 그치십시다. 불평불만심은 내려 놓아버립시다. 그러면 지금부터 좋아질 거를, 지금부터 감사할 줄 알면, 지금부터 나무아미타불 수행하고, 지장보살 기도하고, 관세음보살 각기 조금이라도 하루에 108번만이라도 수행하는 은혜 공덕으로 안 되는 일도 좋아지는데, 그동안 수행한 사람들은 그게 안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은 자기 시각이 잘못돼 있어요. 염불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자기 마음태도가 밝은 쪽으로 머리를 디밀고 있지 않은 한은 내가 안 된다는 생각을 자꾸 갖는 거에요.

 

모자르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우리가 반복적으로 집어넣고 살거든요. 이 생각을 그쳐야 되요. 기도하면 반드시 나아집니다, 반드시 좋아집니다. 나무아미타불 단 한마디를 해도 이 사람에게도 업장이 소멸되고, 변고액란이 없어지고, 저 불행감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불러다 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한번 부를 때마다 마음속 깊이 정성을 다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되요. 가족이 감사한 줄 알고. 그렇죠. 그죠. 라면 끓여 먹는 냄비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요. 왜 스스로 불행해 하고, 불안해하고, 왜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요? 왜 아픈 삶을 살고. 왜 안타까운 삶을 살아요?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으셔야 돼. 우리 거꾸로 갑니다. 50쪽에 보시면 44쪽을 하게 됩니다. 오늘 41번째 하고 나면 다음에 7번 수행을 하게 됩니다. 빠지지 말고 꼭 참석을 하세요.

 

이게 뭔 뜻이냐 하면 모든 뿌리는 제근이에요. 제근 뭐죠? 구족원이에요. 놀라운 것을 설명해주고 있어요. 여기 보세요. 이게 근이거든요. 모든 아주 쉬워요. 모든 . 이거를 근본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모든 뿌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뿌리라고 그러거든요. 모든 뿌리는 어디 있는 줄 아세요? 소나무가 땅에 박고 있죠.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 뿌리를 가지시려면 뭘 가져야 되요? 그죠? 지족할 줄 알아야 되요. 여기서는 뭐라고 말해요? 구족이에요. 이게 묘하게 어마어마한 것을 설명해놓고 있어요. 갖추었다는 거에요. 이거는 이미 갖추어져 있고, 같은 것은 이미라고 표현할 수도 있죠. 그래서 이건 이미 구족한 거에요.

 

이미 갖추어져 있는 거에요. 이렇게 보는 사람은 뭐가 있어요? 모든 것에는 그 뿌리를 갖게 된다는 거에요. 이게 뭐죠? 구족 하다는 아니에요. 이 구족함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원력을 가지셔야 된다. 누가? 각자 개인이 원을 가지셔야 되요. 불교를 공부하시게 되면 같은 방향에서 같은 것을 원을 세워서 배우시게 됩니다. 제발, 절 좀 보세요. 절 보셔야 돼. 그냥 생긴 이대로 그냥 잘생겼다고 구족 하셔야 돼. 이 나온 배가 이게 구족한 거에요. 이 허리가 자기한테 가장 소중한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자꾸 늘리면 안 됩니다. 늘려서는 해결할 일이 없어요. 절 좀 보세요. 이게 구족한 줄을 알면 어디에서?

 

지금 현실에서 지금 이 현상에서, 지금 나타난 현상에서 아~ 이거 감사한 거구나. 이거 고마운 거구나. 내가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갈 줄 아는구나. 그것이 나한테 허락이 돼 있구나. 이렇게 갖는 마음의 태도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뭐가 생겨요? 사람한테 근본이 생겨요. 무슨 근본이 생겨요? 이게요. 1_ 복의 근원이에요. 2_ 건강의 복원이에요. 3_ 재운의 복이에요. 재정, 그렇죠. 이렇게 근본이 생기는 거에요. 사람한테. 그렇죠. 그죠. 이렇게 살다 보면 사람한테 나타난 것이 이게 뭐냐 하면 오직 사람의 마음으로 형성이 돼 있거든요. 이 형성이 心品심품이 마음의 풍요로운 것이 품이 자꾸 생겨 가면은, 마음의 풍요로운 것이 자꾸 생겨요.

 

이 품위 같은 나온다는 같은 말 아니에요. 입이 세 개 아니에요. 아까 내내 말씀드렸죠. 그죠. 입이 좀 고급스러워야 되요. 입이 좀 아름다워져야 돼. 입이 좀 따뜻하셔야 돼. 같은 똑같은 말을 싸늘하고 차가운 말로 자기를 자꾸 자기를 얽매이지 마세요. 그러면 해탈하고는 거리가 멀고 자꾸 인생사 자꾸 뭐죠? 얽히고설킨 곳으로 자기를 몰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을 우리는 근본으로 보셔야 돼. 나의 근본은 어디서 오느냐? 자기 근본, 복의 근원이거든요. 자기 복은 어떻게 봐야 되느냐고요? 어떻게 봐요? 현상으로 봐야 된다고 그랬죠? 그러면 이 현상은 어떻게 본다고요? 만족하게 보는 거에요. 되시죠? 그죠?

 

부자 되는 비결이 자꾸 벌어들이는 곳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요걸 감사하고 요걸 만족하게 하자는 뜻입니다. 그게 불설아미타경의 41편에 법장비구의 48대원의 41번째에 발원이에요. 정리 딱 되죠? 그죠? 이것 좀 보십니다. 자기 근본이 구족한 줄 알면 되요. 어떻게요? 그죠? 내 가지고 있는 복은 근원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줄을 알아야 돼요. 자기 건강의 복의 근원에 만족하느냐 이러니까 지금 있는 상태, 병상태를 인정하고 만족해야 좋아집니다. 자기 복인 줄 알아야 되요. 이게. 이 복을 그러면, 요 복을 또는 요 건강을 자기가 먹고사는 재운이죠. 이걸 보고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공급의 세계가 있거든요.

 

공급이 자꾸 나뉘어야 되는데 그건 어떻게 결정되느냐? 자기 마음상태를 어떻게 하든지 뭐로 해야 된다고요? 밝게 하셔야 돼.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어요. 밝게 하셔야 돼. 아이 밝게 하셔야 된다니까. 마음을 밝게 하셔야 돼. 그다음 뭐죠? 따뜻하게 해야 돼.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도라고 하는 방식을 찾아볼 수가 있어요. 절 좀 다시 한 번 저 좀 봅니다. 내 복 상태는 내가 알죠? 아니 자기 저저 통장에 잔고는 자기가 알잖아요. 그죠?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자기가 알잖아요. 제가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그런 상태를 그걸 현 상태를 그대로 이걸 자기의 현실이라고 보면, 이것을 뭐죠? 구족하게 여기는 거에요. 만족하게.

 

그러면 이 사람한테 뭐가 생겨요? 근본이 생긴다는 거에요. 모든 근본이 자기한테 생긴다는 거에요. 그럼 뭐가 생겨요? 복이 들여다보니까 복밖에 없어. 건강이 요 상태밖에 없어. 재운이 자기한테 오는 것이 고것밖에 없어요. 그러면 요것을 어떻게 해야 돼요? 자기 마음상태를 품위 있게, 좋게 만들 필요가 있겠죠. 그것을 방법이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이것을 기도생활이라 이렇게 말해요. 기도수행. 이것을 기도를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면 이렇게 입을 가지고 해결을 하면 돼요. 뭐라고요? 그죠? 1_ 이 입을 가지고 염불은 곧 같은 거에요. 입가지고 하는 건 다 염불이거든요. 다 부처님을 생각하면 다 염불이고.

 

첫 번째 입은 가지고는 밝게 하고 두 번째는 감사하게 생각해야 돼. 감사하다는 말을 자꾸 붙여야 돼. 그리고 하나는 뭐라고 말한다고요? 이거는 좋아지고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세 가지의 말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일 번입니다. 자기 입이 밝아야 돼. 탁한 말 하지 말고 밝은 말을 하셔야 돼. 그렇죠. 그죠? 그다음에 뭐죠? 감사할 줄 알아야 돼. 이 입가지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거에요. 세 번째 자기 자신이나 자기 현실이나 자기 가족이나 자기 가정이나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고 이거 10원짜리밖에 안 돼.” 이러고 성질 내고 던지고 그러잖아? 지금 있는 것보다 더 싸구려가 돼갑니다.

 

그러니까 좀 부드러운 표현을 하셔야 돼. 부를 불러오는 공급을 불러들이셔야 돼. 그게 자기 입이야. 오죽하면 천수경에 정구업진언부터 먼저 시작하잖아. 입부터 고쳐야 되니까. 그거 잘 안 돼요. 그렇게 하셔야 돼. 그러며 모든 공급이 우리한테 하나하나씩 들어차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는 근본이라는 게 생겨요. 족보가 근본이고 교육을 한 것도 근본이고, 그런 것도 근본이겠지만 정말 근본은 뭐에요? 내가 지족하고 만족할 줄 아는 거에요. 법정스님이 평생 테마가 그거였거든요? 지족하고 만족하라. 만족하게 안다는 거에요. 그거를 어떻게 표현한다고요? 지금 현실 그대로를 어떻게요? 그 입을 가지고 어떻게 표현한다고?

 

결국, 자기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이잖아요. 그러면 그 마음의 움직여지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이루어지는 육체 세포 하나하나 그것이 자기 육체에 다 달아서 육체가 스스로 공급이 돼서 몸이 아픈 사람은 새 세포를 자꾸 만들어서 공급해줍니다. 눈을 뜨고 마음의 눈을 뜨셔야 돼. 어떤 마음의 눈을 뜨셔야 되느냐 하면 자기 안에 깃들어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느끼셔야 돼. 뭐로 느껴요? 처음에는 못 느껴져요. 처음에는 저 고약한 치우기 어려운 거 같잖아요. 그런데요. 세 가지가 정리가 되셔야 되요. 그 세 가지가 무엇으로 정리가 돼 있냐 그러면 또 왔다갔다한다. 이게 늘 살면서 우리가 풀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원을 세워 자꾸 자기를 들여다봐야 되는데. 이 현상에서 기도라는 걸 좀 하셔야 되요.

 

그래서 사람이 사는 것은 늘 자기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자기 아니에요. 그죠? 어느 구석에 있든지 자기 안이야. 이 자기가 스스로 무엇을 해야 돼요? 통제, 자기통제라는 것이 좀 있어야 되요. 이거를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이걸 뭐죠? 기도하고, 수행한다. 요렇게 간단하죠. 이게 1. 기도 수행한다는 거. 그 얘긴 뭐죠? 자기 통제하는 거에요. 자기 스스로 조금씩 욕심도 좀 줄일 수도 있고, 그렇죠. 그죠? 또 괴로워하는 것도 좀 줄일 줄 알고 마음의 괴로움도 나눌 줄 알고. 요렇게 해야 돼. 세 가지 수행 중의 하나가 만족할 줄 아는 거에요. 자기 통제가 우리 스스로에게 있어주면 더 아름답죠. 그렇죠. 그죠.

 

두 번째 같은 말로 자기 스스로에게 나눔이 좀 불자는 있으셔야 돼. 수행이 깊어 가면 갈수록. 나눠줄 줄 아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거에요. 그럼 물질만 가지고 표현하느냐? 얼굴 가지고도 하고요. 말로도 하고요. 표정으로도 하고요. 그렇죠. 그죠. 나눠주는 거에요.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줘요. 기꺼이 줘야 돼. 기꺼이. 기꺼이 주라고 그러니까 집안에 문서도 갖다 주지 말고. 그런 얘기는 아니거든요. 표정이 먼저 밝아지셔야 돼. 밝은 말, 문수동자 게송이 있잖아요. 그죠? 밝은 따뜻한 얼굴, 밝은 말, 밝은 얼굴,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부처님께 올리던 법공양구와 다르지 않다. 이러시잖아요. 그죠?

 

이게 나눔이에요. 하나씩 나누세요. 줄 게 있거든 자꾸 주세요. 어리석은 사람은 계속 받으려고 들거든요. 혜택 받으려고 기가 막히게 써요. 아직도 2030년 살고도 아직도 남편한테 덕 좀 봐야 되겠다. 이 생각하고 살거든? 이제 좀 줘요. 이제. 하여튼 뭘 줘야 되는지 자꾸 줘야 돼. 그렇죠. 그죠. 세 번째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역시 자기 비움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비우는 거에요. 마음 세계 비움을 갖는 것. 그렇죠. 그죠. 이 세 가지는 다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만족하면 돼요. 오늘 내용이 뭐에요? 제근구족원이 거든요. 원하는 것은 뭐죠? 만족하고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거꾸로 이렇게 살펴보면요. 원하는 자는 이미 그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갖추어져 있고 이미 만족하고 구성 돼 있어요.

 

그래서 근본 뿌리에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안 믿어지시지만 그래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잘 되기를 발원하는 거에요. 신음고통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펄펄 살다가 내일 모래 내 간다. 이렇게 갈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되려고 하고, 그런 노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해서 우리가 그런 삶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게 돼요. 그렇죠. 그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뭘 봐야 된다고요? 통제, 자기 통제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 통제가 있어지는 가장 핵심은 뭐에요? 자기만족이에요. 만족하는 자는 절대 문제를 안 일으킵니다. 어머니 젖을 잘 먹은 아들딸은요, 세상에 별로 괴롭게 안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부모가 잘 못 보살펴도 줄 수 있잖아요. 절대 부모 한탄하면 안 됩니다. 누누이 여러 번 말씀 드린 것처럼 부모가 나를 택해서 나를 세상에 내보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를 택해서 왔기 때문에 부모 원망하면 안 됩니다. 친정부모, 자기 부모 절대 원망하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가장 수준이 낮은 사람이 부모 원망하고 탓하는 아들딸 봤거든요. “아이고 저거를 저 저 아들이라고 낳고 저 미역을 먹었어.” 그래도 그 어머니도 와서 물어보니까 뭐라는 줄 아세요? 어머니들이 한결같이 나한테 와서 얘기하는 게 뭔 줄 알아요? “아이고 우리 자식은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이 없는데.” 자기 자식은 전부 착하데.

 

절도를 해도 착하고, 강도를 해도 착하고, 시설에 가보잖아요. 재판 받아가지고 기수로 살아요. 이미 벌써 확정이 돼서 살잖아요. 그 어머니나 부모는 어찌 됐든지 이렇게 만나서 하도 만나면 얘기하고 부딪쳐서 얘기해드릴 때가 있어. 그럴 때 보면 첫마디가 우리 아들은 절대적으로 착한 아들인데, 요렇게 시작해. 그저 어머닌 위대한 거야. 아무리 고약해도 아무리 나빠도 자기 자식은 최고야. 뭔 얘긴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네. 만족할 줄 아셔야 되요. 머리카락이 자라는 걸 고마워하셔야 돼. 발톱이 자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요. 인생을 살아가면서요, 불편한 일들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습니까?

 

불편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나를 더 성장하게 하고, 더 복되게 하고 더 뭐죠? 화목하게 가져다주는 원인이 될 수가 있어요. 그죠. 절 좀 보세요. 시계가 있어요. 시계. 요런 시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요런 시계. 시계가요, 아주 작은 부품들이 가득 차있거든요. 그런데 그 부품 하나만 없으면 저게 안 굴러갑니다. 우리 사람도요, 각자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필요한 역할이 있어요. 그런데 고약한 역할을 하고 끝까지 고약한 역할을 하고 배찬 소리하고 죽는 순간까지 짜증 내고 화내고 살 인생 일 거 같으면 뭣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살고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기도하는 생활을 우리 마음속으로 가지셔야 돼. 저 나무아미타불 기도수행, 원을 가지는 생활, 이렇게 하셔야 돼. 저의 건봉사에서는 내가 하다 하다 안되니까 고려조 당시 때부터 나무아미타불 근본 도량을 시작을 했거든요. 제가 거기 소임자로 살고 있으면서 아미타불 근본 도량을 다시 만들고 싶어요. 기도처로 다시 만들고 싶어서 하나하나 시작을 합니다. 10월 보름부터 우선 삼년입재하고 열 번만 하면 30년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렇게 물어요. “스님, 나는 20년 살는지 10년 살는지 모르는데 기도를 어떻게 해요?” 그냥 발원해서 하는 거에요. 원을 딱 세우고 하는 거에요. 48대원 배우셨잖아요.

 

원처럼 이 사바세계가 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거에요. 그게 뭐죠? 자기 나눔이에요. 조금의 보시를 서로 나누고, 내가 계산해 보니까 하루에 3년 기도 이렇게 하잖아요. 그죠? 800원 정도. 매일 하루에 800. 요즘 저 잔돈 치우기 어려우니까 하루에 천 원씩 그러면 30년 기도 할 수 있어요. 하루에 108번만이라도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속 깊이 오직 자기 자신에게 더 감사하고, 가족에게 감사하고, 생활터전에도 감사한 생각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좀 가질 필요가 있으세요. 아무 무연 연관하는 거 같은데도, 이렇게 앉아서 법문 듣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조금씩 실천해 가시는 모든 불자님들이 깨어나고 좋아져 가는 과정을 무수히 많이 겪어 봅니다.

 

여기 지장사에 오신 분들도 무수히 많이 깨어나고 좋아지는 일이 많아요. 이건 내가 자랑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겨요. 원동력이라는 게 사람한테 있습니다. 자기 근본 원이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을 자기 생활 속에서 자기 삶 속에서 드러나게 사는 거에요. 잊어버리지 마십시다. 오늘 모든 근본은 어디서부터 온다고? 만족해하는 것. 지족하고 만족하는 것. 그렇죠. 그죠? 지족하고 만족해하는 삶 속에는 거기에는 근본이 생겨요. 뭐가 근본이 생겨요? 복이 성장합니다. 뿌리가 있으니까 자랄 거 아니에요. 그죠? 복의 근원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그죠. 절 보셔야 돼. 복의 근원을 가지신 분들이고, 건강의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에요.

 

먹고 사는 풍요로운 공급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근본을 지니신 분들이 오늘 이 법당에서 이 TV를 보는 모든 불자님들의 한결같은 생명이 똑같이 불성 부처님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미 구족한데 구족하지 않은 것을 찾을 때 구족이 없어져 버리는 거에요. 지금 있는 상태를 그대로 고맙고 감사하셔야 돼.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불자님들이 오신 것, 또 이 TV를 봐주시는 모든 불자님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오직 감사할 뿐이에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그 감사함을 자기 스스로, 자기 입으로 바꾸어 가기만 하면은 그 삶이 밝아지고, 그 삶이 생활이 감사한 일이 저절로 오고, 스스로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좋은 일들을 스스로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요. 으음. 절 보세요.

 

얼굴이 그냥 엎어놔도 부자처럼 안 생겼어요. 즐겁게 사셔야 돼요. 지나간 거, 붙들고 애쓰지 마시고 지금에 감사하세요. 지금에 만족하세요. 지금에 지족을 하세요. 그러시면 불자의 삶에는 무장장애하고 장애가 없어지고 삶에 대한 것들이 문호가 하나하나씩 열려서 궁극에는 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바로 태어나시게 돼요. 그리고 수기를 받으셔서 깨우치게 됩니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