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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네덜란드 역사 10분 완벽 정리

Buddhastudy 2022. 3. 30. 18:52

 

 

1. 소개

네덜란드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Kingdom of the Netherlands' 네덜란드 왕국입니다.

 

네덜란드의 국기는 빨강, 하양, 파랑의 3색기입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시절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빌럼 1세의 오라녜(Orange) 가문의 문장 색깔을 사용했습니다.

국기의 빨간색 부분은 원래 오렌지색이었다가

오렌지색의 염색은 까다롭고

염색 후에도 햇볕과 비바람에 쉽게 변색하여서

이후 빨간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빨강은 용기를, 하양은 신앙을, 파랑은 충성심을 뜻합니다.

 

네덜란드는 네덜란드(Netherlands)’라는 공식 국가명 외에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네덜란드의 다른 이름 중 하나로는 홀란트(Holland)가 있습니다.

현재도 많은 유럽인과 외국인들은

네덜란드라는 이름 대신, 홀란트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어에서 올란다(Holanda)'라든가

일본어에서 오란다(オランダ)' 등이 홀란트를 의미합니다.

이는 홀란트 지역이 오래전부터 네덜란드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홀란트가 네덜란드 자체를 뜻하는 의미로도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어권에서는 네덜란드를 더치(Dutch)'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어는 'Dutch language', 네덜란드인은 'Dutch people',

그리고 흔히 비용을 각자 지불하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는 더치페이‘Dutch pay" 역시

유래는 네덜란드를 뜻하는 더치에서 따왔습니다.

 

네덜란드는 유럽 북서부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며

동쪽으로는 독일, 남쪽으로는 벨기에가 있으며

서쪽과 북쪽은 북해와 접합니다.

 

국토면적은 약 4로 우리나라 전체 면적 약 10의 절반보다 작습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17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경기도 인구 약 1300만 명보다

좀 더 많은 인구수입니다.

 

네덜란드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8200억 달러.

이는 세계 18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터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인구 구성은

네덜란드인 80%, 그 외 유럽인, 인도네시아인, 터키인 등이 살고 있습니다.

공용어는 네덜란드어와 프리지아어를 사용하며

중세시대부터 기독교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기독교 국가였으나

최근들어 기독교 신자 수는 대폭 감소하고 있는 추세로

인구의 1.2% 정도만 정기적으로 교회를 찾는다고 합니다.

 

소수의 종교인구는

로마가톨릭과 개신교도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외 소수가 이슬람교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역사

네덜란드는 중심이 되는 중앙국가

혹은 특정한 지역이 성장하면서 주변을 병합하는 과정을 겪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각기 작은 도시들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다가 외부의 큰 위협에 직면하자

도시들끼리 뭉쳐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게르만계의 프리지아(Frisian)족과 바타비아(Batavia)족은

라인강과 마스강의 하구와 북해 연안 일대에 부족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기원전 50년경 로마가 바타비아족을 정벌하고 이 지대를 정복했습니다.

기원후 400년경 로마 세력이 이탈리아 지역으로 물러가고

네덜란드 일대 남부지역에는 프랑크족이

동부지역에는 색슨족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8세기 말, 크게 성장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색슨족과 프리지아족을 정복하여 네덜란드를 지배했습니다.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자

네덜란드는 몇몇 봉건국가의 영유지로 뿔뿔이 나뉘었고

이때부터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홀란트, 제일란트와 같은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들이

자치공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3세기 말에는 부르고뉴가의 필리프 공이

현재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전역을 지배했습니다.

그 후 필리프 공의 손녀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혼인하게 되어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를 받다가

1515년부터는 스페인의 왕이자 독일 황제였던 카를 5세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16세기 중세 종교 개혁기를 맞아

네덜란드 동북부 지역에는 독일의 루터파가 파급되고

남부에는 프랑스의 칼뱅파가 파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카를 5세와 그 뒤를 이은 펠리페 2세는

이 지역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가톨릭교를 강요하며 신교도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높은 세금을 물리고

네덜란드인들의 상업을 제한하는 등 현지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습니다.

 

이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 살던 신교도들은

1566년 일제히 궐기하여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에 돌입합니다.

 

치열한 독립항쟁은 오랜 기간 이어졌고

1648년이 되어서야 네덜란드의 완전독립이 승인되었습니다.

 

독립은 했지만 국토, 인구, 자원이 모두 열악했던 네덜란드는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네덜란드는 1602년 유대인들의 투자를 받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선박을 타고 대양으로 나섰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배를 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북아메리카 지역에도 진출하였는데

1612년에는 현재 뉴욕의 전신인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성공에 힘입어

1621년에는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를 설립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점거하였으며

일본의 나가사키 지역을 기점으로 일본과의 활발한 무역도 전개했습니다.

 

또한, 1609년에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해 금융업을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크게 활약한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en Age)였습니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대의 바다 항구로 발전했고

상업의 융성과 함께 과학, 문화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특히 렘브란트를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화가들의 활동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주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17세기 영국과의 4차례에 걸린 영란전쟁이 벌어졌고,

이 전쟁으로 인해 네덜란드는

영국, 프랑스에 기존의 상권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데다 프랑스 혁명 후인

1795년에는 프랑스군의 침입을 받습니다.

 

프랑스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은

네덜란드 내의 상업활동을 제한하고

징병제 및 중과세를 시행하는 등 국민들을 억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로

네덜란드에 대한 프랑스의 지배력이 약화하자

1815년 네덜란드는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한 국가로

연합왕국을 이루어 독립하게 됩니다.

 

독립 이후에 네덜란드는

전통적인 상업과 농업에 집중하면서

개신교도가 많았던 북부지역과 직물제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발전한 남부지역으로 나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1830년대

남부지역이었던 벨기에가 벨기에 혁명으로 분열되었고

1839년 양국의 분리, 독립이 정식으로 성립되었습니다.

 

벨기에 독립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네덜란드에서도 농업종사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졌고

산업발전에 힘입어 빈곤층도 감소했습니다.

 

시작은 늦었으나 네덜란드의 제조업은

벨기에보다 더 빠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정치 안정과 산업성장에 힘입어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이어 제2의 황금기를 맞이합니다.

 

문화적으로 번성하여

유명한 미술가들을 다수 배출하기도 했고

물리학과 생물학에서도 당대를 선도하는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대에는

네덜란드 본토가 독일군의 침입을 받았고

300년 가까이 식민 지배를 하고 있던 인도네시아는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일본군이 물러간 후, 인도네시아는 독립전쟁을 벌여

1950,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약소국의 허약함을 통감한 네덜란드는

1946년에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더불어

베네룩스 3국을 결성하는데요.

이는 최초의 국가연합시도였습니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인 NATOEU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3. 정치

네덜란드는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헌법 체계 아래 세습되거나 선임된 군주를 인정하는 정부형태입니다.

 

네덜란드의 입헌군주제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로 보통 권력분립의 개념을 따르며,

국왕은 나라의 수장으로서 존경을 받으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여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 역할은 총리가 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국왕은 국가원수로서 세습제에 의해 계승되며

대외적으로 네덜란드를 대표합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총선 후,

정부 구성을 위한 연립정부 구성 협상을 주선하는 조정자

또는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 지위는 상징적이어서, 모든 국사에 있어서 형식적이며 의례적인 권한을 행사합니다.

법령 또는 중요 국정 관계 문서의 서명권이 있으나

관계 각료의 부서가 있어야만 효력이 발생하므로

국왕은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은 뤼버스 수상과 협력,

198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고도성장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국민과의 거리를 없앤 서민적 군주로 유명합니다.

 

입헌군주로서 재위 기간 행한 다양한 대내외 활동으로

가장 사랑받는 군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134월 베아트릭스 빌헬미나 아름하르트(Beatrix Wilhelmina Armgard) 여왕은

왕자 빌럼 알렉산드르(Willem-Alexader)에게 왕위를 양위했습니다.

 

네덜란드 의회는

Staten-Generaal(스타텐헤네랄, 국가의회)이라 하며

, 하원의원으로 나누어진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 양원제 국가들처럼

상원의원은 큰 힘이 없고 하원이 정치를 주도합니다.

 

국회 분위기는 폭력이 없고 매우 점잖은 편입니다.

청렴함이 강조되는 편이며

네덜란드의 총선은 완전 비례대표제 선거입니다.

 

네덜란드에는 승자 독식에 기반한

소선거구제 지역구 선거가 존재하지 않으며

네덜란드 하원은 100% 비례대표 의원들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네덜란드 의회의 정당별 의석 분포는 정당 득표율과 비례합니다.

네덜란드는 유권자가 직접 비례대표 순위도 결정하는

개방명부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면서

동시에 해당 정당이 제시한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 한 명에게 투표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각 정당의 비례대표 당선 순번이 결정됩니다.

 

선거가 비례대표 선거만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원칙적으로 사표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보궐선거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고나 사퇴 등으로 결원이 경우

해당 의원이 소속된 정당의 비례대표 명단에서

후순위자가 비례대표 의원직을 물려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