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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대만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4. 21. 19:13

 

 

 

1. 소개

대만, 타이완으로 알려진 국가의 공식 국호는

‘Republic of China’ 중화민국이지만

올림픽 대회 또는 국제기구에 참가할 때는

중화타이페이(Chinese Taipei)라고도 합니다.

 

대만의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 라고도 합니다.

푸른 하늘에 뜬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12개의 빛줄기는

하루 24시간을 2시간씩 12개로 표현하고, 112개월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국민이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할 것을 의미합니다.

파랑·하양·빨강은 쑨원[孫文]이 주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상징합니다.

파랑은 청명·순수·자유를

하양은 정직·이타심·평등을

빨강은 희생·유혈·형제애를 상징합니다.

 

대만의 위치는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나라로

수도는 타이페이(Taipei)입니다.

 

국토면적은 약 35

경상남북도의 면적을 합친 32보다 넓은 수치입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2300 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는 서울과 경기도 인구를 합친 수와 비슷합니다.

 

대만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5700억 달러.

이는 세계 22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스웨덴과 터키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만의 인구 구성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족이 98%이며

원래부터 살고 있던 다양한 원주민들이 2%입니다.

 

대만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며

베이징 방언을 기초로 한, 표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제2공용어를 영어로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영어 역시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종교는 불교, 도교, 유교의 3대 종교와 기독교 등이 존재합니다.

3대 종교 간의 구분은 극히 애매하며

이를 믿는 인구 비율이 93%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 외 기독교 신자가 약 5%, 기타종교 신자가 2% 정도입니다.

 

 

2. 역사

타이완 섬에는 문자로 기록되기 전인 오랜 옛날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었으나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3세기부터 중국문헌에 간간히 대만섬을 지칭하는 지역에 대한 기록이 나오긴 하나

명나라 시대까지 한족은 대만을 공식적인 행동관할에 두지 않았고

원주민과 한족,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각기 마을을 형성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1600년대 들어서, 네덜란드가

동방무역을 위해 타이완 남부지역에 정착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앞서 정착한 한족을 물리치고 이곳에 무역기지를 건설하였습니다.

 

대만이 중국과 일본의 중계무역 거점으로 가치가 높아지자

한때 스페인도 대만에 진출하였으나

네덜란드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 1644년 만주족이 명나라를 침입하면서 중국대륙이 혼란에 휩싸이자,

많은 명나라인들이 대만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원래 진출해있던 네덜란드인들에 강력하게 저항하였고

그 결과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는 크게 약화하였습니다.

 

1683년 청나라는 군대를 파견해 대만을 점령하였고

1684년에는 청나라의 본격적인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대만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대만은 5개월 동안 각지에서

일본군에 맞서 무력항쟁을 벌였으나 역부족이었고

1945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습니다.

 

19451025, 대만은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새로 이주해온 외성인과 원주민인 본성인 사이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1949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장세스 정권이

중화민국정부를 대만의 타이페이로 옮기고

쑨원의 삼민주의를 건국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정부를 선언하였습니다.

 

국민당 정부는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미국으로부터 군사 및 경제 원조를 받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냉전시대의 종결과 더불어 미국과 중국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197110, 중국의 세력이 컸던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만을 축출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쑨원이 수립한 중화민국 승계를 선언한 대만은

쑨원이 주장한 삼민주의(민족, 민권, 민생)를 기본 이념으로 하는

자유민주공화제를 채택했습니다.

 

실제로 대만은 아시아에

현존하는 공화국 중 가장 오래된 공화국입니다.

대만 총통의 임기는 4년이며, 한 번 연임할 수 있습니다.

총통 아래 행정, 입법, 사법, 고시, 감찰 등

5권 분립 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6년 차이잉원이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이 독재국가였지만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민주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대만은 동아시아권에서 한국, 일본, 몽골과 함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만은 1940년대 후반부터 중국국민당과 민주진보당 양대 정당이 대립해왔습니다.

민진당은 대만 독립을 내세우는 반해

국민당은 중국과 대만의 관계 회복을 주장하며

현재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산업별 GDP 구성 비율로 보면

농업이 약 2%, 광공업은 20%, 서비스업은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자국 내 부존자원이 부족한 제약을 타개하기 위해

대외무역을 중심으로 한 수출주도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전자장비, 의류 등이 주요 수출품이며

IT 전자기기 분야의 첨단산업도 발달하였습니다.

특히 대만의 IT 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중소기업을 바탕으로 한 OEM 수출을 통해

세계 IT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첨단 공업 분야의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기업인 TSMC, 종합PC기업 ASUS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산업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여 한국,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최근 세계경제 침체와 더불어 대만의 경제도 급격한 침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국내시장의 침체와 중국과의 관계 악화와 같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만의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해외기업 M&A에 뛰어드는 등

해외투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대만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상의 해상중계지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남쪽으로는 홍콩과 필리핀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토 전체면적의 64%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대만의 지형은

섬의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중앙산맥이 이어지는데

해발고도 3,000m의 높은 봉우리들이 잇달아 솟아 있습니다.

 

대만의 기후는 북부지역은 아열대기후, 남부지역은 열대기후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만의 4계절은 일반적으로 아열대성 기후에 속해

날씨가 무덥고 강수량이 많으며,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합니다.

 

대만은 중국 한나라 시대부터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고

서유럽의 영향과 일본의 식민지배의 영향까지 고루 받았기 때문에

문화유산이 상당부분 중첩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만의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중 경극은 대만문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퉁소의 역할과 배우들의 훨씬 자유로운 움직임이

대만식 경극이 중국식 경극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전통무대예술의 장점은 살리면서

새로운 동작과 무술을 추가하고 다양하고 감각적인 공연을 구성하여

국내외 인기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한 대만에는 세계적인 도서관이나 미술관이 많습니다.

특히 타이바오시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은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으로 손꼽힐 만큼 세계적인 소장문물을 자랑합니다.

 

베이징의 자금성으로부터 옮겨온

역대 중국왕조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다수 수집되어 있고

그 양도 엄청나서 3개월 단위로 1만여점씩 돌아가며 전시해도

다 보려면 1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대만의 미식문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민간에서 볼 수 있는 요리의 종류는 100,00가지가 넘고,

조리법 또한 민족 특성에 맞게 매우 다양하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면요리로는

소고기육수로 맛을 낸 우육면이 있고

아시아와 서양에도 널리 퍼진 버블티를 최초로 만든 국가이기도 합니다.

 

빙수의 대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종류의 빙수가 인기가 많으며

파인애플을 넣어 만든 펑리수라는 과자도 유명합니다.

 

 

5. 인물

대만에서 유명한 인물로는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가수이자 TV드라마, 영화배우인

Rainie Yang, ‘양승림이 있습니다.

 

1984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강예술학교 희극과에 진학하여 연예계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4인조 여성그룹 4 In Love로 데뷔하여 활동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판매량에도 부진하여 오래 가지 않아 4 In Love는 해체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만판 <꽃보다 남자> 드라마인 <유성화원>에 캐스팅이 되면서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진로를 바꾸어 성공하게 됩니다.

 

이후, 취후결정애상니(醉後決定愛上你), 해파첨심(海派甜心), 양광천사(陽光天使) 같은 드라마에 주연으로 자주 나오면서

배우로서 인지도를 넓혀 가게 됩니다.

 

배우로서의 활동영역을 넓혀가던 양승림은 가수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솔로앨범 1애매曖昧가 탄생하였고

이 앨범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면서 가수활동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때의 성공을 계기로 그녀는 1~2년 주기로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여 10집 이상을 발매하였습니다.

대만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상하이 등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아시아투어 콘서트도 진행하게 됩니다.

 

영화와 드라마 활동도 꾸준히 하여

드라마 해파첨심(海派甜心)’으로는 금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HitFM에서 주최하는 Hito Music Award에서는

2013, 14, 16, 17년 계속해서 인기 여가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연기, 가수 분야에서 다양한 성공을 거두었던 양승림은

현재도 아시아를 무대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