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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대한민국 역사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4. 27. 19:14

 

 

 

대한민국으로 알려진 국가의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이며

한국, 또는 SOUTH KOREA라고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모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중앙의 태극 문양은

파란색의 음과 빨간색의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형상화했습니다.

4모서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각각 하늘, , , 불을 상징합니다.

 

대한민국이 위치한 한반도는

아시아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과 접하고

동쪽과 남쪽 서쪽의 3면은 모두 바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10

비슷한 면적의 국가로는 아이슬란드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구는 2019년 기준으로

5,2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15,000억 달러

이는 세계 12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러시아와 호주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 구성은 한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용어로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헌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도가 보장되어

세계적으로도 종교적 자유도가 높은 국가입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는 무교인이 전체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합니다.

종교인들은 개신교, 불교, 가톨릭교가 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 정교회, 이슬람교 등이 있습니다.

 

 

2. 고대, 중세역사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약 70만 년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한반도 일대를 지배한 최초의 국가는 홍익인간 뜻으로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입니다.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부족 국가로 출발한 고조선은

정복 활동을 통하여 더욱 큰 정치집단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고조선은 후기에 철기를 받아들이면서

동방사회의 커다란 연맹왕국으로 발전했고

엄한 법률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했습니다.

 

고조선은 중국의 통일 왕조인 한나라와 자주 충돌을 일으켰는데

기원전 108년 결국 한무제의 침입으로 왕검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했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철기문화의 기반을 둔

새로운 연맹 왕국들이 성립되었습니다.

북쪽에서는 부여, 고구려, 동예 등이 일어났고

남쪽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세워졌습니다.

 

후에 철기문화가 널리 보급되면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고대국가 시기에 접어듭니다.

농업 경제가 진전되고 사회분화가 분명해짐에 따라

삼국은 각기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수립했습니다.

 

1세기 고구려의 태조왕은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대동강 유역까지 진출하며

정복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백제는 위례성을 중심으로 한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3세기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신라는 4세기 경주평야 지역에서 발전하여

김 씨 중심의 왕권을 중심으로 고대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발전은

서로 경쟁을 거듭함과 동시에

중국의 왕조 교체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었습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한반도 지역에서 최초로 통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고대 사회의 발전은 676

신라의 삼국통일로 급변하게 됩니다.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왕권을 강화하며

귀족 세력을 억누르는 정책을 펼치고

넓어진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지역을 분할 통치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삼국의 문화를 종합하면서도 새로운 문화를 꽃피워

문학과 과학,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민족문화의 토대가 확립되었습니다.

삼국시대의 전래 된 불교도 더욱 발달하여

불국사와 석굴암과 같은 문화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남쪽의 통일신라가 있었다면

북쪽에는 고구려의 옛 전통을 계승한 발해가 만주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당나라와 교류 하면서 유교적 정치 제도를 도입한 발해는

8, 9세기 독특한 발전을 보였지만

거란족의 침입으로 인해 패망했습니다.

 

통일신라 역시 말기에 들어 6두품 세력이 대두하고

지방호족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왕권이 약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후고구려, 후백제 그리고 신라로 다시 분열된

후 삼국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918년 왕건은 호족세력을 기반으로

후삼국의 사회 혼란을 수습하고, 민족을 재통일하여 고려를 세웁니다.

호족의 세력을 얻고 건국된 나라인 고려는

신라시대보다 훨씬 더 귀족 중심이었습니다.

유교 정신 사상을 통하여 중앙집권을 유지하였으나

신라보다도 문화의 폭이 크게 확대되어

지방 호족이 문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고

불교와 유교 문화가 융합되었습니다.

 

고려 건국 이후인 10세기부터 한반도는

고대 사회에서 중세사회로 전환되어 갔습니다.

과거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한문학과 역사학도 크게 발달하였는데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기도 합니다.

예술에서는 고려청자로 알려진 공예 부분이 특히 발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려왕조는 12세기 이래로

소수의 권문세족의 토지 사유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의 국가재정 공표를 초래하였고

왕조의 기틀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잇따라 여러 봉기가 일어났고

나라 바깥에서는 몽골의 침입과 원의 정치적 간섭이 심해져

고려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적의 침입과 내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이었던 15세기 전반

신흥 무인으로 크게 성장한 이성계는

정도전과 같은 신진사대부와 힘을 합쳐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이들은 고려말 권문세족의 행패에 대항하는 한편

외적인 시련을 해결하는 방향에서 출발했습니다.

 

15세기 태종, 세종, 세조를 중심으로 권력구조가 개편되었고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면서

조선의 국력은 크게 신장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 시기에는 국토가 크게 확장되었고

산업발전과 실용 학문의 발전으로 민족문화가 크게 피어났습니다.

그중에서도 1446년 세종 28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은

민족문화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9대 왕인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은

완성된 유교 국가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고려보다 한층 강화되고 세련된 중앙집권화 관료제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고려시대의 불교를 대신하여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수용한 성리학은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와 문화 전반을 크게 좌지우지했습니다.

이황, 이이와 같은 철학자를 배출하였고

윤리적 측면이 강조된 조선의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하지만 16세기 이래 훈구세력과 지방의 사림세력 사이에 갈등이 고조 되면서

조선왕조 역시 동요되어 갔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세의 침입에도 크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19세기 조선의 정세는 세도정치로 말미암아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정치 기강의 문란으로 국가재정은 어려워졌고 농촌 경제는 파탄에 빠졌습니다.

의식이 높아진 농민들은 곳곳에서 민중운동을 일으켰고

가톨릭과 함께 서양 세력이 들어와 조선의 전통적인 양반사회를 위협했습니다.

 

조선은 1876년 마침내 개항 하였고

오랜 유교적 전통 사회로부터 새로운 근대 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치와 외교, 교통,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 문물 도입이 추진되었고

1899년 근대 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이 수립되었습니다.

 

개혁정치를 실시하여 국가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대한제국은

끝내 열강의 간섭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력을 앞세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3. 근대사

대한민국은 1910년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으며

30년 이상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비로소 독립에 성공하게 됩니다.

 

독립의 기쁨도 잠시 전쟁의 승전국들이

카이로 얄타 포츠담 회담에서 합의하여 해방과 동시에 남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1950625

남북 사이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1953년 휴전 이후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당신 소련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중국을 거쳐 북한까지 들어서게 되나

대한민국의 1대 대통령인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를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이승만 정권은

장기집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개헌을 반복하는 등

부정한 정치로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고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후 윤보선을 중심으로 제2공화국이 세워졌으나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성공하게 되고

장기간의 독재 정권을 수립하게 됩니다.

 

박정희 정권은

철강, 조선, 화학, 자동차 산업에 과감하게 도전을 감행함으로써

1970년대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이 당시 대한민국은 1인당 GDP 1,000달러를 돌파하며 신흥 공업국으로 발전을 하는 등

세계적인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군사 독재 체제에서 비롯된 여러 사회문제, 문화에 대한 검열과 언론 탄압 등으로

지금까지도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역시 종신집권의 욕구를 뿌리치지 못하여

각종 반발이 강하게 이어졌으며

결국 박정희는 1979년 암살당하게 됩니다.

 

1980년대 접어들어 신군부 세력으로 등장한 전두환이 새롭게 정권을 잡았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강력한 물가안정 정책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통한 고성장 기조를 유지하여

대한민국의 경제는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 학생 운동회를 체포하거나 반대 세력에 대해 고문을 자행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를 펼친 탓에

많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1988년에는 전 세계 160개국이 참가한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였습니다.

특히 당시 동서냉전으로 갈등과 분쟁을 벌여왔던

미국과 소련,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올림픽이었습니다.

 

올림픽 개최는 더욱 선진화되고

불굴의 신화를 입증하는 대한민국의 국력과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IMF의 원조를 받는 등

국가의 경제 위기가 있었으나

성숙 된 국민의 의식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 후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에 관한 한국인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선진국으로써의 위상을 남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