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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러시아 역사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6. 9. 19:41

 

 

 

1. 소개

러시아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ussian Federation ‘러시아 연방입니다.

극동에서 동부 유럽의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나라로

수도는 모스크바(Moscow)입니다.

 

러시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하양·파랑·빨강의 3색기로

하양은 고귀함과 진실을,

파랑은 정직과 충성을

빨강은 용기와 자기희생을 나타냅니다.

또한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3색을 위로부터 각각

천상세계, 하늘, 속세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1705년 표트르 1세의 명에 따라 최초의 국기로 제정되었지만

러시아혁명 이래로 소련이 세워지면서 국기는 폐지됩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다시 기존의 국기가 부활하였으며

20001225일 정식 국기로 제정되게 됩니다.

 

러시아는 유럽의 동부에서 극동에까지 걸쳐 있는 광대한 영토를 보유한 국가로

북쪽으로는 북극해, 동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합니다.

국토면적은 약 1700로 세계 1위이며

한국 면적의 약 170배 정도 크기입니다.

 

러시아는 2019년 기준으로 약 14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9위이며, 이는 방글라데시의 인구수와 비슷합니다.

 

러시아의 1년 총 GDP

2017년 기준 약 15천억 달러. 이는 세계 11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캐나다와 한국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인구는 러시아인 80% 이외에 타타르인, 우크라이나인 등

다양한 다민족들이 살고 있으며

공용어로는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종교는 러시아정교가 약 55%로 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 무신론자들과 이슬람교 8%, 가톨릭 1% 등 다양한 종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역사

러시아는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트족, 흉노족, 카자르족 등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동북부의 삼림지대에 살던 슬라브족이

오늘날 러시아의 주류 민족을 형성하였고,

8세기경부터 볼가강 상류지역에 정착하여 작은 도시들을 만들었습니다.

 

9세기경 바이킹의 후손인 '바랑고이'의 올레그(Oleg)에 의해

최초의 국가인 키예프공국으로 통합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예프 공국은 얼마가지 않아 왕가의 분열로 크게 약해졌고

결국 13세기 몽골인의 침입으로 멸망했습니다.

 

징키스칸을 계승한 오고타이 칸이 이끄는 몽고족은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1240년 키예프 전역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고족의 지배는 240년간 이어졌는데

그동안 러시아는 유럽과 단절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모스크바 공국의 알렉산더 네프스키는 이른 시기에 몽고의 지배를 인정함으로써

몽고로부터 유리한 자치권을 인정받아 크게 성장했습니다.

 

결국 러시아가 몽고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에 이르렀을 때였는데요.

1480년 몽고와의 주종관계를 공식적으로 종결하는 선언을 시작으로

러시아 전역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함으로써 전제군주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반 3세는 행정조직을 정비하고 새로운 토지제를 도입,

크렘린 궁을 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뒤를 이은 이반 4세는 짜르(Tsar)'라는 전제군주의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귀족세력을 견제하며 왕권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반 4세의 사후에 농민반란 등으로 약해진 모스크바 공국은

1610년 폴란드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폴란드의 침입으로 모스크바 공국이 멸망하고

새로운 왕으로 추대된 인물은 미하일 로마노프였습니다.

1613년 출발한 로마노프왕조는 4대왕인 표트르 대제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대대적인 영토확장정책을 실시하여

스웨덴을 굴복시키고, 발틱연안을 확보했습니다.

 

이어 서쪽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해나간 표트르대제는

현재의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지배하는 최초의 러시아 황제가 되었습니다.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한 뒤

10년 뒤인 1713년 제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깁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가 외부세계로 진출하는 창구 역할을 하였으며

이곳을 통해 무역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표트르대제의 사후, 러시아의 정세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남편인 표트르 3세의 왕위를 계승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독일 출신으로 보수적인 전제정치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크림반도를 장악하고 지중해로 진출하였고

동쪽으로도 시베리아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진출했습니다.

 

뒤를 이어 즉위한 알렉산드르 1세 시기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을 발표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러한 조치를 지키지 않았고

결국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촉발시켰습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르 1세는

비엔나 회의를 주도하면서 유럽에서의 러시아의 지위를 격상시켰습니다.

 

1853, 오스만트루크를 상대로 일으킨 크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하는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알렉산드르 2세는 크림전쟁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러시아 개혁을 단행하여

근대화를 약속, 농노를 해방하고 지방자치기구를 설치하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 이후 전제군주제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19051, ‘피의 일요일사건은

러시아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고,

니콜라이 2세는 곧바로 ‘10월 선언을 통해 공식적으로 국회개설을 약속하고

혼란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는 프랑스, 영국과 함께 삼국협상국으로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그로 인해 국가 경제가 파탄나고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였습니다.

 

결국1917‘3월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며

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립니다.

 

 

3. 소비에트 연방

임시정부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고

노동자들과 병사들로 구성된 볼셰비키 혁명세력이 확산되었습니다.

 

마침내 1917117,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파가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성공,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혁명 직후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고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을 공식선언합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주요산업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신분제를 폐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등 혁명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하지만 신생 소비에트 정권은 지주와 반혁명세력,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외세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습니다.

 

레닌의 혁명성공 이후 5년만인 1922년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이 당 총서기로 임명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캅카스로 이루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소련이 탄생했습니다.

 

1924년 레닌의 사망으로 완전히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사기업을 전면 폐지하고 국가주도의 경제발전계획을 시행했습니다.

중공업중심의 공업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99%에 달하는 농업을 국유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차대전 참전 전까지 1924년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1929년 타지키스탄

1936년 키르키스스탄·카자흐스탄

1940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가 각각 소련연방에 가입했습니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였으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국가재산의 30%가 손실되는 등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한편 종전 후 동유럽과 중국의 공산화가 진행되면서

세계는 미·소를 양극으로 하는 냉전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스탈린의 사후인 1953년부터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로 이어진 러시아는

이른바 정체의 시대를 거치게 되고,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맞게 됩니다.

 

고르바초프의 시대는 소련사회에 대변혁을 불러왔습니다.

1990년 소련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70여 년간 이어진 공산당의 통치체제를 해체하였습니다.

 

1986년에 터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수습하고

경제침체와 외교적 고립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으며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등

새로운 외교관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경제의 혼란과 연방 내 공화국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점점 힘이 약해져가던 소련은

1991년에 들어서면서 경제위기가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소련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고 국민들의 불만은 고조되었습니다.

이때 개혁개방과 함께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이 주도권을 잡으며

소련은 공중분해 됩니다.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의 구성국은 모두 독립했고,

소련의 중심이었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은

19916, 러시아 최초의 직선대통령으로 당선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중심으로

러시아연방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갑작스럽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러시아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자유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면서 물가가 급등하게 되고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은 앞다투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실업자가 2,000만을 헤아리고

국민의 90% 이상이 절대 빈곤에 빠지는 등 혼란이 극심했습니다.

 

더욱이 1997년 말의 동아시아 경제위기가 러시아의 취약한 경제에 전이되면서

1998년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을 의미하는 모라토리움(Moratorium)을 선언합니다.

 

경제 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정치적 위기까지 맞게 된 옐친은

1999년 말, 임기를 조금 남겨둔 상태에서

KGB 출신의 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고 사임하게 됩니다.

 

푸틴은 200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공산당과 자유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