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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이야기 "원소"

Buddhastudy 2022. 6. 15. 20:29

 

 

 

수학은 구구단

영어는 동사 변화

역사는 조선 왕조

화학은 주기율표

 

, 학생 때는 과목마다 꼭 외우고 넘어야 할 관문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관문을 통과해야 레벨업이 되는 게임같은 거죠.

 

그중 주기율표는 정말 난이도 최고에 속합니다.

4주기까지는 어떻게 외우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몰리브데넘, 탄탈럼 다름슈타튬 프라세오디뮴

발음조차 힘든 원소들이 마구 나옵니다.

 

낯선 이름들을 외우기도 힘든데 그 특성들까지 알아야 한다니

세상에 무슨 원소가 이렇게나 많을까요?

결코 위로의 말이 될 순 없겠지만

세상 만물의 엄청난 종류를 떠올려 보자면

화학 원소 100여 개는 많은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꿀벌만 하더라도 그 종류가 25,000가지가 넘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가지의 생물과 사물을 만드는 데

겨우 100여개 원재료만 있으면 된다니

사실 놀라울 정도로 경제적입니다.

 

, 과학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스토리가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딱딱한 주기율표도 원자 번호 순서가 아니라 원소 발견의 순서로 보면

인류 문명의 역사와 과학 발전의 역사라는 스토리가 보입니다.

 

인류는 원소라는 개념을 알기 훨씬 전부터 원소를 이용해왔습니다.

, , 구리, , , 주석, 수은 같은 금속 원소와

탄소나 황 같은 비금속 원소는 매우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원소 개념이 자리 잡은 18세기 초반부터는

이삼 년에 하나씩 새로운 원소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원자의 구조가 파악된 현대에 들어서는

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원소에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 해온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는 많이 들어봤지만

구리 시대를 들어본 적은 많지 않을 겁니다.

 

--29, Cu구리

구리 시대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사이에 과도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45백 년부터 기원전 2천 년까지로 봅니다.

대부분의 문명에서는 구리 시대가 짧게 유지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략하곤 합니다.

 

하지만 구리를 사용한 흔적은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유럽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집트와 터키 지역에서는 기원전 8천 년 경의 구리 구슬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구리 시대 초기에는 구리를 녹여서 가공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아니면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구리는 특별히 열을 가하지 않아도 두드려서 가동할 수 있을 정도로 무딘 금속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금속 제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구리와 주석을 녹여서 섞으면 더 단단한 금속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 최초의 합금이 바로 청동입니다.

 

청동은 구리보다 강했기 때문에

칼이나 갑옷 같은 무기 뿐만 아니라

수저, 연장, 장신구 같은 일상용품에도 두루 사용되었습니다.

 

구리는 키프로스에서 채굴되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주요 원천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키프로스에서 이름을 따 구리를 쿠프럼이라고 불렀습니다.

쿠프럼은 고대 영어에서 코퍼로 현대 영어에서는 카퍼로 바뀌었습니다.

 

구리의 원소 기호인 CU도 쿠프럼을 딴 것입니다.

한자어로는 금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동으로 불리죠.

청동기 이전에 구리 시대

구리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이었습니다.

 

 

--79 Au,

주기율표에는 금, , 동이 세로로 사이좋게 모여 있습니다.

주기율표에서 세로줄은 족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족의 원소들 끼리는 과학적 특성이 비슷한데

이는 원자의 가장 바깥 전자 껍질에 있는 전자수가 같기 때문입니다.

 

, , 구리는 전자 배열이 안정적이어서 다른 화합물과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화학적 반응성이 낮은 성질을 화학에서는 비활성 또는 불활성이라고 부릅니다.

 

금속이 비활성 성질을 가지면 두 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하나는 녹이 잘 슬지 않는다는 특징입니다.

비활성 금속은 물이나 공기와 쉽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녹이 거의 슬지 않고 오랫 동안 원형을 유지합니다.

 

부식이 되지 않는 금속이라니 이런 금속은 상대적으로 귀합니다.

그래서 금, , 동은 고대로부터 화폐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영어로 귀하다는 뜻의 노블은

화학에서만큼은 귀하다는 의미가 거의 사라지고 비활성이라는 의미만 남았습니다.

, 노블 메탈은 일상에서는 귀금속, 확학에서는 비활성 금속을 뜻합니다.

 

-비활성 금속의 두 번째 특징은 덩어리 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화학적 반응성이 낮다보니 다른 광물 원소와 잘 섞이지 않고

그래서 자연에서 천연의 형태로 발견됩니다.

 

특히 금은 자연에서 편리하게 얻어집니다.

금은 광석에서 추출할 필요 없이 땅에서 덩어리로 줍거나 금광맥에서 채굴할 수 있습니다.

 

개울에서 채로 거르면 사금 알갱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 리디아 왕국의 팍톨루스 강은 사금이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미다스 왕이 자신의 황금손을 없애기 위해서 팍톨루스 강에서 손을 씻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손만 대면 모든 것이 금으로 바뀌는 황금손인데

강 전체가 금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금 채굴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이집트 남부의 누비아 사막에는 100여 개도 넘는 광산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광산에서 노예들을 동원해 금을 채굴했습니다.

이렇게 채굴한 금으로 순금 예술품을 만들고 죽은 왕의 부장품을 만들었습니다.

금을 향한 욕망은 세계사를 이끌었습니다.

 

스페인이 신세계를 발견한 것

그 신세계로 이주민들을 끌어들인 것

그 이주민들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한 것도 따지고 보면 금 때문이었습니다.

 

금을 향한 욕망은 과학 발전도 촉진시켰습니다.

실험실에서 금을 만들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화학이 탄생했습니다.

 

 

--15, P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 화학은 곧 연금술이었습니다.

연금술이라면 오로지 금을 만들려는 시도로 생각되기 쉽지만

연금술의 상당 부분은 안료나 염료, 비누, 특히 의약품 같은 것들을 만드는 실용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연금술이 남긴 유산 중 하나는 증류 기술입니다.

증류는 물질마다 끓는점이 다른 성질을 이용해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물질이 자신의 고유한 끓는점에서 기화가 되면 그 기체를 냉각시켜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물질을 분리합니다.

 

17세기 함부르크의 연금술사 헤닝 브란트는

그날도 어김없이 금을 만들 방법을 궁리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소변을 증류하면 연금술의 핵심 성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연금술사들이 괴짜나 사기꾼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험정신 하나는 투철했습니다.

 

브란트는 1669년부터 소변을 모아서 증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이 거듭되면서 정말로 플라스크 용기에 어떤 물질이 남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검은색 침전물을 가열하니까 하얀색으로 변하고 나아가 밝게 빛났습니다.

공기와 접촉하면 불꽃을 내며 폭발했습니다.

이 신기한 물질은 나중에 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은 특이한 물질입니다.

순수한 형태일 때 검정색, 흰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을 띱니다.

가장 흔한 백린은 밀랍처럼 무르고 녹는 점이 섭씨 44도입니다.

산소에 노출되면 빛을 내며 타오릅니다.

피부에 닿으면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고 중독성도 강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물질이 역설적으로 생명 체계에는 필수적입니다.

 

인은 뼈의 구성 성분이며 DNA를 구성하는 핵심 원소입니다.

인은 우리 몸 곳곳에 풍부하게 존재하고 소변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헤닝 브란트가 인을 발견한 17세기에는 원소라는 개념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예로부터 금이나 황 같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를 무의식적으로 발견해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원소라고 인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을 발견함으로써 화학 원소라는 개념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화학이 연금술에서 벗어나 진짜 과학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소변을 끓이던 실험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

, 이 이야기들은 필립 볼의 책 <원소>에서

구리, , 인의 내용만 짧게 간추린 것입니다.

<원소>에는 이외에도 118가지 원소들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 출판 시장에서 화학관련 도서는 상대적으로 적은편입니다.

 

그중 주기율표에 대한 책들은

주로 원소 자체에 중점을 두다 보니 대체로 원자 번호 순서대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러면 책이 아무리 재밌어도 주기율표를 외울 때처럼

4주기 정도에서 슬슬 한계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책 <원소>는 독특하게도 원소 발견의 순서대로 원소를 설명합니다.

고대의 문명이 금속을 이용한 이야기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지금과 다른 원소 이론을 만든 이야기

중세시대 연금술사들이 새로운 원소들을 발견한 이야기를 거쳐

과학의 여명기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원소 발견 순으로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주기율표가 딱딱한 관문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 책처럼 느껴집니다.

 

저자인 필립 볼은 20여 년 동안 네이처지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킨 책들을 많이 출간해왔습니다.

필립 볼이 풀어놓는 신화와 역사, 문화와 예술을 넘나드는 이야기 보따리를 읽는 것도 즐겁지만

<원소>의 또 다른 재미는 그림입니다.

박물관이나 도서관 자료실에서 찾아낸 고풍스러운 사진 200여 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아트북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책이 이른바 소장각인 책이겠죠.

많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은 지식 레벨업용 소장각 책입니다.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