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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르완다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7. 6. 19:29

 

 

1. 소개

르완다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르완다 공화국(Republic of Rwanda)’입니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있으며 수도는 키갈리(Kigali)입니다.

 

르완다의 국기는 위로부터

파랑, 노랑, 연두가 2:1:1의 비율로 배치되어 있으며

오른쪽 상단에는 24개의 햇살을 지닌 태양이 있습니다.

파랑은 사랑과 평화를, 노랑은 경제발전

연두는 국민의 힘과 번영을 이루자는 희망을 의미하며

태양은 국민을 계몽하는 빛을 상징합니다.

 

르완다는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은 부룬디, 탄자니아와 북쪽은 우간다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과 접합니다.

 

국토면적은 약 26로 세계 146위이며

이는 경기도 면적 12의 약 두 배 정도 크기입니다.

 

르완다는 2019년 기준으로

13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76위이며,

이는 경기도 인구 1300만 명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르완다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90억 달러.

이는 세계 135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베냉과 콩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인종 구성은 후투족이 85%, 투치족 14%, 그 외 트와족이 소수 있습니다.

 

언어는 키냐르완다어와 프랑스어, 영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로마가톨릭과 개신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재림교, 이슬람교 등을 믿습니다.

 

 

 

2. 역사

거의 1만 년 전 피그미족인 트와(Twa)족이 르완다에 정착했으며

14세기경 북방에서 이주해온 투치족이 주변의 반투족을 병합하여 여러 왕국을 세웠습니다.

르완다 왕국은 19세기 말 부룬디, 탄자니아와 함께

독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려졌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1919년부터 벨기에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벨기에는 식민통치를 위해 소수인 투치족을 관리지배층으로 선택해 특혜를 주고

다수인 후투족에게는 가혹한 통치를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차별적인 식민정책은 점차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심하게 만들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는 부룬디와 합병되어 벨기에의 신탁통치령으로 바뀌었는데요.

3년 뒤에는 부룬디와 분리되어 신탁통치하에 르완다 왕국이 세워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고

19627월에 벨기에의 승인을 받고 최초로 르완다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카리반다(Grégoire Kayibanda) 대통령은

투치족 탄압정책을 펼쳤고

1965년 이후로는 후투족의 일당독재 국가가 성립되었습니다.

 

이후로 수년에 걸쳐 수천 명의 투치족이 학살되었고

30만 명에 달하는 투치족 주민들이 해외로 추방당했습니다.

 

1973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쥐베날 하뱌리마나대통령 역시

투치족에게 가혹한 탄압을 멈추지 않자

해외로 망명한 르완다인들은 폴 카가메를 중심으로 르완다 애국 전선(RPF)을 결성하고

1990년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1993년 아루샤 조약(Arusha Peace Accords)으로 평화롭게 내전이 종결되는 듯했지만

이듬해 4월 하뱌리마나 대통령이 탑승했던 비행기가 피격당해 대통령이 사망하자

이후 3개월간 르완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대통령 피격에 대한 복수로 후투계 강경파는

3개월에 걸쳐 80만 명에 달하는 투치족 및 온건 후투족을 학살하였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후 가장 끔찍한 인종학살로 일컬어지는 르완다 학살은

우간다 등에 피신해 있던 투치계 RPF가 후투 정권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19947월 마침내 끝이 났습니다.

 

이후 RPF를 이끈 폴 카가메가 대통령에 집권하면서

점차 르완다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3. 정치 & 경제

르완다공화국은 2003년에 제정된 헌법에 의거한 대통령중심제 국가로

5년 임기의 대통령이 집행권한을 가지고

18명의 각료를 지명하여 내각을 구성합니다.

 

내각은 국무총리와 장관, 국무장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19년 현재 르완다의 대통령은

2000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Paul Kagame)입니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강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치안을 개선시켜

르완다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양호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장기집권을 해오며 군사작전 같은 독재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의회제도는 양원제이며

상원 26석 하원 80석 등 총 106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르완다의 주요 정당으로는

투치족의 르완다애국전선(RPF)과 후투족의 민주공화운동(MDR), 그 외 군소정당들이 있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오랜 내전으로 인해 르완다의 경제는 거의 파탄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폴 카가메 대통령 집권 후에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국가를 재건하여

아프리카의 모범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도 경제성장률 연평균 7%로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르완다는 인구밀도 높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내륙국인데다

취업인구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업국가입니다.

 

르완다의 주산물인 커피는

100% 아라비카 품종을 재배하여 주로 독일, 일본 등지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커피기업인 스타벅스에서

르완다 커피를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의 지리적 중심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안정적인 치안을 바탕으로 항공과 비즈니스 센터 등 경제인프라를 발전시키며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천 개의 언덕의 땅이라 불리는 르완다는

동부아프리카 대지구대 안에 있으며

해발고도 1,500m 이상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험한 산악지형이지만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된다고 합니다.

 

적도에 가까우면서도 고원지여서 연평균기온이 19도로 낮아 선선한 편이며

강수량도 풍부합니다.

1년에 2차례 우기가 지속되는 시기에는

강한 뇌우를 동반하기 때문에

르완다의 번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농업과 농산물가공업에 종사하지만

좁은 영토에 산지가 많아 생산성이 낮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전의 상흔으로 인해 인구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사회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르완다는 고릴라 대국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900마리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마운틴고릴라 중

300마리가 르완다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이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곳곳에 고릴라 동상을 세우거나 고릴라 투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춤은 르완다 국민의 삶의 일부라 할 정도인데요.

전통악기인 루룽가의 반주에 맞춰 전통가요를 부르고,

드럼 오케스트라에 맞춰 흥겨운 춤을 추는 전통문화가 남아있습니다.

 

르완다의 농촌지역에서는 도자기와 바구니 공예와 같은

수공예품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5. 인물

르완다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폴 루세사바기나(Paul Rusesabagina)’가 있습니다.

그는 1994년 영화 '호텔 르완다'의 실제 주인공으로

르완다 내전 당시 5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가운데서

1,268명의 목숨을 지켜낸 사람입니다.

 

1954년 태생의 폴 루세사바기나는 후투족 태생으로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으며 13살이 될 무렵,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습니다.

 

23살이 되어 결혼을 한 그는

목사의 꿈을 안고 신학을 공부하다

호텔 경영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스위스와 브뤼셀에서 경영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옵니다.

 

그 후로 여러 호텔에서 경력을 쌓은 루세사바기나는

40살 무렵인 1994년 르완다 키갈리 밀콜린스 호텔의 부지배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때 르완다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호텔은 서구의 기자들과 UN군이 상주하던 곳이었기 때문에

내전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폴 루세사바기나는 후투족 군벌의 눈을 피해 1,268명의 투치족 난민을 호텔에

100일간 보호하며 세계의 도움을 기다렸습니다.

 

연일 죽음의 위협은 계속되었지만

구원의 손길을 받지 못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사비를 모두 털어가며 뇌물공세를 펼쳐

호텔에서 보호하고 있던 난민들과 함께 겨우 탈출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1,000명이 넘는 난민을 구해낸 그의 실화는

영화 '호텔 르완다'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습니다.

 

폴은 2년 동안 르완다에 머무른 뒤

벨기에를 거쳐 미국 텍사스로 이주하였고

2005, 미국 정부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