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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스님 법문_ 유전성이라는 이름도 없는 자리

Buddhastudy 2022. 7. 12. 19:27

 

 

 

그게 여러분들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못났든 잘났든 살아나가는 우리가

이 세상에 생겼을 때

바로 생긴 자체가 내가 내 근본이 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종자가 있으니까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그 종자를 믿어야죠?

믿는다면 아무 문제 없고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걸 믿으면 그냥 훌떡 넘게 되는 거죠.

 

근데 그 유전성이라는 건 생각을,

할아버지도 그랬으니까 유전성이 이렇게 있구나.’하는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앙금이 지워지지 않는 걸 그냥 무조건 그냥 믿는다.

이런다면 그냥 그 앙금도 없어질 텐데,

이럭하면 없어진다는 건 아는데 그 앙금이 지워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 앙금마저도 없애려면 진짜로 믿어야 한다.

믿다가도 조금 저거하면 그냥 이렇게,

예를 들어서 예전에 내가 이런 말을 했지요.

종문서를 가지고 종문서를 없애야 할 텐데

종문서를 가졌다가 도로 놨다 가졌다 도로 놨다 이러니까

이것이 유전성이나 업보성이나 영계성, 인과성, 모두가 주둔해서 그렇게 생긴 대로 나오는 거죠.

그래 그 말을 할 때에 내가 그랬죠.

이 누진에는 바로 자동 컴퓨터와 같다.

그러니까 거기에 과거로부터 살아오면서 누적된 입력이

지금 이 공부를 하면서 자꾸 놓아 들어가니까

그 입력이 자꾸 없어진다고요.

그러면 유전성도 녹아서 없어지죠.

그 앙금마저 없애면 아무 일도 없는 겁니다.

 

유전이라는 건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유전이라는 거지

유전이라는 언어도 없을 겁니다, 아마.

 

옛날에 이런 점이 있지요.

부처님께서 사제법을 먼저 가르치시고 뒤에

하도 이 말 하고 저 말 하고 사단이 많으니까

이 세상에 둥근 공이 있는데 공을 누가 움죽거리게 하느냐?

또 그 공 가운데엔 티끌만한 그 공이 있는데 그 공을 누가 쉬지 않고 튀게 하느냐?”

이렇게 물어 봤더랍니다.

 

물어보니까 하나도 대답을 못하더랍니다.

그러니까 그거를 알면 모두 다 알 수 있으니까

여러 말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더랍니다.

 

우리도 지금 이 말을, 부처님이 하신 그 말씀을

부처님이 했다고 하기보다도

우리 지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진리가.

진리가 우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해 주시고 우린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공이 떠다니는데

우린 그 공 속의 공과 같습니다, 티끌 공.

그 공이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그 쉬지 않고 돌아가는 그 공이 자기 공, 조그만 티끌만한 공 속에서 자기가 빠져야

이 큰 공 속에서도 빠지죠.

 

그러니까 어렵다고 생각 마시고 아주 간편하게 쉽게 생각하세요.

왜냐하면 우리 생각이

아주 간편하고 지혜롭게 이렇게 그냥 편리하게

얼른 쉽게 말해서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냥 능동적으로 편안하게 모두 살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서 놓으시면

그게 직통 아주 적합한 얘깁니다.

 

우리가 테레비에서나 모두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 대략 아시겠죠.

그래서 어떤 거는 그냥 돌리고 어떤 거는 보시고

, , 참다웁고 참 잘한다.’ 이렇게도 보시고 어떤 땐

아이고, 참혹하고 불쌍하다.’ 이렇게도 보시고,

,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좀 이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시기도 하고.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의 나는

모습이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도

수만 가지로 모습을 해 가지고 나투는 그런 사연이 모두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마음이

즉 말하자면, 한 발 내려디뎌서 보살로 칭하면서 응신이 돼 주시는 거죠.

그래 응신이 돼 주셔도 그 응신이라는 건 하나지마는

수많은 갖은 각색을 다 그 보살이라는 이름에서 다 해결이 나죠.

 

그럼 우리가 생각할 때

보살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고 이런 게 아닙니다.

중생 따로 있고 이런 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선지식들께서도 (하신) 이런 말이 있죠.

왜 만날 말씀드리죠.

한 강을 배를 타고 가는데,

그 배 속에 들어있는 중생들이

파도가 치고 비바람이 치니까 살려달라고

, 관세음보살 뭐 문수보살하고 찾는데

어떤 분은 가만히 그냥 태연하게 앉았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람이 불고 이렇게 배가 뒤집히려고 그러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가만히 계시냐고 하니까

내가 없으니까 생각할 것도 없고.” 그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뱃사공은 여러분들의 주인공이 되고,

, 육체 속에 있는 생명들은 중생이 되고,

여러분들의 몸은, 모습은 배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살아나가시는 게 아주 평전하게 이렇게 걸어가시는 걸로 알지 마시고

배를 타고 간다.

 

근데 살아생전에

내가 살아 있다’ ‘내 저 강을 건너야겠다

그전에도 말했지만

강을 건너야겠다’ ‘불에는 들어가면 타죽는다

이런 문제들이 착이 있어서, 그게 착이 있어서 말입니다.

나 모습 아닌 나는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져죽지 않고

건널 때도 한 찰나면 건너고 그럴 거를

 

그렇게 넓게 생각을 못하시니까

모습이 자기로만 아시니까 문제가 커지는 겁니다.

모습이 자기로만 알면 사단이 복잡하죠.

 

그리고 또 보살 따로 있고, 부처 따로 있고,

신장 따로 있고, 지장 따로 있고, 관세음 따로 있고

이렇게 따로따로 본다면 아주 또 복잡해지죠.

 

왜 복잡하냐 하면

죽어갈 때도 명 길게 해달라고 한다면

칠성 부처님한테 빌어야 하고,

또는 좋은 데로 가게 해달라고 한다면 지장보살한테 빌어야 하고

이렇게 갖가지로 이렇게 해야 하니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전력 창고도 하나예요.

전력 창고가 하나라고요.

하나로 돌아간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여러분들이 하나도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 텐데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있는 겁니다.

 

창고에서 전력을 꺼내는 데는 하난데

씀씀이는 여러 가지 용도가 많죠, 다양하게.

그 다양하게 씀씀이를 쓰는 거를

우리가 한 군데 한 군데서 꺼내 쓸 줄 안다면

별의별 걸 다 한 군데서 꺼내 쓸 수 있죠.

그러니까 복잡하지 않다는 얘기죠.

 

따로따로 이렇게, 여러분들이 사시면서 볼 때는

따로따로 관리를 맡아서 보죠.

그 관리를 맡아서 보는 수 없는 그 문제들을 어디서 한 군데서 다 맡아보죠.

 

그러듯이 대통령이 하나면 그 밑에 모두 수하가 있듯이.

그런데 대통령이 부처님이라고 하셔도

부처님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하신다 하셔도

여러분들의 마음은 그냥 부처님이 해주시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마음이 문을 열 줄 알고

그래도 함이 없이 할 줄 알아야

부처님과 둘이 아니게 된단 얘깁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댁의 마음이고

댁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이니까

둘이 아니게 이렇게 받아들여지니까 못하는 게 없죠.

예를 들어서) 하늘을 받칠 텐데

이 손가락 하나 가지고 하늘을 받칠 수 있겠느냐.

그럼 한마음의 도리라면 그냥 길고 짧음이 없이 들이댄다.

 

이 손가락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한 생각이 손가락이 아닌, 그 속도가

아주 빠른, 속도라고 말로 할 수도 없이 빠르니까

그냥 한생각에 문지방 너머도 미국이든 다른 혹성이든 똑같단 얘깁니다.

 

우리가 살 때는 짧다, 길다, 아주 길다, 우리가 못 간다

이런 문제가 나오지마는

이 마음의 척도는 아주 속도가 그렇게,

우리가 지금 물속 몇 미터에 들어가야 한다.

몇 미터고 뭐 그런 것도 없이 어딜 들어간다 그러면

그냥, 그냥 한 찰나지

다른 혹성이라고 하더라도 삼천 년을 간다하는 길이라도

한 찰나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지구는 나쁘고

다른 혹성은 좋다 이렇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좋고 나쁜 거는 여러분들의 그 공부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마음을 잘 써야 이 자동적인 컴퓨터에서 바꿔진다.

바꿔져서 이게 아주 그 억울한 업보가 그냥 얽히고설켰다 이런다면

그 업보를 없앨 그런 일이라면

그 입력된 거를 지워야 할 텐데

지우는 건 어떻게 지우느냐?

 

바로 그 지울 수 없는, 그 입력된 데다가 되놓으니까,

다른 자리는 없으니까.

거기다 되놓으니까 앞서의 입력된 게 없어지면서

새로에 입력이 자꾸 들어가니까

그 업보는 자꾸 없어진다 이겁니다.

 

우리가 지금 인간으로 됐다 하더라도 수없는 겁을 거쳐 오면서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이렇게 하면서 나온 그 자체가,

무슨 우리가 죄를 지으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죄를 알고 그랬던 것도 아니고,

이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그러지 않고는 못 살겠으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이랬던 거죠.

 

그런데 죄가 뭐 있겠습니까?

죄가 어디가 붙을 데가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이 그러하시니까 죄가 있지,

죄가 어디 붙을 데가 있습니까?

 

한번 생각을 넓게 해서 우리가 편리하게,

암흑을 불 하나 켜면 환해질 건데

그 불 하나 켤 줄 몰라서 암흑 속에서 허덕이고 보질 못하고

이렇게 애를 쓰는 이런 까닭과 같다.

이런 일과 같다.

 

그렇다면 그 참, 생각을 지금

옛날보다도 지금 테레비에도 무역(무술?) 영화를 하고 또 영계성도 나오고 뭐 별 게 다 나오죠.

그런 영화도, 애들 영화도 나오고.

 

그런데 그런 걸 볼 때 우리가 딱 한 가지만 보세요.

우리 몸뚱이가 그냥 나왔는데

죽인다’, ‘죽인다가 바로 살린다이걸로 바꾸면

살린다로 바꾸면

내 모습이 여러 가지로, 살리기 위해서 모습을 여러 가지로 배출한다면

그 모두 살리는 데 쓰이는 거니까.

 

그런 영화는, 애들 영화는 죽이는 데 쓰고

그런 걸로 재밌게 보지만

살리는 데 그 모습을 바꿔가면서 그렇게 해도 참 보기 좋은 세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