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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훈TV] 한강 인문지리지 (12)살곶이 다리... 세종 착공, 성종 완공,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지으려 파괴한 돌다리

Buddhastudy 2022. 7. 14. 19:30

 

 

살곶이 다리...

세종 착공

성종 완공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지으려 파괴한 돌다리

 

 

조선이 놓은 가장 긴 돌다리는 중랑천 한강 합수부 살곶이다리다.

길이 78m(258) 너비 6m(20)

높이 1.2m인 돌기둥을 네 줄로 세운 위에 받침돌을 올리고

대청마루를 깔 듯 세 줄의 판석을 빈틈없이 깔았다.

가운데 두 줄의 교각을 낮게 하여 다리의 중량을 안으로 모았다.

돌기둥에 무수한 흠집을 새겨 물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세종 31420년 착공했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교각일부만 세우고 중단했다.

성종14(1483)에 이르러 서야 완공됐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 하나의 물줄기를 이룬 후 한강 본류를 앞둔 곳에 놓여졌다.

현재 위치로는 한양대 공대 앞이다.

 

살곶이란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태조 이성계는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의 즉위에 반발해

고향인 함경도로 갔다.

 

태조는 태종의 간청으로 한양에 돌아왔는데

태조를 맞기 위해 서쪽 중랑천변에서 천막을 치고 기다리던 태종을 향해

태조가 동쪽 중랑천변에서 화살을 쐈다.

그 화살이 천막 기둥에 꽂쳤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1483년 완공되어 400년간

백성들에게 편리함과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던 살곶이다리는

1865~1866년 경복궁 중건의 여파로 끊길 뻔했다.

 

흥선대원군이 왕조의 권위를 세운다는 명분 아래

경복궁을 중건했다.

가난한 나라 살림에 돈이 모자라니까

중건에 필요한 재료들을 전국 곳곳에서 곶감 빼먹듯 했다.

 

흥선대원군은 청계천의 24개 돌다리와 살곳이다리 등

전국의 돌다리들의 석재에 눈독을 들였다.

 

청계천 다리들은

한양성 권세가들과 백성들의 원성이 워낙 크기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조선의 가장 긴 다리인 살곶이다리의 석재를 빼오기로 했다.

 

살좃이다리의 석재를 모두 빼오고 싶었으나

400년 간 서울 동쪽으로 이어지는 간 선교통망의 핵심을 차마 파괴할 수 없었다.

그래서 6m 폭을 구성하는 세 줄의 판석 중 맨 오른쪽 한 줄을 뽑아가서

경복궁 중건에 써먹었다.

1972년 복원된 살곳이다리는 그래서 완전한 원형이 될 수 없었다.

 

중세 시대에서는 78m의 긴 돌다리를 하천 위에 세울 정도로

문명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앞서갔던 조선

이 다리를 백성뿐만 아니라 조선의 왕도 안심하고 건너다녔다.

 

이렇게 400년을 잘 견뎌낸 그 다리를 뽑아

궁궐 중건에 쓴 시대착오적인 조선이란 나라..

참으로 한심하지 않은가.

 

한양도성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성들이

한일 강제병합 이후

개발독재 시대까지 지어진 각종 건축물의 석재에 사용되느라

대책 없이 파괴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참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화에 뒤처지며

우왕좌왕하다가 나라의 동맥인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스스로의 손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아간 일본제국주의가

한강철교, 한강대교를 짓는 비극을 맞은 우리나라..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은

살좃이다리의 교훈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

옷깃을 여미고 살펴볼 일이다.

 

 

#한강걷기 코스: 옥수역- 살곶이다리- 서울숲

옥수역에서 한강둔치로 진입한 후

한강- 중랑천 합수부로 걸어가면

살곶이다리를 만날 수 있다.

살곶이다리를 이용해 중랑천을 건너 서울숲에 진입해

서울숲의 아기자기한 산책코스를 즐기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