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39회 직장동료들과 인간관계를 편하게 하고 싶습니다 2편

Buddhastudy 2012. 11. 19. 04:31
출처 YouTube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이거 국회의원하고 똑같아요. 국회의원들 다 뭐라고 그래요. ‘국민의 뜻이 그렇다.’ 이래 말하잖아. 자기를 뽑아주면 어때요?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그러고. 자기를 안 뽑아주면 어때요? 국민이 뭘 모른다 그러고. 여러분들도 어떤 얘기할 때 제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 그러죠.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다 물어봤나? 물어보지도 안 하고 그렇게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의 평가일 뿐이다. 그 평가가 내 맘에 들면 좋은 평가고, 내 마음에 안 들면 나쁜 평가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 평가는 좋은 평가도 아니고 나쁜 평가도 아니다. 그 사람의 평가일 뿐이다. 그건 진실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평가일 뿐이다. 지금 우리 제도상 그 사람에게 평가의 책임을 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평가를 따르는 거지. 그것이 꼭 객관적으로 옳다든지 나쁘다든지 할 수는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학교에서 요즘 시험쳐가지고 1234등 뽑는 것도 하나의 평가죠. 그걸 때 국어 성적, 영어 성적, 수학 성적, 이걸 중심에 삼고, 그다음 몇 개해서 하는데, 인간을 국어수학영어 이거 갖고 평살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 조선시대는 과거 급제할 때 뭐로 평가했어요? 글씨 모양하고 시 쓰는 거 갖고 평가했어. 시 쓰는 거 갖고. 그게 인간이 평가되나? 안 되지. 그러나 그 시대에는 그것으로 평가를 했어.

 

그것은 그 사회에서 그렇게 선택한 거요. 그 평가가 잘됐다 잘못됐다 할 수 없고, 그 시대에는 그것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말 할 뿐이오. 그럼 오늘의 평가는 이거는 그냥 오늘의 우리가 이런 것으로 평가한다는 거요. 그래서 학교에서 평가한 거 하고 사회 나가서 사는 거 하고 다르다. 또 사회에서 잘산다. 이것도 또 요즘 뭐가 기준이에요? 경제가 주로 기준이죠. 그럼 그게 인간을 평가하는 거냐? 그렇지 않다.

 

그런 식으로 평가하면 부처님은 성공한 사람이오? 실패한 사람이오? 실패한 사람이지? 으음. 그러니까 다만 그것은 평가기준이 다르다. 그것은 그 사람의 평가다. 그게 내 맘에 든다고 좋은 평가고 내 맘에 안 든다고 나쁜 평가다. 본인이 지금 내 맘에 안 든다고 평가가 잘못됐다. 또 몇 사람의 아부에 의해서 평가가 혼란을 가져왔다. 그건 굉장히 주관적인 거요. 으음. 그런데 전체적으로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면.

 

첫째 질문에서도 본인이 남의 험담을 하고 있는 수준. 다시 말하면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 이건 말이 많아 나쁘고, 말이 많으면 좋잖아. 그죠? 그다음에 저거는 뭐 보는 앞에서는 험담 안 하고 보는 앞에서는 대화를 잘하고 없는 데선 험담한다. 그것도 보는 앞에서 싸우는 거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잖아. 그죠? 그러니까 아~ 저 사람은 말이 많아서 좋고, 저 사람은 능력이 없으니 내가 승진을 해서 좋고, 저 사람은 그래도 보는 앞에서 안 싸워서 참 다행이고. 이렇게 보려면 얼마든지 볼 수가 있다.

 

그러니까 본이 얘기 들어보면 첫 번째 질문에서는 다 자기가 제일 잘났고 딴 사람은 다 문제 있는 사람이 되고, 두 번째는 동료만 그런 게 아니고 평가하는 상관도 어때요?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그저 아부하는 사람 몇이나 얘기 듣고 줏대 없이 평가를 잘못하는 인간이다. 이런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래 네 잘났다.’ 그러니까 본인이 내가 너무 내 입장, 내 편견, 내 생각에 좀 치우쳐 있다.

 

그래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제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다만 이것은 내 생각일 뿐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이렇게 108, 100일쯤 기도하세요. 오늘 질문한 인연으로. 그러면 눈에 좀 끼인 것도 좀 벗겨지고, 좀 몸이고 얼굴이고 좀 경직돼 있는 사람이거든요. 사람은 똑똑한데 좀 빡빡 따지는 성질 같애. 보니까. 그런데 고게 조금 배추 이파리 소금 쳐가지고 약간 숨죽듯이 이렇게 좀 보들보들 해질 거요. 그럼 직장에 서도 사랑받고 가정에서도 사랑받는 사람이 될 거요. 하하.

 

언제나 세상의 중심은 접니다. 각자 자기입니다. 맞습니까? . 나를 기준으로 해서 이쪽은 동쪽 이쪽은 서쪽 이쪽은 남쪽 저쪽은 북쪽, 또 이거는 앞, 저거는 뒤 이거는 오른쪽 저거는 왼쪽.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할아버지 손자, 전부 자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이건 나쁜 게 아니에요. 사람이라는 것이 사물을 인식할 때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이 세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아내는 아내를 기준으로 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남편이 문제가 있고, 남편은 남편을 기준으로 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아내가 문제가 있고, 부모는 부모를 기준으로 해서 보기 때문에 자식이 문제가 있고, 자식은 또 자식 기준에서 보니 부모가 문제가 있고. 부하는 부하기준으로 보니 상사가 문제가 있고, 상사는 상사 기준에서 보니 부하가 문제가 있고, 동료 사이도 마찬가지요. 형제간에도 그렇고.

 

남북 간에도 그래요. 남한을 중심으로 보니 북한이 늘 문제요. 그런데 북한에 가서 물어보면 누가 문제다? . 남한이 문제다. 한국사람한테 물어보면 늘 중국이나 일본이 문제요. 그런데 일본 가서 보면 어때요? 한국이 문제요. 왜 그러냐? 자기를 중심에 놓고 보는 그런 인식체계가 돼 있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는 인식세계,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오. 이거를 아상이라 그래. 아상.

 

옳으니 그르니 맞지 틀리니 잘했니 잘못했니. 하는 거는 다 어디서 일어나는 거다. 아상에서 일어난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일어난 거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괴로움도 어쩌면 모두 이 아상 때문에 생기는 거요. 이것을 내려놔라.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서 내가 지금 온갖 분별심이 일어난다. 이걸 만약에 내려놓는다면 세상은 어떠냐? 그냥 그것일 뿐이다. 그냥 그것일 뿐이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동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니고. 그냥 그것일 뿐이다.

 

그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공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이거요. 그것이 각자 작기 기준으로 바라보면 즉 각자 자기 마음이 일으켜서 온갖 모양이 일어난다.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위니 아래니, 동이니 서니 온갖 인식이 일어난다. 그래서 같이 이렇게 한방에 있지마는 각자의 생각이 다 달라요. 영화를 봐도 느낌이 다 달라요. 그래서 우리가 법회 끝나고 마음 나누기를 하는 이유가 스님이 똑같은 법문을 했는데도 듣고 얘기를 해보면 같이 들었어요? 달리 들었어요? 달리 들었어요. 그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인간을 이해하는 거요. 그렇게. ~ 저 사람은 저렇게 들었구나. 저렇게 들을 수도 있네. 각자 듣는 게 다르다. 하늘에 달이 떴는데 각자 자기 그릇 속에 달이 비치듯이, 각자 자기 식대로 듣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어때요? 각자 업식이 같으면 같이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둘이 셋이 열 명이, 백 명이, 천명이 같이 들리면 어때요? 이건 그냥 진리가 돼 버려요. 다만 그것은 같을 뿐이지 다수라고 진실이 될 수가 없다. 으음. 이제 그런 관점을 갖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번뇌는 우리들의 마음이 짓는 바다. 우리가 자기 기준을 내려놓으면 모든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현실에서는 자기를 기준으로 일단은 움직입니까? 안 움직입니까? 움직이죠. 그래서 자기 기준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들은 일어나되 적어도 그것이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전부 주관적이다. 그러니 고집하지는 마라. 고집하지는 마라. 우리가 서해라고 하는데 중국이 동해다 할 때, 중국 사람은 동해라고 부르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부르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가운데도 다툴 일이 없어진다. 다르지마는 다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