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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모나코 10분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8. 11. 19:27

 

 

 

1. 소개

모나코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Principality(프린스팰러디) of Monaco' 모나코 공국입니다.

유럽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으며, 수도는 모나코(Monaco)입니다.

 

모나코의 국가는 1881년에 제정되었으며

10세기 이 지역에 들어온 제노바의 가문인

그리말디(Grimaldi) 왕가의 전통적인 색깔입니다.

두 색의 사용은 13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시대에 따라 디자인은 변화를 겪으며 마름모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기와는 비율만 빼고 동일하며,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 모나코의 국기 변경을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모나코는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지역에 위치하며

면적은 2로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작은 나라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서울시 면적 60030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모나코의 1년 총 GDP2017년 기준 약 63억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85,000달러로 세계 1, 2위 수준입니다.

 

모나코는 2019년 기준으로 약 4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밀도 순위로는 마카오와 함께 1, 2 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모나코의 종족구성은 프랑스인과 모나코인이 각각 25%,

이탈리아인이 22%, 영국인이 7.5% 와 그 외 기타 민족이 있습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종교는 로마가톨릭교가 90%, 그 외 기타 종교 등을 믿습니다.

 

 

 

2. 역사

모나코의 역사는 헤라클레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헤라클레스가 모나코의 안쪽 항만을 지나갔다고 하여 그 지역에 신전을 세웠는데

주변에 유일하게 헤라클레스를 모신 신전이라고 하여

외로운 헤라클레스(Hercules Monoecus)' 라고 부른 것에서 모나코라는 국명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10세기경 페니키아인이 최초로 모나코 항만에 들어온 뒤로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 로마인 등이 많이 거쳐갔습니다.

 

7세기 이래 모나코는 롬바르디아 왕국과 아를 왕국의 영토였다가

후에 약 200년에 걸쳐 사라센 제국(Saracen Empire)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119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 6세가

제노바 공화국에게 모나코 근방지역을 하사하면서 제노바령이 되었고

제노바가 근처의 땅들을 개척하여 1215년 무역거점으로 세운 곳이 바로 모나코입니다.

 

그러던 중 1419년 제노바의 유력가문이었던 그리말디 가문(Famille Grimaldi)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모나코를 돈으로 구입하면서

그 후로 그리말디 가문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모나코 지역은 제노바 공화국 내의 자치령으로 남아 있다가

프랑스혁명시기 이후 제노바 공화국이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면서

모나코 역시 프랑스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1차적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던 모나코 공국은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1815년 다시 부활했는데요

이때는 사르데냐 피에몬테 왕국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1848, 모나코의 망통과 로크브륀 두 도시가 반란을 일으켜

모나코는 분열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결국 1861년 샤를 3세가 410만 프랑을 받고

두 도시에 대한 권리를 프랑스에 팔아버렸고

모나코는 현재의 영토로 축소된 상태로 사르데냐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영토가 축소된 모나코는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카지노와 조세피난처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렇게 독립한 모나코는 전제 군주국으로 출발하였으나

1910년 혁명이 일어나 새로운 헌법을 채택하고 입헌군주국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이 침공하여 모나코는 잠시 파시스트 정권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무솔리니가 몰락한 직후에는 나치 독일의 점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루이 2세의 손자 레니에는 연합국을 지지하였으며

연합국의 승리로 모나코의 독립이 회복되었습니다.

 

 

3. 정치& 경제

모나코의 정치체제는 공작이 다스리는 입헌군주제 도시국가로

1949년 즉위한 레니에 3세가 56년간 통치한 이후에

알베르 2(Alberto II) 2005년부터 국가수반이 되었습니다.

 

원래 대공가문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었으나

1962년에 도입된 신헌법에 따라 의회의 권한이 강화돼

대공과 의회가 공동으로 입법권을 행사합니다.

 

1993년 정식으로 UN에 가입하면서 독립국으로서 인정을 받긴 했으나

여전히 국방과 외교권은 프랑스가 가지고 있습니다.

 

모나코의 총리는 국무장관직을 겸임하며

프랑스와의 보호조약에 의해 프랑스가 총리후보를 추천하면

대공이 임명하는 형식입니다.

 

국가위원회(Conseil National)’라 불리는 모나코의 의회는

24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6석은 지역구에서 8석은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며 임기는 5년입니다.

 

모나코는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공비들로 유명합니다.

1950년대 모나코 공국의 대공 레니에 3세는

헐리우드의 촉망받던 여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현재 모나코의 대공인 알베르 2세 역시

2011년 남아공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인 샤를린 리넷 위트스톡과 결혼하며

아버지의 전처를 따라 아름다운 공비를 맞았습니다.

 

모나코의 경제는 1인당 국내총생산이 185,000달러에 이르는 부국입니다.

자국민은 물론 외국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주는 정책으로

유럽 내의 대표적인 조세천국으로 유명합니다.

 

국민들에게 거두는 세금이 없는 대신에

모나코는 90년대까지 관광과 카지노사업으로 국가제정을 충당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카지노사업과 관광업으로 벌어드린 돈으로

금융업 및 플라스틱, 전자제품 제조업에 투자하여 발전시키며

점차적으로 카지노 수입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나코는 1865년 프랑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한 이후

경제적으로도 프랑스에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2001년에 유로화로 바꾸기 전까지 모나코는

프랑스 통화인 프랑을 공식화폐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현재까지도 모나코의 수출입은 프랑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나코의 주요 경제 수입원 중 하나인 모나코 프랑프리(Monaco Grand Prix)

세계 모터스포츠 3대 대회 중 하나로 모나코 경제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매년 5, 4일에 걸쳐 열리는 모나코 그랑프리 대회를 통해

모나코는 국가총생산의 약 20%가량의 경제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모나코는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접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휴양도시인 니스(Nice)로부터 18km 동쪽에 있습니다.

국경의 3면이 프랑스에 둘러싸여 있어 기후적으로도 프랑스와 비슷합니다.

 

국토면적인 1.96에 불과한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작은 나라인데요.

모나코의 영토는 크게 4가지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나코빌(Monaco-Ville)은 지중해까지 뻗어있는 돌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이며

라콘다민(La Condamine)은 항구를 따라 위치한 지역

몬테카를로(Monte-Carlo)는 주된 거주지역이자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며

폰트빌레(Fontvieille)는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한 새로운 지역입니다.

 

모나코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부드럽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로 유명합니다.

가장 추운 달인 1,2월의 평균기온은 8도 내외이며

여름인 7,8월의 평균기온은 26도 정도로 매우 쾌적하고 온화합니다.

 

모나코는 카지노 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화려한 카지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카지노는 1878년부터 1910년 사이에 건축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특히 몬테카를로의 그랑 카지노(Grand Casino)는 세계 3대 카지노 중 하나로 꼽히며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카지노로 화려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007 카지노 로얄등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온화한 기후와 맑고 파란 지중해 덕분에

모나코는 계절을 불문하고 휴가를 보내기 좋은 관광지입니다.

몬테카를로와 모나코빌 지역은

화려한 카지노와 오페라극장, 아름다운 중세건물들과 고급스러운 호텔들이

전 세계에서 휴가를 맞아 모나코를 찾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쪽 지방에서는 근위병들의 절제된 교대식을 볼 수 있는 모나코 왕궁과

나폴레옹이 쓰던 손수건, 양말, 모자 등이 전시되어 있는

나폴레옹 유물 박물관도 있습니다.

 

모나코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클럽인 AS모나코의 연고지입니다.

1924년에 창단된 AS모나코는 프랑스 리그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명문클럽으로,

조지 웨아, 티에리 앙리, 킬리안 음바페, 박주영과 같은 유명한 축구 선수들이 거쳐 가기도 했습니다.

 

1929년부터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전 세계적인 F1 자동차경주대회인 모나코 그랑프리는

매년 5월에 4일에 걸쳐 개최됩니다.

아름다운 해변과 도심 한가운데의 서킷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속도경쟁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는데요

모나코 그랑프리의 트랙 총 길이는 3.34km로 세계 3F1대회 중 가장 짧지만

주행속도가 느리고 사고도 나기 쉬워

드라이버의 기량이 매우 중요한 레이스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5. 인물

모나코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는 싱어송라이터 레오 페레(Leo Ferre)’가 있습니다.

레오 페레는 프랑스 시인들의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했으며

시적인 노랫말로 샹송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레오 페레는 1916년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배워 나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당시 프랑스 국민 가수이자 샹송의 최고봉이라 불리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를 만난 그는

1946년 파리에 진출하여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 뒤늦게 샹송 계에 등장한 레오 페레는

고독한 감성을 표현하는 곡뿐만 아니라

흥겨운 멜로디의 노래도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1960년대, 격동의 시대를 보냈던 파리의 분위기에 맞추어

레오 페레 역시 자신의 음악에 날카롭고 비판적인 저항과 혁명의식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노래 가사에 아나키스트라는 단어를 언제나 넣으며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외쳤고,

프랑스의 68혁명을 기리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프랑스 샹송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고,

199376세의 나이로 사망한 레오 페레는 모나코 묘지에 묻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