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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몽골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9. 14. 19:46

 

 

 

1. 소개

몽골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몽골 올스(Монгол Улс), 몽골국입니다.

아시아 중앙 내륙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울란바토르(Ulaanbaatar)입니다.

 

몽골의 국기는 1992년부터 현재의 기로 제정되었는데

청색 직사각형을 중심으로 동일한 크기의 빨간 직사각형이 좌우로 있습니다.

가장 왼쪽의 빨간 직사각형 안에는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민족적 표장인 황색 소욤보가 그려져 있습니다.

중앙의 파란색은 국가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좌우에 빨간색은 부단한 전진과 번영을 상징합니다.

소욤보 문장은 1924년 제1회 대인민회의에서

민족의 문양으로 정해졌으며, 그 후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현재의 국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북서쪽으로는 러시아와

남동쪽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한 동아시아의 내륙국가입니다.

국토면적은 총 156로 세계 17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몽골은 2019년 기준으로 약 32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35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경상남도 인구수와 비슷합니다.

 

몽골의 1년 총 GDP2018년 기준 약 131억달러

이는 세계 127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니카라과가 있습니다.

 

몽골의 인종구성은 할하 몽골족이 82%로 다수를 차지하며

기타몽골족과 카자흐족, 그 외 소수민족들이 있습니다.

몽골의 공용어는 할하 몽골어인데,

카자흐족이 사는 일부 지역에서는 카자흐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며

1941년부터는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종교는 티베트 불교가 50% 이상으로 가장 많으며

이슬람교, 기독교가 소수 존재합니다.

 

 

2. 역사

근대 이전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거란족 등

무수히 많은 유목민족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돌궐족의 지배를 받던 고대 몽골인들은

거란과 여진족과 같은 큰 유목민족과 비교하면 약소한 세력이었습니다.

본래 거란에 복속되어 있던 몽골은

카불 칸이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남송과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던 금나라의 배후를 노려

몽골초원에서 여진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점점 성장하는 몽골을 경계하던 금나라는

타타르족과 동맹하여 몽골을 수시로 침략했습니다.

 

혼란한 시기였던 1206,

세상의 왕이라는 뜻의 칭기즈칸(Genghis Khan)이 등장하여

몽골지역을 통일하고 몽골제국을 세웠습니다.

 

칭기즈칸은 오늘날의 카라코룸에 수도를 세우고

중국과 러시아로 거침없이 진격하였으며

1227년 그가 사망했을 당시 몽골제국은

베이징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칭기즈 칸의 사후, 몽골제국은 후손들의 세력다툼으로

일칸국, 우구데이 칸국,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원나라로 갈라지게 됩니다.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Kublai Khan)

중국을 완전히 정복하여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원왕조를 출범시켰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현재의 베이징인 대도에 수도를 정하고

방대한 제국을 지켜나갔으며

몽골은 최고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하지만 쿠빌라이 칸 시대 이후 몽골의 세력이 점차 쇠퇴하면서

1368년 원나라는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나 북원으로만 간신히 잔존했고

결국 몽골제국은 14세기말 멸망했습니다.

 

금나라에 이어 중국지역에 세력을 잡은 청나라는

몽골을 견제하기 위해 내몽골과 외몽골로 분리시켰습니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외몽골은 기회를 잡고 같은 해 121차 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중국은 1920년 몽골의 자치권을 철폐시켜 버렸고

몽골은 인민혁명당을 결성하여 반중국, 민족해방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21, 담딘 수흐바타르가 혁명군을 조직하여 2차 혁명을 일으켰고

192411월부터 현재까지 독립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924년 독립 후, 몽골은

소련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국호를 몽골인민공화국으로 고쳐

세계에서 2번째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도 몽골의 독립을 용인하지 않고 있던 중국은

1945, 국민투표에서 몽골인들의 독립의지가 확인됨에 따라

정식으로 외몽골의 분리 독립을 인정하였고,

2년 뒤 내몽골지역은 네이멍구자치구로 개편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오던 몽골은 소련이 붕괴하고

1991년 민주화혁명을 계기로

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 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1924년 독립 이후부터 1991년까지 몽골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국가였으나

소련 해체 이후 1992년 선거를 통해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습니다.

 

몽골은 아시아의 구 공산권 국가들 중 키르기스스탄과 함께

민주주의가 가장 잘 정착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몽골은 총리와 대통령이 비슷한 권한을 나누어 가지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몽골의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며, 4년임기의 연임이 가능합니다.

 

2019년 몽골의 대통령은 칼트마 바툴가 (Khaltmaa Battulga) 이며

총리는 오흐나 후렐수흐(Ukhnaa Khurelsukh)입니다.

국가대의회로 불리는 몽골의 국회는

4년 임기의 7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0년 다당제를 도입한 몽골의 주요정당으로는

몽골인민당, 민주당, 시민의지녹색당 등이 있습니다.

 

예부터 몽골의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간산업은 목축업이었습니다.

몽골은 초지가 풍부하여 소, , 양을 자연방목하며

국민 1인당 평균 17마리씩의 가축을 소유할 정도로 규모 역시 상당합니다.

풍부한 육가공품을 비롯하여 양모, 유제품의 생산이 많습니다.

 

몽골은 10대 광물자원 부국으로 전세계 매장량 10%에 해당하는 석탄보유국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리 역시 세계 3위의 매장량을 보이며

원자재 수출항목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이 외에도 금, 텅스텐, 우라늄, 몰리브덴 역시 상당히 많이 매장되어 있어

국가 경제에서 이러한 원자재 생산과 수출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자원부국에도 불구하고 몽골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내수가 빈약한데다

자원수출에만 지나치게 집중된 탓에 몽골의 국민소득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2012년 이후 세계적인 불경기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

몽골경제는 큰 폭으로 추락했고

2017년에는 IMF로부터 3년간 55억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는 등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4. 자여환경 & 문화

세계 17위에 해당하는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는 몽골은

바다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내륙국입니다.

국토전체의 평균 해발고도가 약 1,600m에 이르는 고원국가로

대체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습니다.

국토 중앙부에서 동쪽으로는 목축에 알맞은 대초원이 펼쳐지고

서쪽으로 갈수록 높고 험준한 편입니다.

몽골 남부의 1/3 가량은 고비 사막(Gobi Desert)입니다.

 

몽골의 기후는 건조하고 일교차가 매우 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입니다.

또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매우 춥고 한랭한 편입니다.

여름은 고온건조하기 때문에 견디기 쉬우나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일이 많습니다.

 

해발 1,350m에 위치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로

1월의 평균 최저온도가 영하 27도라고 합니다.

 

몽골의 고민은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다는 점인데요.

대한민국의 15배가 넘는 넓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300만 명밖에 되지 않아,

독립국가로는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합니다.

 

게다가 수도권의 인구집중이 매우 심각하여

전체 인구의 1/3 이상이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전통적으로 샤머니즘을 신봉하였으나

현대에는 과반수 이상이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공산당의 탄압으로 많은 승려들이 체포되었고

수도원은 약탈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으나

1990년이 되어 다시 종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많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예부터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신선한 말고기와 양고기, 유제품이 주식이었습니다.

가축의 젖으로 만든 각종 유제품들은 1년 내내 먹는 보존식품이며

가축을 도살하여 얻은 고기는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원이었습니다.

 

호숫가에 사는 일부 주민들을 제외하면

몽골인들은 생선을 먹지 않는 독특한 음식문화가 있는데요.

티베트 불교의 영향과 더불어 주변에 바다가 없어 물고기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몽골인들은

양꼬치와 양고기 샤브샤브와 같은 음식들을 즐겨 먹으며 차를 자주 마시는데

소금차인 수테차이(suutei tsai)가 유명합니다.

 

 

5. 인물

몽골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빈민가 출신의 레슬링영웅으로 활약하다

2017년 몽골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칼트마 바툴가(Khaltmaa Battulga)입니다.

 

바툴가는 1963년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전통씨름인 브흐 사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3살이 되던 1966

기록적인 홍수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었고

온 가족이 울란바토르의 빈민가로 밀려나 천막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레슬링을 시작했는데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운동실력 덕분에 짧은 기간에 에이스로 떠올랐습니다.

 

16세에 몽골 레슬링 국가대표가 되었고

1989년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몽골의 레슬링 영웅이 되었습니다.

 

1990년부터는 운동을 그만두고 의류 무역업에 뛰어는 그는

호텔, 택시회사, 요식업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2004, 41세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특히 몽골 유도협회장을 맡아서 치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몽골 최초로 유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여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상승했습니다.

 

2008년부터 2012년에는 몽골의 도로교통부 장관을 맡아 철도 인프라 구축에 앞장섰는데,

비슷한 시기에 몽골에서 광물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철도 구축정책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바툴가는 20177월에 실시된 대선에서

50.6%의 득표를 기록하며 당선되면서

현재까지 몽골의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