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깨달음과 부의 끌어당김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들... 가식적이지 않나요?

Buddhastudy 2022. 9. 15. 19:01

 

 

 

끌어당김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과정 자체에서

방법론적으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겹쳐서 있기 때문이에요.//

 

 

구독자님께서 주신 질문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시크릿류의 자기계발 책이나 영상들이 많이 나오는데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영성이나 마음공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가장 추구하는 건

, 사회적 성공 같은 물질적인 것 같아서요.”라는 말씀을 주셨는데요.

 

시크릿류의 자기계발 책이나 영상들이 정말 많죠.

이런 내용의 책이나 영상들을 보면서 호기심을 느끼고

나도 한번 해 볼까?’

정말 이게 가능할까?’

이런 마음으로

직접 시도를 해 보시고 실천해 보시는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또 이런 분들을 보면서

너무 가식적이다라고 느끼시는 분들 역시 많으신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전통적인 마음공부와

끌어당김의 법칙을 활용하는 시크릿류의 마음공부를

혼동하기 때문인데요.

 

깨달음을 위한 마음공부와 끌어당김을 위한 마음공부의 공통점은

마음의 기능과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고 활용하는지는

굉장히 차이가 나는데요.

-깨달음은 마음의 힘을 약화시키고 마음을 비워냄으로써

내 마음을 넘어서는 것이에요.

 

하지만 시크릿은 마음의 힘을 강화시키고

이 마음의 힘을 활용하여서

내가 원하는 물질이나 상황을 성취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마음공부를 한다라고 하면

물질을 포기하고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찾아가는 고전적 방식의 공부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시크릿은 전혀 다른 거예요.

내면에 있는 마음의 힘을 인식하고 활용함으로써

내 삶에 나타나는 가난이나 질병, 실패와 같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몰아내고

풍요와 건강과 성공과 같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나의 삶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에요.

 

그래서 깨달음을 위한 마음공부와

시크릿을 위한 마음공부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굉장히 달라요.

 

그런데 우리가 각기 다른 방식의 마음공부를

같은 것이라고 오해하고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가식적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중요한 이유 두 번째는요.

끌어당김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과정 자체에서

방법론적으로 모순처럼 보이는 것들이 겹쳐져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시크릿이라고 이야기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은요.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 속에서 이미지화하고,

이 심상 이미지에 집중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풍요와 성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있는데요.

내가 원하는 풍요와 성공의 에너지와 일치하는 파동을

나의 내면에서 발산해야 한다는 거죠.

 

, 지금 현재 내 눈에 보이고 체감되는 것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단계에서 스스로의 내면에 여러 가지 딜레마가 발생하는데요. 이런 거죠.

물을 정말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배워야 할 상황이에요.

 

이럴 때 아무리 내가

할 수 있어. 나도 수영 할 수 있어. 괜찮아. 무섭지 않아라고 자기암시를 한다고 해도

내면에 있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금방 한 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정말로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믿음과 확신이 들 때까지

그 과도기적 단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마음속으로

능숙하게 수영을 하는 그런 모습을 그려보고 심상화를 해 본다고 해도

나도 할 수 있어이렇게 반복해서 되뇌어 본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내가 직접 물에 발을 담그고 발차기를 해나가면서

서서히 내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 그런 무서움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데요.

 

이렇게 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물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바로 능숙하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영을 능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많은 연습 과정이 필요하고요.

그 연습과 훈련과정 중에

물에 빠지기도 하고,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물을 삼키기도 하면서

조금씩 수영에 능숙해 지는데요.

 

끌어당김의 법칙 역시

그것을 익히고 활용하는 능력의 단계가 제각기 다릅니다.

 

초급 단계는요

끌어당김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연습해 보면서

스스로에게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어떤 의지와 확신을 불어넣는 단계에요.

 

그리고 중급 단계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내가 가진 마음의 힘에 눈을 뜨고,

또 이러한 마음의 힘을 좀 더 강화시키고 다듬어가는 그러한 단계입니다.

 

고급 단계는

내 마음의 힘을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응용하면서

영혼의 목적을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영혼의 최종 목적에 따라서 길이 달라지는데요.

이번 생으로 들어오면서 나의 영혼이 이루고자 한 무엇이 있습니다.

, 영혼의 소망과 끌어당김의 법칙을 통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에고의 소망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에고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언제나 영혼의 소망이

에고의 소망보다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이 삶을 통해

나의 영혼이 추구하는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깨달음이라면

삶의 모든 경험은 그 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영혼의 가장 큰 목적인 깨달음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의 삶 속에서

가난과 질병과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일어나게끔 설정되어 있습니다.

 

생각과 감정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파동을 활용하는 끌어당김과

생각과 감정을 비우고 내려놓음으로써 성취하는 깨달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운동선수라고 하더라도

그 출발점에서 연습을 할 때는

기본기를 다질 때는 운동선수들이 공통적으로 다질 수 있는 그런 기본기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 프로가 된다면

수영을 할 때 필요한 근육과 사격을 할 때 필요한 근육이 다를 것이고

따라서 단련해야 하는 그러한 근육이 다를 것이고

연습 과정이 다를 겁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요

우리가 음악을 전공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어느 순간까지 내가 악보를 읽고, 기본적인 것을 이해하고

이런 것까지는 서로 공통적인 어떤 배움과 연습의 과정이 있겠지만

 

피아노를 전공할지, 첼로를 전공할지,

바이올린을 전공할지, 성악을 전공할지, 작곡을 전공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내가 선택한 과정에 따라서

내가 연습해야 하는 그러한 과정들이 분명히 달라질 겁니다.

 

내가 의사가 된다라고 했을 때도요.

외과와 내과로 구분이 되고

또 같은 외과 안에서도 각기 다른 과로 세분화 되고

배움과 훈련의 과정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프로의 길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점점 더 집중과 몰입을 요하는 그러한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학문은 궁극적으로 통하고 통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움의 단계에 있고

훈련과정의 단계에 있을 때는

서로 다른 방향의 두 가지를 통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마음공부의 두 갈래 길에서

상대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느 과정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

외부에서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이 두 갈래 길을 넘나들면서 함께 병행하면서

공부를 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더 헷갈리고 모순되고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이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고

다음 날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음공부의 특성이라 할 수도 있고요.

결국은 자신의 영혼이 가장 원하는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요.

다음 내용은

영성이나 마음공부를 하면서도 정작 추구하고자 하는 건

, 사회적 성공, 물질적인 것 같다라는 말씀을 주셨는데요.

 

우리가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 추구하는 마음, 추구심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그리고 이 추구심,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은

사실 결핍에서 오죠.

 

부와 명예와 권력과 사랑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결핍은

그것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요.

 

이 욕망은 추구심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결핍의 크기와 욕망의 크기는 비례하고

욕망의 크기와 추구심의 크기도 비례하죠.

 

영성이나 마음공부에 대한 추구심 역시

그 출발점이 결핍으로 인한 욕망일 수 있습니다.

 

특히 시크릿류의 마음공부는요.

출발점 자체가 결핍을 풍요로 바꾸기 위한 것이에요.

 

그런데 돈이나 사회적 성공과 같은

이런 물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심이 나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의사가 되고 싶다, 연예인이 되고 싶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 법조인이 되고 싶다

이런 꿈들을 꾸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노력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럼 그들이 모두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만

그러한 것들을 꿈꾸고 있나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아니거든요.

 

자신이 삶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결핍감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성공이든

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어떤 욕망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욕망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물질적인 추구가

영성과 마음공부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것이 무언가에 대한 추구심이든

추구심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고

그 마음 덕분에 우리가 영적 성장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현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