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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바티칸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0. 13. 19:31

 

 

1. 소개

바티칸시국(Vatican City State), 약칭 바티칸이라 불리는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국가로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사각형인 바티칸시국의 국기는

1825년 교황 레오 12세 때 제정되었으며

노란색과 하얀색은 1808년 이래 교황청 위병의 모표에 쓰이던 색이며

우측에 그려진 문장은 교황의 삼중관과

금과 은으로 된 2개의 성 베드로의 열쇠가

서로 교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삼중으로 이루어진 교황관은 통치권, 신품권, 교도권 등

교황이 지닌 3가지 직무를 상징합니다.

 

바티칸시국은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에 위치하며

국경 역할을 하는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

내륙국이자 도시국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알려진 바티칸시국은

0.44의 면적으로,

여의도의 1/6 수준이라고 합니다.

 

바티칸의 인구는 공식적인 지표가 정확하지 않으나

최소 300명에서 최대 1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2020UN 인구조사 예측에 의하면 약 800명 가량이라고 합니다.

 

바티칸시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비영리적 경제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보내는 봉헌금과 관광수입 등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하며

공식적인 경제지표나 GDP 자료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바티칸 시국의 시민은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과 국무장관

또는 허가를 얻어 바티칸시국에 정주하는 봉사자와 그 가족들로

대부분 이탈리아인과 스위스인들이 많습니다.

 

라틴어가 제1 공용어이지만, 이탈리아어도 공용어로 함께 쓰이며

종교는 100% 로마가톨릭입니다.

 

 

2. 역사

533, 동로마제국이 이탈리아반도를 탈환했을 때

로마시에 로마공국을 세우는데, 이것이 훗날 교황령의 기반이 됩니다.

 

얼마 가지 않아 랑고바르드족이 침입하면서 동로마제국의 세력은 약해졌는데

이를 기점으로 교황이 점점 로마공국을 다스리는 독립영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751년 동로마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랑고바르드족에 의해 완전히 함락 (Byzantine-Lombard Wars 568-750)되면서

로마공국은 동로마제국과 단절되었고

이듬해 선출된 새로운 교황 스테파노 2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프랑크 왕국에 손을 내밉니다.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는

랑고바르드족을 옛 라벤나 총독부 땅에서 몰아내고

그 땅을 교황에게 헌납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커져갔으며

1000년 동안 로마와 그 주변지역들을 장악해 교황령이라는 이름 아래 통치했습니다.

 

19세기 중엽, 신흥국으로 발돋움한 이탈리아 왕국이 세력을 넓히면서

교황청은 차츰 영향력을 잃어갔습니다.

 

1870년 이탈리아가 로마를 점령하면서

1000년 동안 이어지던 교황령은 종말을 고하게 되고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 인사들은 모두 바티칸으로 피신했습니다.

 

1861년부터 강제 합병을 당한 1870년을 지나

1929년까지를 교황령은 로마 문제라 불리는 불확실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요.

이 시기동안 이탈리아왕국과 교황령 사이의 불편한 동거가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929212,

이탈리아정부와 교황청 간에 라테라노 조약이 체결되면서 종식되었습니다.

 

라테라노 조약(Lateran Treaty, 1929)은 당시 이탈리아의 국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에게 전권을 이양받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제안했고

교황청 대표인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이 함께 조인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이탈리아는 바티칸시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였으며

가톨릭교회를 이탈리아의 국교로 삼았습니다.

또한 결혼은 교회의 통제하에 두며

학교에서 가톨릭 종교과목을 의무화하는 협약도 있었습니다.

 

바티칸 역시 로마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하고

조약에 반대되는 이전의 모든 법들을 폐기했습니다.

이 조약으로 바티칸시국의 영토권은 성 베드로대성당과 그 주변

로마에 있는 성당과 궁전을 포함한 13개의 건물

카스텔 간돌포(Castel Gandolfo)의 교황 하계관저에 국한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바티칸시국은 전 세계 약 10억명의 가톨릭교회를 총괄하는

가톨릭교회 최고통치기관인 교황청의 소재지입니다.

 

종교의 수장이자 국가 원수인 교황은

교황청에 대한 입법, 사법, 행정 등을 총괄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바티칸은 현존하는 유일한 비세습 선거전제군주제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입법권은

5년마다 교황이 임명하는 7명의 추기경들로 구성된 바티칸 시국 주교회의가 갖고 있으며

행정기능은 로마 교황청 심의회에서 전담하고 있습니다.

 

바티칸시국의 전제군주인 교황은

전 세계 80세 이하 모든 추기경들의 비밀서면투표인

콘클라베(Conclave)를 통해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당선되며

사망하기 전까지 바뀌지 않는 종신제(lifetime job)입니다.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하였고, 소수의 스위스 근위병이 존재하는데요.

교황개인경호원으로서의 스위스 근위대는

1506년에 창단된 이래로 현재까지도 그 역할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바티칸시국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비상업적 경제로

농업과 광공업과 같은 산업은 물론

통상적인 상업경제구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보내는 봉헌금이나

우표와 기념품 판매, 미술관 입장 수수료, 출판물 판매 등으로 얻은 수익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황청 소유의 대지를 임대하여 얻은 부동산 수익과

바티칸 은행의 투자사업으로 인한 수익도 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국가재정은 주로 3000명의 고용원 임금과

해외공관유지 비용 등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바티칸으로 들어오는 봉헌금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베드로 성금입니다.

 

6월 마지막 주일에 전 세계 가톨릭 교구에서

성 베드로 사도의 이름으로 모금된 봉헌금이 바티칸에 전달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유로화를 쓰고 있으나

2002년 전까지 바티칸시국에서는

독자적인 화폐인 바티칸 리라를 사용했습니다.

 

현재는 바티칸시국 우표화폐수집국에서 발행하는 유로 주화를 사용하고 있는데

엄격히 발행량을 제한하고 있어

수많은 수집가들의 열렬한 수집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인 바티칸시국은

로마의 서중부 쪽에 있는 바티칸 언덕 (Mons Vaticanus) 위에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326년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최초의 성당인 옛 성 베드로대성전이 지어졌고

5세기 초에 대성전 근처에 교황의 궁전이 지어졌습니다.

 

바티칸 도시의 모양은 교황 레오 4세가

무슬림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베드로대성당 둘레에 성벽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레오 4세가 세운 성벽을 높여 방어력을 강화했으며

현재 바티칸 국경이 되는 높은 성벽은

바오로 3, 비오 4, 우르바노 8세를 거치면서 완성되었습니다.

 

바티칸의 기후는 로마와 같이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9월부터 5월까지는 비교적 강수량이 많은 겨울이며

짧은 여름은 고온 건조한 편입니다.

 

바티칸시국은 로마가톨릭 문화의 본산지로,

나라 자체가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의 보고입니다.

실제로 바티칸은 1984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바티칸 내부의 건물로는

크게 바티칸 미술관, 시스티나 성당, 성베드로대성당 등이 있는데

이들 건축물 자체가 귀중한 문화유산이며

라파엘로, 베르니니, 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성 베드로대성당은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리스도교 건축물입니다.

특히 이 성당은 교황이 집전하는 신년식이나 교황 즉위식 등

대부분의 의식이 열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여겨집니다.

 

성 베드로대성당과 이어지는 시스티나 예배당은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인 천지창조최후의 심판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으며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이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바티칸 미술관과 바티칸 문서자료관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오랜 역사동안 수집한 예술품들과

역사적인 고문서와 공문 등을 소장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이 한해에만 약 5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5. 인물

바티칸시국을 대표하는 인물은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1282년만에 선출된 비유럽출신의 교황이자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카대륙 출신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의 교황입니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Jorge Mario Bergoglio)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이탈리아출신 철도노동자였던

아버지 마리오 주세페 베르골료와 어머니 레히나 마리아 시보리 사이에서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고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32세에 수사신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산호세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수료한 베르고글리오는

여러 교육기관에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1969, 정식으로 사제서품을 받습니다.

 

아르헨티나 예수회에서 지속적인 사제활동을 하던 그는

2001221,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습니다.

 

20133,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함으로써

콘클라베가 소집되었고

5차례의 투표 끝에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266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새로운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바꾸었고

불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던 교황청의 국고 개혁을 단행했고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금융개혁을 펼쳤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쿠바 간 외교적 친선관계로의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시리아 내전이 터졌을 당시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들을 직접 만나

평화를 촉구하거나 교황의 친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