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공(空)으로 보는 금강경 제3장 중생 제도의 올바른 뜻

Buddhastudy 2022. 10. 13. 19:35

 

 

 

滅度正宗分

중생 제도의 올바른 뜻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불제자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마음을 다스릴지라

일체의 중생이 존재하는 양태를 보면

알이나 태에서 생기기도 하고 습한 곳에서 자라거나

특정 조건에 의해 화생하니라.

이런 모든 것들은 형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기도 하니라.

 

내가 이 모든 것들로 하여금 해탈하여 열반에 이르도록 제도하리라.

그런데 이와 같이 무수한 중생들을 내가 제도하지만

실상을 보면 제도가 되는 중생은 없느니라.

 

수보리야, 왜 그런 것인지 아느냐?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니라.

중생은 저 스스로 미혹되어 중생이라 여기나니

만약 깨달았다는 자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구분이 남아있다면

이는 분별심이 남아있는바 깨달았다 말할수 없느니라.

 

 

-단예선사 강의-

본장은 중생 제도에 관한 참된 의미를 설하고 있다.

 

여기서 세존이 설한

중생을 제도했는데 제도한 중생이 없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이것은 중생은 본래 중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원래는 중생이 아닌데도 그 사실을 중생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얘기이다.

 

그렇기에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하여 제도해도

본래 제 모습에서 변한 것이 없는바

결과적으로 제도한 것이 없게 된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천부경에

일시부시일 일종무종일이란 구절이 있다.

하나에서 만물이 비롯됐지만 사실은 비롯됨이 없고

하나로 만물이 돌아가지만 알고 보면 돌아감이 없다는 뜻이다.

본장에 멸도하나 멸도 한 중생이 없다는 구절과 같은 맥락이다.

 

중생은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무리 알려줘도 속 깊이 이해할 수 없기에 중생이다.

 

사실 깨달음을 통해 중생이 부처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너무 생각(분별)에 집중하다 보니

깜빡 자기 자신을 잊은 것이 중생이고

그렇기에 깨달아 부처가 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

 

중생 흉내를 내던 부처가

본래의 청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세존의 이와 같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나온 수행으로 무사선이 있다.

이것은 삼라만상 모든 것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세존의 가르침을 들어

닦을 것도 깨달을 바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평상심으로 자연 그대로 사는 것을 해탈의 경지로 본다.

 

그런데 무사선처럼 세존의 법을 의심 없이 믿고 실천해 나간다면

그것은 자칫 종교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자신이 왜 중생이 아닌 부처인지를 온전히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부처인양 살아가는 것은

일종의 신앙이고 방종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해 세존의 법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