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78회 불교대학 입학을 반대하는 남편 2

Buddhastudy 2012. 12. 2. 04:28
출처 YouTube
 

평소에 자기가 남편하고의 관계에서 봤을 때 내가 말을 하면 남편이 내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내 말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럴 때는 좋은 것이 있으면 남편에게 얘기해주는 게 좋아요. 그런데 남편은 지금 여기 와서 여기서 뭘 가르치는지 그런 말만 듣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거야. 어디든지 다 이문제가 있는 집단은 말은 다 그럴듯해요? 안 그럴듯해요? 그럴듯하단 말이에요.

 

그러고 평소에 보면 어디 좋은 게 있으면 금방 남의 말 듣고 좋다. 자기 생각 없이 자꾸 이렇게 하니까. 어린애를 어디 내 보내놓으면 어때요? 안절부절 하듯이 남편이 너는 너 식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니는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까 내 말대로 살아야 된다. 이런 생각이 평소에 나를 보면서 이미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이거 조금 설명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그럴 때는 벌써 그런 걸 딱 보면 이렇게 말해야 된다. 이 말이오.

 

여보. 내가 절에 일주일에 한번쯤 가서 기도 좀 하면 어떻겠소. 기도를 절에서 하나 집에서 하나 똑같은데 그래도 가서 법문도 좀 듣고 하니까 내 마음에 위안이 좀 됩니다. 이렇게 그냥 가볍게 얘기하고 그냥 공부하면 된다. 이거야. 세세하게 자꾸 관심을 갖고 물으면 요즘은 이런 거 배운다. 이렇게 얘기하면 된다. 이 말이오. 다 얘기하지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고. 지금 있는 거 조금만 얘기하면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하면서 신뢰를 쌓아나가야 된다. 말로하려고 하지 말고.

 

절에 다니면서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하루하루 내 삶이 변해 가는 걸 보여준다. 이 말이오. 그럴 때 아까 기도가 남편이 어떤 말을 하든 네 알겠습니다. 여보. 네 그렇게 하지요.” 요렇게 해 나가면 남편이 볼 때 절에 다니더니 참 더 사람이 겸손해 졌다. 이런 걸 느끼겠어요? 못 느끼겠어요? 느끼겠지. 그러면 절에 가는 거에 대해서 자연적 신뢰하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럴 때 이제 뭐 배우노?” 하면, “오늘은 이런 거 배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아~ 그래서 아내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이렇게 신뢰를 쌓아가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행동이 바뀌기도 전에 얘기부터 자꾸 꺼내니까 이게 자꾸 불신이 생기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너무 많은 얘기하지 말고 그냥 조금만 얘기하고 다니면서 기도를 하세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우리 남편 하는 말은 다 바른말입니다. 남편 말 따라서 살겠습니다.” 이 말은 내 아집을 내려놓는다. 라는 뜻이오. 비굴하라는 뜻이 아니고. 그래서 남편이 내가 기도하는데 기도하지 마라.” 이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탁 덮어 놔 놓고 출근한 뒤에 기도하면 되잖아.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싶으면 조용히 일어나서 저 방에 가서 기도하면 된단 말이오.

 

뭐 하노?” 하면 네 운동합니다.” 이러면 되지. “너 기도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아니오. 책을 하나 갖다 주면 돼요. 요즘 이 108배가 전신운동이라고 유행이랍니다. 아주 좋은 운동이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합니다.” 거짓말이 아니잖아. 운동하는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 얘기하면 되고, 그래서 점점점 변해가면 그래서 기도를 하지 않느냐? 어떤 기도를 하느냐? 남편은 지금 복 달라고 기도하는 줄 안단 말이오.

 

그래서 그게 아니라 내 기도문은 당신이 말하면 내가 껍데기로는 옳소! 옳소! 하고 따르는데 속에서는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스님한테 의논했더니 남편의 말은 부처님 말과 같다.’ ‘남편의 말은 다 옳다.’ ‘그냥 따라서 하는.’ 그러니까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내려놓으세요.’ 이렇게 해서 제가 그게 안 돼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렇게 못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런 지혜가 있어야 된다. 지금 사람은 착한데 지혜 없이 한다. 이 말이오. 내 할 일은 다 해.

 

남편이 얘기하는 건 다 들어. 그럼 내 할 일 다 하는 거 하고 남편 하는 일 하고 상충되지 않느냐? 그게 문제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둘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둘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이. 그게 공부요. 그게 중도란 말이오. 부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왕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신 분이었죠. 그런데 부처님은 남의 집 밥 얻어먹으면서 길거리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까지도 아주 겸손하셨단 말이오. 당당함과 겸손함이 같이 간단 말이오.

 

돈에 집착해서 돈이 제일이다 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어떻게 돼요? 비굴해지죠. 자기보다 돈 좀 적은 사람 보면 어떻게 됩니까? 무시하고 교만해지죠.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사람한테는 비굴하고 자기보다 낮은 사람한테는 목에 힘주고 이래요. 인기를 갖고 먹고사는 사람은 자기보다 더 인기 있는 사람한테는 비굴해지고 자기보다 인기가 없는 사람한테는 목에 힘주고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비굴한 것과 교만한 것이 같이 가는 거요.

 

지금 본인은 이렇게 비굴하게 복종하는 것과 또 나도 내 식대로 해봐야지.’ 하는 교만함이 지금 같이 간단 말이오. 그게 아니라 당당함과 겸손함이 같이 가야 된다. 왜 이 좋은 법을 좋은 법을 공부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공부하는데 그게 왜 내가 망설임이 있어야 되냐. 이거야. 밥을 굶고도 해야 되고 목숨을 바치고도 해야지. 그 길과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하는 얘기를 알겠습니다. 여보하고 남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거는 또한 겸손한 자세요.

 

이게 왜 따로 가느냐? 같이 갈 수 있다. 그걸 지금부터 연구해 봐요. 기도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기도하느냐? ‘남편의 말은 다 옳습니다.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 하고 숙이며 살겠습니다.’ 요렇게 자꾸 기도하면 두 가지가 함께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