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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벨리즈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1. 10. 19:58

 

 

 

1. 소개

벨리즈(Belize)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사이에 위치한 소국으로

수도는 벨모판(Belmopan)입니다.

 

벨리즈의 국기는 위아래로 좁은 빨강 띠가 있고

바다를 나타내는 파란 바탕 중앙에 문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1950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었고

위아래의 빨간 띠는 독립한 해인 1981년 추가하였습니다.

 

벨리즈의 국가 문장에는

2명의 주민과 특산물인 마호가니 나무, 범선 등이 그려져 있고

그림 주위를 50개의 초록색 올리브잎으로 만든 화환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는 벨리즈가 독립항쟁을 시작한 해인 1950년을 나타냅니다.

 

벨리즈는 북쪽으로는 멕시코, 서쪽과 남쪽은 과테말라와 접해 있으며

동쪽은 카리브해

남동쪽으로는 온두라스 만을 사이에 두고 온두라스와 접해 있습니다.

 

벨리즈의 국토면적은 약 23,000

세계 149위이며

한반도의 1/10 수준에 해당합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4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76위이며

구미시 인구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벨리즈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20억 달러로 세계 169위이며

1인당 GDP는 약 5000달러로 세계 102위입니다.

 

벨리즈의 공용어는 영어지만, 크리올어와 스페인어도 함께 사용합니다.

 

국민의 대부분은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인 메스티소가 많으며,

그 외 유럽계와 현지인의 혼혈인 크리올, 인디언 등이 있습니다.

 

벨리즈의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약 40%로 가장 많으며

그 외 다양한 기독교도가 많습니다.

 

 

2. 역사

기원전부터 유카탄 반도에서는 마야 원주민들이 독자적으로 정착 생활을 하였습니다.

1502년 콜럼버스가 벨리즈를 처음으로 발견하였고

그 후로 에스파냐령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점령자들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긴 했으나 정착하지는 않았는데

자원이 빈약했고, 원주민들이 공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틈을 타서 1634년 영국의 피터 월리스 (Peter Wallace) 선장이 벨리즈에 도착했고

17세기 초 영국인 정착촌이 생겨났습니다.

 

영국인 정착인들은 흑인 노예들을 들여와

초기에는 로그우드를, 후기에는 마호가니를 교역했습니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영유권 충돌이 있었으나

1798년 영국 정착민이 세인트조지 카예 전투에서 스페인군대를 격퇴하면서

영국은 벨리즈 지역을 자메이카 식민지의 일부로 관리했습니다.

 

한편 1800년대 들어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들이 하나둘 독립하기 시작했고

1821년 독립한 과테말라는 벨리즈에 대한 영유권을 영국에 요구했습니다.

 

1859, 영국은 과테말라와 영국령 온두라스의 경계를 확정하는데 합의하였고

1862년 벨리즈를 자메이카에서 분리하여

영국령 온두라스(British Honduras)라는 이름의 독립된 식민지로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령 온두라스는 처음에는 수도를 카리브해 연안의 벨리즈시티에 두었으나

1961년 허리케인 하티(Hattie)로 큰 피해를 입어 벨리즈시티 대부분이 파괴되었습니다.

때문에 1972년 수도를 벨리즈시티에서 벨모판으로 옮겼고

이듬해인 1973년 영국령 온두라스라는명칭을 벨리즈로 바꾸었습니다.

 

1980년 국제연합에서 벨리즈 독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독립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1981년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했습니다.

하지만, 과테말라와의 국경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독립 이후에도 한동안 벨리즈는 아메리카대륙 국가들의 모임인 미주기구(OAS)에도 가입하지도 못했습니다.

 

한참이 지나 협상이 타결된 1991

과테말라가 드디어 벨리즈의 독립을 인정하면서 벨리즈도 미주기구에 가입했고

1993년 영국군이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벨리즈 남부지역의 국경설정 문제를 둘러싼 분쟁 요소는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3. 정치 & 경제

벨리즈는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왕의 대리자인 총독은 상징적인 권한을 가지고

실질적인 행정 전반은 총리가 총괄합니다.

 

2020년 현재 벨리즈의 총리는

2008년 벨리즈 사상 최초의 흑인 총리에 당선되어

3선에 성공한 연합민주당의 딘 배로우(Dean Barrow)입니다.

 

벨리즈의 의회는 양원제로

5년 임기의 상원 13, 하원 31명으로 구성됩니다.

하원 제 1당의 당수가 국가의 총리직을 겸하며

주요 정당으로는 국민연합당(PUP)와 연합민주당(UDP), 국민비젼당 등이 있습니다.

 

벨리즈의 경제는 초기 영국 정착민 시절부터

로그우드(Logwood)와 마호가니 (Mahogany), 사탕수수 등

천연자원의 개발을 중심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1차 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발달했습니다.

 

주요 환금작물로는 바나나, 사탕수수, 감귤, 코코야자, 커피 등이 있으며

수산업도 발전하여 바닷가재, 새우, 왕게 양식 등이 유명합니다.

 

벨리즈는 국토의 약 80%가 삼림지대인 덕에

막대한 양의 삼림자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마호가니를 비롯하여 삼목, 소나무 등이 벌채되며,

껌의 원료인 사포딜라의 생산량도 많습니다.

 

또한 1981년 벨리즈 북부에서 석유가 발굴되어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 비중도 높은 편입니다.

 

최근 들어 관광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연간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웃돌 정도이며

관광 수입도 1억 달러로

국내총생산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크루즈여행, 스쿠버 다이빙의 최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영어사용 국가라는 이점 덕분에 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습니다.

 

하지만 내수시장이 매우 좁고,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한데다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하여

경제발전에 큰 저해가 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벨리즈는 멕시코, 과테말라와 접한 국가로,

카리브해에 면하고 있으면서

중앙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북태평양에 접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국토 면적은 22,966

한반도의 1/10 크기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입니다.

 

벨리즈는 전체적으로 산과 늪지, 열대 정글이 많은데요

북쪽은 대부분 늪이 많은 저지대이고

남쪽 지역은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높은 마야산맥이 뻗어있습니다.

최고봉인 빅토리아산은 높이가 1,122m나 됩니다.

 

벨리즈의 기후는 전형적인 열대기후로 매우 덥고 습합니다.

5월부터 11월까지가 강수가 집중되는 우기철이고

2월부터 5월까지는 건조한 기간입니다.

기온은 최저 23도에서 최고 40도까지 웃돌 정도로 무더운 편이며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합니다.

매년 7월부터 11월까지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1955년 허리케인이 벨리즈 북부를 강타하여 도시를 초토화시키며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961년 당시 수도였던 벨리즈시티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수해 걱정이 없는 내륙의 벨모판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벨리즈에는 멕시코나 과테말라에 못지않게 많은 마야 유적지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님 리 푸니트(Nim Li Punit)라는 유적지인데

거의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수나투니치(Xunantunich)는 마야식 피라미드로

벨리즈 관광지들 중 1순위로 꼽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툰 하(Altun Ha)로 알려진 유적지는

벨리즈에서도 가장 잘 보존된 마야 유적지로 유명한 곳으로

종교적인 건물이 있었던 구역이라고 합니다.

 

벨리즈 해안 근처에는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리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산호초 보호지역이 있습니다.

1996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한 벨리즈 산호초 보호지역은

산호초로 만들어진 작은 섬들이 150개 이상 모여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라이트 하우스 리프에는

스쿠버 다이빙 장소 베스트 10중 한 곳으로 꼽히는

그레이트 블루홀이 있어 특히 유명합니다.

그레이트 블루홀은 폭 300m, 깊이 124m로 바다의 싱크홀로 불립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빙하시대에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던 육지가

침식작용으로 인해 카르스트 지형이 되었다가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그대로 바닷속에 잠겨 형성된 독특한 지형입니다.

2010년 프랑스의 프리다이빙 챔피언인 기욤 네리가

이곳에서 113m까지 잠수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벨리즈에는 수많은 새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야생동물 중에서는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벨리즈를 대표하는 국가 새인 무지개 왕부리새와

멧돼지와 코끼리를 닮은 생김새의 베어드맥 등이 있습니다.

또한 벨리즈 남중부의 콕스콤 분지 산림보호지역에는

세계 최초로 설립된 재규어 보호구역이 있습니다.

 

 

5. 인물

벨리즈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은

힙합가수인 샤인(Shyne)이 있습니다.

 

1978년 벨리즈시티에서 태어난 모세 마이클 배로우의 아버지는

벨리즈 최초의 흑인 총리로 당선된 딘 배로우였습니다.

하지만 샤인의 어머니는 딘 배로우와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고

딘 배로우는 자신의 정치 커리어에 워낙 바빴던 탓에

샤인이 3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어린 샤인을 데리고

미국 뉴욕 브룩클린으로 이주했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샤인은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음악계를 휩쓸었던 힙합음악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97년 프로듀서 DJ 클락 켄트가 그를 픽업한 이후로

메이스, 디디 등과 함께 음악 작업을 했고

20009, 자신의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하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2001, 그는 총기사건에 휘말리며 10년형을 구형받고, 감옥생활을 했어야 했고

감옥에 갇혀있던 2004년 전화로 녹음한 2번째 앨범을 발매하여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9년 조기출소하였고,

2010년부터 마티스야후의 노래 피처링을 시작으로

디제이 칼리드, 릴 웨인 등과 함께 작업을 함께 하며 재기했습니다.

 

20133월 자신의 세 번째 앨범을 발매하면서

현재까지 왕성한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