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명상의 모든 것] 수행의 끝은 무로 돌아가는 것? 그게 끝일까?

Buddhastudy 2022. 11. 29. 19:49

 

 

 

보통 수행을 하면서

()라고 하는 자리를 찾으면

'~ 나는 수행이 끝났다' 라고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과연 그것이 끝일까요?

 

 

이런 비유를 생각해보시면 좋습니다.

수행을 통해서 무()라고 하는 자리에 접근하는 것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으로 있기 전의 그 자리

그것은 마치 철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기 전에

용광로에서 녹아서 있는 상태와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망치의 형상을 하고 있고'

'톱의 형상을 하고 있고'

'칼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본래의 모습은 녹아있는 철과 같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이것도 한 번 녹아봐야 알게 되긴 합니다.

내가 망치라는 자신의 형상을 굳건히 유지하면서 고수한다면

녹아있는 철이 무엇인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겠죠.

그렇게 굳건하게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을

에고라고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용광로에 녹아서 철인 상태,

이것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무라고 하기도 하고

본래 근원의 상태인 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걸 알게되면 끝일까요?

수련을 하면서 무를 찾았지만

현재로 돌아오면 현실로서의 자신의 모습도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는 철이었지만

어떤 이유에 의해서 누구는 망치의 형상을 하고

누구는 톱의 형상을 하고

누구는 칼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녹아서 철이 되어있는 상태가 성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움직여서 형태를 만들고

망치가 되고 톱이 되고 칼이 되는 것을

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주 작은 행동이나

움직임을 하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죠.

그냥 숨을 쉬는 것도 생명활동을 하기 위한 이유가 있고

눈을 깜빡이는 것도 눈에 수분을 공급하고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있죠.

하다못해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떠는 것조차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모든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라는 것은

본래의 성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움직임인데

이 모든 움직임에도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것을 우주의 의사,

또는 하늘의 뜻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본래의 자리에서 시작된 움직임, 명이 들어간 것을

생명, 소명, 사명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생(), 살아 있는 형상을 가지고

거기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하늘의 뜻이 있는 것이고

소명, 사명은 그 형상 즉 자신의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그 달란트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이렇게 본래의 자리라는 성과

거기에서 의사를 가지고 시작된 움직임이라는

명의 의미를 알고 수련을 하면

훨씬 더 이해가 쉬워지고

균형있는 수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닦는데 집중하는 소승불교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대승불교의 관점의 차이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이 '나는 본래 녹으면 아무 형태도 아닌 무였다, 철이었다'

라는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명은 그 본래의 자리에서

현재 망치, , 칼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이 형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라는

우주의 명, 하늘의 명을 받은 것이다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수행의 본질은

당연히 성과 명을 함께 닦아 나가는 것이 됩니다.

물론 첫 단계로는 먼저 근본을 찾아야 하니

성의 자리, 무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자리를 확인했다면

왜 그 자리에서 현재의 망치, , 칼이 되었는지를 알고

그 존재의 이유,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것을 소명, 사명이라고 합니다.

 

망치가 할 일, 톱이 할 일, 칼이 할 일을 잘 함으로써

우주의 진화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이것이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보람 있는 일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나온 자신의 재능, 특성, 개성을 살려서

자신과 우주의 진화에 기여하는 것이

행복보다 더 근본적인 보람이 있는 일이 되는 것이죠.

 

반면에 성이나 명, 한쪽에 치우친 공부를 하게 되면

당연히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을 닦는다는 것은 성력을 키우는 것과 같죠.

본래의 자리를 알고, 무엇이 바른 것인지를 알게 되는 개념입니다

칼로 말한다면 칼자루와 같죠.

 

명을 닦는다는 것은 영력을 키우고

무엇을 하고 실천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칼로 말한다면

예리하게 무엇을 할 수 있는 날을 갖게 되는 것과 같죠.

 

그래서 성만 닦게 되면 칼자루,

마음은 좋은데 날이 없어서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반대로 명만 닦으면 칼자루는 없는데 날이 너무 예리해서

자칫하면 다칠 수 있는 상태가 되죠.

 

칼자루와 같은 성과

예리하게 잘 드는 날과 같은 명이 잘 갖추어져야

명검이 되는 것이죠.

 

순서는 성을 닦는 수행 이후에

명을 닦는 실천이 되어야 위험하지 않게 됩니다.

 

성이라는 본래의 자리를 발견해야만

어느 자리에, 어떤 용도로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죠.

 

나라는 망치가 있는데

이 망치를 못을 박을 때 쓰는 것인지

아니면 차 유리를 깰 때 쓰는 것인지 알게 하는 것이

성이라는 본래의 자리가 됩니다.

 

 

정리하면

지난 시간에 행복보다 근본이 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보람 있는 일은

자신의 소명, 사명을 찾고 실천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이 소명, 사명은

본래의 자리인 무로 돌아가는 것

성을 찾는 것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순서는

성을 찾고, 명을 실천하면

보람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