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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부르키나파소 10분 완벽 정리

Buddhastudy 2022. 11. 30. 19:28

 

 

1. 소개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수도는 와가두구(Ouagadougou)입니다.

 

부르키나파소의 국기는

1960년 오트볼타 공화국으로 독립하였을 당시에는

검정-하양-빨강 띠로만 이루어진 3색기를 사용하다가

19848, 사회주의 국가인 부르키나파소로 국명을 변경하면서

현재의 국기로 바꾸었습니다.

3색은 에티오피아와 가나에서 시작된 범아프리카 색으로

빨강은 혁명을, 초록은 임업을

노란색 5각별은 희망과 천연자원을 상징합니다.

 

부르키나파소는 동쪽은 니제르와 베냉,

북서쪽은 말리, 남쪽은 코트디부아르, 가나, 토고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의 국토면적은

274,000로 세계 72위이며

이는 대한민국 면적의 3배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2000만 명으로

인구수로 세계 59위이며

서울특별시 인구 2배와 비슷합니다.

 

부르키나파소의 1년 총 GDP

2019년 기준 약 146억 달러로 세계 124위이며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모리셔스가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유일한 공식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합니다.

주민은 약 50% 가량이 모시족, 10%가 풀라니족이며

그 외 60개가 넘는 소수 민족이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의 종교는 약 60%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기독교가 25%, 토속신앙이 그 뒤를 잇습니다.

 

 

2. 역사

기원전 15,000년 전부터 사람이 정착해서 살았던 걸로 보이며

일찍부터 농경이 발달했던 니제르의 영향으로

기원전 3600년을 전후하여 부르키나파소 지역에서도 농사가 행해졌던 걸로 추정됩니다.

 

3세기부터 철기가 널리 보급되었고

그 후로 부족국가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11~12세기에 모시족을 중심으로 하는 모시족 제국이 성립되었는데

이 당시 와가두구 지역에 살고 있던 모르 나바(Mors Naba)를 왕으로 추대하여

강력한 국가를 구축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모시 제국은 한때 번영하였으나

1896년 프랑스 식민지 군대에 패하면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1898, 프랑스와 영국이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을 끝내고 협정을 맺으면서

지금의 가나 지역과 국경선이 확정되었습니다.

 

1901년 프랑스가 서부아프리카 식민지를 재정비함에 따라

모시족의 영토는 오트세네갈과 니제르, 2개로 분할되었고

19193월 오트볼타로서 독립된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932년 오트볼타는 다시 3개로 쪼개져서

1947년 다시 통합되기 전까지 약 15년간

야텡가 지방은 프랑스령 수단, 구르마 지방은 니제르, 그밖에 나머지 지방은 코트디부아르에 흡수되어 나뉘게 됩니다.

 

1958년 오트볼타는 프랑스 공동체 내의 자치공화국이 되었으며

2년 뒤인 1960년에는 정식으로 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오트볼타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는

독립운동을 주도했던볼타민주동맹(UDV)의지도자였던

모리스 야메오고(Maurice Yameogo)가 취임했습니다.

 

프랑스어로 볼타강 상류라는 의미의 오트볼타(Haute-Volta) 공화국으로 독립하긴 했으나,

경제가 악화되고 모리스 야메오고가 독재적으로 변하면서

결국 독립 후 6년만인 1966년 쿠데타가 일어나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그 후로도 수차례 군부 쿠데타로 인해 정권이 바뀌는 등 혼란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1983년 총리였던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오트볼타의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토마스 상카라는 1년 뒤 국명을

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의 부르키나파소로 변경하고

국기와 국가를 새롭게 제정하였고,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펼칩니다.

 

그의 집권 4년 만에 부르키나파소는

농업생산량이 2배 이상 증가하였고, 국민의 생활이 윤택해졌습니다.

 

하지만 198710

상카라의 동료였던 블레즈 콩파오레는 미국의 지원을 업고 군사쿠데타를 감행

상카라를 살해하고 대통령에 오릅니다.

그는 상카라가 추진했던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모두 중단하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강화하였고

1991, 1998, 2005, 2010년 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하여 4선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20145선 연임을 반대하는 시위로 인해 실각하였고

2015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로크 마르크 크리스티앙 카보레가 당선되어

문민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2002년 최종 개정된 헌법에 따라 부르키나파소는

대통령제공화국입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연임이 가능하며

국민의 직접투표로 의해 선출됩니다.

 

부르키나파소의 의회는 단원제로

111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5년입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주아프리카연합(RDA), 민주진보회의(CDP), 민주진보당(PDP) 등이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외교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친서방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의 재정은 미국과 프랑스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아프리카에서도 생활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로

농업과 축산업의 비중이 높습니다.

총 노동력의 90% 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 외 나머지 인구의 대부분은

이웃국인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등으로 품팔이를 하러 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르키나파소의 주요 생산물로는 조, 옥수수, 콩 등이 있으며

특히 조의 생산량은 전 세계에서 7위권 내외

옥수수 역시 상당히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고

면화, 땅콩 등의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약간의 금과 망간이 산출되는 것을 제외하면

광물자원이나 에너지자원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공업부문에서는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방직공장과 제당공장 등이 세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농산물가공이나 공예품 제작과 같은 소규모 공장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부르키나파소는 고원과 평원이 교차하는 지대로서

지리적으로 크게 2개의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국토의 북동쪽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모시고원은

기복이 심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언덕이 솟아있는 편입니다.

 

남서쪽의 절반은 선캄브리아대의 지층으로

사암질의 지층을 이루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테나코루(Tenakourou)는 해발 749m라고 합니다.

 

남서부 일부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토가 사하라사막의 주변부인 사헬 지역으로

사막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사헬지대는 1년 총 강수량이 600mm 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지역인데다

연교차가 40도가 넘을 정도로 극심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물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부르키나파소의 기후는 일반적으로 사바나 기후이며

기온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더 높고 건조한 편입니다.

1년 중 가장 기온이 낮은 1월의 평균기온은 25도 내외

가장 더운 달인 4월의 평균기온은 36도 내외로 매우 무덥습니다.

 

부르키나파소는 최근 아프리카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데

1969년부터 홀수 해 2~3월에는 페스파코(FESPACO)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짝수 해 3~4월에는 음악, 무용, 극장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인 페스파코 영화제는 19692,

와가두구에서 영화 애호가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축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르키나파소와 코트디부아르, 니제르, 카메룬, 세네갈 등 5개의 국가들이 참여했고

24편의 영화가 출품되었다고 합니다.

 

2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영화제에서는

장편,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소개되고 있으며

금상-은상-동상을 시상하는데요.

영화제의 최고상인 금상은

아프리카 대륙의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에게 수여된다고 합니다.

 

또한 와가두구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기념품 시장이 있습니다.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건물에

의류, 기념품, 그림, 조각, 악세사리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어

마치 서울 인사동을 연상시킵니다.

현장에서 상인들이 직접 기념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부르키나파소의 작은 마을인 바졸레에 있는 호수에는

150마리의 악어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악어는 본래 성질이 포악한 동물이지만

이곳의 악어들은 모두 온순한 편이어서

마을 주민들과 서로 평화롭게 지낸다고 합니다.

얼마나 평화로운지 대범하게 악어 등에 올라타거나 쓰다듬는 사람들도 있고

동네 여성들은 악어들이 서식하는 호숫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빨래를 합니다.

 

15세기 무렵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던 원주민들이

악어의 도움으로 호수를 발견해 목숨을 구했고

그 당시 호수를 발견했던 주민들이 터를 잡은 곳이 현재 바졸레가 되었습니다.

 

그 뒤부터 악어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주민들이 악어를 극진히 보살피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5. 인물

부르키나파소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는

보컬리스트이자 드럼 연주자인 셰이크 로(Cheikh Lô)가 있습니다.

 

그는 1955, 부르키나파소의 보보 디올라소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드럼 연주와 노래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1976, 그는 오케스트라 볼타 재즈(Volta Jazz)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으며

부르키나파소의 전통음악은 물론

쿠바와 콩고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습니다.

 

계속해서 레게와 세네갈, 콩고, 잠비아 음악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한 셰이크 로는

코트디부아르와 프랑스 음악가들과의 협업 작업을 통해 파리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1987, 파리에 진출한 셰이크 로는

처음에는 밴드를 결성하여 드러머로 활동하였으며

후에는 기타연주와 작곡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음악작업을 펼쳤습니다.

 

그는 작곡 작업에 열중하면서

아프리카 전통음악에 레게를 접목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본래 아프리카 전통음악이 흥겨운 리듬과 넘치는 에너지가 특징이라고 한다면

셰이크 로의 음악은 좀 더 감성적이며 신성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1995, 세네갈 출신의 음악 프로듀서였던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의 지원을 받아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는데

이 데뷔앨범이 세계적으로 많은 판매고를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음악계에서도 새로운 아프리카의 아티스트가 탄생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도 셰이크 로는 여러 유명한 뮤지션의 음악에 공동작업으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미국으로 활동무대를 확장시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