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금강경 제16장 有로 이루어진 세상은 없다

Buddhastudy 2022. 11. 30. 19:34

 

 

 

實無有法分

-로 이루어진 세상은 없다.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녀인이 무상의 깨달음에 대한 원력을 우려면

마땅히 어느 곳에 마음을 두고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 선녀인이 무상의 깨달음에 대한 원력을 세운다면

마땅히 내가 반드시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부처님의 마음부터 낼지라.

 

그런데 수보리야,

일체중생을 제도한다지만

사실상 중생이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제도할 바가 없느니라.

 

왜 그런가 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에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어

분별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이상 보살이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수보리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사실상 무상의 깨달음에 대해 발원할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문하에서 수행할 적에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법이 있었는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헤아려 보건대

부처님께서 연등불 문하에서 수행하실 적에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법도 없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수보리야.

사실상 여래가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법도 없었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여래가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법이 있었다면

-이는 곧 무상의 깨달음이 아닌 것이 되어

연등불께서 나에게

너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로 불릴 것이다라고 하시며

수기를 내려 주시지 않았을 것이니라.

 

사실상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 없기에

-이는 곧 무상의 깨달음이 존재하는 것이 되어

연등불께서는 나에게

너는 내세에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로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수기를 내려주셨던 것이니라.

 

왜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법이 없는가 하면

여래에게 있어서 모든 법은 곧 자신이 일으키는 뜻(정도)과 같기 때문이니라.

-이처럼 일체 법은 그 자체로 여래이며

그렇기에 깨달아 여래가 될 어떤 특별한 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들이 여래가 무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을 하지만

수보리야,

실제로 여래가 무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어떤 법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무상의 깨달음에는

실체도 없고 허상도 없느니라.

그래서 여래가 설하기를

일체의 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일체의 법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사실상 일체의 법이 아니기에

일체의 법이라 이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비유하여 말하자면

사람의 몸이란 것은 -일체의 법이 불법인 연고로

장대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대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것도

사실은 장대한 몸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대한 몸일 따름이옵니다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보살 역시 그와 같아

만일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니라는 생각에 머무름이 있다면

보시이라 부를 수 없으니라.

 

왜 그런가 하면 수보리야,

실제로는 보살이라 구분 지어 부를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부처가

일체의 법에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다고 설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나는 마땅히 불국토 세계를 장엄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설한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사실상 장엄이 아닌 이름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수행자가 무아의 법에 통달한다면

여래가 진실한 보살이로다라고 말할 것이니라.

 

 

-解義-

흔히 중생들은 세상을 라고 알고 있다.

그런세 사실 세상은 가 아니다.

가 아니면 대관절 뭐란 말인가?

 

세상은 그 구성 성분이 어떻든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존재한다면 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가 아니다.

란 것은 존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중생이란 별것이 아니다.

세상을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생이다.

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피조물이 되면서 중생이 되고 만다.

 

부처란 것도 별것이 아니다.

세상을 로 보지 않기에 부처이다.

세상이 가 아니기에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불변한다.

 

이처럼 부처와 중생은

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 말이 궤변처럼 들리겠자만 사실이 그렇다.

아마 혹자는 눈앞에 짚이는 아무 것이나 들고

그럼 이건 가 아니고 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형상 있는 모든 것들이 처럼 보이는 유력의 일종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건 도 아닌 그저 정보의 일종일 따름이다.

정보 역시 의 부류에 속하는 게 아니냐고

또다시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계속해서 에 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건

그만큼 분별의 힘이 큰 까닭이다.

 

란 것은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길고 짧은 것이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는 공존이며

이것을 공이라고 부른다.

 

공의 인연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다.

그래서 란 것은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있지 않은 환유이다.

 

를 환유로 보지 않으면 피조물에 갇히고 만다.

로 보이면 중생 구제의 길은 없다.

깨달음의 길도 없다.

가 환유로 보이고 나아가 공으로 보일 때

비로소 깨달음의 길이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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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바람에 물 위의 달 부서지고

깜짝 놀라 몸을 던져 건져내려 하누나.

달은 본래 존재 않는 이거늘

중생들은 물결 보며 고뇌에 싸여 있네.

달이여, 너는 實虛로 못 나누나니

지금 앉은 자리가 곧 열반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