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2)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참사에 슬퍼하는 것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Buddhastudy 2022. 11. 30. 19:37

 

 

제 생명이 소중하듯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반면 세상은 너무나 참혹한 것 같습니다.

중국의 대약진운동,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

인류 역사상 의도적인 학살이나 재난에 가까운 사고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150개의 반짝거리는 빛이 허무하게 증발했다는 것에 너무 상실감이 큽니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허무하고 참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스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중심을 잡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이것이 부처님의 말씀이고

'죽을 때가 되거든 거부하지 말고 죽음을 편안히 기꺼이 받아들여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그래서 '오는 거 막지 말고 가는 거 잡지 마라' 이 얘기에요.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에 들어가고

살인 행위도 그래요.

 

생존이 희박한데도 병원에 몇 년씩 놔놓는 것은

죽어가는 생명을 억지로 잡아놓는 거예요.

그것이 생명 존중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모든 생명은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거예요.

그것은 마치 저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과 같은 거예요.

하나하나를 보면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생긴다' '사라진다' 할 것도 없어요.

그냥 파도가 출렁거릴 뿐이에요.

 

1억 년 전, 고생대 말기에 이 세계를 지배하던 공룡들이

기후변화로 인해서 순식간에 전멸했어요.

참혹하다면 그보다 더 참혹한 일이 어딨겠어요.

 

3만 년 전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인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이

이 지구상에서 종자까지 사라져 버렸어요.

그것이 기후변화 때문이든 현생 인류 때문이든

그것보다 더 참혹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은 지금부터 500년 전에 이미 5천만 명이었어요.

그때 우리 인구가 5백만도 안됐는데 지금 5천만 명이 됐잖아요.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도 우리처럼 됐다면 5억이 되고 10억이 돼야 하는데

거꾸로 더 줄어서 500만 명도 안 돼요.

그럼 얼마나 많이 학살을 했느냐 이런 얘기에요.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6천만 명이 죽었습니다.

유럽인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6천만 명이나 죽었어요.

2차 세계대전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은 나라가 어디일까요?

러시아입니다.

러시아인의 희생에 의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된 거예요.

이것이 인류 역사라는 거예요.

 

수나라가 고구려에 침입해 와서 백만 대군이 몰살했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고구려 사람들이 수나라 사람을 몇 명 죽였다는 거예요?

100만 명을 죽였다는 거 아니에요.

이게 인간의 역사에요.

 

 

 

++++ 죽은 이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어떻게 원인을 규명해서 재발 방지를 할 것이냐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분노하고 슬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분노하면 보복을 하게 되고

방치하면 재난을 되풀이하게 된다.

 

이런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냐.

 

2차 세계대전 후 60년 이상 평화가 유지된 것은

그만큼 죽고 전쟁이 끝나니까 다들 정신을 차린 거예요.

프랑스는 독일을 용서 못 하고

독일은 프랑스를 용서 못 하고, 영국을 용서 못 하고.

 

그렇게 원한이 맺힌 우리 중국과 일본 같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죽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도권은 이미 미국과 소비에트가 가져가 버린 거예요.

자기들끼리 싸우고 피해도 자기들만 본 거죠.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있나!' 이렇게 해서 정신을 차리고

독일은 과거 잘못을 사과하고

다른 나라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힘을 합해서

오늘날에 유럽의 평화를 만들어 냈잖습니까.

 

그러면 그 희생이 이제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죠.

그걸 되풀이하면 '무고한 죽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죠.

 

과거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있었고 세월호 참사도 있었으면

정신 좀 차려서

사회 전체가 성장만 따지지 말고

정부도 안전을 위한 대책을 세워서

이런 일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가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하지,

죽고 난 뒤에 가슴만 아파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가슴이 아프지만

이런 아픔을 두 번 세 번 겪지 않으려면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죠.

 

 

 

++++안전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개혁이 중요

 

우리가 지금 기후 위기에 봉착하면

70억 인구 중에 2030억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근데 지금 우리가 2030억을 죽일 수도 있는 과(대량)소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면서

그런 불행이 먼저 닥친 아프리카 등지에서

식량 부족으로 수없이 죽어도 외면하고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강아지 옷 해 입히는 데는 더 신경 쓰고

강아지 음식값이 몇십만 원 하는 과소비는 하니까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가 다 가해자라는 거예요.

 

우리가 조금 더 생명을 정말 존중한다면

호랑이가 우리 할머니를 물어 죽였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할머니 물어 죽이는 것을 방지하는 데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에요.

 

이런 것을 방치해도 안 되고

거기에 매몰돼서도 안 돼요.

 

세월호 때 우리가 정신 좀 차렸으면 이런 것은 막을 수 있죠.

이런 식으로 가면 안전에 대한 어떤 사회적인, 제도적인 개혁은 안 일어나고

책임 전가만 하고 그걸 이용하는 권력자의 하수인 노릇만 자꾸 하게 돼요.

 

 

 

++++이러한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첫째는 진상규명을 해야 하고

두 번째는 보복하기 위해서나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책임자에 대한 징계를 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관점에서 우리가 일을 해야 합니다.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경찰이나 검찰이 하는 진상규명을 지켜보고

그게 제대로 안 되면 국정조사를 해야 하고

또 그게 제대로 안 되면 이제 시민이 나서서 진상규명 하도록 해야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지켜보고

필요하면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성질내고 울부짖고 막 세상을 바꿀 듯이 하다가

제풀에 꺾여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금 있다가 다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잖아요.

 

그러니 슬퍼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인류의 전 역사를 보면 이런 일은 늘 있어 온 일이에요.

 

그래서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