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87회 받기만 바라는 성격으로 인한 대인관계의 고통

Buddhastudy 2012. 12. 5. 05:38
출처 YouTube

 

. 나름대로 힘이 들어서 많은 얘기를 잘 해 주셨어요. 내가 그것을 문제 삼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문제 아닌 게 없어요. 나도 문제고 어머니도 문제고 할머니도 문제고 딸도 문제고. 그런데 앞에 본인 스스로 얘기하기를 스님께 막상 질문하려고 하니까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더라. 이런 얘기 했잖아요. 그게 사실이에요. 문제를 안 삼으면 아무 문제도 없고 문제로 삼으면 털끝만 한 것도 다 문제가 돼요.

 

그러니까 이 세상이 문제가 있어서 내가 문제로 삼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은 본래 아무 문제도 없다. 다만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문제가 있고 문제를 안 삼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 쪽지에 적어 와서 줄줄이 얘기하는 거는 문제 삼았을 때의 얘기고. 막상 질문하려니까 또 아무 문제가 없는 거 같은 거는 문제를 안 삼을 때의 상태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본인이 문제를 삼아서 문제를 많이 만들고. 또 그 문제를 부지런히 해결하고. 이렇게 사는 게 좋겠느냐? 아예 문제를 안 삼아서 해결할 것도 없이 사는 게 좋겠냐?

 

그렇죠. 담배를 피워서 중독을 들여놓고 열심히 목숨 걸고 담배를 끊는 게 좋겠느냐? 담배를 처음부터 안 피우면 끊을 것도 없다. 이 말이오. 그것처럼 인생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이미 문제로 삼아놓고 열심히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문제를 안 삼아서 아무것도 해결할 것도 없는 길이 있다. 문제로 삼아서 부지런히 해결하는 것은 잠자다가 악몽을 꾸고 그 꿈속에서 쫓겨 다니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과 같고. 문제를 안 삼아서 아무 해결할 일도 없는 사람은 눈을 번~쩍 뜨니까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기에 아우성칠 일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한 생각 사로잡히면 온갖 것이 다 문제가 되고 한 생각 놔 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다. 한 생각 일으키면 만 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 사라지니 만 가지 법이 사라지네. 이게 원효대사께서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토하다가 깨치고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거야. 한 생각이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지네. 오늘 본인이 그대로 지금 보여주고 있다. 으음. 한 생각 내려놓으니까 문제를 안 삼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가 또 종이쪽지 꺼내서 읽어서 문제 삼는 버릇으로 들어가니 온갖 문제가 있다. 이 말이오. 한 번 보세요.

 

할머니도 그래도 아들딸 낳고 살았어요? 안 살았어요? 엄마도 아들딸 놓고 살았어요? 안 살았어요? 나도 지금 애 낳고 살죠? 그러면 내 딸도 아무튼 내 닮아도 잘 살까? 못살까? 그러니까 아무 문제도 없어. 공부를 그 성격에 공부를 잘해서 뭐 좀 더 높이 올라갔으면 여러 사람 괴롭혔을 거에요. 그러니까 안 올라간 게 다행이지. 안 그래도 남편한테 잘난 척하는데 더 자기가 학벌이 좋거나 지위가 높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하면 얼마나 꼴불견이었을까? 그나마 그 정도라서 그래도 봐줄 만한 거 아닐까? 잘된 거야.

 

그 어머니가 낳아놓고 할머니한테 맡겨놓고 키우지도 않았으니까 어머니한테 감사한 마음이 안 들지 뭐. 그것도 정상이에요. 키워주지도 않았는데 고마울 게 뭐가 있어. 할머니한테 고맙다고 자꾸 절을 하세요. 할머니한테. 그러니까 본인의 몸은 절반은 어머니를 닮았는데 본인의 심성은 할머니를 닮았거든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키웠기 때문에. 할머니가 본인에게서는 엄마예요. 그러니까 생모하고 본인은 사실은 형제간이에요. 그러니까 비슷하죠.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랐으니까.

 

그러니까 엄마라고 하는 것은 기른 자가 엄마거든요. 나를 길러준 사람이 엄마란 말이오. 그것이 촌수로 따져서 할머니가 되든지 어머니가 되든지 이모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유머가 되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를 기른 자가 뭐라고? 엄마다. 이거요. 기른 자가 엄마다. 그러니까 기른 자가 엄마니까 엄마에게 감사기도를 해야죠. 그게 할머니다. 현재 생모다. 이런 거 따지지 말고 그냥 어머니께서 나를 낳아주시고 나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 돼.

 

그러니까 옛날에 애들이 할머니한테 너무 귀여움을 받으면 버릇이 없다. 이렇게 말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엄마가 주로 키우고 엄마한테 야단도 맞고, 그래서 마음의 상처도 조금 있을 때 할머니가 가서 야단도 안치고 무조건 보살펴 주면 그게 상처가 치유되는 효과가 있단 말이오. 그러고 또 할머니하고 오래 같이 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버릇, 버릇이라는 것은 습관화되는 거 아니오. 그죠? 습관화는 되지 않는단 말이오. 버릇이 나쁘더라도 또 엄마한테 야단맞으면 금방 고쳐지기 때문에.

 

그런데 본인은 할머니한테 오랫동안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러니까 무조건 야단 안치고 손주 귀여워하는 그것만 받았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의 세계, 뇌리 속에는 그것으로 가득 차있다. 프로그램이 그것으로 깔려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본인이 지금 그것을 고치려고 한다 해도 잘 안 돼요. 생각을 하면 조금 주위를 주면 고쳐지는데, 고쳐지는 것 같지만은 방심을 하면 저절로 자기 어릴 때 습관대로 가버린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이기주의인지 아니지도 내가 잘 몰라요. 남이 나를 보고 이기주의라고 하니까 이기주의인가 보다 하는 거지.

 

또 누가 나를 보살펴주면 즉, 상대가 먼저 다가오면 내가 나도 좋아지는 반면에 다가오는 것이 너무 강하면 또 속박을 받잖아요. 그것은 본인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누가 나를 좋아하는 게 강도가 조금 세면 속박으로 느껴지고. 또 강도가 약하면 외면으로 느껴지거든요. 그것은 본인이 조금 심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실험을 해보면 알아요.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안 주면 외로워지고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주면 좋아지다가 그 관심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어때요? 귀찮아져요.

 

그래서 외면에서 제일 한쪽으로 치우쳐진 게 혼자 있는 거거든요. 여러 사람 있어도 아무도 나를 안 찾으면 내가 혼자 있잖아. 그죠? 혼자 있으면 외롭죠. 귀찮아지는 것은 딱 붙어있는 사람이거든요. 남편이나 애들이나 너무 딱 붙어있으면 좀 귀찮을 때가 있잖아. 그죠? 애들도 너무 품에 안기면 부모도 어떡해? “아이고 저리 좀 가거라.” 이렇게 밀어내지 않습니까? 그죠? 귀찮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 갖는 기본적인 속성이에요. 그러니까 내 뜻대로 하려는 거요. 그게.

 

너무 가까이 오지도 말고 너무 멀리도 가지 말고 적당한 거리에 있다가 오라 그러면 금방 오고, 가라 그러면 또 적당한 거리에 가가 있고 이게 모든 사람의 속성이에요. 그래서 가까이 오면 귀찮고 멀리 가면 외롭고. 그래서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고. 그래서 여러분들 같이 살면 좀 떨어져 살고 싶고, 하루만 떨어져도 또 어때요? 같이 살고 싶고, 같이 있으면 또 귀찮아지고. 그래서 왔다갔다 왔다 갔다 하는 게 방황이란 말이오. 그건 누구나 다 그래요. 본인만 그런 게 아니고.

 

그러니까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사실은 나를 속박한다 하는 것을 알아가지고 남이 나를 좋아한다 하는 거를 너무 좋아하지 마라 이 말이야. 또 누군가가 나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거를 외로워하지 마라 이거야. 그것이 어쩌면 나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저 들에 피는 꽃들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고 누가 봐주지 않아도 꽃이 잘 핀다. 이런 얘기요. 아이고 예쁘다 해도 피고, 아무도 안쳐다 본 날은 고개 푹 숙이고 안 피고, 이런 게 아니다. 이 말이오. 예쁘다고 하든 예쁘다고 하지 않든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에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든 안다가오든 그건 그들의 마음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일은 그들에게 맡겨라. 내가 관여하지 마라. 그래서 조금 지나치게 가까이 온다 할 때는 나에게 오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 사람이 와 주니 고맙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나한테 가까이 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전에 너무 가까이 와서 내가 귀찮을 때를 생각해서 아이고 가까이 오지 않으니까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된다.

 

, 혼자 살 때는 혼자 사는 기쁨을 만끽하고. 같이 살 때는 같이 사는 좋음을 만끽해야 된다. 젊을 때는 젊음을 만끽하고 늙으면 늙음을 만끽해야 된다. 봄에는 예쁜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는 게 좋고,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이 좋고, 가을에는 잘 물든 낙엽이 좋다. 이렇게 처지에 맞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지 늘 늙어서는 젊을 때 생각하고. 즉 나이를 자꾸 줄이려고 그러고. 젊을 때는 자꾸 나이를 올려가지고 지가 더 많다 그러고. 이런 것들이 다 어리석은 일이다.

 

어릴 때는 자꾸 어른 흉내를 내고 늙어서는 자꾸 젊은이의 흉내를 내고. 그러려면 고달프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본인이 지금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을 조금 알잖아. 그죠? 여기에 스님이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가만 들어보니까 성격적인 결함을 본인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성격적 결함을 알고 내가 한계가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알고 겸손하게 살아가면 된다.

 

또 이 중에 몇 가지는 좀 고쳐야 되겠다. 이걸 안 고치니까 누가 힘들다? 내가 힘드니까 내가 몇 개를 고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고치면 되요. 그런데 더 근본적으로는 문제를 안 삼으면 문제가 없다. 남이 이기적이다하고 지적을 받으면 감사합니다하고 지적받은걸 탁 놔버리면 되겠죠. 미리 지적 안 받으려고 다 고치려고 하지 말고. 나는 잘 모르니까 내 생긴 대로 살다가 지적을 하면 반발을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하고 그 부분을 고치면 돼. 그러면 특별히 애 안 쓰고도 그냥 생긴 대로도 살 수 있다. 이 말이오.

 

이런 분들은 자기가 뭐가 문제인지를 전혀 모르면 스님이 야단을 쳐서라도 자기가 무슨 문제인지를 알도록 해줘야 되는데, 자기의 성장과정으로 인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성격적인 결함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런데 그것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옛날부터 말해온 게 있잖아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현재 본인이 아주 독한마음을 먹고 정진을 하거나 아니면 그거 안 고치면 죽을 정도가 되면 이게 고쳐지는데. 지금 이 사람 말하는 그런 삶의 형편으로는 문제를 자각하는 수준만 해도 된 거지 고친다는 거는 현실적으로 조금 어렵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주 다급해야 고쳐지지 평상시에 그거 고친다는 건 잘 안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거는 포기하는 게 낫다. 그러니까 그 정도는 짊어지고 살아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으니까 그냥 자기가 알고 살아라. 그런데 나는 성격적이 결함이 있다.’ 라고 너무 문제로 삼아버리면 자기비하라든지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럼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스님이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없으니까 문제로 삼지 않는 공부를 해라. 그런데 그것도 본인이 어느 정도 알아서 오네요. 그러니까 잘 된 거요.

 

항상 문제가 많~ 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까?’ 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길도 있고, 문제로 삼는 그 마음을 내려놔 버리므로 해서 문제 자체가 아님을 알아버리면 노력할 바도 없어진다. 이게 꿈 깨는 소식이오. 문제로 삼은 것을 계속 연구해보면 나중에 문제랄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이게 제법이 공함을 깨치는 거요. 이게 다 마음이 짓는 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습관이 고쳐지는 게 아니고 문제 삼는 마음이 놓여놔 버려야 된다. 그래서 문제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이런 얘기요.

 

지금 날씨가 자꾸 변덕이다. 이러는데 크게 보면 추웠다 더웠다 추웠다 더웠다 또는 추위가 조금 늦게까지 남아 있는다. 이런 차이가 있지 봄이 오는 거는 막을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응달에 있는 잔설이 4월 초까지 남았나? 4월 중순까지 남았나? 4월 말까지 남았나? 이런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마는 어차피 녹을 눈이다. 그러니 크게 봐버리면 문제 삼을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공부라는 것은 그 눈을 갖다가 하나하나 다 곡괭이로 깎고 삽으로 퍼내서 쪼개가지고 갖다 버리는 이런 공부방법도 있고, 그냥 내버려 두고 어차피 퍼내도 그냥 놔둬도 얼마 있으면 똑같이 없어진다.

 

한 달만 있으면 똑같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된다. 그런데 이제 그러면 손댈 게 없느냐? 그게 아니에요. 눈이 쌓여있는 그 곳을 특별히 쓸모가 없으면 공연히 퍼낼 필요 없고 놔두면 되고, 거기에 급하게 어떤 일을 해야 된다. 곡식을 심어야 된다 하면 어차피 녹을 눈이라도 힘들여서 파내야 되요? 안 파내야 되요? 파내야 되요. 내가 가진 성격적인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때 나같이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일 때 뭐 산속에서 혼자 사는데 그런 거 안 고쳐도 별로 남한테 피해도 안가고 그럴 때는 그거 고치려고 괜히 애쓸 거 없다.

 

내버려 두면 된다 이거야. 그러나 그런 성격적인 문제가 부부지간이나 자식한테나 심각한 갈등의 요인이 돼서 그것의 과보가 아주 커지겠다 할 때는 어때요? 고쳐야 되겠죠. 다급하면 다 고치게 되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뭐 별로 다급할 일도 없는데 스님 봐서 무슨 원이 있어서 그것을 죽기 살기로 고치려고 하겠냐? 그래서 제가 어머니도 잘살았고 할머니도 잘 살았고 자기도 잘살고 있고 그리고 애도 잘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런 얘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