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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브루나이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2. 22. 19:50

 

 

 

1. 소개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russalam)

약칭 브루나이는 동남아 보르네오섬의 북서 연안에 있는 술탄국로

수도는 반다르 스리 브가완(Bandar seri begawan)입니다.

 

브루나이의 국기는 노란색 배경에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하양과 검정색의 사선이 대각선으로 뻗어 있으며

중앙에는 붉은색의 국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노란색 배경은 국왕(Sultan)

하양과 검정색은 각각 장관격인 대신을 의미합니다.

중앙에 위치한 국장은 1959년에 추가되었는데

이슬람교의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브루나이는 남중국해와 맞닿아있는 해안 지역을 제외하고

말레이시아의 사라왁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사라왁주에 의해 동서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브루나이의 국토면적은 약 5,770km²로 세계 169위이며

이는 경기도 면적의 절반 정도 수준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437천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는 세계 174위로

경기도 김포시 인구와 비슷합니다.

 

브루나이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1245천달러로 세계 136위이나

1인당 GDP28천달러로 세계 32위입니다.

 

브루나이의 공용어는 바하사 믈라유(Bahasa Melayu)어이지만

브루나이에서 사용하는 말레이어는

표준 말레이어와는 크게 다르며

실생활에서는 말레이어와 함께 영어가 많이 쓰입니다.

 

인구의 약 65%가 브루나이인이며

그 외 중국인이나 토착민이 소수 존재합니다.

 

브루나이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이슬람 왕국으로 불리기도 하며

중국인과 기타 이민자들은

불교와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대문헌에 의하면 7~8세기경

브루나이 강 유역에 말레이인이 세운 왕국이 존재하였으나

9세기에는 말레이지역에서 번영하던

스리위자야 왕국에 복속되었고

14세기에는 마자파히트 제국에 복속되었습니다.

 

15세기에 독립적인 교역국이 된 브루나이는

말라카왕국과의 활발한 교역으로인해 이슬람교를 받아들였고

16세기 9대 술탄인 하싼(Hassan)의 집권 시기에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 위세가 보르네오섬 전체와 필리핀의 마닐라 일대를

지배했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싼 술탄이 사망한 후에 브루나이는

왕위 계승 다툼이 치열해졌고

외부적으로는 에스파냐의 공격을 받아

점차적으로 국력이 약해졌습니다.

 

1578년 스페인은 브루나이의 무역거점이었던 마닐라를 점령했으며

곧바로 브루나이를 공격해 들어와

보르네오섬 남쪽지역을 빼앗았습니다.

 

17세기 중반 포르투갈과 동맹하여

스페인을 몰아내는데 성공하긴 하였으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럽열강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초, 영국은 싱가포르, 말라카, 페낭을 점령하였고

네덜란드는 자카르타를, 스페인은 필리핀을 점령하여

동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이

유럽열강의 손에 넘어간 상태였습니다.

 

1839년 영국인 탐험가였던 제임스 브룩(James Brooke)

당시 인근 바다에서 활개를 치고 있던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자연스럽게 보르네오섬에 입성했고

그의 조카인 찰스 브룩과 함께 백인왕인

라자(White Raja)'로서 사라와크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847년 브루나이는 영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하였고

사바와 사라와크 등 영토의 대부분을

영국에 할양하여 소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1888년 영국은 브루나이, 사바, 사라와크를 보호령으로 만들며,

1906년에는 영국총독부가 설치되어

모든 행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2차 대전 도중이던 1941년부터 45년까지

일본군에게 잠시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이후 다시 영국이 지배권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유럽의 식민지들이

하나둘씩 독립을 하기 시작했고

브루나이에서도 독립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1959년 영국은 브루나이의 자치권을 인정하였고

3년 뒤인 1962년에는

브루나이에서 최초의 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그 사이 브루나이를 말레이연방에

합병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브루나이인민당의 반란으로 인해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1971년 영국은 브루나이의 외교만을 관장하는 내정자치를 펼쳤고

19841, 최종적으로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가장 늦게 독립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브루나이는 독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제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절대군주인 국왕은 브루나이의 국가수반으로

브루나이에서는 국왕의 권력이 가장 막강하여

국왕을 견제할 수 있는 법과 장치는 거의 전무해

사실상 독재체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왕은 브루나이군의 최고통수권자이면서

13명의 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의 총리이기도 하며

국방장관과 외교장관, 재무장관직을 모두 겸임합니다.

 

브루나이의 의회는 단원제로 20059,

국왕이 임명한 29명의 입법부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62년 최초로 실시된 총선에서

브루나이인민당이 의석의 98%를 차지하며 승리를 거두었으나

곧바로 술탄은 모든 정당을 불법화시켜버렸습니다.

 

1980년대 들어 다시 정당들이 생겨나기도 하였으나

1988년 이래로 현재까지 브루나이 정부는

모든 정당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브루나이의 국왕은

1984년 독립과 동시에 정식국왕에 올라

37년째 재위 중인 29대 술탄 하사날 볼키아 국왕입니다.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인데요.

경기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작은 국토에

그마저도 85%가 숲과 삼림지대인 브루나이가

이렇게 경제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29년 발견된 대규모 석유자원 덕분입니다.

 

브루나이의 1일 석유생산량은 약 13만 배럴로

동남아시아 원유생산국 중에서는 세 번째로 많습니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아시아 최초로

액화천연가스 LNG를 수출하기 시작해

현재 동남아에서 역시 세 번째로 많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브루나이의 산업구조는 97% 가량이 석유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브루나이의 석유산업은 다국적기업인 쉘(Shell)

브루나이 정부의 공동투자로

1977년부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유가폭등으로 엄청난 양의 외화를 벌어들인 브루나이는

국민들에게 풍족한 복지혜택을 베풀었습니다.

무상교육은 물론 한화로 약 800원만 내면

모든 의료지원을 추가 비용 없이 받을 수 있으며

30만 원이면 축구장만한 수상가옥을 평생 임대할 수 있습니다.

 

브루나이 국민들은 세금을 낼 필요도 없으며

60세 이상이 되면 누구나

매달 150달러씩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루나이는 최근 경기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에서 에너지자원 수출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경제구조 때문에

세계 유가에 크게 흔들리는 취약점이 있어

실제로 2009년 중반 이후부터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브루나이는

경제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브루나이는 보르네오섬 북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사라와크의 림방(Limbang) 지역 때문에

브루나이는 동서로 양분되어 있는데요.

 

인구의 97% 가량이 서부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서부 브루나이에는 수도인 반다르 스리 브가완과

오일타운인 스리아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이 위치합니다.

 

브루나이의 국토 대부분은

해발고도 500m가 넘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남아의 아마존이라 불릴 정도로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입니다.

연평균 최고기온은 34도 내외이며

최저기온은 26도로 매우 무더운 편입니다.

또한 연평균 강우량이 3,000mm에 달하는 정도로 비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1년 내내 높은 수준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이슬람교리를 생활에서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주류 유통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공공장소에서의 집회나 공연 등도 통제됩니다.

타종교의 선교행위 역시 철저하게 금지되며

외국인 선교사는 무조건 국외로 추방됩니다.

 

이슬람교와 왕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브루나이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루나이는

국제인권단체들에게는 악명이 높은

인권탄압국 중 하나입니다.

 

반다르 스리 브가완 국제공항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엠파이어 호텔은

브루나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호텔 중 하나입니다.

 

2000년 브루나이를 방문한 국빈을 위해 만들어진 호텔이지만

후에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는데요.

이 호텔이 지어질 당시만 하더라도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 호텔과 더불어

전 세계에 딱 2곳밖에 없는 7성급 호텔이었습니다.

 

순금 장식과 천연대리석으로 장식한 실내는

호화로운 왕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고

바닥부터 7층까지 하나로 트인 통유리창을 통해

멋진 오션뷰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극동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이라는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와

1년에 딱 3일만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술탄의 궁전

600년 브루나이 왕조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왕립박물관 등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들도 많습니다.

 

 

5. 인물

브루나이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국제적인 엔터테이너로 상하이, 대만에서 주로 활동하는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오존(Wu Chun)이 있습니다.

 

1979년 브루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2006년 대만의 4인조 남성아이돌 그룹인

비륜해의 멤버로 데뷔하여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대만에서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

오존은 브루나이의 귀공자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의 잘생긴 인물이었는데요.

 

브루나이에서는 농구 국가대표선수로도 활약했고

헬스 비즈니스 기업가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존은 가수활동 뿐 아니라 대만과 상하이 등에서

종극일반’ ‘공중소매’ ‘화양소년소녀

여러 청춘드라마에 출연하며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그러다 돌연 2011년 그룹에서 탈퇴하고 잠적했던 오존은

2013년 숨겨왔던 딸과 아내의 존재를

대중에게 공개했는데요.

이후 오존은 딸과 함께

중국판 슈퍼맨이 돌아왔다’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다시 활발한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예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존은 여러 자선사업이나 환경보호사업 등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오고 있어

브루나이 내에서도 매우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고

공식적으로 임명되지는 않았으나

중화권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브루나이의 민간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