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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사우디아라비아 10분 완벽 정리

Buddhastudy 2022. 12. 29. 19:59

 

 

 

1. 소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Kingdom of Saudi Arabia)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랍국가로 수도는 리야드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는

1973년에 공식 제정되었으며

초록색 바탕에 흰색으로 아랍어 문구와 칼이 그려져 있습니다.

국기에 새겨진 아랍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의 1절이 쓰여 있는데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는 뜻입니다.

아랍어 문구 아래 칼은

이븐 사우드로 알려져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초대국왕인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북쪽으로 요르단, 이라크와 접하며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만의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남쪽으로는 오만, 예멘과 접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토면적은

2,150,000km²로 세계 12위이며

아시아에서는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에 이어

4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3,48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41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약 70% 정도의 수준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년 총 GDP

2019년 기준 약 7,800억 달러로 세계 18위이며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스위스, 터키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영국의 보호국이었던 시기의 영향으로 영어도 널리 쓰입니다.

 

전체 인구의 90%가 아랍인이며

아프리카계 주민이 약 10%를 차지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발상지로서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입니다.

 

여러 아랍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 국가로

이슬람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활동은

실질적으로는 통제되고 있습니다.

 

 

2. 역사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치한 지역은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으로 통일된 국가가 성립되지 못했고

사막의 여러 오아시스에서 많은 부족이 산재한 상태였습니다.

 

이들 부족들은 홍해 연안의 메카지방과 리야드지방을 중심으로

양분되어 서로 견제하고 있었는데요.

대략 570년 무렵 무함마드가 태어났고

그 이후 황량했던 이 지역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무함마드는 여러 종교와 부족이 난립하던 남아시아 지역에 이슬람교를 일으켰고

그 이후로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를 거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성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스만제국의 통치를 받은 시기도 있었으나

사막이 대부분이었던 탓에

종교의 중심지인 메카나 메디나를 제외하면 천대를 받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렇게 오스만제국의 느슨한 통치를 받고 있던 시기

이븐 사우드로 불리는 리야드 출신의 압둘 아지즈가

곳곳의 토후국들을 통일하면서

1902년 최초의 통일군주국인 네지드 술탄국을 건국했습니다.

 

한편 비슷한 시기, 하심 가문의 후세인은

메카와 메디나를 거점으로 한 헤자즈 왕국을 세웠는데요

압둘 아지즈는 여세를 몰아 활발하게 영토확장을 펼쳤고

1932년에는 헤자즈 왕국을 통합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 초대 국왕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뒤 6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가 발견되었고

1933년 사우디 최대의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를 세웠습니다.

 

압둘 아지즈왕은 1953년에 사망하며, 장남이었던 사우드가 뒤를 이었습니다.

석유의 발견으로 사우디의 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아지즈의 사후

정치계에서는 보수파와 혁신파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져 갔습니다.

 

결국 1964년 왕족회의의 결정으로 사우드왕은 왕위에서 물러났고

뒤를 이어 왕에 오른 3대왕 파이잘 국왕은

친미노선을 기반으로 하는 진보적 보수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파이잘 국왕은

이집트와의 관계 개선과 더불어 중동지역의 석유전략을 주도하면서

아랍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나

1975, 정신병을 앓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드 왕자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 왕국을 보호할 군대를 요청했습니다.

이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다국적군대와 아랍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외국 군대의 주둔을 통해 친서방 노선을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사우디아라비아는 정교 혼합의 전제군주제로서

국왕은 국가수반임과 동시에 종교의 수장이며

입법, 사법, 행정 등 각 방면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의 국왕이

정무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행정수반인 수상을 따로 두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왕정 절대주의에 따라

왕이 임명한 자문기구와 의회는 존재하나

따로 수상을 임명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장관은 국왕의 형제나 조카 등

직계왕족만이 임명되며, 국회의원 선거도 없습니다.

 

국왕의 자문위원회는

4년마다 국왕이 지명하는 15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나

실질적인 정치적 기구로서의 기능은 없습니다.

 

군수권을 포함한 모든 실권은

왕과 왕족회의가 장악하고 있으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은

20151월에 즉위한 살만(Salman) 국왕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걸프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과

협력과 안보를 강화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석유 및 천연자원의 채굴과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하기 힘들었으나

그나마 좁은 지역에서 밀과 보리, 토마토 등을 재배하며

양 목축이 활발한 편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약 16%를 차지하며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특히, 1일 생산량은 약 1,000만 배럴에 달해

세계 최대의 석유수출국이기도 합니다.

 

OPEC의 맹주로서 세계 석유생산량과

가격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막대한 오일머니를 세계 각국에 투자하거나 운용하고 있습니다.

 

석유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천연가스 매장량도 상당한 편이며

그 밖에 보크사이트, 구리, 철광석 등 지하자원도 풍부합니다.

 

하지만, 에너지수출 이외에 국내에서 자급하는 산업이 거의 없고

식량과 자동차, IT관련 제품 등

대부분의 재화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노동자의 80% 가량이 외국인이라는 것도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의 취약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만 국왕은 2016년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사우디 비전 2030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전까지는 비밀에 부쳤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 기업을 공개하여

투자자금을 마련하고 해외투자 확보를 유도하며

신산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인 아라비아반도의 80%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13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헤자즈 산맥이 뻗어있습니다.

 

중앙부의 고원과 연결된 지역에는 허무의 사막이라 불리는 룹알할리 대사막이 펼쳐져 있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은 모래나 자갈로 덮여 있는 사막지대로

모래폭풍과 먼지 폭풍이 자주 발생합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사막기후로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집니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45도를 웃돌 정도로 매우 무더운 편이나

겨울의 평균온도는 영하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사막이 많은 까닭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동식물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나마 단맛으로 유명한 대추야자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생나무 중 하나이며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은 낙타라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는

거의 모두 이슬람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모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기 때문인데요.

매년 약 천만 명의 순례객들이 메카와 메디나를 찾고 있으며

매일 하루에 5번씩 이슬람교도들은 전국에 퍼진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에 참여해야 합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종파는

수니파 중에서도 원시 이슬람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와하브파에 속하는데

이 종파는 사우디아라비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계율이 엄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종교적 율법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술을 판매하거나 마실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판매, 고리대금업, 매춘행위 등이 금지되며

요란한 음악이나 영화 등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인 라마단 기간은

1달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 모든 음식과 음료 섭취를 금지하고

단식과 금욕을 통해 신앙을 공고히 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태어난 직후부터 남녀구별이 엄격하며

초등학교 때부터 남녀공학이 한 곳도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에 대한 제약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로

여성의 운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외출 시에는 검은색 외출복을 입어야 합니다.

남녀가 함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없으며

공공장소에서도 남녀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019년 이전까지 관광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여행이 불가능한 국가였습니다.

 

20199월부터 대한민국을 포함한 49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관광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하였으나

이 비자로는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은 불가능하며

엄격한 규제사항을 지켜야 합니다.

 

하루에 5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가 발달하기 힘들었고

대신에 축구와 농구와 같은 시간이 정해진 스포츠들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사우디의 프로축구리그는 인프라가 매우 좋은 편으로 유명합니다.

 

 

5. 인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드왕가의 일원인

알 왈리드 빈 탈랄(Al-Waleed bin Tala)

세계에서 8번째, 아랍에서는 가장 재산이 많은 기업가이자 투자자입니다.

 

사막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는 그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 초대국왕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독립 레바논의 초대총리를 지낸 리아드 솔의 딸이었습니다.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 혼란스러운 레바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왈리드는

리야드에 있는 압둘 아지즈 왕립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의 멘로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왕족이라는 배경과 어마어마한 인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그 유명세가 높습니다.

1980. 아버지로부터 받은 3만 달러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투자회사 킹덤홀딩컴퍼니의 회장으로

타임워너, 이베이, 트위터, 애플, 시티그룹 등

세계 최대기업들로 투자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습니다.

 

왈리드는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전략을 구사하는데

다른 기관투자자들과는 달리

엄청난 금액의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덕분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큰 성공을 거둔 왈리드는

시티 코퍼레이션 투자성공을 통해

국제주식시장에서도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하루 15시간을 일하는 일벌레로도 유명하며

영어,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능력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2015년에는 자신의 재산 320억달러를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의 중심에 서는 등

사우디 왕족 출신의 사업가, 억만장자로서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