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99회 대학 4학년 자식과 어떻게 하면 소통할 수 있을까요

Buddhastudy 2012. 12. 13. 04:31
출처 YouTube

 

. 좋은 질문해 주셨습니다. 1_내 필요에 의해서 아이에게 뭔가를 요구하는지. 아이의 필요에 의해서 내가 응해주는지. 지금까지 자기 살은 거를 가만히 한번 살펴보십시오. 내가 답답하니까 물어보고. 내가 필요하니까 가자 그러고. 항상 내 필요에 의해서 아이에게 문제를 제기하는지. 아니면 아이가 필요해서 뭔가 나한테 요청을 하기 때문에 대화를 하자든지 어디를 가자든지. 이렇게 요청을 하는지.

 

내 필요에 의해서 지금까지 너무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얘기해 왔기 때문에 아이의 필요에 의해서 잘 안 응했기 때문에 아이가 거기에 대해서 이제는 좀 심하게 말하면 진절머리가 났다. 그럴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거부하는 게 좀 강해졌다. 전에는 할 수 없이 좀 따라다니고 말도 듣고 했는데 이젠 싫다. 이렇게 나이도 들었지마는 그게 너무 상처가 커서 굳어졌어요. 그래서 얘기도 잘 안 하려 그러고, 어디 가자 그래도 잘 안 가려 그러고, 함께 대화도 안 하려 그러고, 그런 게 있어요.

 

그다음에 2_본인이 성격상 남의 얘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내 얘기를 하는 스타일은 아닌가? 특히 아이하고 관계에서. 그런 데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면 내 맘에 안 들면 탁 자르거나, 그러면 안 된다거나 주로 이렇게 많이 하고. 또 내가 필요하면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이런 것들이 이제 아이들에게 쌓여 있기 때문에 아빠하고 대화하기 싫다. 이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원인을 잘 알아야 되요.

 

그래서 본인이 어떤 원인인지를 살펴서 첫째 내가 항상 좀 상대에게 내 요구대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는 아이가 필요에 의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대화를 하자고 할 때 마치 내가 아이에게 뭐 하자 했을 때 아이가 거절하면 섭섭하듯이 아이도 마찬 가지오. 그걸 헤아려서 아이가 뭔가 도움을 요청할 때 내가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기꺼이 그래. 그리해보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너의 의견은 그렇다는 거지. 아빠 생각은 좀 다르니까 며칠 생각해 보겠다.”든지. 거절하더라도 좀 부드럽게. 이렇게 내 스스로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자꾸 대화를 요청하게 된다. 또 내 필요에 의해서 아이에게 얘기하더라도 지금은 상처가 돼 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부드럽게 한다하더라도 과거의 상처가 아이한테는 쌓여있기 때문에 현재의 나의 태도와 관계없이 무조건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참회기도를 해야 된다.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자꾸 참회 기도를 하게 되면 내 까르마. 내 업이 좀 녹게 된다. 변하게 된다. 그럼 자연적 아이가 대화가 좀 쉬워진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죠. 왜냐하면, 두 가지인데, 본인이 애기를 가지고, 애기를 낳고, 애기가 어릴 때 항상 무슨 문제가 있으면 아내하고 의논하고, 부모하고 의논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까? 아니면 그냥 보통 자기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살아왔습니까? 으음. 본인 생각이고. 마누라한테 물어볼 때 남편이 매사에 부부간에 의논해서 했는지 안 했는지. 그다음에 부모에게 물어볼 때 우리 아들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부모하고 상의하면서 했는지. 안 했는지. 이걸 한번 편한 자리에서 한 번 물어보십시오. 애가 그렇다. 그러면 거의 본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따라 배워서 그게 사고의 습관이 돼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지금 나하고 의논해라.” 아이는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당신은 그랬냐?” 이런 반발이 있습니다. 내가 아이가 나와 모든 일을 상의하고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면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생활습관이 부부간에 늘 상의하고 부모하고 상의하고 해가는 그런 가정문화가 있어야 아이도 그렇게 됩니다. 나는 안 그래놓고 넌 그래라.”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특징은 따라 배우기입니다. 그대로 따라서 합니다. 그게 이제 하나고.

 

2_요즘 애들이 인터넷 때문에 대인관계 대화가 잘 안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시절 인연이오. 시절 인연. TV 처음 나왔을 때 애들이 늘 TV 본다고 공부 안 해가지고 당시의 부모들은 그게 큰일이었잖아요. 그전에는 애들이 맨날 찾으면 만화방에 가 있고, 만화 빌려 산더미처럼 재어놓고 보고 있고. 그게 말썽이고. 또 노래를 불러도 옛날에는 할머니세대가 볼 때는 팝송이니 뭐니 무슨 노래 갖지 않는 걸 시끄럽게 떠들고 한다 이랬잖아. 요즘 노랜 또 다르죠. 요즘 우리가 볼 때는 요즘 애들 노래는 노래인지 뭔지 중얼대면서. 이렇게 시대가 자꾸 달라지는 거요. 대화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그러니까 아이들도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지만, 기성세대도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기 관점, 자기 세대의 관점에서만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이게 영어 하고 한국말 해서 서로 얘기하지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처럼, 기독교인하고 불교인하고 만나면 서로 딴 얘기하는 것처럼, 부모자식이 만나도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도 자식을 이해를 못 하고 있다. 그러니까 먼저 내가 자식을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인터넷 보는 거 거기만 빠져있는 게 잘못됐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보기에 잘못됐지 아이는 그것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 나는 어릴 때 걸어도 다녔고, 트럭도 타고 다녔고, 버스도 타고 다녔고, 그러다 어른이 돼서 요즘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탄다. 그런 경험을 다 했기 때문에 좀 어려움이 있으면 자가용을 그만두고 택시를 타거나 택시를 그만두고 버스를 타거나 어지간한 길은 걸어가거나 이게 가능한 거요. 옛날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버스를 좀 타봤거나 아니면 늘 아버지 자가용을 타고 다녔다. 그런 애들은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걸어 다닐 줄도 모르고 버스를 탈 줄 몰라요. 그거밖에 몸에 익힌 게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걸 보고 낭비벽이 심하다. 이렇게 얘기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를 검소하게 키우고 싶으면 여러분들이 경제력이 있더라도 검소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는 가난하게 살면서 아이에게는 꼭 비행기 태우거나 기차 태우고 기차도 좋은 기차 태우거나 승용차 태우거나.

 

이렇게 해서 어릴 때 키우지 않습니까. 아이를 위해서. 그런데 그 아이는 그렇게 의식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외의 다른 세계를 알 수가 없어요. 이것은 다 우리들의 인생에 대해서 무지해서 그래요. 꼭 내가 나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잘한다고 한 일이 결과적으로 나쁜 일이 돼 버리는 거요. 이게 전도몽상이라 그러죠. 그러니까 지금 아들 때문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을 때 지금 내가 답답한 거 아니에요? 지금 아들이 답답해서 나한테 물었어요? 내가 답답해서 물었어요?

 

내가 답답해서 물었죠. 내 문제요. 아들은 그냥 경계에요. 그 아들에 대한 나의 요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답답한 거요. 그러니까 이 답답한 것을 해결하는 첫 번째 길은 애가 18살이 넘었으면 이미 독립된 인생을 가도록 놔둔다.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자기 인생이오. 여기에 이웃으로서 또는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다섯 가지만 어긋나지 않으면 관여를 안 해야 됩니다. 1_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일. 2_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일. 3_성폭행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는 일 4_거짓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일. 5_술을 먹고 취해서 헤매거나 마약에 중독이 되거나.

 

이런 경우가 아니면 성인의 대한 예의로 관여를 하지 말아야 된다. 존중해 줘야 된다. 그래서 실패를 하든 어떻게 하든 그것은 그의 인생이오. 그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줘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식을 위해서 하지만 그것이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자식이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려. 그것이 자식에게는 큰 불행이죠.

 

예를 들어서 스님 같은 사람, 어떻게 보면 부모의 도움을 못 얻었다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부모의 은혜를 엄청나게 입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이 부모의 도움을 엄청나게 입었느냐?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온갖 인생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거야. 부모가 간섭을 안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와서 부모의 간섭을 안 받았어요.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초등학교를 나와서 부모의 도움을 못 받았다. 보호를 못 받았다. 이래 말할 수도 있고, 다른 표현을 빌린다면 부모의 간섭을 안 받은 거요.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내가 잘하든 못하든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내가 내 인생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요. 그래서 자생력이 있습니다. 잘 보살펴서 키운 애들보다. 그러니 여러분들의 자식 사랑은 정말 자식을 위해서 자식 사랑인가? 내 마음이 어쩔 수 없어가지고 내 집착 때문에 이렇게 하고 살았는가? 이게 반성이 돼야 돼. 그래서 지금이라도 나의 자유를 위하고 아이의 자유를 위해서 자식에 대한 간섭을 중지해야 됩니다. 이게 공부요.

 

이건 외면도 아니고 내 말 안 들으니까 싫어서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가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있는 거를 봐낼 수 있는 부모의 인내심이 있어야 돼. 그런데 한두 번 못 봐냅니다. 결국은 또 간섭하게 되고 또 간섭하게 되고. 그래서 나는 자식 때문에 괴롭고. 자식은 부모 때문에 괴롭고. 그래서 부모자식이 원수가 된다. 부부도 마찬 가지오. 사랑으로 만나가지고 늘 상대편 인생에 간섭을 하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 때문에 괴롭고 남편은 아내 때문에 괴로운 거요.

 

아내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고 남편은 아내가 있어서 행복하고. 아내는 남편이 있어서 자유롭고, 남편은 아내가 있어서 자유롭고. 이렇게 안 되고. 남편 때문에 괴롭고, 남편에게 속박받고, 아내에게 속박받고 아내 때문에 괴롭고. 자식에게 속박받고 자식 때문에 괴롭고. 부모에게 속박 받고 부모 때문에 괴롭고. 이거는 전생의 원수가 부모자식이 되거나 원수가 부부가 돼서 이생에서 서로 괴롭힌다. 그게 아니에요.

 

간섭해서 그래. 간섭. 남의 인생에 자꾸 관여하는 거요. 이걸 첫째 끊으셔야 돼. 그러니까 도움도 본인이 절절히 도움을 요청할 때만 도움을 주고. 돈을 빌려달라면 딱~ 차용증 쓰고 빌려주고. 이렇게 철저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립심이 생겨요. 대신에 뭘 안 해야 된다? 간섭을 안 해야 돼. 나도 간섭 안 하는 대신에 나도 뭘 해줄 때는 반드시 엄격하게 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들에게 간섭을 마치 내 종 부리듯이 내 맘대로 간섭을 하고 그러고 또 늘 뭘 해주죠.

 

그래서 도와주는 거는 자립심을 없애고 간섭해서 상대의 어떤 창조성을 없애고, 그렇게 해서 부모가 자식을 망치는 거요. 부모는 자식을 망치고 자식은 부모에게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이 돼 있다. 이걸 여러분들이 해체해야 됩니다. 이제. 나를 위해서도 자식을 위해서도 과감하게. 벗어야 됩니다. 그래서 내 말 안 듣기 때문에 쫓아내거나 이게 아니라, 그냥 독립을 해서 살아야 돼. 나도 자식에게 기대를 걸지 말아야 되고, 대신에 자식 일에 간섭을 하지 말아야 된다. 이건 정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서로를 위해 서에요.

 

1_간섭하지 말 것. 그다음에 2_진정한 마음의 대화가 되기를 원한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는 매일 108배를 하면서 제가 아이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이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그걸 좀 내 병을 빨리 좀 고치고자 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돈이 없더라도 빚을 내서라도 깨달음장에 가셔서 자기 점검을 한번 해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눈을 떠야 됩니다. 자기 눈을 뜨면 아이의 마음이 읽혀요.

 

지금 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요. 그렇게 해서 자기 정진을 하면 저절로 대화가 됩니다. 대화하려고 애를 안 써도 저절로 대화가 된다. 컴퓨터에 있는 것이 딱 보면 보기 싫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걸 참고 얘야, 이리 와라. 얘기 좀 하자.” 그런데도 계속하고 있으면 성질이 팍 나잖아요. 그런데 그 컴퓨터 하고 있는 아들이 보기 싫지 않아야 됩니다. 그래야 대화를 하자는 말을 하면 바로 응하고, 또 안 응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벌써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하거든요.

 

그래서 늘 처음의 시작은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그 좋은 마음이 오히려 화근이 되고 나중에는 갈등이 되고, 이렇게 된다. 부부가 같이하면 좋지마는 이러면 또 어떻게 하느냐? 또 마누라한테 책임을 전가하게 돼. 부부가 같이하는 건 맞는데 이게 바로 이 책임을 마누라한테 슬쩍 전가하는 얘기요. 그래서 내가 부인 얘기를 일체 안 하는 거요. 으음. 부인이 어떻게 하든 엄마하고 아들이야 싸우든 말든 그거 관여 안 하는 거요.

 

또 법문 듣고 가서 부인한테 스님 얘기 들으니까 자식에 너무 간섭하지 마라 그랬다. 18살 넘으면 그냥 딱 정을 끊으라 그랬다. 이런 얘기 하면 안 돼요. 부인은 그냥 엄마로서 자기들끼리 도와주고 싸우고 저희들끼리 하든지 말든지. 그거는 나의 부인과 나의 자식이 싸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저그 모자끼리 싸운다. 이웃집 모자끼리 싸우기 때문에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오. 나하고 관계없는 일이오. 나만, 내가 어떻게 할 거냐? 이것만 생각하면 되지 부인이 어떻게 해라? 자식이 어떻게 해라? 이 생각을 딱 끊어야 내 공부가 되고 효험이 나지. 이걸 바로 슬쩍 벌써 넘기면 안 됩니다. 이게 딱 분명해야 인생문제가 해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