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1877. 저의 말투로 상대가 기분 나빠지거나 상처를 받습니다

Buddhastudy 2023. 1. 19. 18:18

 

 

 

제가 말을 하면 상대가 기분이 나빠지거나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말투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법을 몰라서 마음이 위축되고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라는 신념이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저의 명령적인 말투와 늘 내가 옳다고 고집했던 말 버릇이

저의 인간관계에 큰 장애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기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여름날 더울 때,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나

이런 거 먹으면 시원하죠.

근데 저는 그런 거 먹으면 반드시 설사를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더운데 먹고 싶은데 어떻게?

자기 생각을 얘기해보라고

이게 현실이잖아요.

여러분 날씨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준단 말이에요.

먹으면 설사를 해.

근데 날씨가 덥고 목이 마르니까 먹고 싶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아니 그 뭐 어렵다고 그렇게 고민을 해요.

쉽게 쉽게 얘기해 봐요, 자기 생각대로.

 

이걸 모르겠다고?

날씨는 덥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는 먹고 싶고

먹으면 설사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

 

자기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안 먹을 것 같아.

 

근데 뭐 그럼

저 같으면 안 먹겠습니다이러면 되지, 그거 뭐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까 나는 먹겠습니다 하는데

나는 먹고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할래?

 

그러니까 길이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먹고 설사하면 되잖아요.

 

먹고 설사를 하든지

설사하기 싫으면 설사하는 게 더 힘들면 뭐 한다?

먹고 싶은 거를 안 먹든지

먹고 싶은 게 더 강하면 먹고 설사를 하든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때는 먹고 설사하고

어떤 때는 먹고 싶어도 안 먹고

줘도 안 먹고

이게 인생 아니겠어요.

 

자기가 말투가 그러면

말투를 고쳐서 생활을 하든지

생긴 대로 말투를 하고

기분 나빠하면 기분 나빠하고

뭐 설사하듯이 손실이 생기면 손실을 감수하면 되잖아요.

비난하면 비난 좀 받으면 되잖아요.

설사 하나 이 말이요.

 

자기 생긴 대로 살고 지금 먹으면 먹고 설사를 해라.

즉 비난을 감수해라.

비난 안 받으려고 하지 말고

사업상 손실이 생기면 손실을 감수하면 되잖아요.

 

안 했으면

천원 벌 거를

얘기하고 500원 밖에 못 벌면 500원을 벌면 되잖아요.

만족하면 되잖아요.

 

근데 자기가 말을 안 하니까

아예 거래가 안 돼서 500원도 못 버는 것보다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조금 덜 벌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상처를 받든지 말든지 그 사람 문제 아니에요?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거 아니에요.

떨어져 나가는 걸 감수하면 되잖아, 설사하는 걸 감수하듯이.

그럼 또 새사람 사귀면 되지 뭐

안 그러면 말투를 고치든지.

 

근데 자기는 말투를 고치려니까 안 고쳐진다.

그래서 말을 안 하니까 답답하다.

말을 하니까 상처 입는데 어떡하면 좋겠냐?

 

이게 날씨는 덥고

아이스크림 먹고 싶고

먹으니 설사하고

어떡하면 좋겠냐고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하고 싶은 대로 하고

상대가 상처입었다고 가면 그걸 손실을 감수하든지

안 그러면 자기가 힘들어도 말투를 고치든지, 정확하게.

 

자기 말투 명령조라고 하고 이런 말도 그렇게 말하면 손실이 생긴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다 떨어진다 그럼 고쳐야 될 거 아니에요.

자기도 별로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야

안 고쳐진다이 말은

고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거예요.

아무 노력 안 하고 저절로 고쳐지기를 바라는 거예요.

 

고치기 싫으니까 어때요?

그냥 아예 입을 닫아 버리는 거 아니에요.

왜 꼭 명령조를 하는 건 잘못된 거 아니에요.

그럼 명령조로 안 하면 되잖아

나도 모르게 명령조로 나왔다 그러면 손실을 감수하면 되잖아요.

 

이것도 자기는 아무 노력도 안 하고

무언가 변하기를 원하는 거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손실을 감수하든지

입 다물고 자기 우울증에 빠지든지

아니면 힘이 들어도 말투를 고치든지.

달리 길이 없어.

어느 쪽으로 할래요?

 

...

 

그런데 가끔 가다가 튀어 나오면 그만큼 손해를 보면 되잖아요

저도 아이스크림을 줘도 안 먹는데 가끔은 먹어요.

그리고 설사해요.

 

...

 

아이스크림 먹고 설사를 하든지

먹고 싶더라도 참든지

그렇게 하라 그랬는데

 

이제 말투를 거친 거는 혼자서 한다고 잘 안 돼요.

사람들하고 말을 하면서 계속 고쳐 나가야 하거든요.

입을 침묵하면 덮어 놓는 거지 개선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오히려 그런 케이스는

좀 말을 해서 손해를 안 보는 관계에서

사업하는 관계에서는 그 안 고치면 큰 손실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행복학교 같은데 등록을 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마음 나누기를 자꾸 해보면

내 마음에 밑마음에 어떤 불만이나

자기 그 아집이 있어서 이렇게 말투가 세게 나오느냐

 

말투가 세게 나오는 거

이거는 첫째는 습관이고, 어릴 때부터 해온 습관이고

두 번째는 내부에 불만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만 있으니까 억누르면 좀 부드럽게 나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약간 업 되면 그냥 팍 나와 버리거든요 .

 

그래서 행복학교 같은 데서 맘나누기 하면서

자기를 알아 나가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연습을 좀 해보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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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를 아직 안 하면

뭐 혼자서 책 보고 공부해도 돼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 혼자 사는 게 잘 안되니까 학교를 보내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우리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많이 가르치고

안 하는 애를 안 가르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애들이에요.

그런 애들은 한반에 한 30명씩 편성해서 자기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선생님이 약간 도와주면 되고.

 

공부가 조금 혼자 살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선생님이 소수아이에게 배정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똑같이 30명씩 배정하고 이건 맞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공부가 쳐지면 10명씩 배정하고

더 처지면 다섯 명씩 배정하고

아예 처지면 한 명이나 두 명의 선생 한 명을 배정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못 하기 때문에 돕는 사람이 더 필요하고

잘하면 돕는 사람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게 평등이에요.

 

한방에 30명씩 평등이 아니고

거기에 맞게끔 평등해야 한다.

 

교육은 가르치는게 아니고

배우는 거예요.

배우는 거.

 

배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우게 해주는 게 교육이지

선생이 얼마나 많이 안다.

그건 자기 지식이지

아이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까 지금의 학교 교육방식은

선생님 위주의 교육이야, 선행 위주의 교육.

학생 위주의 교육이 아니에요.

 

학생위주의 교육이라면

요줌 유튜브도 있고 뭐 방송도 있으니까

그런 건 혼자서 집에서 들으라 그러고

듣고 와서 학교 와서는 선생님이 소그룹으로 만들어

계속 아이들이 모르는 걸 질문하도록

이렇게 해야 맞춤형 교육이 되지

모든 선생이, 전국에 수만 명이 선생이

똑같은 얘기를 한 사람이 해도 되는 얘기를

만 명의 애들을 모아 놓고 하고 있는 게 얼마나 큰 낭비예요.

 

그거 방송에서나 유튜브에서 누가 설명 잘하는 사람 해주면

전부 그걸 아이들이 몇십만 명이 읽고 또는 듣고 보고

모르겠다이걸 속으로 안 하고

선생 몇 명이 붙어서 모르는 거를 맞춤형으로 지도를 해 줘야 한다.

 

그렇게 바꾸면

교육할 때 조는 아이도 없고

그러니까 조금 질문이 적으면 반을 많이 편성하고

아이들이 모르는 게 많은 아이들은 조금씩 편성하고

아예 모르는 애는 두세 명에 한 명씩 편성하고

이렇게 해서 다 교육을 하면 되는데

이게 왜 안 바뀌느냐?

학생 위주의 교육이 아니고 선생님의 교육이에요.

 

이 종교단체도 마찬가지예요.

전부 다 목사 신부 스님 위주의 법문입니다.

제 아는 거 막 얘기하는 거예요.

못 알아들은 무식하다 그러고.

믿음이 부족하다 그러고.

 

근데 각자 다 자기가 어려운 곳

자기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도록 하고

그걸 듣고 거기에 맞게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든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든

이렇게 하면 될 텐데

 

이게 다 이게 국민 위주로 정치를 해야 되는데

정치인 중심의

그러니까 정치를 통치라 그랬잖아.

이렇게 그냥 막 사람을 이렇게 질서를 잡고 다스리고

이런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지배자 중심, 선생 중심, 종교 지도자 중심

뭐든지 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게 어려운 거예요.

이게 이제 변화돼서

교육은 아이 중심

종교는 신자 중심.

 

신자 중심이란 게 권한을 행사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그분들의 어려움에 맞춰서 해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고

진정한 평등이 될 수 있다.

 

듣는 건 이렇게 듣더라도, 혼자서 하면 잘 안 되잖아요.

스님 법문 듣고 해보니 잘 안 되면

이제 동료끼리, 모여서 왜 안 되는지.

비슷비슷한 사람끼리 얘기해야 되잖아요.

 

스님 얘기 들으면 될 거 같아.

가서 해보면 잘 안 돼.

그러면 서로 안 되는 사람끼리 모여서 얘기해 보면

위안도 되고

그 중에 얘기 하는 사람 있으면 본 받을 일도 생기고

그 중에 다 되는데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배우기도 하고, 내가 도와주기도 하고

이런 게 진정한 공부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행복학교는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됩니다.

항상 소수의 학생들이 모여서

자기 마음을 내놓고

자기 얘기를 하고

자기 어려움을 얘기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 얘기도 듣고

나하고 똑같이 사는 다른 사람 얘기도 듣고.

 

어머니는 아이들 얘기도 듣고

아들은 엄마 얘기도 듣고

남자는 여자에게도 있고

여자는 남자에게도 듣고

그러면서 아 이게 내 생각을 중심으로 너무 했구나

이렇게 하나하나 자각을 해...

 

변화는 자각할 때 일어나지

스님이 아무리 얘기해도

스님 얘기를 듣고

!”하고 자각이 되면 변화가 일어나지

남이 이렇게 얘기해서 변화는 안 일어납니다.

 

스스로 알아차릴 때만

변화가 일어난다.

 

그럼 이 즉문즉설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일방적인 강의보다

조금 더 유효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이렇게 제가 즉문즉설 한다고 다 또 자각되는 것은 아니에요.

좀 자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금 확률이 더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근데 동료들하고 하는 게 오히려 자각하기가 제일 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려운 사람끼리 모여서

뭘 여러분들이 자꾸 배운다고 생각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자각은 배우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돌아보고

, 내가 고집이 세네

, 내가 말버릇이 이렇게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네

이게 자각이에요.

이 자각이 일어나야 변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