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저희 아이가 요즘 좀 화가 많아졌습니다

Buddhastudy 2023. 1. 26. 18:00

 

 

저희 아이가 요즘 좀 화가 많아졌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생긴 걸로 놀리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놀리고

다른 곳으로 피하면 따라와서 괴롭힌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저희 아이가 어떤 마음을 내야지

아이 마음이 좀 편해질까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면

부모 마음이 많이 아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마음공부라는 것은

내 마음을 공부하는 거지

남의 마음을 어떻게 한다, 이런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 보고

욕심을 좀 버려야 됩니다. 욕심 때문에 괴롭습니다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그것을 자기에게 적용해서 욕심을 좀 내려놓으면

자기 마음이 훨씬 편해진다.

 

사람의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내 의견이 옳다고 고집하면

내가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는

참아야지이러지 말고

화를 내야지이러지도 말고

아참, 우리 생각이 서로 다르지, 판단이 서로 다르지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부인이 화를 내니까

야 화내봐야 너 손해야, 나하고 너하고 의견이 다르다, 이걸 니가 생각을 해라이렇게 하면

그 사람한테는 이것이 법문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자기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수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마음공부는 남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내가 듣고 자각하는 말이지

그 말을 남에게

, 부처님 이래 말했어. 너 이렇게 살아야 돼

이렇게 하는 즉시 그것은 법문이 안 되고 독설이 된다.

 

우리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됩니까라는 것은

엄격하게는 이 즉문즉설에 해당이 안 되는 얘기다.

 

왜냐하면 마음 공부라는 것은

남편이 어떻게 하든, 나 아내가 어떻게 하든, 자식이 어떻게 하든, 세상이 어떻든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게 마음공부이지

내가 아내한테 뭐라 그래서 아내가 변하고

자식한테 뭐라 그래서 자식이 변하고

다른 사람한테 뭐라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변해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그거는 세속적 방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건 마음 공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거는 마음공부에 해당이 안 되는 얘기

우리 아이를 어떻게 바꾸면 되겠느냐 하는 얘기

우리 마누라를 어떻게 바꾸겠냐

우리 남편은 어떻게 하면 술 안 먹게 만드느냐

하는 이런 얘기와 동일한 얘기다 이런 얘기에요

 

마음 공부라는 것은 이런 아이

학교에 가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내가 가슴이 아프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런 아이를 두고도 내가 가슴이 안 아프고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

이게 마음공부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마음공부 차원에서는

이게 질문이 합당한 질문이 아니다, 대화가 아니다.

먼저 이걸 말씀을 드리고요.

 

그러면 이런 아이

학교에 가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런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아픈데

이 내 아픈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되겠느냐

거기에 첫째가

아이들이라는 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세상에 때 묻지 않았다하는 측면에서는 순수하다는 면이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하는 측면에서는 어리석은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린 백성이훈민정음이 나오잖아요.

어린 백성이할 때 어리다는 말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어린이라는 말은 어리석은이란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린아이 친구들이

걔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뭘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동료를 돌봐야 된다

친구를 보살펴든 이런 생각을 할 줄 몰라요.

애가 나쁜 애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할 줄 모르는 게 어린아이다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약자를 보고 도와야지 하는 애가 10명 중에 한두 명이 있고

절반 정도는 약자를 보면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게

어리석은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보고

괴롭히지 마라이렇게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면 우리가 외국인하고 결혼해서 난 아이, 즉 혼혈아죠

이런 아이들이 우리나라 외국인을 많이 사니까

안산 같은 데서는 또 지방에서는

학교에 그런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초등학교에.

 

그럼 어른 같으면 어때요?

우리가 인종적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차별적 언어를 쓰면 안 된다

이거 어른 통합니다.

근데 아이들은 그게 놀림의 대상이 된다.

이거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생김새를 갖고 놀리거나

또는 여자아이라고 놀리거나

장애아를 놀리거나

그러니까 아이들은 장애아라를 보고 흉내를 내고 놀리고 그런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을 더듬으면

그걸 들어주는 게 아니라

일부러 말더듬 흉내를 내고, 저희끼리 웃고

이렇게 하는 게 어린아이다.

 

그러니까 어린이는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순수하다’. ‘어른처럼 욕심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순수한 면이 있지만

어리석다하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문제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 아니겠어요.

아이들이 다 순수하고 깨끗하면 뭣 때문에 가르쳐요?

놔두면 되지.

어리석기 때문에 아이들은 깨우치는 거다.

 

그러니까 첫째 이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가 그걸 갖다 애한테 뭐라 그래서

애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그러니까 먼저 선생님을 찾아 가서 아이의 일은 어려움이 있다

그 아이가 나쁘다 혼내 줘라이렇게 하는 거는

내 아이만 사랑하지 남의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자세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럴 수 있는 게 아이들이에요.

나빠서 그런 게 아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상담을 해서 선생님이 그거를 어떻게 조율할 건지

첫째 하나 의논해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데

이때 선생님한테 가서 화를 내거나

다른 학부형을 불러다가 혼을 내거라 하는 거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면 이 아이 때문에 자기들이 혼나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 아이를 더 미워하고 더 자기들끼리 패를 형성한다.

선생님이 있거나 뭐 이럴 때만 안 그러고

없는 데서는 더 괴롭힘을 하는 게 아이들의 성질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그런 거 보면 굉장히 나빠요.

사실 어른 기준으로 보면.

근데 그게 인간성인 걸 어떻게.

인간성이란 것 자체가 그런 성기를 갖고 있는데.

 

닭도 키워보면

같이 병아리가 크다가 꽁지가 좀 빠지고 좀 작은 게 있으면

집단 괴롭힘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키워보면요.

거기 다 가서 막 쪼아서 피가 나는데도

계속 그렇게 집단 괴롭히는 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게 뭐 전문적으로 무슨 성질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마는.

 

그 부모는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 부모를 불러가 야단친다한들 그 부모를 어떻게

부모가 애한테 야단치면 그때 뿐이지

애들은 또 금방 잊어버리고

또 히히 하면서 또 그렇게 장난을 치기 때문에.

 

그래서 그거를 야단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선생님이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럴 때 얼마나 타인이 고통을 받는지를 대화를 통해서 푸는 그런 선생님의 도움을 얻고

선생님도 그런 전문 상담사가 아니다 보니까

그저 공부 가르칠 줄만 알지 그런 걸 또 전혀 모르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또 너무 많이 의지하면 안 돼요.

 

요즘 선생님은 대부분 직업인이고 지식 기술자고 이런 사람이 많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알아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이런 경우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아이들을 야단을 잘 안 치려고 그럽니다.

왜 요즘은 조금만 야단치면 학부형들이 난리를 피웁니다, 학교에 와가지고.

그러니까 이게 교육 현장이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래도 일단 선생님의 상담을 하고

그 다음에 학교에 있는 전문 상담사가

그런 괴롭힘을 하는 아이들을 부드럽게 이렇게 하는 이런 조처가 하나 필요하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야

아 우리 학교에 조금 문제가 있구나

아이가 조금 어렵구나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학교가 선생님하고 먼저 의논을 해보자.

그다음에 선생님이 조금 서툴면 상담 선생님하고 의논을 해보자

이런 관점을 가질 때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이런 얘기에요.

 

두 번째 그렇게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첫째 문제지만

우리 아이에게도 뭔가 그 아이들끼리 봤을 때는 뭔가 문제가 좀 있는 거예요.

자기들이 볼 때는.

마치 신체장애가 있듯이 정신적으로 뭔가 어떤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애들이 집단 괴롭힘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아동심리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 선생님과 아이를 면담하고 상담을 해서

아이가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아버지나 엄마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실어서 얘기하지 말고.

 

아이가 상담해서 아이가 집단 괴롭힘을 당해서 생기는 마음의 상처를 우선 치유해 줘야 하고 두 번째, 거기에 대응하는 아이입장에서 대응하는 것을 그 전문 아동심리학을 하신 선생님이 애를 도와줘야 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해결의 관점에 서면 이게 뭐

우리 아이가 문제가 있다

저 집에가 나쁘다

학교에서 왜 이러냐

이렇게 생각하면 자꾸 감정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교에 가서 얘기해도 막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 뭐가 문제냐이런 식으로 좀 화가 나게 되고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첫째는 아이들을 몰라서 그렇다.

두 번째 선생님도 잘 이런 거에 대해서 모를 수가 있다.

항상 이게 전제가 돼야 합니다.

 

또 우리 아이에게도 약간의 우리가 볼 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볼 때는 뭔가 괴롭힐만한 어떤 건더기가 있을 수 있다.

그게 한 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난 게 아니라

이렇게 지속된다면.

 

그러면 그 문제를 상담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첫째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를 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야단을 치거나 뭐 위로를 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에요.

어릴 때 마음의 상처는 평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 이것 때문에 분노해서 나중에 커서도 복수심을 가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치유를 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노력,

돈이 좀 들더라도, 시간이 좀 덜더라도

이렇게 해주는 게 현재의 상황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애한테 말 몇 마디 한다

이런 거는 너무 이런 문제를 좀 몰라서, 자기도 무지해서

그렇게 가볍게 생각한다.

애를 나무래거나

애를 단지 위로하거나

학교에 가서 항의하거나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문제를 선생님하고 먼저 상담하고

그래서 해결이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의사 선생님하고도 상의하고

이런 절차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병이 나면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면 금방 병원에 데려가고

감기가 들어도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상의하고 이러잖아요.

 

근데 왜 사람은 육체보다 정신이 훨씬 더 중요한데

이런 치유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게 바로 내 눈에 보기에, 내 눈으로 보기에

뭐가 부러지고 뭐 하게 되면 큰 문제가 있는가 생각하고

이런 정신적인 어려움은 내 눈에 안 보이니까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있지요.

 

애가 늘 놀다가 엄마 올 때만 딱 공부하는 척하면 공부 잘한다그러고

늘 공부하다가 엄마 들어올 때 뭐 게임을 하고 있으면 난리가 나고.

 

그러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귀에 들리는 게 다도 아니고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 불교 대학에서 공부하는 게

세계라고 하는, 이 세계라고 하는 게

내가 아는 거다.

내가 안다는 거 별거 아니다.

내 눈에 보고, 내 귀에 들리고, 내 코에 냄새 맡고, 내 혀의 맛보고, 내 손에 감촉되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이게 내 우주이고, 이 세계에요.

 

근데 이 경험이 사람마다 다 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세계, 다른 우주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근데도 어떤 착각을 하고 있느냐?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

이렇게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늘 같다는 전제 위에

즉 자기 같이 생각해서 그렇지 않는 다른 것을

틀렸다 그러고

잘못했다 그러고

왜 그걸 이해 못 하냐 그러고

그렇기 때문에 이 간단한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같은 방에서 우리가 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같은 방에서 같은 시간에 잠을 잔다고 같은 꿈을 꿉니까?

전부 다 다른 꿈을 꿔요.

 

꿈속에서는 다 다른 세계에서 노는 거예요.

눈을 떠야 별일 아니구나하는 걸 아는 거예요.

 

늘 우리가 산다는 게 마치

각자가 지금 잠을 자면서 다른 꿈을 꾸는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이 한 방에 사는 아내와 남편도 대화가 안 되는 거예요.

꿈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꿈을 꾸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첫째 꿈에서 깨는 거는 조금 어려우니까

첫째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다르다는 것만 인정해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우리가 뭘 모른다는 것만 알아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자기가 자꾸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 하는 거에요.

 

...

 

문제가 발생했잖아요, 그죠?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문제를 어떻게 풀까? 이렇게 하면

이거는 학교 아예 문제니까 우선 학교에 있는 선생님하고 의논해 봐야 될 거고

아이의 심리적 상처를 해결하려면 또 그 전공한 의사하고 또 의논해 봐야 될 거고

이렇게 스님한테 의논하듯이 이렇게 의논을 해서 풀면 돼요.

 

항상 완전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보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진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