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명상의 모든 것] 무아와 참나 논란 종결

Buddhastudy 2023. 2. 14. 18:48

 

 

인터넷에 보면

가끔 참나와 무아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참나보다 무아가 차원이 더 높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 논쟁은 인기는 많지만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서로 용어의 정의부터도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AB

사과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하면

서로 동일하게 사과에 대해 얘기를 하는 거 같지만

A의 머릿속에는 붉은 사과가 들어있고

B의 머릿속에는 푸른 사과가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통이 되지 않겠죠.

 

이렇게 참나와 무아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참나는 순수의식이라고도 하죠.

, 감정, 생각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놓고 관찰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관찰자라고도 합니다.

 

기존에 나라고 생각했던, 동일시했던 모든 것들이

다 관찰의 대상이고

그것들은 나가 아니었음을 체험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방법처럼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고

그 답변에 대해서

'내가 본래부터 그것이었는가?'를 탐구해서 아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이치적으로 아는 것이죠.

체험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몸과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분리가 돼서

그것들을 나가 아닌 상태로 느끼고 있는

별개의 나를 체험하게 되면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사장이 아닙니다'

'나는 사업가가 아닙니다'

'나는 엄마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요.

 

기존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조리 분리가 돼서 대상으로 느껴지고

그런 것들을 알아차리는

관찰자로서의 나만이 남게 되죠.

 

이렇게 어느 것도 아닌 나

아무것도 아닌 나

오로지 순수한 나만이 있는 상태

그래서 이것을 참나, 순수의식 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상태에 머물 수만 있어도

여기서 에고가 발생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가 있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인 참나에서

내가 무엇으로,

아빠로, 엄마로, 사장으로, 의사로 등

동일시되면서

에고의 껍질이 생기고

또 나만의 고정관념이 굳어지면서

에고의 껍질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왜 참나와 무아를 구분하는가?

참나를 몸, 감정, 생각을 대상으로 놓고

관찰하는 관찰자라고 했죠

 

이 관찰자라고 하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생각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다라는 미세한 생각이죠.

 

그래서 명상에 깊이 들어가서

생각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면

이 나라는 생각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그냥 깨어있음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이 상태에서는

나라고 하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죠.

 

이것을 나조차도 없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라고 해서

무아(無我)라고 하게 됩니다.

 

순수의식 다음의 합일의식이라고도 합니다.

불이(不二), 즉 이원성을 벗어난 최종지점으로서

분별이 없는 상태, 경계가 없는 상태라고도 하죠.

 

보통 참나, 순수의식만 해도

분별이 없는 상태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관찰자로서의 나'라고 하는 생각도 미세한 분별이죠.

 

나와 나 아님을 이원성으로 분별하고 있는 상태이고

이것마저 사라져서 무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백인백색이라고 하죠.

사람에 따라서, 또 공부 스케줄에 따라서

깨달음의 경험은 다 다양하게 옵니다.

 

참나를 느낄 때

관찰자로서의 나를 느끼는 분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특별한 경험에 의해서

아예 처음부터 나가 부서지면서

우주와 하나 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모든 것이 하나로 느껴지면서

깨어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을

뭐라고 언어로 표현해야 하니까

그것을 '우주'라고 하기도 하고

그냥 ''라고 하기도 하는 거죠.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무아 라고 할 만한 것을

그냥 통칭해서 참나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여기서 용어의 혼동과 논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관찰자를 참나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그런 것마저도 사라져서

모든 것이 하나 된 상태를 참나라고 하기도 하는 거죠.

 

그리고 또 어떤 분은

참나는 차원이 낮은 것이다, 라고 공격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실 정작 그런 공격을 하는 이면에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 라고 하는 에고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마음 공부가 아니라 지식 공부를 하게 되면

에고가 강해질 가능성이 크죠.

 

아직 참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공부를 찾아다니시는 분들은

이런 견해 차이를 보시면

어떤 게 옳은지 헷갈리실 겁니다.

 

이런 갑론을박은 머리만 아프고

마음공부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죠.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순수의식, 참나 라는 것을 느끼고

나중에는 그 라는 느낌마저도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하나인 느낌으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참나건 무아건, 순수의식이건 합일의식이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죠.

일상에서 에고를 알아차려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참나나 무아와 같은 상태의 본질은

결국은 생각이 어디까지 끊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깊이 명상에 들어가서 생각이 완전히 끊어져서

라는 개념까지도 사라져 보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명상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생각은 필요하죠

우리가 일상에서 생각을 하고, 반응을 하고, 행동하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할까요?

 

자신에게 기록되어 있는

과거의 경험 정보로부터 나오게 되죠.

 

예를 들어서 사과는 일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좋아하죠.

하지만 백설공주와 같이

독사과를 잘못 먹어서 죽을 뻔했다는 과거의 경험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깊은 명상에서 무아를 느낀다고 해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사과를 조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결핍이나 고정관념 등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리 명상을 하면서 참나나 무아를 느낀다고 해도

일상에서는 결핍이나 고정관념에 근거해서

에고가 발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표면의 바다, 의식에서는 무아라고 느끼지만

심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보통 무의식의 정화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결국 내면에 쌓여있는 경험 정보들이 잘 정제되어야

일상에서도 무아, 자기 없음의 상태를

잘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순수의식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나나, 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역시 동일합니다.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무의식, 마음까지 단번에 닦이는 것은 아니죠.

다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개념을 터득했기 때문에

이 도구를 이용해서

일상에서 올라오는 무의식의 에고를 알아차리고

계속 마음을 닦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어떤 선각자의 말씀이나 책에서는

참나를 찾으면서

모든 에고가 단번에 해결되었다고 하는가?

 

이것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을 펴낼 정도의 분들은

이미 본래부터 뛰어난 분들이죠.

 

전생부터 상당히 닦여 있어서

카르마라고 하는 업도 적고

에고도 두텁지 않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서 한 꺼풀만 벗겨내면 되는 분들인 거죠.

 

반면에 업과 같이 쌓여있는 것들이 많다면

명상 중에 참나나 무아를 느꼈다고 해도

쌓여있는 정보들이 지속적으로 에고를 발현하게 되죠.

일상에서 알아차리면서

계속 닦아 나가야 되는 것들입니다.

 

돈오돈수나 돈오점수와 같은 논쟁도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데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판단을 하다 보니까

그런 것이죠.

 

소수의 뛰어난 분들은 한번 깨달으면

이미 닦을 필요도 없이

무아, 자기 없음이 유지가 되는 것이고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분들은

깨달은 후에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계속 닦아나가야 하는 것이죠

자기가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계속 비우는 작업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라면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타고난 영성이 뛰어난 분들은 극소수죠.

그리고 설령 그런 분들이라 할지라도

과거와 다르게 현대의 주변 환경은

미디어나 탁한 에너지 등

끊임없이 에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죠.

 

내가 사막 가운데 있는데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잠깐 방심하고 의식을 놓고 있으면

그런 환경에 점차 물 들어가게 되죠.

 

평생교육이라는 말처럼

평생 닦아 나간다 라고 생각하면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명상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