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역사, 세계사

[세계사, 4대 문명] 고대 이집트 역사 11: 이집트 벽화

Buddhastudy 2023. 5. 11. 19:50

 

 

 

나일 강 유역에서 번영을 이룩했던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100년경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통일되면서

수천년동안 긴 세월을 거치며, 문화에서도 그들만의 특징을 보였습니다.

 

파라오는 태양신 의 아들로 불려지며 이집트를 통치했고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고 나서도

파라오의 영혼은 신들과 함께 영원히 산다고 믿었죠.

 

이 때문에 고왕국 시절, 다수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고

영혼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지켜내야했던 육체보존을 위해

죽은 몸을 건조시켜 미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무덤에는 미라만 놓여있을 뿐 아니라,

왕이 죽은 후에 생활이 부족하지 않도록

벽에다가는 많은 하녀들과 음식들을 그려놓았죠.

 

고대 이집트 미술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헤지레의 초상은 기원전 2700년대 중엽에 그려졌으며

머리는 측면을 향하고 있지만

눈과 상반신은 정면을 향해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때 당시의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모습 중에서,

중요하다 싶은 곳을 좀 더 강조해서, 규칙을 정해 그려놓았는데

이집트인들에게는 미술의 독창성보다는

엄격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이집트 미술, 회화에서 사람의 자세가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건

회화 속 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존되어 죽은 왕의 시중을 든다든지

각자가 할 일을 영원히 행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헤어스타일이나 두상, 그리고 코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옆모습을 볼 때 자세히 볼 수 있는 데 반해

눈을 바라보거나 어깨를 볼 때는 정면에서 보는 편이 알기 쉬웠죠.

 

또한 팔과 다리는 옆에서 볼 때, 그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으니

각각 부분마다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부각시켰던 겁니다.

 

3차원 상태의 인간을 2차원 상태로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이나 생략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두고 정면성의 원리라고 하는데요

, 정면을 보이고 있는 어깨, 머리는 옆으로 바라보고 눈은 앞을 보고 있는데

팔과 다리는 옆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회화에 나타난 이집트인들이 평평하면서도 비뚤어지게 보이게 되면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된 겁니다.

 

이집트 미술을 시대적으로 나누자면

고왕국 시대부터 신왕국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 된 많은 건축물과 회화, 조각들의 발전과정은

이집트의 정치, 전쟁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양 신 라, 그리고 아몬 신 혹은 아톤 신이라는 특정 종교에 의해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위계적 사회구조는

파라오라는 권위에 순종할 것과

힘에 복종해야 하는 윤리를 보이고 있고

이집트 미술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미지메이킹 도구로서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죠.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끊임없이 전쟁이 들끓었던 메소포타미아 지방과는 달리

나일강의 환경은 미술과 공예가 발전할 수 있었던 안정된 환경을 지니고 있었는데

바다 뿐 아니라 사막으로도 둘러쌓여 있어

다른 민족으로부터의 침입도 매우 적은 편이었죠.

 

기본적으로 평온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술 재료 공급 등의 발전에도 유리한 상황이었는데요

신왕국시기에 접어들어서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던 투트모세 3세의 영토확장으로 인해

레바논, 열대 아프리카 등의 개척으로

예술 활동의 재료가 되는 광물 및 목재의 공급도 원활했습니다.

 

평온한 환경과 무난한 재료공급으로 많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던 이집트의 미술은

이집트 신화와 결부되었고

미술작품에서 나타나는 사고관의 특징으로는

이승에서의 삶은 저승에서의 영생에 비하면 잠시라고 생각했죠.

 

파라오의 미라를 비롯하여 고위층과 평민층에서도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죽고 나면

저승에 물품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믿음은 이집트의 미술이 대부분 무덤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집트 초기 왕조 시절 때의 고고학적 증거는

1897년 영국인 이집트 학자 제임스 퀴벨에 의해

히에라콘 폴리스라는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히에라콘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매의 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이집트 신화에서 매의 얼굴을 하고 있는 호루스를 상징하는 말이었죠.

 

호루스 신은 히에라콘 폴리스의 수호신이었으며

이집트 역사 내내 파라오를 상장히는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 상징성이 현대 사회에까지 미쳐

이집트 항공사의 앰블럼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퀴벨이 발견한 유물 중에서는 최초의 파라오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는데

바로 10분 세계사 고대 이집트 1화에서 말씀드린

메네스의 팔레트혹은 나르메르의 팔레트라 불리는 유물이었죠.

 

통상적으로는 나르메르가 1대 파라오라고도 추측되지만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의 일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쉽게 알아낼 수는 없기에

사실은 1대 파라오의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나르메르를 제외하고도 몇 명 더 있었으며

그중에 한 명은 전갈왕.

영어로 스콜피온 킹이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나르메르 팔레트라는 유물은 큰 사이즈의 편암 석판이며

높이가 약 65cm, 너비가 약 40cm 정도로

스마트폰의 4배 정도의 크기 일 것 같네요.

 

고왕조 시절은 기원전 3천년 경 전후로

당시에는 문자 기록이 흔하게 있는 편이 아니라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추론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그나마 나르메르 팔레트덕분에 그 시대의 이야기에 대해 연구해볼 여지가 생겼던 거죠.

 

상하이집트로 통일되기 이전인 선왕조 시대 때는

팔레트라고 불리는 이러한 석판들은

화장을 하기 위해, 암석 안료를 가는 판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고왕조 시절의 나르메르 팔레트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커서 무거워 보이기도 하며,

또한, 석판에 새겨져 있는 부조들도 굉장히 정교하기 때문에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팔레트의 상단에는 앞뒷면 모두 한 쌍의 암소 머리가 장식되어 있는데요

이 소들은 고대 이집트 초창기에 숭배되는 바트여신을 의미합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많은 남신과 여신이 등장하며

바트는 은하수의 여신으로

소의 귀와 뿔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띠고 있죠.

 

앞뒷면으로 총 4개가 그려진 바트는 후대에 하토르 여신과 동일시되며

하토르 여신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를 구해주는 여신으로 등장합니다.

 

오시리스는 동생 세트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아들인 호루스가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요

첫 번째 대결에서 세트를 몰아붙이는데 거의 성공하였으나

호루스의 어머니가 세트에게 연민을 느껴, 세트를 구해냅니다.

 

되살아난 세트는 되려 호루스를 뒤쫒게 되고

다른 신들을 선동하여 호루스의 눈을 뽑아 버리게 되죠.

 

아버지의 원수도 갚지 못한 채, 맹인이 되어버린 호루스는

정처없이 사막을 떠돌았는데,

이때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태양의 신 가 가장 아끼는 막내딸인

소뿔을 지니고 있던 다정한 성격의 여신 하토르였죠.

 

하토르는 암염소의 젖으로 호루스 눈의 상처에 뿌리며 회복주문을 외웠고

호루스는 다시 눈이 보이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후 그는 오시리스 신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세트와의 100년간 대결을 벌이게 되고

결국, 복수에 성공을 하며 하토르와 결혼하게 되었죠.

 

한 쌍의 암소 하트로 여신이자 바트 여신사이에는

사각형 안에 메기와 끌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요

이 메기와 글이 성난 메기라는 나르메르라는 이름으로

고왕국 1대 파라오 를 나타냅니다.

 

아래쪽을 보면, 파라오가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크게 그려져 있고

이는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며

동시에 파라오를 신성시 여기는 역할을 하였죠.

 

역시 그림의 형태는 영상 초반부에 말씀드린 이집트 미술의 특징처럼

머리는 옆모습으로 그려졌으나 눈은 정면을 향했으며

어깨는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다리는 옆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그 외 인물마다 크기를 달리하여 상대적인 신분 차이도 나타냈죠.

 

파라오 앞에 앉아 있는 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는 자신의 발 이외에도 사람의 손을 갖고 있는데요,

그 손으로 아래에 있는 다른 사람의 코에 묶인 밧줄을 당기고 있습니다.

아래 사람은 파피루스를 들고 있으며

당시 하이집트를 대표하는 것이 파피루스였죠.

, 파라오를 뜻하는 매가 파피루스를 힘껏 잡음으로서

상이집트의 정복자가 하이집트를 차지했다는 걸 의미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래쪽에 나체의 남성 2명이 도망가는 모습은

싸움터에서 파라오에게 겁을 먹고 뛰어가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죠.

 

 

 

팔레트의 뒷면을 보면, 앞면에서 나르메르가 크게 그려져 있는 것과는 달리

중앙에는 마치 뱀모양처럼 보이는 목이 서로 감겨져 있는데

그 뒤를 두 남자가 잡아 붙들고 있습니다.

기이한 모습의 괴물에 대해서는 아직 그 의미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뱀의 목을 가지고 있는 사자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사자는 이집트 역사에서 전쟁과 관련된 표현에서 자주 나왔던 만큼

이 장면도 상하 이집트의 통일 전쟁이 있었다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죠.

 

가운데 패여있는 동그란 원형 공간은

팔레트로 쓰기 위해 이 부분에 안료를 넣어 갈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상단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요

이 중에서는 가장 크지만, 앞면에서 본 파라오보다는 작은 파라오가

왼쪽에서 두 번째 서 있습니다.

 

이 파라오의 왕관은 모양에서 하이집트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이는 앞에서 본 큰 상이집트의 파라오가

이집트 통일의 중심역할을 했다고 여겨지게 되죠.

 

작은 파라오의 앞뒤로는 수행원들이 붙어 있으며

오른쪽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참수되어

목이 떨어져나간 적군들을 의미합니다.

 

가장 아래쪽에는 황소로 변한 파라오가

다른 도시의 외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으로

강한 힘을 나타내는 황소는

수천년동안 이어지는 이집트 시대 동안

계속해서 파라오를 상징하는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죠.

 

나르메르의 팔레트, 혹은 메네스의 팔레트로 불리는 유물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씀드리고

또 다른 1대 파라오의 후보로 거론되는

스콜피온 킹의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스콜피온 킹이라 하면 2001년에 제작된 미이라2’에서

드웨인 존슨이 스콜피온 킹 역할을 맡았는데요

미이라2’에서는 영화 초반부에

고대 이집트의 스콜피온 킹이 세계정복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지만

부하들을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누비스 신에게 영혼을 바쳐 전쟁에 승리하게 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아직 건설되지도 않은 피라미드에 봉인되는 내용으로 전개되죠.

 

영화는 영화로서 즐기면 되고

스콜피온킹이 1대 파라오로 유추될 수 있는 유물로는

mace head 라는 전갈왕의 곤봉머리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름에서 곤봉머리라고 하지만,

실제 크기는 사람 머리 크기만해서

곤봉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주로 의식용이나 기록용이었다고 하는데요

곤봉 머리에는 중요한 인물을 상징하는 커다란 크기의 파라오가 있으며

그의 앞에는 꽃과 전갈이 새겨져 있는데

그 발음을 알 수 없어서 이집트 학자들은 그냥

전갈왕스콜피온 킹으로 부르기로 했죠.

 

학자들도 고대 유물에 대해 정확한 이름을 없을 때에는

직관적으로 이름을 지어버리기도 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상이집트의 모양을 나타내는 왕관을 쓰고 있으며,

괭이 모양의 도구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나일강을 이용하던 이집트인들의

관개사업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의 다른 한쪽 면에서는 보존상태가 나쁜 상태여서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손상된 면에는 나르메르의 파레트뒷면처럼

하이집트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렇다면, 두 파라오 중에서 더 크게 그려진

상이집트의 파라오의 힘으로 이집트를 통일한

1대 파라오라 예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집트 역사 11번째 시간으로

역사적인 서사 전개가 아닌

이집트 미술에서 역사의 고고학적 유물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 중

초기 작품들에 대해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통일된 시점인 기원전 3000 년경의 제1왕조 이전에는

암벽화, 무늬토기, 화장도구 등 여러 유물이 발굴되었는데요

눈화장 용구로 쓰였던 석판 팔레트에서

오래전부터 작은 동물들이나 사람들의 묘사를 동전에 그림을 새겨놓은 것처럼

부조장식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에도

대단한 손재주를 가진 금손들이 존재했다는걸 알 수 있죠.

 

또한, 팔레트에서 발견된 바트 여신은

시간이 지나, 하토르 여신과 동일시 여겨지며

이에 오시리스 신화 속에서 호루스와 함께 등장하는 부분까지 말씀드려보았습니다.

 

 

영상 후반부에서는 제1대 파라오의 후보인 메네스와

전갈왕에 대한 유물에 대해 정리해보았는데요.

역사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흥미로움도 있지만

당대 어떠한 작품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미학적 즐거움도 함께 포함돼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