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854회 인간관계가 잘 안되고 게으름이 있는데, 어떻게 극복

Buddhastudy 2013. 12. 16. 22:07

출처 YouTube

 

어릴 때부터 절이 좋고, 부처님이 좋고, 깨달음에 대해서 궁금하다. 하는 거는 불교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 가니 좋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으니까 나도 순종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는 거나 똑같은 거요. 생각일 뿐이오. 그러니까네, 불법이라고 하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이 좋다. 이게 깨달음이 아니고, ~ 이게 왜 이러지? 이건 왜 이렇게 되지? 이렇게 궁금해 해서 답을 찾아가는 게 깨달음의 길이에요. 그러면 내가 사람들하고 교류가 잘 안 된다. 인간관계가 잘 안 된다 하면 내가 필요 없다하면 연구 안 해도 되고, 내가 사람들 하고 좀 사귀고 싶은데 잘 안사귀어진다. 이러면 뭐에 원인이 있을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거를 궁금해 하면서 이건가? 이렇게 해보자. ~ 이것도 아니네. 저렇게 해보자. 이것도 아니네.” 이렇게 하면서 그 모순을 찾아내고 그것을 시정해서 해결하는 것이 뭐다?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예기에요. 깨달음이 어떤 딴 데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럼 내가 게으른 거를 게으른 거는 없습니다. 원래. 아시겠어요? 그런데 내가 게으르다고 인식하면 뭐가 된다? 게으른 게 되는 거고, 나보다 더 게으른 사람하고 비교하면 어떻겠어요? 부지런한 게 되는 거고, 게으른 건 없어요. 그러나 내가 좀 게으르다고 자기가 인식을 했다. 그럼 뭐, 사람이 이렇게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살아야지. 뭘 그걸 그렇게 조급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나?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그건 각자 자기 일이고, 나는 천천히 간다. 아시겠어요? 이렇게 가면 되는 거요. 그런데 빨랑빨랑 가는 사람이 부럽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게으르고 있다. 이걸 극복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왜 내가 게으른가? 이게 진짜 문제인가? 연구해보니까 문제가 아니다. 남 쳐다볼 거 없다. 이래도 결론이 나고. 문제다. 이러면 그럼 조금 더 부지런해야 되겠구나. 그러면 어떨 때 내가 게을러지느냐? 아침에 일어날 때 게을러지느냐? 저녁에 잘 때 게을러지느냐? 안 그러면 밥 먹고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느냐? 자기가 자기를 가만히 살펴보면서, ~ 여기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 요런 건 내가 조금 개선하면 사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이렇게 하면서 그걸 개선해 나가면 되요.

 

그런 걸 수행이라 그러고, 그런 거를 구도자라 그래요. 구도자라는 것은 한탄하거나, 남을 탓하거나, 절망하거나 그러지 않고,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그것의 모순을 찾아서 그것의 해법을 찾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자가 수행자에요. 그건 마치 과학자가 물질의 원리를 연구하듯이, 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처방을 찾아가듯이, 우리들 정신적인 이 마음의 괴로움을 하나하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 나가는 치유해 나가는 그걸 수행이다. 그걸 깨달음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대부분 여러분들은 깨달음이라고 하는 어떤 환상에 빠져있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이가 저렇게 공부를 하는데 조급해 하면 조급해 하면 공부가 더 잘되느냐? 조급해 하면 공부가 더 안 되느냐? 으흠. 조급해 하면 공부가 더 안 되구나. 그러면 쟤가 왜 조급한가? 엄마가 아~ 자꾸 너무 기대가 크다보니까 애가 엄마에 대한 부담을 안고 저렇게 조급해 하구나. 그러면 엄마가 아이의 공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려면 엄마가 기대를 좀 내려놔야 되겠구나. 그럼 아이가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게 되고, 아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면 애가 조급 안해지니까 불안해지니까 오히려 더 자기 나름대로 자기 공부에 더 충실할 수가 있겠구나. 이런 원리를 찾아서 아~ 내가 기대를 좀 내려와야 되겠다. 이게 아이한테 무거운 짐이 되구나.

 

그런데 애를 보면 자꾸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해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자꾸 기대하는 습관이 일어난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아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겠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에게 암시를 주는 거란 말이오. 그게 기도에요. 그래서 자기의 이러한 생각의 습관, 마음의 습관, 행위의 습관을 개선해가는 거를 수행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거는 머리 깎았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 길렀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그런 이치를 하나하나 찾아서 해결해 가는 게 수행이에요. 절에 와서 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자기마음속에 있는 이 욕망을 들여다보고, 이것이 나한테 손실이 온다고 자각하면 그러한 욕망을 조금씩 버려야 되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렇게 자기 정진을 하면, 바깥에 살면서 머리 기르고 자식 낳고 살아도 점점 부처의 길로 가는 거고, 그거를 내려놓지 못하고 그냥 욕심으로 살면 머리를 깎고 먹물 옷 입고 절에 살아도 그 습관은 그대로 남게 된다. 이런 얘기에요. 으흠. 그러니까 어떤 모양이 바뀐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어떻게 스님이 저러나? 하지만, 스님은 그런 문제에 아무 생각이 없어요. ? 그거는 스님의 모습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각자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살거냐를 생각해야지, 자꾸 남을 보고 얘기해봐야 아무 도움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 깨달음이라는 건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하지, 금강경을 얼마 읽었다. 뭐를 얼마 읽었다. 스님 법문을 얼마 들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들어서 네가 어떻게 됐느냐?는 거요. 들어서 네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느냐? 너의 삶에 어떤 변화와 효과가 있었느냐? 이걸 가지고 수행자다. 또는 불자다. 아니다. 하는 거란 말이오. 그 사람이 교회가도 마음을 살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해지는 거고, 절에 다녀도 마음을 안 살핀 사람은 맨날 괴롭게 사는 거고, 머리를 기르고 스님이 되어도 자기를 살피지 않는 사람은 저렇게 사는 거고, 신부나 목사가 되어도 자기 마음을 살피는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거고, 그래서 목사님 가운데도 훌륭한 인격자가 있고, 신부님 가운데도 훌륭한 인격자가 있고, 또 스님 가운데도 훌륭한 인격자가 있고, 안살피면 스님이 되어도 세상 사람보다 못한 스님들이 나타나고. 이런 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자기 문제점이 뭔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어요.

 

나는 결혼을 안했는데, 내가 결혼 안한 거를 문제를 삼아요? 안 삼아요? 안 삼으면 이게 문제가 안 되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은 자기가 40까지 50까지 결혼을 안 하면 그걸 문제를 삼으니까 뭐요? 문제가 되는 거요. 그러니까 문제를 안 삼든지 문제를 삼았으면 해결을 하든지. 그런 자세가 필요한 거요. 그 도를 여러분들은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이 얘기요. 그러기 때문에 도라고 하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도를 욕심으로 구한다. 이거요. 도를 욕심으로. 재물을 욕심으로 구하듯이, 지위를 욕심으로 구하듯이, 명예를 욕심으로 구하듯이, 도를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에 결국은 도를 얻지도 못하고 괴롭게 살아간다. 그런 건 어리석은 짓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