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559회 마음의 상처 치유

Buddhastudy 2013. 12. 19. 22:41

출처 YouTube

 

.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해가 되는데 그런 걸 자격지심이라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아직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안 되었다는 거요. 그러니까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뭔가 변화를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좋은데, 아까처럼, 저 학생처럼 마음의 분노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자기가 다치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보통 사람보다도 사회 정의를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마음고생이 많고 상처가 더 많아요. 그러다보니 항상 탈락하는 사람이 생긴다. 짐이 무거우니까. 쓰러지는 사람이 생긴다. 이런 얘기요.

 

그럼 정토회에서는 사회활동 하지마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상처를 먼저 치유해라. 그걸 가르치는 데란 말이오.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이 정토회 다니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경험을 가지고 그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을 도와줘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내야 돼. 그러면 그 사람들을 다가가는데 내가 아무런 부담이 없단 말이오. 그들을 도와주는 거니까. 내 필요에 그 사람을 데려오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내가 그때 상처를 입고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저 사람들 중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내가

 

~ 이렇게 마음공부 한번 해봐라. 그러면 치유되고 좋다. 나도 이거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어가지고 사실은 그 마음 수행한다고 몇 년간 제대로 전교조활동을 못했는데 전교조 활동을 아니고를 넘어서서 사람이 다 사는 건 행복하려고 사는 건데, 우선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원기를 좀 회복하고,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더라.” 그러니까 전교조 선생님들한테는 아카데미로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깨장을 보내려고 한다든지, 법문을 듣게 한다든지. 그 사람들에겐 오히려 이 길을 열어줘야 된다. 그러면 아카데미에 데려올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보수적인 사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전교조 활동에 반대하는 사람, 교장선생님 같은 분, 안 그러면 이런데 별 사회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오히려 얘기해가지고 이런 좋은 강의가 있으니까 한번 들어봐라. 이렇게 오히려 대상을 바꾸어야 돼. 그러니까 지금 전교조나 민노총이나 이런 사람은 사회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고, 이 사람들은 사회교육이 너무 도가 넘쳐서 지금 문제란 말이오. 이런 사람들은 뭐가 필요하냐? 마음공부가 더 필요해. 그래야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렇게 원기를 회복해야 그 사람들의 하는 일도 좀 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쪽으로. 또 지쳐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원기를 자꾸 북돋우는 일을 하게 된다. 이거야.

 

우리가 어떤 힘든 일을 할 때 그걸 함으로 해서 더 힘이 나는 게 있고, 함으로 해서 점점점점 자기 정신적 육체적인 에너지를 소진하는 게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지쳐버리는 게 있다는 거요. 수행이라는 것은 지치는 게 아니에요. 하면 할수록 더 힘을 내는 거란 말이오. 하면 할수록 힘을 내야 그게 일과 수행의 통일이지 하면서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그거는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수행은 아니에요. 그리고 이제 그저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가족밖에 모르고, 이런 사람들은 전체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미래는 보는 눈, 남을 보는 눈을 키워야 된단 말이야.

 

그런 사람에게는 마음공부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건 이런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갖는 게 매우 필요하다. 그러니까 홍보대상을 전교조 사람으로 하지 말고, 학교 안에 전교조선생 아닌 사람도 절반쯤 될 거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을 상대로 주로 사회의식은 홍보를 하고, 정토회 법회 나오라는 홍보는 주로 전교조선생님한테 하고, 그런 식으로 이걸 해야 되는데, 지금 본인이 지금 이걸 바꾸어서 하니까 마음에 내 마음에 부담이 생기는 거요. 내가 상처를 입었고, 그 활동을 하면서 상처를 입었고, 내가 그 마음공부를 해서 상처를 치유하니까 이익이 되잖아. 이건 내가 경험했으니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잖아. 그 사람들에게.

 

상처 없는 사람은 얘기할 필요가 없고, 상처가 좀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 하면, , 이거 한번 해봐라. 이렇게 얘기해줄 수가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럴 때 내가 마음이 털끝만큼도 거리낄게 없다. 이 말이오. 그다음에 내가 정토회 오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좀 더 나와 동떨어진, 또는 분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과 겸해서 정말 대중성을 갖고 세상을 변화를 하려고 하는 마음에 동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을 오히려 이런데 와서 인연을 맺어주어서 눈을 뜨게 하는 게 좋단 말이오.

 

물론 전교조 선생님들 중에 이런 사람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그건 자기들 오면 오고. 그거는 주로 데려오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관점에 서야 된다. 즉 절에 다니는 사람을 여기 자꾸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이런 데는 주로 교회 다니는 사람, 천주교 다니는 사람, 종교 없는 사람을 데려오고, 절이 오는 사람은 이런 데 데려올 필요가 없어요. 지가 오겠다면 몰라도. 그런데 우리는 늘 잘못 생각하고 있다. 절에 다니는 사람은 주로 어디 또 데려가야 되냐? 시민강좌. 예를 들면 딴 절에 다니는 친구들 있잖아. 그런 사람 있다면 시민 강좌 같은데 데리고 가야 돼.

 

왜냐하면 절데 다니는 사람보고 여기 오라 그러면, 같은 절이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불교신자가 더 오기 쉽지 않느냐 하는데, 약간의 그럼 이절 다녀야 되나? 저절 다녀야 되나?” 분별심이 생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자기가 선택해서 오면 되지, 그건 요청 하는 게 안 좋다. 오히려 교회 다니거나 이런 사람들은 불교가 어떤 건지 알고 싶어서. 또는 자기 교회에서 충족하지 못한 거를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이런 측면에서 이게 필요하다는 거야. 불교 믿으라고 데려 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전법을 하거나 할 때 대상을 잘못 선택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이 부담이 되는 거요.

 

절에 다니는 사람 여기 오게 하면, 나중에 또 딴 절에서 행사한다면 또 가줘야 되나? 안 가줘야 되나? 가줘야 돼. 이게 행사 위주로 생각하면 안 돼. 으흠. 그러니까 여기에 무조건 많이 데리고 와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마라는 거요. 여기에 필요한 사람이 와야 돼. 필요한 사람. 거기 강제 동원해서 많이 온다고 중요한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가 시민을 위해서 이 강좌를 열었어요? 이 강좌를 위해서 시민을 동원하는 거요. 시민을 위해서 강좌를 열었으니까 우리는 진솔하게 이게 필요한 사람이 와서 들어라. 이거지. 누구든.

 

그러니까 너 와라.” 이게 아니라. 팸플릿을 주면서 이런 강좌가 있는데, 한번 보고 필요하면 너 와서 들어라.” 이럴 때는 그 사람이 나한테 팜플렛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필요하면 가고, 내가 필요 안하면 안가면 되는 거요. 지금 이거 무슨 품앗이처럼 생각하니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이거요. 그래서 자기 마음공부 하는 거는 마음공부에 그치면 안 되고, 항상 정토회 목표가 뭡니까?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 두 번째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된다. 이걸 합하면 자유로운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인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수행의 일번 목표가 그렇게 되어있죠. 이것을 상구보리 下化衆生하화중생이라 그래요. 그런데 이 하화중생 하는 데는 이 세상의 이치를 알고 해야 돼. 어젠가 지금도 하고 있나? 지금 남북가족 금강산에서 모이고 있지 않습니까? 보니 참 눈물 나요? 안나요? 눈물 나지.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어요. 6.25전쟁 때 사람도 많이 죽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도 헤어져서 그 자기 자식을 부모를 형제를 부부를 이렇게 60년간 못보고,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오. 그런데 또 한국의 전쟁이 일어나가지고 또 무수한 사람이 죽고, 우리가 힘들게 건설해 놓은 많은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또 사람들이 이렇게 헤어지고, 또 증오심이 생기고. 그렇다면 이 민족은 공멸로 간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러 가지 갈등이 있더라도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풀려고 해야 되는데, 최근에 몇 년간 분위기가 어때요? 까짓것 한판 하자. 전쟁할 각오를 해야 전쟁을 안 한다.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통일이 돼야 민족이 비전이 있어요. 조그마한 섬 갖고 땅덩어리 그리 큰 중국하고 일본하고 러시아하고 미국하고 싸우는 거 보셨죠? 무인도 조만한 거 하나 놔 놓고, 그래도 우린 땅도 조그마한 사람들이 남한 땅보다 더 큰 북한가지고, 남의 것도 아니고 우리 건데, 그거 왜 그 차지할 생각을 안 할까? 난 참 이해가 안 돼. 욕심이 그리 없나?

 

그러니까 통일을 해야만이 민족에게 비전이 생겨요. 앞으로의 미래 경쟁에 주위를 둘러싼 강대국들에서 우리 민족이 비전을 가지려면 민족이 통일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통일이 좋다 하더라도 전쟁을 해가면서 하면 안 되겠죠. 그러니까 평화적으로. 그리고 통일을. 평화만 있고 통일이 없어도 안 되고, 통일을 위해서 평화를 포기해도 안 되고, 평화와 통일은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과제다. 이런 얘기요. 그다음에 정토회는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 사회에 의식은 있는데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치유를 받고 자기의 힘을 올바르게 써야 돼. 분노로서 표출하거나 이러지 말고.

 

우리가 부당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더라도, 분노로 하게 되면 제풀에 제가 나중에 꺾이는 게 있어. 분노 없이 정의감을 가지고 해야 꾸준히 오래 할 수가 있다. 이 말이오. 운동의 핵심은 순간적인 파워가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해야 그걸 운동이라 하거든요. 안 그러면 폭동이 일어나지. ~ 한번하고 끝나버리는 폭동 아니오. 폭동은 운동이라고 안 그래요. 그래서 마음공부를 꼭 그 사람들도 해야 돼. 그런 마음으로 오히려 편안하게 임하시고 도반들에게도 편안하게 얘기하고. 그걸 갖다가 자꾸 품앗이처럼 한번 와주고, 한번 가주고 이런 생각하지 마.

 

그들이 한 번도 안와도 필요하면 내가 뭐할 수 있다? 10번 가 줄 수도 있고. 정말 이것이 좋은 거라면 그들이 10번 오고, 그 필요 없는 건 내가 한 번도 안가도 괜찮아야 돼. 으흠. 저도 이렇게 인간관계를 보면 나는 한 번도 안가도 사람들이 10번 오는 경우도 있고, 그 사람들은 한 번도 안 오는데 나만 10번 가는 경우도 있고 그래요. 그것을 계산하면 안 돼요. 그런 거는. 그런 마음으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