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33회) 남편과 자식의 갈등

Buddhastudy 2011. 5. 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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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 잘 살아요. 지는 지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남의 인생에 자꾸 간섭을 하지 마라.

그런 애들에게 아버지가 돈 벌어서 생활을 하고 학교도 다니면서. 자기들 생각에 조금 마음에 안든다고 자리 뜨고, 아버지 불신하고, 그렇게 하는 거는 올바른 인생이 아니다. 내 생각, 어떻게 세상이 내 생각대로 되냐. 아들이 제 생각에 안 맞다고 아버지를 비난하면 아버지가 볼 때 아들은 아버지 생각이 맞겠어요?

 

그러니까 애가 어떻게 생각하는 건 애 자유지만은 그런걸 보고 엄마가 야단치는 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이해. 아버지가 너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하고 헌신을 했는데. 너희들 마음에 안 맞다고 금방 그렇게 아버지를 불신하고 그런 것은 상식적으로 인간의 의리상 안 맞아. 부모자식을 떠나서. 그건 자식의 잘못이지 아버지의 잘못은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기가 어디 가서든지 큰소리치든 뭘 하든 살 자유가 있는 거고, 우리는 그것을 담담이 지켜볼 자유가 있는 거지.

 

그 지금 아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고쳐. 3살짜리도 엄마말도 안 듣는데 어떻게 50, 60된 아버지를 젊은 애가 고치겠다. 고쳐지나? 안 고쳐지지. 늙으면 안 고쳐지는 거요. 생긴 대로 보고 사는 수밖에 없어. 새삼스럽게 지금 고치려고 그러면 부러져. 그래서 자꾸 사람이 변화면 뭐라 그래요? 천성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되간다. 그러잖아. 그지? 죽을 때가 다 되간다는 얘기는 부러진다는 얘기요. 항상 내 마음을 닦아야지 남을 고치려고 하지마라.

 

나도 내가 안 고쳐지는데 어떻게 지금 남을 고치겠느냐? 정말 남편을 위해서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싶으면 부인이 평소에 하루에 몇 시간씩 남편 얘기를 들어줘야 되. 부인이 남편이 부인 놔 놓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 실컷 하도록. 그렇게 해서 내면의 스트레스가 없으면, 하고 싶은 얘기가 없으면, 밖에 나가서 좀 덜 하게 됩니다. 오히려 고쳐줄려면 그렇게 해야 되. 그래서 항상 남편이 뭐라고 그러면 예. 그래요. 아이고 당신 말이 맞네요. 아이고 또 그 다음에 어떻게 하면 되요? 이렇게 옆에서 장단 맞추듯이 해서 항상 얘기를 실컷 하도록.

 

더 이상 예를 들면 가족 모임에 가서 할 얘기를 미리 다 나한테 불평이든 뭐든 다 해버리면 거기 가서 두 번하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하다가도 좀 줄어들어요. 그런데 그걸 다 못하기 때문에 거기 가서 하게 되고. 뭔가 심리가 억압이 되 있기 때문에 거기 가서 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 남편 중에도 이런 분이 있죠. 평소에는 말이 없고 조용하다가 술만 먹으면 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혼자 있을 때는 별, 둘이 있을 때는 별 얘기 없다가 대중들이 많이 모인자리에 가면 떠드는 사람.

 

그러니까 둘이 있을 때는 말이 많다가 대중들이 있는데 가서는 말이 없는 사람이 있고, 또 정 반대 되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릴 때 자랄 때, 뭔가 어느 순간에 계기가 있어서 자기가 말을 했는데 자랑삼아 했는데.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든, 부모한테 야단을 맞았든, 좀 속된 말로 해 쫑크를 먹어가지고 탁 말문이 막혀버려요. 그러면 늘 말하고 싶은 생각이 목구멍에 들어오되 말이 입 밖으로 잘 안 나와요. 또 야단맞는다는 그런 강박관념 때문에.

 

그런 사람이 술을 먹어야 얘기가 나옵니다. 술을 먹으면 말하고 싶은 무의식의 세계가 더 주도적으로 작용하거든요. 그래서 말이 많아지는 거요. 술 한 잔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거요. 그러니까 처녀 때 사랑을 고백할 때까지도 한잔 먹고 하는 사람 있죠. 한 잔 먹고 술 먹은 짐에 얘기한다면 이 사람은 술기운에 한다하면 뭐 사랑이 없이 한다 이게 아니라. 이 사람은 심리가 억압되 있는 사람이구나. 이걸 딱 꿰뚫어 봐야 되요. 몰라서 다 인생이 피곤한 거요.

 

한잔 먹으면 얘기가 많다 하면 아~ 심리가 억압 돼 있구나. 그러면 이 사람은 나중에 나이가 들면 어떠냐? 술에 취하면 고장 난 레코드판이 계속 돌아가는 거요. 이럴 때 듣기 싫다고 악을 악을 쓰죠. 또 시작이다. 또 그 말이다. 술 좀 그만 먹어라. 만날 먹으면 했던 소리 했던 소리 또 한다. 이렇게 되면 어릴 때는 부모한테 야단맞거나 선생님한테 야단맞으니까 자기 말이 좀 억압이 되도 항의를 못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억압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자식이거나 아내잖아요. 그죠? 그러면 이게 저항을 하죠. 오히려 집어 던지거나 행패를 피운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이거 안 고쳐져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하고 살기 싫거들랑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조용히 없어지는 게 좋습니다. 두 번째 그런 사람하고 그래도 같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받아줘야 되. 그걸 계속 받아줘요. 계속 받아줘서 그게 심리가 풀어줘야 됩니다. 그래야 고쳐져요.

 

그런데 뭐 내 살기도 바쁜데 술 먹고 헛소리 하는 거 어떻게 다 들어주노.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싸우면서 죽을 때까지 사는 거요. 그러니까 길은 두 가지요. 살려면 들어주고 풀어 주는 게 좋고, 못살겠거든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지는 게 좋고. 선택이오. 내 선택이오. 그 사람 비난할 필요가 없어요. 오늘 비가 오는데 갈까요? 말까요? 나한테 이렇게 물어봐요. 그건 네 문제야.

 

가고 싶으면 우산 쓰고 가면 되고, 가기 싫으면 비 핑계 잡고 안가면 되고.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간다면 어떻게 가겠냐 하면 우산 쓰고 가라, 장화신고 가라. 이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얘기요. 안 간다면 어떻게 하느냐? 그건 내가 해 줄 수 있는 얘기지만은 가고 안 가고는 여러분들 각자가 선택하는 거요. 살고 안 살고는 여러분 문제요. 스님은 살아라 안살아라 이런 말 할 필요가 없어요. 살려면 이렇게 해라, 안 살려면 이렇게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