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46회) 조바심이 생겨요

Buddhastudy 2011. 5. 23. 23:02

  방송 보기: BTN

 

. 내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거냐?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이 문제를 가지고 내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걸 더 중심에 놓고 먼저 보는 게 좋다. 결혼도 하기 전에 결혼하면 내 모습이 어떨지가 얘기 중에 이미 거의 드러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다. 이런 생각을 다 떠나가지고 자기마음을 좀 살피는 게 필요하다. 지금 이렇게 보면 엄마가 애들한테 잔소리 하듯이 선생님이 애들하고 그렇게. 애들에게 첫째 잔소리를 하고 있고, 두 번째는 엄마가 애들하고 조그마한 애하고 싸우잖아 그죠. 보면.

 

그런 것처럼 선생님이 지금 애들하고 싸우고 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교육효과가 덜 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 작은 애들하고 싸우면 안 돼요. 그리고 애들하고 잔소리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 음식 먹고 예를 든다면 청소를 아이들이 해야 된다. 그런데 애들이 안한다. 그런데 널브러진 걸 내가 도저히 내가 못 봐주겠다. 그러면 여기서 못 봐주는 거는 나의 문제입니다. 그건 교육하고 아무 관계없는 문제요. 널브러진 것을 못 봐주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선택을 해야 되요.

 

이것은 애들이 안하니까 내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걸 못 봐주는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첫째는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내가 치우는 거요. 나를 위해서 내가 치워야 된다. 나는 그런 거 못 봐주니까. 그래서 그냥 애들 일인데 내가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거를 애들이 보고 거들어 줄려는 생각도 하지 말고. 나는 이렇게 해 놓고는 내 승질이 못사니까. 그냥 끝나면 내가 화닥닥 치우고 다 정리를 해 버리는 게 낫다.

 

이거는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꼴 못 보니까 내 성질로 내가 하는 거요. 이렇게 내가 편안하게, 내 일로서 내가 그냥 할 뿐이지 애들하고 연결 짓지 마라. 애들이 밥 먹고 치워야 되는 것처럼 선생님도 밥 먹고 치워야지. 그걸 왜 애들만 치우라는 게 없잖냐. 그러니까 내 일로서 받아 들여서 그냥 내가 한다. 이거를 교육하고 연결 짓지 말고.

 

그래서 아이들이 보고 선생님을 본받아서 애들이 따라하는 일이 생기면 교육적 효과가 난거고. 애들이 아무도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내 밥 먹고 내 밥그릇 치우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야지. 요즘 애들이 영악하다. 선생님이 치우는데 어떻게 애들이 가만있나. 이런 생각 하지 마라 이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내가 미워하게 된다. 그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내가 미워하는 거는 선생님의 태도가 아니다. 교육적으로 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사랑하라고 돼 있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미워하라 이렇게 돼 있지 않다 이 말이오.

 

첫째 제 아이들을 제가 미워하니까. 이것은 교육적 효과도 아니고, 효과도 없고, 교육적 자세도 아니고. 두 번째는 나도 괴로운 일이다. 내가 어떤 선생님한테 배울 때 우리 선생님을 자랑스럽게 해야 나에게 좋고.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그게 나한테 좋은 거요. 그런데 지금 애들을 미워하게 되면 그거는 교육자로서의 태도도 아니고 내 인생도 행복하지가 못하다. 이런 얘기요. 그건 미워하는 이유는 내 일을 해야 되는 거를 자꾸 선생님이라는 상이나 이런 걸 가지고 보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일이 발생한다.

 

두 번째, 그러니까 첫 번째는 그냥 내 밥그릇 치우듯이 내가 치울 뿐이다 이거고. 두 번째는 내성질로 보면 내가 확 치우고 싶지만은 그러나 내가 교육자로서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치우도록 하는 훈련을 시켜야 된다 이 말이오. 이게 내 임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아무리 그 널브러진 게 꼴 보기 싫더라도 놔둬야 된다. 놔둬야 된다. 치우고 손대지 말고. 가만히 놔둬야 된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되도 그것이 치워지지 않는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사례를 모아야 된다. 사례를 모아서 애들하고 얘기를 나눠야 된다. 얘들아! 우리가 먹은 거는 우리가 치우도록 돼 있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은 이렇게 지난 삼일동안 그 각자의 자기 책무를 다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렇게 이 문제를 갖고 얘기를 해 봐야 된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가 밥 먹고 자기 밥그릇 안 씻고 그냥 내 버려두고 다닐 거냐. 집에는 어머니가 씻어 주니까 그렇다 치고, 학교에서는 각자 자기가 씻게 돼 있고, 자기가 치우게 돼 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자기 맡은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 성질이 급해서 지가 반 쯤 치워놓고, 그러니 애들이 볼 때는 엄마처럼 선생님이 치우고 있구나. 어리광을 피우는 거 아니요. 같이 좀 치우자 그러면 엄마처럼 자꾸 생각이 드는 거요. 잔소리 하는 것도 꼭 엄마 같고. 그러니까 배 아파요. 하고 어리광 피우면서 적당하게 넘긴다 말이오. 그럼 또 난 안달이 나가지고 애들 욕을 해 가면서도 자기가 치우고.

 

그러니까 그것은 교육적 효과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선생이 아이들을 교육적으로 훈련을 시키려면 선생님이 자기 성질대로 하면 안 된다. 냉정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리고 그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례를 몇 개를 마련해서. 처벌식이 아니라도 그 사례를 확실하게 내 놓고 얘기를 해야 된다. 그러니까 처음에 한두 번 이렇게 한 번 하자, 이렇게 하자 해도 그래서 애들이 따르면 좋은데. 그게 따라지지 않으면 사례를 딱 내서 해결을 해야 되고. 그래도 안 되면 선생님에게 주어진 만큼의 소위 처벌 권을 가지고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야단을 칠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심하면 매를 갖고 손바닥 정도 냉정한 마음으로 때릴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 복도에 손을 들고 서 있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느냐? 선생님이 해 보면 그런 게 있을 거 아니오. 저는 옛날에 어릴 때는 그런 권리가 있다 생각했지만 요즘은 체벌권이 많이 없어졌잖아 그죠? 그러니까 합당할 만한, 아이들도 동조하고 학부모도 이해하고 학교에서도 공유된 어떤 교육을 위한 처벌권이 있잖아. 그죠? 그것까지 발동을 해서 애들을 교육을 시켜야 된다. 이 말이오. 인간이 되도록.

 

월급을 주고 하는 거는 다 그렇게 교육을 시키라고 지위도 주고 월급을 줬는데. 내 버려두는 것은 선생님의 자기 책무를 반기하는 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둘로 나누어서 확실히 봐야 된다. 선생이길 떠나서 아이고 나는 마~ 더러운 꼬라지를 못 본다. 이런 것으로 자기 문제 개인문제라면 이것을 확실하게 개인문제로 돌려서 애들하고 연관 짓지 말고, 내가 청소를 하든지. 아니면 내가 아무리 그게 꼴 보기 싫더라도 그걸 냉정하게 억누르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이 그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든지. 그 둘 중에 선택을 해야 된다.

 

그게 뒤 섞이게 되면 나는 나대로 힘들고, 교육효과는 교육효과대로 안 나게 된다 이 말이오. ~ 그런 것을 자기를 보면서 어~ 내가 만약에 애를 낳아서 키운다면 남의 애도 이런 식으로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이러는데. 내 아이에 대해서는 어떻겠느냐? 이런 걸 생각하면 내가 좀 성격을 바꿔야 될 일이 있겠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함으로서 이것이 결혼 생활은 아니지만은 결혼생활을 했을 때, 또 아이를 낳아서 엄마가 됐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 할 건지를 미리 나를 내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니. 월급을 안줘도 이거는 해볼 만한 일이다. 수행 삼아 해볼 만한 일이다. 이렇게 살펴야 된다.

 

선생이라는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러나 사랑하지만은 그 사랑이라는 것은 그저 보살펴 주는 것만 사랑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책무를 다 하도록 엄격하게 도와주는 것도 선생의 사랑의 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