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56회) 엇나가는 아들을 위한 기도

Buddhastudy 2011. 6.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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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번의 큰 희망을 가져요. 그게 뭘까요? 하나는 결혼해서 남편 잘 만나서 행복한 거고, 또 그게 뜻대로 안되더라도 자식이라도 잘 키워가지고 늙어서라도 행복해 보고 싶은 건데. 그런데 대부분은 어떻게 되느냐? 결혼해서 남편 때문에 한평생 속썩어가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 번째는 자식 때문에 속상해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 만큼 우리가 행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이 결혼 부부관계, 그리고 부모자식, 이것이 도리어 인생의 괴로움의 근본이 되고 있다 이런 얘기요.

 

이 분도 예순이 넘어서 막내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고 답답하니까 이런 질문을 한 거 같애요. 그런데 자식의 문제는 다 나의 문제입니다. 자식을 아주 작은 세포부터해서 뱃속에 키우는 것도 내가 키운 거고, 그걸 낳아서 먹이고 키우는 것도 내가 한 거고, 또 그 자식이 정신적으로 어떤 본을 본 것은 다 엄마 품에서 본을 봐서 생긴 겁니다. 그 외에 다른 데서 본받은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자식의 문제가 생길 때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100% 다 나의 문제임을 알아야 된다. 이것을 딴사람 핑계로 돌리면 안 돼요. 아버지를 닮았다든지, 할아버지를 닮았다든지, 할머니를 닮았다든지. 이런 얘기하면 안 된다. 그것은 인과에 맞지가 않다 이 말이오.

 

공부를 얼마나 잘하냐? 이런 건 조금 별개입니다. 심리 상태. 이 자녀가 마음이 불안하다든지. 우울증이 있다든지. 신경질이 있다든지. 이런 마음의 문제는 엄마마음을 그대로 본받아서 형성이 된다. 여기서 엄마라는 것은 생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른 이를 말합니다. 만약에 양모가 길렀다 하면 양모를 그대로 본받는 거고, 할머니가 길렀다면 할머니를 그대로 본받는 거고, 유모가 길렀다면 유모를 그대로 본받는 거다. 그러니까 육체적으로는 생모라는 개념이 있지만은 정신적으로는 기른 자가 뭐에요? 어머니다. 그게 뭐 소속을 어떻게 두느냐와 관계없이 기른 자가 어머니다. 이런 얘기요.

 

그대로 본받는다. 딴 사람이 길렀으면 몰라도 내가 낳고 내가 길렀으면 다 나의 영향이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이 애를 낳고, 이 애가 어린 시기에 내가 부부간에 갈등도 많고, 가정의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서 그것이 경제적으로 어렵든 어떤 어려움이 있든 관계없이 본인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에 아이가 태어나고 자랐다. 이런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한 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을 볼 때마다 아~ 내가 저랬구나. 내가 그때 그랬구나. 이렇게 돌이켜 보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볼 때 좀 불쌍한 마음이 들어야 된다. 그 불쌍하다는 거는 그냥 거지가 불쌍하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나의 잘못으로 아이가 고생을 한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아이의 행동을 보고 조금 덜 미워하겠죠. 그래서 아이를 좀 포용하는 힘이 생긴다. 원인을 알게 되면 포용하는 힘이 생기는데. 원인을 모르고 엄마니까 무조건 해야 된다. 이러면 하다가 하다가 나중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애를 낳아 이 고생인가?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먼저 아이에 대해서 그 원인이 나한테 있고, 그래서 아이가 나로 인해서 아이가 지금 참 살아가는 걸 힘들어 하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가 그렇게 어려움에 몸부림 칠 때 진짜 엄마로써 등을 두드려 주고 따뜻하게 해 줄 수가 있다. 무조건 잘못한 거를 잘했다고 한다든지 무조건 받아들여라.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마음에서 아이에 대해서 연민을 가지고 포용해주고 격려하게 된다.

 

그럴 때 아이가 빗나가려고 하다가도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데. 엄마마저도 자꾸 불만을 토로하고 미워하고 이렇게 되면 아이가 어디 본래 자기마음이 불안한데다가 엄마마저도 그렇게 하니까 애가 심리적 안정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니까 자꾸 저항을 하고 화가 차고 그러니까 술 먹게 되면 폭행을 하게 되고.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애가 오히려 술을 먹고 취해서 오면 등을 두드려 주고, 또 애가 무슨 얘기를 하면 들어주고, 돈 달라면 돈 줘라. 이런 얘기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도와줘야 된다. 애한테는 기도할거 까지는 없고, 이렇게 아~ 저게 나로 인해서 애가 고생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포용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하는 행동이 못마땅하고 집안 돌아가는 꼴이 시어머니가 하는 게 다 못마땅해서 내가 불만을 토로하고 했지만은. 그것이 그건 내 입장이고, 그 남편입장이나 부모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꼭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다 누가 잘못한 게 아니라. 각자 자기식대로 사는 거요. 내 마음에 안 들면 어때요? 잘못한 거고, 내 맘에 들면 잘한 거고. 이렇게 된다. 그래서 옛 말에 어때요?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 이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불가에서 말하듯이 일체는 다 유심조다 이런 말을 하죠? 그런 마음을 가지면 비록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 심리는 안정이 된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그래야 됩니다.

 

어떤 외부환경이 나빠도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해야 되는데. 아이들이 나쁜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이들이 그런 환경을 못 보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환경을 보드라도 엄마가 흔들리지 않아야 그것이 아이를 보호하는 거다. 그런데 엄마가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흔들리는 존재가 됐다. 그냥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악다구니하고, 이제 이렇게 되면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우주입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엄마는 신이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 우주가 흔들리고 신이 흔들리니까 애가 어떠하겠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그때를 돌이켜서 그때를 돌이켜서. 그 아이가 자랄 어린 시절을 돌이켜서. 그때 남편한테 내가 불만이 있었거나 맺힌 거 있었던 거를 오히려 남편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지금 세월이 흘러놓고 보면 아~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이렇게 돌이켜서 여보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내 생각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당신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때 그래서 그런 행동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남편한테 참회 기도를 해야 되. 그 당시에 그런 마음을 냈으면 이런 문제가 안 생겨요.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누구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이런 기도 하라는 거요? 자식을 위해서 하라는 거요? 자식을 위해서 하라는 거요. 남편이 돌아가셨든, 이혼을 했든, 지금 살아있든. 이거하고는 무관하다 이 말이오.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나쁜 영상의 남편을 지워야 된다 이 말이오. 내 마음속에 있는 나쁜 영상의 남편을 지우는 방법은 내가 잘못하고 남편이 잘했다 그래야 내 속에 있는 나쁜 영상의 남편이 지워지지. 이걸 뭐 수술해서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직 나쁜 영상의 남편을 지우고,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내가 참회 할 때 나쁜 영상이 지워진다. 그래서 참회를 하면 업장이 소멸한다. 이런 말을 하는 거란 말이오.

 

물론 여러분들이 현재입장에서 절을 하게 되면 내가 왜 잘못했냐? 자기가 잘못했지. 자기가 나한테 참회해야지. 내가 왜 참회해야 되냐? 이런 오히려 불만이 생길 수도 있는데. 남편을 미워하면 결국 누가 괴롭습니까? 내가 괴롭습니다. 내가 손해다 이런 얘기요.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 인간 때문에 내가 괴로워 할 이유가 없잖아. 그죠? 그 인간이 어떻게 살든 나는 어떻게 해야 된다? 행복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려면 그의 입장에서, 그 남편의 어머니 같은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면 내 속에 있는 나쁜 영상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내가 편해진다. 이 말이오.

 

그렇게 내가 편해지면 이제 아이에 대해서도 내가 포용력이 생긴다. 남편의 그러한 잘못도 능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 아이에 대해서도 내가 능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참회 기도는 누구한테 하고? 남편한테 하고, 아이에 대해서는 그 원인이 나한테 있다 하는 관점에 서서 연민을 가지고 포용을 하는. 이렇게 갈 때 나도 행복해 지고 아이도 마음을 조금씩 잡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미 애가 서른 살이 넘는 성년이 되 버렸기 때문에. 어릴 때는 내가 약간 잘못해도 애가 100% 본받고, 내가 잘해도 100% 본받지만은. 애가 성년이 되 버리면 내가 이렇게 참회하고 변해도 아이에게 주는 영향이 어릴 때처럼 100% 그렇게 금방 가는 거는 아닙니다. 이미 형성 되 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 달리 영향을 줄 수 없다. 지금 야단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야단친다고 될 거 같았으면 벌써 됐죠. 도와준다고 될 거 같았으면 벌써 됐지. 지금은 이 수행 빼고 다른 무슨 방법으로 애한테 털끝만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자꾸 이렇게 괴로워하면 할수록 화만 준다. 나쁜 영향만 자꾸 주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