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1005회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포기하겠다는 남편, 어떡하죠?

Buddhastudy 2014. 10. 31. 21:34

" altHtml=""> 출처 YouTube

 

 

자기가 보기에 딴 여자하고 살겠다하는 그게, 그러니까 바람을 피웠다고 추궁을 하니까 그런 결론을 내렸어요? 자기 스스로 난 당신보다는 딴 여자하고 살고 싶다. 이혼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해요? 자기가 이혼을 하자고 먼저 얘기했어요? 그러면 그 사건을 알고 나서 그 문제라고 얘기하니까, 자기가 이혼하자 그래요? 양다리를 걸치겠다? 으흠. 그랬을 때 자기는 어떻게 하는 게 좋아요? 그걸 약간 용인하고 이 가정생활을 아이들을 위해서나 자기 생활을 위해서 가정을 지키는 게 나아요? 나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 짓은 못하고 산다. 이혼을 하고 애들하고 독립해서 경제적으로 좀 어렵더라도 그렇게 사는 게 낫다 싶어요?

 

그러니까네 그 남자가 그 여자를 끊고 돌아온다는 전제 위에 자꾸 생각을 하면, 내 인생이 그 남자한테 끌려가잖아요. 그럼 막연하잖아요. 그거 언제까지 할지, 어떨지 너무 길고 막연하니까, 그 남자가 그렇게 한다하더라도 그 남자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기 전까지는 그냥 이렇게라도 결혼해서 사는 게 낫겠다고 자기가 결론을 내리든지, 즉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어야 되잖아요. 왜 내가 남의 인생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잖아. 그 인간은 딴 여자하고도 재미도 보고, 가정도 유지하고, 저는 즐겁게 사는데, 뭣 때문에 나는 맨날 울고 바보같이 살 필요가 없잖아.

 

그러니 내가 빨리 머리를 굴려 이익을 계산해서 일부 지분을 주고라도 이 주식회사를 지키는 게 나한테 이익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가 선택을 하면 되고, 이럴 바에야 회사를 나누는 게 낫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혼을 하면 되는 거거든. 이건 이혼할 사유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결정을 못하겠다 이거에요?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보세요. 생각해 보시고 자기가 결정을 하면 되요. 이건 뭐, 그렇게 무슨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정에 큰 불행이기는 하지만, 이거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인생사에요. 그래도 교통사고 나서 남편 죽는 거 보다는 이게 낫잖아요. 안 그래요? 기분으로 따지면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애들을 장기적으로 키우려면 살아있어야 나중에 애들한테 돌아갈 아빠라도 있고, 만나 볼 아빠라도 있잖아. 죽어버리는 거 보다는 나아요. 감정은 안 그렇겠지만. 그래서 이게 그렇게 지금 생각하면 여러분들에게 눈이 캄캄한 큰일이지만, 길게 보면 또 죽을 때 되어서 이래 생각해보면 별 큰일도 아니에요. 이런 얘기하면 또 스님은 안살아보니 그런 얘기하지. 이러겠지. 그러니까 이것은 그 남자의 행위가 좋다 나쁘다에 너무 초점을 맞추면 안 되고, 이 일어나버린 현실 속에서 내가 어떤 걸 선택할거냐는 나의 문제에요.

 

북한이 나쁘다고 아무리 얘기한다고 해결이 안 돼요. 이 북한의 이 현실에서 우리의 안정과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 이 상태에서 어떤 선택을 할 거냐? 하는 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이지, 욕한다고 해결이 안 된다. 이 말이오. 이 남편의 선택에 따라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거냐하는 문제라는 거요. 자기는 아이들 키우는데 남편이 있고 없고 이거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다만 남편을 미워하게 되면 아이들이 나빠지는 거요. 이혼을 하고 같이 살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리고 이혼을 하면 경제적으로나. 자기 직장 나가요? 그러면 이혼을 하면 재산분할할 거는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이혼 하는 게 나아요? 좀 더 있다 이혼하는 게 나아요? 재산상 이익은? 별로 달라지는 거 없어요. 자기가 인생을 선택하세요. 이런 남자하고는 사람이 아무리 좋고 하지만, 이런 사람하고는 나는 못살겠다. 혼자 살든지 재혼을 하든지 해야지 못살겠다. 이런 쪽이 강하면, 이혼 청구 소송을 해서, 아이는 내가 책임지고 키우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정리하고 살고, 그 다음에 굳이 지금 이런 사건이 있다고 해도 이런 사건이 있은 남자라도 감정을 떠나서 보면 내가 어디 가서 만난다고 이 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겠으면, 뭐 혼자 사는 거 보다는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들어오는 남자하고 사는 게 낫지 않겠냐?

 

이렇게 계산을 해보고 그게 낫겠다하면 그냥 유지를 하면 되요. 그래서 뭐, 돌아오면 또 돌아오는 데로 살고, 자기가 먼저 이혼하자면 누구든지 먼저 이혼하자면 나중에 이혼할 때에 약간 유리해집니다. 아까 누가 먼저 사겠다든지 팔겠다하면 한쪽에서 좀 흥정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어차피 지도 지 유리한데로 양다리 걸치려는데 나도 내 유리한데로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어느 거 선택할래요? 결정 못하겠어요? 집에 가서 조금, 지금 선택 못한다는 거는 뭐요? 이익이 지금 반반이라는 얘기네. 으흠. 그러면 집에 가서 한 100일만 참회 기도를 해보세요.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하면 이 사건을 갖고 논하지 말고, 그동안에 살아오면서 당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런 결과가 일어났다는 건 단순히 사건이지만, 이 사람 내면에는 이런 잠재된 어떤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 아니오. 그죠? 그러니까 그 문제를 두고 내가 어떤 문제에서 그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참회기도를 하다보면 마음속에서 뚜렷이 결정이 납니다. 스스로. 첫째는 , 그래.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살면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자.” 이렇게 결론이 나든지. 아니면 그렇다 치더라도 이 사건 자체는 잘못된 거니까, 미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선택도 존중하고 나도 내 인생을 사는 게 낫겠다.

 

나보다 딴 여자 더 좋다고 하는데, 거기 내가 빌붙어서 살 필요가 뭐가 있겠냐? 이건 돈 문제도 아니고, 자존심을 넘어서서 지도 지 인생 살 권리가 있고, 나도 내 인생 살 권리가 있으니까 따로 사는 게 좋겠다.”하면 그렇게 기도하는 중에 이게 지금은 결정이 안 나는데 기도하면 식이 맑아지니까, 이제 자기 내면이 더 정확하게 나타나서 둘이 둘 중에 결정이 나든지. 안 그러면 세 번째는 자기가 먼저 이혼하자고 덤벼서 결론이 나든지. 그러면 나는 어쨌든 머리 안 써도 되잖아. 그죠?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내가 뚜렷해서 결정이 나든지, 상대가 먼저 결정을 내버리든지, 그럼 이 문제는 내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 인연을 따라서 대응하면 되기 때문에. 그러면 기도를 먼저 해보세요. .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런 거예요. 이런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게 행복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 게 자유도 아니에요. 우리가 살다보면 얘기치 못한 일은 늘 일어납니다. 결혼할 때 저렇게 바람피울 거라는 거 생각했어요? 안했어요? 애기 낳아서 키울 때 애들이 저렇게 말썽 피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했어요? 사업 시작할 때 부도날 거라고 아무도 생각 안했어요. 그러나 살다보면 이런 일이 생길 때도 있다. 이런 일이 안 생기게 해주세요. 가 우리가 수행하는 목표가 아닙니다. 생길수도 있고 안생길수도 있는 세상일에, 즉 생길가능성은 뭐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 상황에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한 거요. 그러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떤 자세로 삶에 임해야 내가 행복해지겠느냐? 하는 문제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계속 상황에 끌려 다니는 거요. 그래서 자신의 행복을 놓쳐버리고,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으흠. 그런데서 불성이 있다. 이렇게 말할 때 여러분들은 불성을 뭐~ 어디 가아를 없애고 진아를 찾으면 불성이다. 어디 심장에 박혔다. 뇌에 박혔다.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종교가 자꾸 허황 되는 거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남녀에 관계없이 민족에 관계없이 종교에 관계없이 신체장애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 처했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 말은 행복할 수가 있다. 이게 모든 인간은 다 부처가 될 수가 있다. 이거요. 다 부처가 될 수가 있다는 얘기는 그 얘기에요. 그런데 스스로 부처되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 즉 행복해지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는 거요. 다 가능성은 열려있는데, 거기에 그 길을 포기하고 괴로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그의 인생이고, 거기서 그 상황에서도 행복과 자유를 찾아서 나아간다면 그것도 그의 선택이에요.

 

그러니까 자꾸 주어진 조건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가 있다.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안 되었다는 그 한 가지 집착에서 자기를 자꾸 불행에 빠뜨리는 거요. 과거의 기억 때문에 자꾸 불행에 빠뜨리는 거요. 미래에 내가 뭐되어야하는 그 욕망 때문에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거요.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들은 고통 속에서 사는 거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이것도 제대로 발휘 못해요. 에너지를 다 괴로워하는데, 미워하는데, 다 써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첫째 이걸 알아야 된다.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행복 할 수가 있다. 나는 그 길을 가야 되겠다.

 

두 번째, 이렇게 하면 행복해진다는 거 아는데, 지금까지 살아 온 잘못된 삶의 태도, 자세 때문에 그게 안 돼요. 아는데도. 이거 왜 그러냐? 이건 담배 끊으면 좋다는 거 아는데 습관이 들어서 안 끊어지는 것처럼, 이 사고의 잘못된 사고의 이 습관, 이걸 까르마라고 그래요. 이 업식 때문에 안 돼요. 이거는 부단한 노력, 즉 연습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실수를 해 가면서 ”, 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 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꾸준한 정진이 필요한 거요. 정진이라는 것은 쉼 없이 계속 되는 노력을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 법문 듣는다고 끝나는 거 아니오.

 

이 법문을 듣는 거는 어리석은 생각을 깨우치는 거고, 그 다음에 그러면 해결이 되는 것도 있고, 그래도 또 그 생각에 빠지고, 또 그 생각에 빠지고 하는 거는 자꾸 돌아오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진을 해야 된다. 이 자리에 참가한 사람이 그게 뭐, 불교인이냐? 기독교인이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자세가 필요한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처지를 자꾸 비관하지 말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뭐하다? 행복하다. 늙어서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늙으면 좋은 점이 얼마나 많은데. 눈이 희미하니 꼴 보기 싫은 거 안 봐도 되고, 귀가 잘 안 들리니까 나쁜 소리 안 들어도 되고,

 

또 어때요? 젊으면 여기 묻는 게 뭐요?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 취직은 어떻게 하느냐? 애는 어떻게 낳느냐? 애는 어떻게 키우느냐? 이런 고민 내 하잖아요. 늙으면 이런 고민 다 이제 안 해도 되잖아. 공부할 일이 있나? 취직할 일이 있나? 애 키울 일이 있나? 얼마나 좋으냐? ~ 자기 처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봐야 되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현재, 좀 더 행복해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