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54회] 이혼하고 어머니와 살고 있는데 불편합니다

Buddhastudy 2016. 2. 24. 18:42


 

끝은 없어. 방법도 없고. 자기는 숟가락도 안 들고 자꾸 배부른 것만 찾는데. 뭐가 힘든지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그건 막연해. 실제로 내가 지금 당면한 일 중에 회사일이든, 인간관계 일이든, 집안일이든, 딱 걱정 되는 게 구체적으로 뭐냐는 거요. 그중에 어떤 게 지금 제일 문제냐는 거야. 뭐가 힘드는데?

 

애기는 있어요? 몇 명이나? 으흠. 그 집에도 다양성이다. 그죠? 그것도 아주 좋은 현상이요. 세계 평화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연습이에요. 우리가 앞으로 다양한 종교와 공존하는 거를 한 집에서도 공존해 보는 연습은 아주 좋아요. 그거 나쁜 거 없어.

 

그러니까 기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자꾸 걱정하니까, 기도를 해도 그런 걱정이 잘 안 없어지니까, 죄 없는 기도를 탓하는 거지. 관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돼.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위해 줘야 되요? 자식이 부모를 위해줘야 되요? 어린 자식일 경우에. 확실해? 자기가 부모로서 입장이 분명하냐는 거요.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어야 돼? 아이들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어야 돼?

 

그럼 내가 애들 보고 싶다. 이건 내 필요요? 애 필요요? 그래. 자기는 자기 필요에 애를 수단으로 지금 쓰려고 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까 그 관점이 잘못 된 거요. 그러면 아이들 필요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거냐?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할 거냐? 이게 지금 부모로서의 해야 할 역할이야. 자기가 지금 부모로서의 역할이 아니라는 거요. 어린 애처럼, ‘내가 애 보고 싶은데 못 본다.’ 이거 갖고 지금 어리광 피우는 거요.

 

그러니까 이거는 아주 어린 애 같은 사고이기 때문에, 아무리 절을 하고, 절에 다녀도, 이걸 근본적으로 안 바꾸면 자기가 지금 어른이 아니라는 거요. 애지. 덩치만 어른이지. 지금 애하고 똑같아. 애들이 장난감 안주면 울고불고 하는 거 하고 똑같다. 내 보고 싶은 거 지금 못한다고 지금 속상해하고, 그걸 지금 안 해주는 아내를 미워하고 이런 거는, 장난감 안준다고 자기엄마 미워하는 거 똑같은 거 아니오. 그러니까 생각을 딱 바꾸어야 돼.

 

내가 애 아빠라면, 내가 아이의 부모라면 아이가 자라는데, 도움 되는 일을 내가 해야 되겠다. 그걸 위해서는 내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설령 죽는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내 할 일은 해야 되겠다. 이게 부모마음이라는 거요. 둘이서 결혼해서 살 거냐? 별거할 거냐? 이혼할 거냐? 이거는 나하고 아내하고, 어른과 어른의 문제이지, 우리가 이혼을 해도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부모고, 한 집에 살아도 애들에게는 부모고.

 

그러니까 우리 문제하고 애들 문제하고를 섞으면 어른들 아내하고 나하고의 갈등으로 이 문제를 애한테로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 두 가지에요. 애들이 아빠를 보고 싶다면, 내가 아무리 다른 일이 있고, 재혼해서 아내가 있다 하더라도 애들을 위해서 가줘야 되고, 애들이 필요하다면 뭐든 도와줘야 돼. 그래서 자기가 지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뭐든 찾아서 하려고 해야 되는데, 아이들이 지금 몇 살 몇 살이오?

 

조금 커서 다행이다만은, 그러면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현재로서는 누가 필요해요? 엄마가 필요하죠. 아빠보다는 누가 더 필요하다? 엄마가 더 필요해. 그런데 엄마가 성질내고, 짜증내고 이러면 아이들 성장에 굉장히 나쁜 영향을 주는 거요. 그런데 엄마가 행복하고 편안하면 아이들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거요.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을 위하는 길은 그 엄마를, 애들 엄마를 내 아내라서가 아니고, 애들 엄마를 내가 좀 편안하게 해줘야 돼.

 

그래야 아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게 돼. 그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 우선 생활비를 좀 보내준다. 그래서 애들 엄마가 좀 편해지도록,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그 다음에 가끔 전화를 할 일이 있거나, 뭘 할 일이 있더라도 얼마나 힘드니, 애들 둘 키운다고 힘들지?” 이렇게 위로를 해주면, 그게 바로 내 아이의 보모 아니야. 내가 두 아이를 거기 맡겨놨으니까, 그게 비록 내 옛날 과거 아내가 아니고, 비록 보모라 하더라도 아이를 위해서는 그 보모를 항상 편안하게 해줘야 되는 거야.

 

그래서 자기의 관점은 이거를 내가 애를 못 본다. 어쩐다.’ 이런 관점에 서지 말고, ‘내가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을 좀 해줘야 되겠다.’ 나는 아이 안 봐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내가 역할을 좀 해줘야 되겠다. 그럴 때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도움 되는 일, 그게 경제적으로 필요하다면, 좀 도와주고, 내가 딴 걸 좀 아끼더라도. 두 번째는 아내 마음을, 아이 엄마 마음을 조금 편안하도록 위로해주는 게 필요하다. 일부러 전화해서 위로해주겠다. 이러지 말고, 전화할 일이 있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내가 생각을 확 바꾸어 버려야 돼.

 

상대가 나한테 욕을 하고, 앙탈을 해도, “아이고, 아이 엄마가 저런 마음 내면 아이들한테 안 좋은데,” 이렇게 해서 아이고, 미안하다.”해서 내가 져주고, 이렇게 해서 아이 엄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재혼을 하겠다. 그래서 내가 애를 보겠다. 이런 목표를 세우면 안 돼. 그거는 너희들 좋다면 너희들 살아라. 언제까지? 20살 될 때까지는 그런 역할을 해줘야 돼. 내가 재혼을 하거나 뭘 하거나 그건 내 선택이니까 괜찮아.

 

그러나 이 아이와 이 엄마를 내가 아이를 위해서 아이 엄마도 도와줘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내어야 돼. 그런 마음을 내면 지금같이 이런 거 많이 없어지지. 첫째는.

 

그 다음에 엄마하고 사는 건 힘들 수밖에 없어. 젊은 여자하고도 못살아 헤어졌는데 늙은 여자하고 어떻게 살겠어? 당연한 거야.^^ 자기가 선택을 잘못한 거지. 이왕지 여자하고 살 바에야, 나 같으면 늙은 여자보다는 젊은 여자가 나은데, 자기가 지금 젊은 여자는 쫓아내고 늙은 여자하고 같이 살려니까, 힘든 거 당연한 거야. 그래서 내 생각은 그래. 갈등을 자기가 해소를 못하면 같이 안사는 게 제일 좋아.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이미 따로 사는 게 제일 좋아.

 

부모하고 같이 살면, 엄마는 엄마의 역할도 하지만, 이미 자기가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자기가 엄마로부터 자꾸 도움을 받는다면 자기가 아직 어린애란 얘기고, 그러니까 자기는 엄마는 지금 실질적으로 예를 든다면 부부관계만 안할 뿐이지, 아내의 역할을 하는 거란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앞으로 결혼의 필요성, 이런 걸 별로 못 느낄 수도 있어. 성적인 문제만 어디 가서 해결을 하면 그냥 아무 사는데 지장이 없는 이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어머니로서는 당연하지. 어머니는 지금 혼자 살아요? 아버님 하고 같이 살아요? 안 계셔? 어머니도 지금 아들인 동시에 누구다? 남편 삼아 사는 거기 때문에, 지금 헤어지기 싫은 건 너무 당연한 거야.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두 가지 길이에요. 이게 어머니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아내하고 내가 못살았는데, 젊은 여자하고 못살았으니, 늙은 여자하고도 제대로 살아봐야 될 거 아니오. 그래서 이거를 생각을 확, 바꾸어서 , 하면서 사는 연습.

 

그러니까 어머니하고 사는 연습이 되면 나중에 아내하고도 사는 연습이 되니까. 재혼을 하더라도. 그러니까 거기에 같이 사는 연습을 수행삼아 하든지, 아니면 이거는 수행적으로는 같이 살아도 괜찮아. 수행삼아. 수행으로 연습대상으로 삼으면 되니까.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부부관계는 극복해야 할, 꼭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건 20살이 넘어버리면, 이미 이건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에 꼭 극복해야 될 거는 아니야.

 

그러니까 극복을 내가 수행자로서 극복하겠다고 하면 같이 살면서 극복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거는 살림이 따로 살아도, 부부가 따로 살면 피해자가 생긴다는 거요. 자식이라고 하는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만, 이거는 아무 피해자가 안생기기 때문에, 그냥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잘하고 못하고 이런 거를 떠나서, “저는 저대로 살겠습니다.” 심리적으로 이건 있어요.

 

그러니까 엄마하고 같이 살면, 어쨌든 나도 필요로 한 일부가 엄마가 채워주고, 엄마도 필요한 걸 일부 채워주기 때문에, 엄마도 같은 또래의 영감 만나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자식 때문에 가질 수가 없고, 눈치 봐야 되고, 자기도 지금 어떤 그런 기회를 갖기가 어려워. 우선 무의식 세계에 필요성도 별로 없고, 또 만나면 눈치를 집에 사람이 오거나 가거나 이럴 때, 눈치를 볼 수도 있고, 그리고 또 오는 여자도 와보니까 뒤에 늙은 여자가 하나 붙어 있으면 썩 내키지가 않고 그래.

 

그래서 이건 따로 사는 게 좋다. 기본 원칙은 따로 사는 게 좋고, 그러나 내가 한 3년이면 2년이면 수행삼아, 엄마하고 같이 사는데 내가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이런 수행의 목표를 탁 정해놓고, 사는 거는 굉장히 좋아. 엄마하고 사는데 갈등이 없이 화목해지는 목표에 내가 다달 한다면 아내하고 재결합 할 수도 있고, 또 딴 여자하고 재혼할 수도 있다. 이것도 안 되면, 늙은 여자하고도 못살면, 젊은 여자는 요즘 더 말 안 들어.

 

이 늙은 여자하고도 비유 맞추고 못살면, 젊은 여자하고는 못사니까, 이거 수행삼아 한번 해보자. 딴 여자하고 연습하려면 또 부담이 되는데, 이건 아무 부담이 안 되는 여자니까. 연습 삼아 한번 해 본다. 이렇게 수행 목표를 딱 정하고 한번 살아보면, 괜찮겠다. 그러니까 막연히 기도하지 말고, 아이들을 위한 부모로서 내가 부모의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내가 미워해서 돈 안 보내.” 이러지 말고, 그거를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는 아이의 엄마를 편안하게 해줘야 돼.

 

나하고 살고 안 살고, 자꾸 목표로 살면 안 돼. 딴 남자하고 결혼해서 살더라도 내가 도와줘야 돼. 마음이 편안하도록. 왜냐하면 아이에게 영향을 주니까. 그래서 그런 마음이 되도록. 물론 아이 아빠로서의 마음이 아니고, 부부로서는 또 기분 나빠요? 안 나빠요? 기분 나쁘지만, 그걸 극복을 해야 돼. 부모로서 돌아가는 마음을 내고. 그 다음에 엄마하고의 관계는 내가 누구하고 같이 사는 것에 나의 자유로움을 얻은, 그러니까 아까 비가 오고 안 오고를 따지지 말고, 비가 오더라도 상관없는 그런 것이 안 되나? 되나를 봐야 돼.

 

부모로서 모셔야 된다. 의무감 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어. 그건 자기가 나가 살아도 되고, 같이 살아도 되는데, 1년이라도 한번 연습을 한번 해 보자. 이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탁 가지고 수행을 해야 수행에서 아침에 수행하면서 내가 뭐가 안 되는지를 알 수 있단 말이오. “. 내가 또 안 되구나. 이게 또 안 되네. 또 안 되네.” 이런 게 있어야 바짝 붙어서 극복을 하려는 원이 생기지, 그렇게 막연하게 하면, 이게 무의식에 깔려 있는데, 안되지. 회사는 부차적이야. 두 개의 과제를 갖고 한번 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