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67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Buddhastudy 2016. 4. 15. 15:34



  

이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만 현재 잘 안 된다. 이거 문제 아니오. 그죠? 이건 뭐가 필요하다? 연습이 필요한 거란 말이오. 연습은 꾸준히 그냥 해나가는 거지 여기 새로운 방법은 없는 거요. 연습부족이기 때문에. 안하던 걸 하니까 연습부족이니까 연습하는 게 수행이니까, 그걸 알아차리고 꾸준히 해나가는 거지. 그거 뭐 달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오. 질문은 특별한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느냐 이런 생각인 거 같은데.

 

그런데 보통 사람 같으면 떨어져있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이 살자는데 같이 살아야 됩니까? 라든지, 안 그러면 난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든지 할 때는 안살아도 되요. 그러니까 모시고 살면서 원수가 되는 거 보다는 같이 안사는 게 낫다. 이 얘기에요. 그런데 자기는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그지? 이미 들어와서 살아요? 안 살아요? 살고 있잖아. 지금 방을 하나 얻어서 어머니를 옆집으로 내놓을 그런 가능성은 별로 없잖아. 그러니까.

 

그러면 같이 살면, 노인을 어떻게 모시고 살아야 되느냐? 하는 문제 아니야. 그러니까네 결혼을 해서 살거냐? 항상 물어보잖아. 부부간에 갈등이 있으면 우선 살껀지 안 살껀지, 안 산다하면 방법이 필요가 없는 거고, 살겠다하면 이왕지사는 거 갈등을 일으키고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렇게 한다면 우선 어머니에게 자기가 그냥 안 고마운데 자꾸 고맙다 고맙다 하는 것도 거짓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기도를 하면 안 돼.

 

참회도 안 되는 걸 자꾸 참회해라. 그렇게 하면 그게 속이는 거기 때문에 오래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어머니와 살면서 구체적으로 자기가 지금 뭐가 힘드는지, 두렵다면 뭐가 두려운지를 먼저 살펴서 왜 이게 문제가 되는지를 찾아야지, 그냥 통상적으로 감사하자. 그러니까 마음에서 감사가 안 되는데 어떻게 감사를 하며, 참회,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자꾸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그런다고 참회가 되느냐.

 

일본 사람들 봐라. 아베 봐라. 뭐가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사람보고 자꾸 잘못했다고 하라니까 오히려 더 악에 바친 소리를 자꾸 더하잖아. 그죠?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일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생각해야 돼요. 여러분들은 동해바다를 국제회의에서 뭐라고 해 놨다? Sea of Japan라고 서 놨죠. 그래서 지금 그걸 갖다가 애를 애를 써서 East Sea로 바꾸었단 말이오.

 

그러면 두 나라에서 하나는 자꾸 Sea of Japan라고 그러고, 하나는 자꾸 East Sea라고 하는데 Sea of Japan이 원래 이름인데 한국 사람이 자꾸 East Sea 하자고 그러니까 그럼 East Sea로 같이 병기, 같이 해주자. 이렇게 된다면. 그런데 지금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하면 독도는 그동안에 독도로만 쓰여 있었단 말이오. 그럼 일본사람이 다케시마라고 쓰자.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미국 사람이 볼 때는 Sea of Japan라고 쓰는 걸 East Sea라고 같이 병기해주듯이 이것도 독도라고 지금까지 써왔는데, 또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은 다케시마라고 하겠다. 그러면 다케시마라고 병기를 해야 되지 않겠냐. 3자가 볼 때는 그런 생각이 들까? 안 들까? 들 수 있겠죠. 역사적인 내용도 잘 모르니까.

 

그러면 어느 게 이익이고 어느 게 손해요? 그러니까 일시적으로는 이익이 된 게 이익이 아니라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걸 얘기할 때는 항상 잘 살펴서 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방문을 하는 거는 한국대통령으로서 마땅한 일이에요. 잘못된 거는 아니에요. 그러나 고시기에 방문함으로 해서 대통령이 안 갔으면 조용할 일을 대통령이 감으로 해서 일본에 대서특필이 되고 일본사람입장에서 일부만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게 일본에 상당부분 대중화되었다. 이런 얘기요.

 

이런 거는 나쁜 행동이라기보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고뇌는 어리석어서 생기는 거요. 나빠서만 생기는 게 아니에요. 어리석어서 생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이게 지혜로워지는 거니까.

 

자기가 지금 어머니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면서 아까 점점 두려워진다. 그러면,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뭔지를 먼저 살펴야 돼. 어떤 문제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두려워하는지. 그걸 살펴서 해결을 해야지, 그냥 부모를 모시니까 참회를 하고, 감사를 해야 된다. 이렇게 억지로 하는 거는 하느님 무조건 믿고 무조건 빌면 다 풀린다. 이런 애기와 아무차이가 없는 거다.

 

그래서 이 즉문즉설의 일부 폐단이 이런 거요. 거기에 유튜브 찾아보고 그냥 지가 지맘대로 기도문을 만들어가지고 그냥 , 자식은 부모한테 무조건 참회해야 되구나. 감사해야 되구나.” 이런 식으로 반푼수 집안 망하게 한다.’ 이런 말이 있잖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무엇이 두려움이냐 에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뭐가 두렵냐? 이런 얘기요.

 

그런 거는 기도하고 관계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인도성지순례가려고, 가고 싶은데 집에 강아지 때문에 못가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방콕에 있는 어떤 보살은 고양이 때문에 못가요. 어떤 사람은 강아지 때문에 못가고. 또 시골에 있는 우리 보살님들은 소 때문에 못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그런데 이 강아지 때문에 못가고, 고양이 때문에 못가고, 소 때문에 못 가는데, 그래도 제일가기 쉬운 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강아지 때문에 못가는 사람도 있는데, 어머니 때문에 못가는 일이 뭐 그렇게 억울한 일이냐는 거요. 자기가 강아지 때문에 못가면 이렇게까지 나한테 질문을 안 할 건데. 그러니까 이럴 때 미워하는 것보다는 가는 게 낫다. 그러니까 두 가지 길이에요. 그래 너만 놔놓고 놀라가는 게 되나. 그러니까 어머니가 허락하는데 23일 정도로 자주자주 갖다오는 방법이 하나있고,

 

그 다음에 어머니가 그렇다하더라도 남편하고만 의논이 되면 여보, 어머니 저렇게 계시고 두고 가는 거 나도 마음이 안 좋지만, 애들도 이제 다 컸고, 사실은 어머니를 내가 모시기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나도 이제 당신하고 함께 조금 여행도 하고 싶다. 이게 내 소망인데, 당신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래서 좋다이렇게 허락이 나면 그럼 아까 누구에요? 시동생한테 전화를 하든지, 전화를 해서 이렇게 조금 돌봐달라고 하든지, 조금 모시고 가든지, 또 딸은 없어요?

 

글쎄 그거는 어머니 마음이고, “혼자 계시겠어요? 가서 계시겠어요?” 그걸 안가겠다. 당연히 그렇지. , 여기 있는 게 편한데 뭣 때문에 가려고 그러겠어요. 그러나 나는 가야 되니까 여기 그냥 불편하더라도 가끔 와서 돌봐주시면 혼자계시겠어요? 가시겠어요? 그러니까 가지마라하더라도 가야됩니다. 어머니. 이번에는 갖다 와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선택을 갈 거냐? 말거냐?를 묻지 말고, 가는 건 정해놓고, 여기계실건지, 딸래 집에 가서 계실건지를 물으란 말이오.

 

그렇게 해서 선택을 하시도록. 그런데 거기 남편마저도 어머니에게 그걸 해서 남편의 동의가 얻어지지 않으면 그건 어머니 때문에가 아니고 남편이 동의를 안 하는 거다. 그러니까 남편이 어머니 때문에 동의를 못해도 그건 누구책임이다? 남편책임이지 어머니책임은 아니다. 이렇게 봐야 되는데, “우리남편이 저런 거는 어머니 때문에 저렇다.” 그래서 그냥 어머니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거요. 이건 남편의 결정이지. 그러니까 남편이 결정하면 그냥 가면 되요.

 

그러니까 갖다오고 오히려 약간 미안하니까 더 잘해주는 게 훨씬 낫지, 안가고 미워하고 이게 훨씬 더 불효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가고 싶으면 가면 되요. 그런데 자기 남편 없이 홀몸이면 그냥 가버리면 되요. “어머니 그냥 밥 좀 끓여먹고 계세요. 갖다오겠습니다.” 이렇게 가버리면 되는데, 이게 같이 가려니까 남편 허락을 얻어야 되니까 남편하고 의견을 맞추는 게 1번이고, 두 번째 어머니는 부차적인 거요. 결정이 나면 어머니한테는 둘 중에 하나 하시라. 여기 계시든지 가시든지.

 

계시겠다하면 딸래하고 동생한테 연락해서 좀 돌봐줘라.” 내가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다 해줘요. “안 그러면 너희 모시게 해버린다.” 이렇게 협박을 하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이 정도 한 열흘 봐줘라. 닷새 봐줘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 그런 거 얘기할 때는 눈치보고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 다음에 안 그러면 모시고 가서 너희도 한 열흘 모셔봐라.” 이렇게 딱 하고 갖다오고. 그러니까 어머니 때문에 내자유가 없다 하는 게 효가 아니고, 그게 불효에요. 내 인생을 어머니가 망치고 있다. 이런 얘기와 같기 때문에 이거는 어머니 문제가 아니고, 자기가 지금 생각을 잘 못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어머니한테 참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자기 어리석었기 때문에, 자기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게 길이지, 어머니한테 자기가 뭐 잘못했다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래. 잘못한 게 있다면 내 어리석음 때문에 내가 어머니를 미워하잖아. 어머니는 미워할 대상이 아닌데 내가 어리석어서 어머니를 미워하니까 미워한 게 뭐했다? 잘못한 거지, 내가 어머니한테 딴 거 잘못한 게 없어요. 미워한 거는 내가 잘못했다. 이건 어머니 죄가 아니고 내가 어리석어서.

 

내가 인생을 똑바로 못 살아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참회를 한다면 미워해서 죄송합니다.” 이건 참회가 되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잘못한 게 특별히 없다면 그냥 어머니에게 잘못했다 이런 거는 의식을 그렇게 해도 무의식에서 안 받아들여져요. 무의식에서 내가 뭐 잘못한 게 없잖아. 솔직하게 말해서. 그러니까 항상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서 풀어야지, 이렇게 껍질만 자꾸 본받아서 하면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듯이 괜히 다리만 고생하는 거요. 알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