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69회] 장애아이를 키우는 마음가짐

Buddhastudy 2016. 4. 22. 15:46


또 내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면서 도움을 얻고, 부담으로 느끼면 안 돼요.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로 느껴야지. 그래야 그 아이가 사는 만큼. 얼마 사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자꾸 얼마나 살아야 되느냐? 이게 중요한데, 살 때 행복하게 살아야 돼. 하루를 살더라도. 그러니까 엄마가 자식을 부담으로 느끼면, 자식은 불효잖아. 부모를 괴롭히니까. “엄마가 너로 인해서 행복했다.” 이렇게 느껴야 효자지.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셔야 되요. 알았죠? 네. 치료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아이를 보면 왜 울컥울컥해요?


아니 그러니까 아이가 어떤 통증 때문에 못 견디는 상태에요? 경기를 하는데, 내가 보기에 힘든 거요? 아이 자체가 힘든 거요? 그래. 그건 자기 문제지 뭐. 그러니까 내가 정상아와 비교해서 자꾸 보니까 힘들고, 자꾸 정상화 하는 생각을 하니까 지금 이게 큰 재앙이 되는 거요. 그냥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그런 상태로 그냥 하나의 존재로서 존중해주면 안될까?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딴 아이하고 비교해서 자꾸 바꾸려 하지 말고.

아침에도 어떤 분 보니까, 부모에 대한 상처가 맨날 “네 언니 백분의 일이나 되라. 네 언니 꽁무니나 따라가라.” 이렇게 해서 상처로 해서 아직도 상처를 입은 질문을 했었는데, 그러니까 자꾸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서 인간존재를 보지 말고, 그 존재는 그 존재대로 봐야 돼. 지체부자유아는 그 상태로 존중해줘야 돼. 그걸 좋게 말하면 고친다는 거지. 그건 욕심이야. 고치려고 하지 말고, 거기에 맞게끔 필요한 거를 지원하면 되는 거요.


자꾸 고친다 그런 거는 아이한테 열등의식을 심어주고 나한테 큰 짐이 되요. 더 이상 고친다. 이러지 말고, 그 아이에 맞게 돌보는 게 필요한 거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사회보장제도가 왜 필요하냐? 바로 이런 지체부자유아를 낳게 되면, 그걸 한 가족이 돌보기에는 너무 많이 가정에 힘이 되니까, 이거는 사회가 책임을 져주자. 그래서 이런 들어가는 경비라든지 이런 거를 사회가 책임을 지든지, 아니면 이런 거를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돌보도록하고, 나머지 족은 또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그래서 이 가족을 버려도 안 되고, 이 가족을 나 혼자 책임지겠다 하는 것도 욕심이다. 그럼 현재 장애자 판정을 받으면 돌볼 수 있는, 치료하고 돌볼 수있는 해택을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오. 그럼 그렇게 하고 그 아이는 거기에 맞게끔 살도록 해야지, 내 욕심으로 하면 불행해져요.


같이 살고 싶으면 자기가 같이 살면 되잖아. 크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같이 살고 싶은 게 중요하나? 전문기관에서 그 아이를 더 훈련하면, 조금 더 내가 키우는 거 보다는 전문기관에서 키우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면, 부모는 내 마음을 위해서 내 마음을 버려야지.


내가 힘들어서 갖다 버리는 건 나쁘지만, 아이를 위해서 내 아픔을 견뎌내어야지. 내가 돌보는 거 보다 전문기관이 돌보는 게 더 낫다. 내가 돌보는 거 보다 전문가가 돌보는 게 더 낫다하면 전문가한테 맡겨야지. 엄마라면. 자식을 위해서. 그건 생각 잘못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힘들어서 갖다 버리는 건 안 돼. 그러나 아이에게 어떤 게 더 좋으냐를 봐서 아이에게 더 도움 되는 거를 해야지. 그게 엄마지. 내 보고 싶은 마음에 집착하면 안 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게 나하고 있는 거 보다 좋으면, 그게 치료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치료를 받고 있는 게 좋으면 내가 보고 싶은 걸 참아내어야지. 아이를 위해서.


어머니 연세가 얼마나 되시는데? 뭐, 아이 5살이면 돌볼 수 있어요. 괜찮아요. 보통 엄마가 돌봐야 되지만, 이럴 때는 엄마가 돌 볼 수 없는 상황이니까. 내가 직장 다니기 위해서, 더 잘되기 위해서 아이를 갖다 할머니한테 맡긴다는 건 맞지 않지만, 치료를 위해서 맡기는 거는 있을 수 있는 거요. 왜 전문가한테 안 맡기고 그래요? 전문가, 전문기관에서 치료하려고 안하고?


아니 그러니까 전문기관에 지금 위탁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방법도 있잖아. 으흠. 그런 거 알아보고 집에서 하고 그러면 아이돌보는 혜택이 정부에서 나와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자기가 조금 더 알아보는 게 필요해. 남의 돈을 먹겠다는 게 아니라, 이것은 우리 사회가 사회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한 가족에게만 책임이 아니고, 옛날에는 다 부모가 책임졌는데,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이게 복지국가 아니오.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는 안 되지만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전문 기관에서 보살피는 기관에 또 있고, 집에서 보살피는 일부 보장을 받고 하니까. 치료를 너무 매달리는 건 내 생각은 좋은 건 아니에요. 그게 좋게 말하면 부모의 애정이라고 하지만, 이미 더 이상 치료가 안 되면, 고 아이로서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지, 그걸 너무 치료한다고하면 아이가 문제아라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러면 아이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줘요.


그 아이는 말을 못하면 못하는 데로 행복할 수 있고, 부모를 못 알아보면 못 알아보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고,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행복하게 살다가 사는 만큼 살다가 죽을 권리가 있는 거요. 그렇게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해야지, 자꾸 내 안쓰러운 마음에 자꾸 중심을 두면, 결국은 아이는 불행해져요. 그러니까 얼마나 오래 살아야 된다. 이런 생각하면 안 돼요. 이런 상태로도 너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행복하도록 내가 뒷받침해 줄만큼 뒷받침해 준다. 치료는 그것이 현대의학에서 할 수 있으면 하지만, 못하는 거를 억지로 하려고 하면 오히려 열등의식을 입어요. 그 아이 때문에 가정전체가 피폐해지고. 그럼 그 아이도 불행해요. 그래서 기도를. 교회 다녀요? 절에 다녀요? 성당 다녀요. 그러면 “하느님, 저에게 주신 선물은 감사히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세요. 이것을 나에게 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내가 이 아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때, 하나님도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 꺼다. 이렇게. 아시겠어요? 그것도 가톨릭신자면 가톨릭계열에는 이런 아이들을 잘 돌보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상낭진에 가면 거기 신부님이 하시는 최무슨 신부님이 하시는 저도 거기 한번 방문해 봤는데, 그러니까 집에서 돌볼 만큼 돌보고, 내가 돌보는 거 보다 전문기관이 돌보는 게 더 낫다하면 협의해서 돌보도록 하고, 내가 정기적으로 후원금도 내고, 자주 찾아가고, 그러는 게 좋죠.


또 내가 돌볼 수 있으면 돌보면서 도움을 얻고, 부담으로 느끼면 안 돼요. 하나님의 사랑과 선물로 느껴야지. 그래야 그 아이가 사는 만큼. 얼마 사느냐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자꾸 얼마나 살아야 되느냐? 이게 중요한데, 살 때 행복하게 살아야 돼. 하루를 살더라도. 그러니까 엄마가 자식을 부담으로 느끼면, 자식은 불효잖아. 부모를 괴롭히니까. “엄마가 너로 인해서 행복했다.” 이렇게 느껴야 효자지.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셔야 되요. 알았죠? 네. 치료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