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79회] 맞선 상대 거절하는 법

Buddhastudy 2016. 5. 19. 05:28

 

좀 질문이 막연하다. 수행이라는 거는 자존감을 높이는 공부다. 이런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자 분들이 나를 좋아한다.’ 할 때 내가 약간 두려움을 느끼면 자기가 그냥 약간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이 느끼는 거를 느끼는 구나라고 알아차리면 되요. ‘, 저분이 나를 좋아한다니까 도로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구나.’ 두려움을 느끼는 게 나쁘다 좋다 이러니까 안 느끼는 방법이 없겠냐? 자꾸 이렇게 복잡하게 접근을 하게 되거든요. 느낌은 내가 두려움을 느끼는 구나.’ 이 정도 그냥 넘어가면 되요.

 

또 그런 얘기 하니까 마음이 들떠서 좋아지구나. ‘, 내가 마음이 거기에 들뜨구나.’ 그러면 들뜨면 이제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죠. 그러니까 거기에 잘 될 확률도 있고, 잘못될 확률도 있죠. 그러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반반이에요.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약간 조심하니까 들뜰 때보다도 사고확률은 적은 대신에 또 두려워하기 때문에 관계를 편안하게 갖기가 어려워지죠. 그래서 내가 두려움을 느끼구나.’ 두려움을 느끼니까 관계를 안 맺겠다든지 이렇게 하지 마라는 거요.

 

두려움을 느끼는 건 내 의도하고 아무 관계없이 내 까르마에서 자동으로 느껴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느끼구나하고 알아차리면서도 상대하고 대화를 해 나가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이러면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자기가 관찰해보면 되거든요. 이런 걸 몇 번 테스트를 자꾸 해보면, ‘, 이 두려움의 뿌리가 어디서 왔을까?’ 이게 앉아서 내가 여자 만났을 때 내 두려움의 뿌리는 어디 왔을까?’ 이거는 상상이에요. 이것은 생각이에요. 이건 수행이 아니에요. 번뇌에 속합니다.

 

실제로 지금 만나서 두려움이 일어날 때, 이때,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을 이때, ‘, 두려움이 일어나네.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거는 지금에 깨어있는 거고, 집에 가서 혼자서 내가 왜 두려워하지?’ 이거는 번뇌에 속한다. 제 말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내 얘기를 듣고 여러분들이 어떤 느낌이 있다면 그 느낌을 알아차리는 거는 지금에 깨어있는 거고, 오늘 기분이 좋았다고 집에 가서 아까 법문 들을 때 기분 참 좋았다이건 생각에 속한다는 거요. 지금에 깨어있는 게 아니고, 과거의 기억에 있는 거다. 영화보고 있는 거다 이 말이오. 생방송 보고 있는 게 아니고. 지금 차이를 잘 모르지? 으흠.

 

그래서 우리는 대다수가 과거의 녹화된 영상을 되돌려서 보거나, 이게 생각이에요. 아니면 미래의 영상을 미리 당겨서 상상하면서 살거나. 그러니까 지나간 생각을 자꾸 하면 주로 괴로움이 많아지고, 미래의 생각을 자꾸 많이 하게 되면 이렇게 근심 걱정이 많아져요. 그러니까 지금에 깨어있어야 되요. 지나간 과거 필름 그만 돌리고, 오지도 않는 미래 필름도 그만 돌리고, 지금 깨어있어야 된다. 지금의 마음이 들뜨면 들뜨구나.’하고 알아차리고, 지금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면 , 니 지금 생각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렇게 알아차리고. 이게 지금에 깨어있는 거거든요.

 

지금에 꾸준히 깨어있으면 나의 까르마로 부터, 이 업식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자존감을 세워야지. 이런 거는 각오와 결심이지, 각오와 결심을 한다고 우리의 업식이 바뀌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들뜨면 들뜨구나하고 알아차리고, 두려워하면 두려워하구나하고 알아차리고, 그냥 다만 알아차릴 뿐이다. 그렇게 계속 알아차리면 , 내가 어릴 때 어떤, 엄마로부터 어떤 야단을 맞은 게 뿌리가 되어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초등학교 다닐 때 옆에 여자 친구가 내가 좋아했는데 뭐라고 얘기했는데, 애가 톡 토라져서 딴 애한테 가버렸어.

 

그때 상처입은게 뿌리가 되어 지금 두려워하는지. 원인은 없어도 되요. 지금 두려워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게 지속적으로 이렇게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냥 알아차리면. 그런 불안한, 또는 두려움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두려움 없이 풀어갈 수 있다. 마음에선 두려움이 일어나는데도 두려움에 깨어있으면,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는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 이게 내가 언제적 어떤 상처, 트라우마로부터 이게 왔구나.’ 그러면서 혼자 빙긋이 웃을 수 있죠.

 

그때 입은 상처가 내가 여자를 좀 두려워하는 거구나. 여자를 약간 좀 기피하구나.’ 이런 원인을 알면서 내가 과거에 너무 매어있구나. 이런 거를 자기가 발견하면서 지금 계속 여자분 들하고 편안하게 만나고 얘기 나누고, 그러면서도 두려운 거 봐가면서도 얘기 나누고 하면, 과거의 필름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고, 좋은 것으로 이렇게 변해갈 수 있어요. 이게 과거에 나도 모를 때 언젠가 입은 상처로부터 치유가 되고, 내가 사람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추가 질문 하세요.

 

으흠, 그거는 나는 저 분이 좋은데, 저 분은 나에 대해서 관심 없을 수 있고, 또 반대로 저 분은 또 다른 분을 좋아하는데, 그분이 또 저 분한테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왜냐하면 이게 까르마, 업식이라는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개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개털 날리는 거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싫어하고, 우린 다 쥐 싫어하는데, 어떤 사람은 쥐가 귀엽다고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이거를 동일하게 자꾸 같이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어려움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부부지간에 서로의 정서도 가끔 여러분들 있을 거요. , 아내는 남편하고 같이 있고 싶고 어쩔 줄 모르고 항상 이런데, 남편은 띵해서 별로, 그걸 귀찮게 여기는 이런 사람 있거든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 안 해서 이런 게 아니라, 이 정서가 그런 거요. 반대로 또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어쩔 줄 모르는데, 여자는 별로 귀찮게 여기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자기가 상대가 좋아하는데도 자기가 호감이 별로 안가면, 인간이 호감으로 갖고 사는 건마는 아니에요. 그러나 억지로 호감이 가는 척하고 이렇게 살 필요가 하등 없다는 거요.

 

누가 개가 귀엽다고 집에 데려오면 내가 개가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되지. “난 개 집에 데려오는 게 싫어.” 그래도 본인이 갖고 들어오면 싫다고 못 갖고 들어오게 하면 안 된다는 거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갖고 들어와야 된다니까, 세상이 다 내 뜻대로 안되거든요. 그러나 나의 감정이나 어떤 느낌은 표현은 해도 괜찮아요. 막 좋아하고 이러면, 웃으면서 이렇게 하면서.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호감이 안가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되지.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안가는 걸 어떻게 해요.

 

그런데 상대는 오해하고, 막 좋아했다 나중에 삐쳐서 미워하고 이런 일이 생기니까, 적절한 시기에 표현을 해주는 게 좋죠. 그런데 내가 호감이 안가도 자기가 막 좋은 건 그 사람 사정이니까, “나 좋아하지 마라.” 이렇게 말할 권리는 없어요. 그건 그 사람 사정이니까, 내 의사는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러나 당신 나를 좋아하는 건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 자기가 몇 번 경험해보면 내가 호감 가는 여자 따로 있고, 안가는 여자 따로 있는지, 여자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호감이 안 가는지, 전반적으로 호감이 안가면 어디에 가깝다? 무성애자에 가까운 거요.

 

예를 들어서 하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호감이 안가면 안 간다고 말해주는 거 좋아요. 이런 오해가 없어야 서로 좋은데.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스님한테 좋아요.”하는데 그건 스님이 그건 안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데도 좋아하는 건 그 사람 자유지만, 그걸 계속 미안타고 말 안하면 자꾸 가중되는 거요. 적절하게 상처 안 입게, 안 입을 수야 없겠지 뭐. 좋아하는데 싫다면 상처 입겠지. 싫다는 게 아니라, 호감이 안 간다고 얘기하란 말이오. 안 가는 걸 내가 어떻게 하냐.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이렇게 서로 편하게 자기 얘길 해주는 게 좋아요.

 

그게 안 되어서 지금 인생이 지금 피곤한 거요. 인간관계가.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렇다는데. 그렇게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다는 거요. “나 당신 좋아요.” 이렇게 표현을 해요. 그냥 계속 눈치만 보지 말고. 그러면 또 상대가 뭐요? “, 싫어요.” 이런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이게 안 맞는 거요. 그거를 딱지 맞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나처럼 그 사람도 나한테 호감이 안 오는 걸 그 사람이 어떻게 해요.

 

, 그러니까 정서가 서로 안 맞구나.’ 이렇게 해서 하다가 보면 맞는 또, 나도 좋고 자기도 좋은 사람이 있거든요. 이러면 연애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인생을 오래 살아보면요, 호감이 가면 기분이 좋은 건 맞는데, 사는 데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꼭 사는데 좋은 거는 아니에요. 내가 호감이 가는 사람하고 살면 기분은 좋은데, 내가 매이게 되요. 뭐든지 자기가 답답하면 우물을 판다고, 자기가 좋으면 거기 매이게 되니까, 평생 속박 받고 살아야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살면 기분은 좋은데, 항상 얼러 살아야 돼. 죽을 때 까지. 그걸 각오해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