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92회] 졸업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Buddhastudy 2016. 6. 14. 05:23



  

어떻게 살기는 그냥 살지.

어떻게 살기는 밥 먹고 살지.

어떻게 살기는 숨 쉬고 잠자고 살면 되지.

 

그런데 오늘 아침 먹고 왔어요?

어제 저녁에 잤어요?

지금 숨 쉬어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머리가 복잡한 거요.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잘 풀리는 게 뭐요?

안 죽고 살면 잘 풀린 거지. 뭐 어떻게 해야 잘 풀리는 거요.

대통령해야 잘 풀리는 거요?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 얼마나 힘드는지 알아요? 얼마나 힘드는데.

그러니까 자기가 편한 거요.

 

. 부모님한테 얹혀 사니까 얹혀 사는 값을 하면 되죠. 즉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부모님 일어나시기 1시간 전에 밥을 해서 밥상차려 놓고, “일어나세요.” 이렇게 깨워서, 먹고 끝나면 설거지 해 놓고, 방청소 하고 빨래 딱 해 놓고, 아르바이트를 하든 뭘 하든 나가서 일 하다가 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저녁 딱 준비해주고, 그러면 부모님 하고 갈등이 생길까? 안 생길까? 그런데 뭐가 문제요? 자기가 나이가 스물일곱이나 되는 게 대학까지 졸업한 게, 아침에 7시까지 자고, 부모가 깨울 때까지 자고, 밥상 차려놓았는데도 안 먹고, 낮에도 빈둥빈둥하고, 빨래도 부모가 해주고, 그러니까 부모가 자꾸 뭐라고 그러지.

 

공부시켜놓았더니 뭐하느냐? 시집도 안가고 뭐하느냐? 딴 집 애들은 취직만 잘하더라. 아이고, 부모한테 누구는 선물을 했다하더라.” 이렇게 자기 듣기 싫은 소리를 자꾸 하게 되지. 그러니 자기가 지금 빈둥빈둥 사는 거지, 부모한테 얹혀 산다고 문제가 전혀 없어요. 옛날에 종이 주인집에 얹혀 사는 게 쉬울까? 부모한테 얹혀 사는 게 쉬울까? ? 부모한테 얹혀 사는 게 쉽겠죠? 그런데 역할 만하면 부모도 나갈까봐 겁내요. 직장 나갈까봐 시집 갈까봐 겁낼 수도 있어요. 집에 가정부 하나 없어지니까. 얹혀 살아도 그렇게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빈둥대니까 문제지.

 

여기 한번 조사를 해 봅시다. , 여기 우선 직장 다니는 사람만 한번 손 들어 보세요. . 그 다음 직장 다니는 사람 중에 자기 전공을 살려서 다니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전부 다 해봐야 열 명도 안 돼. 열다섯 명 될까? 그건 뭘 말해요? 우리나라 사람 조사를 해보면, 대학 다닐 때 자기 전공하고 자기 지금 직업하고 일치 되는 사람이 의사라든지, 변호사라든지, 간호사라든지, 이런 소위 말하면 전문직 있죠? 기술직을 제외하고는 일치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전체로 이렇게 이런데서 조사를 해보면, 지금 낮 반이니까 직장 안다니는 사람이 많잖아? 그죠? 만약 저녁 반에서 조사를 해보면 30%가 안 됩니다. 20%, 열에 한두 명 정도.

 

그래서 자기가 전공한 거 하고, 자기 지금 직장 구하는 거하고 다르다고 그게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대다수 한국 사람들의 입장이에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안 돼요. 집에서 파출부로 살면 그게 독립이에요. 독립이라는 건 집에서 나온다고 독립이 아니라, 누구나 다 좋아하는 자기 역할을 하면, 부모도 좋아하는 역할을 하면 그게 독립이에요. 그러면 그렇게 자기 대로 따지면 가정주부가 시집가서 가정주부로 애기 키우고 사는 사람이 독립된 인생이에요? 그건 독립이 아니에요? 독립된 인생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결혼해서 직장을 안 갖고 산다고 그 사람이 독립된 인생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자기가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밉상으로 살기 때문에 지금 문제지, 자기가 일찍 일어나서 밥하고 부모님 도와드리고 또 나가서 아르바이트 좀 하고, 저녁에 들어와서 일하고, 그러면 만약에 자기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 집에 만약에 파출부가 필요하다. 그럼 파출부는 직업이요? 직업 아니오? 직업이오. 자기가 집에서 파출부 역할을 하면 그건 독립된 인생이에요. 이제 알았어요?

 

그러니까 집에서 먼저 파출부로 독립을 하고, 즉 내가 집에서 쓰는 방값하고 옷값하고 이걸 먼저 파출부 역할을 해서 부모신세지지 말고 독립을 하고, 용돈까지 달라면 부모가 형편이 있으면 파출부를 하니 용돈까지 얻으면 좋은데, 예를 들면 내가 하루에 8시간 꼬박꼬박 파출부 역할을 하면 용돈까지 받아도 그것도 빚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집안일이라는 게 자기가 한3시간 4시간만 하면 되면, 그건 방값하고 옷값하고 밥값밖에 안 되는 거기 때문에, 4시간은 밖에 나가서 아르바이트, 일주일에 한 3일을 하든지, 매일 한 3시간 4시간 하든지, 아르바이트해서 자기 용돈은 벌고, 먹고 사는 거는 집에서 파출부 파트타임을 해거 먹고 살면 그건 독립에 속합니다. 됐어요? 그리고 어떻게 살 건지 걱정하지 마세요.

 

꼭 내 손으로 돈을 받아야 그게 뭐에요? 그게 독립이고, 내 손으로 돈을 안 받으면 독립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결혼해서 집에서 가사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육아를 하는 것도 중요한 노동이에요. 다만 돈으로 계산을 하지 않을 뿐이지. 기생이라는 건 뭐요? 노래하고 춤추는 걸 돈으로 계산해서 받고, 남자하고 포옹하는 걸 돈으로 계산하고 받는 거 아니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돈으로 계산해서 받아요? 안 받아요? 안 받잖아. 그러니까 모든 걸 다 돈으로 계산하는 게 좋은 거 아니오.

 

돈으로 계산하면 노동이라 그러고, 돈으로 계산 안하면 봉사라고 그러는데, 이 사랑을 돈으로 계산하면 매매춘이라고 그러고, 돈으로 계산 안하면 사랑이다. 이래. 그러니까 스님이 오늘 여기서 강연한다고 돈 받아요? 안 받아요? 안 받아. 그러면 스님은 돈을 안 받고 늘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밥은 절에서 얻어먹어요. 그러면 나는 절에 얹혀 사는 존재에요?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돈을 서로 주고받지 않을 뿐이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거는 중요한 노동에 속하고, 노동 중에도 최고의 노동이에요. 봉사. 즉 봉사는 사랑과 같은 거요.

 

우리가 노동을 분류하면 이래요. 자기가 자기 노동을, 자기가 노력해서 먹고 사는데, 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상대집단을 자기 집단에 하부로 데리고 와서, 그 노동을 착취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을 시키고, 값을 안쳐줘요. 그 사람의 노동을 내가 뺏어. 그래서 부려먹는 걸 뭐라고 한다? 노예라 그래요. 노예. 그러니까 인류 문명이 발생하면서 계급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생겨난 거요. 노예는 자기가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오. 그런데 이거를 어떻게 묶어 놨느냐? 신분으로 묶어 놨어요. 혈통으로.

 

그러니까 노예의 아들은 뭐가 된다? 노예. 종의 아들은 종이 되도록. 혈통으로 묶어 놓은 게 노예에요. 그러다가 조금 변한 게 뭐요? 중세의 봉건사회는 이거를 땅에다 묶어 놨어요. 이거를 농노라 그래요. 그 농노들이 자기 땅에 묶인 자기 신분을 돈을 주고 자유를 얻었어요. 그래서 자기 노동을 땅에 안 묶고 돈에 묶어 놨어요. 이게 노동이에요. 묶인 거는 마찬가지 거 알아요? 신분에 묶여 있거나, 땅에 묶여 있거나 뭐에 묶여 있다? 돈에 묶여 있는 거요. 그러니까 신분에 묶여 있을 때는 주인이 있기 때문에,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주는 사람한테 팔잖아.

 

그런데 자기가 지금 돈에 묶여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기를 자기가 돈 받고 팔아요. 그러니까 중소기업에 한 달에 2백만 원 받고 있다가 삼성이나 재벌회사에서 3백만 원 준다하면 옮겨가요? 안 옮겨가요? 옮겨 가는 게 돈에 팔려 가는 거요. 돈 더 주면 자기를 파는 거요. 으흠. 그런데 자기를 위하는 일, 내가 세수를 한다. 목욕을 한다. 이럴 때는 돈을 받고 팔지 않잖아. 돈 달라 소리 안하죠? ? 자기실현이기 때문에. 그런데 자기가 자기 어린애 기저귀를 갈고, 젖을 먹이는 거 보고 애한테 돈 달라 안 그러잖아. 왜 그럴까? 아이를 자기의 일부로 보는 거요. 자기 안에 넣어놓고 이건 나를 보는 거요.

 

남편이나 아내가 돈 달라 소리를 서로 안하는 이유는 자기의 안에 넣어놓고 보는 거요. 나의 일부로 본다 이거요. 그러면 이 몸뚱이 요것만 갖고 나라고 고집하면 남편이 남이 되요. 그러면 싸우죠. 갈등이 생겨요. 그런데 이 남편까지 내 속으로 넣으면 이건 나의 일부에요. 그래서 우리가 돈 달라 소리 안하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부부지간에도 니돈 내 돈이 있어서 싸우잖아. 그러면 이건 남으로 보는 거요. 그러면 성인은 애국자는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일을 다 누구 일로 본다? 자기 일로 보는 게 애국자요.

 

보통사람이 볼 때는 우리가 옛날에 일제 강점기 때 애국자들이 자기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내놓고 이래서 다 부자가 망하고 이러잖아. 그러면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어리석죠. 그런데 그건 나라일이 자기 일이기 때문에. 자기 목숨도 버리고 자기 재산도 내놓고 이렇게 하는 거요. 그러면 성인은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내 나라 사람, 네 나라 사람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을, 부처님은 특히 모든 생명을 다 뭐로 본다? 자기로 보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이 평생 설법을 해도 설법의 대가를 바라거나 이런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건 내 친척이니까 좋은 말 해주고, 저건 남이니까 내 계급사람이니까 이런 거 없잖아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잖아. 이건 자기로 보는 거요. 이걸 뭐라고 그러나? 자아의 확대에요. 그래서 우리가 특정한 걸 가지고 나라고 할 것이 없다. 그러면 무아라 그러고. 이 세상 모두를 나로 삼는다. 이러면 대아라 그래요. 무아라는 말이나 대아라는 말이나 같은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에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요. 파는 개념이 없다. 이걸 불교 용어로 얘기하면 무주상 보시. 이게 바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 그리스 같으면 아가페. 기독교 같으면 하나님의 사랑. 이렇게 말하죠.

 

그런데서 우리가 좁은 의미에서 나로 삼지 마라. 그런 얘기에요. 이렇게 넓혀서, 넓은 의미로 이렇게 생각하면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꼭 주고받아야 자립은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집에 있어도 스무 살이 넘으면, 스무 살 이전에는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아요. 그러니까 부모가 나의 보호자, 나는 보호의 대상이에요. 그래서 나는 내 권리를 다 행사하면 안 돼요. 어떤 중요한 권리는 보호자가 대행해요. 스무 살이 넘으면 내 인생의 최종책임자가 내가 되는 거요. 대신에 누구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 돼요. 독립해야 돼요. 으흠.

 

그러면 지원을 받으면 그거는 주고받는, 그러니까 만약에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 빚이에요. 그런데 현금 거래만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제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의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부모님을 돌봐드리고, 가사를 돌보면 그건 독립에 속한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애처럼 해주는 밥 먹고, 해주는 옷 입고, 집에서 살면서 어리광 피우고, 불평하고 이러면 독립이 안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집을 나가고 들어가고 돈을 받고 안 받고의 개념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