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동훈스님_일대시교

(동훈스님의 일대시교) 3회 ‘해주십시오.’ 거지연습이 아니다

Buddhastudy 2016. 11. 2. 20:23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요.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과 한 몸이 되어서 간절해야 된다. 이 말씀을 먼저 드리고, 기도는 일구월심. 일구월심 얘기 많이 들어봤죠? 날이 가고, 오랠 구 자, 날이 계속, 밤낮이 주야로 가고 달이 깊었다는 얘기는, 날 가는 줄 모르고 달 가는 줄 모르고 기도를 일구월심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뭐든지 하고자하는 걸 일구월심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날이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일구월심 부천님한테 소원을 딱, 이루게 해주십시오. 하고서 일구월심 간절히, 아까 얘기한데로 간절히 뼈에 사무치도록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지장보살을 부르면 문수보살을 부르면, 다 해탈케 해준다. 다 구원해준다. 아까 다 얘기했죠? 그래서 해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은 구걸이 아니다. 구걸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주십시오.” 하고 부처님한테 기도할 때 원망하고 저주하고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런 마음이 없죠.

 

기도할 때 그런 마음 가지고 기도하는 분은 없죠. 그러면 그게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순박합니까? 그 기복이. 복을 빌고 기도를 하는 것이. 거지 연습이 아니오. 부처님한테. 누구한테 달라 그러고, 어떻게 달라고 하느냐에 따라서 틀리죠. 거지 연습이라는 것은 물속에서 물을 찾는 사람들이 거지 연습하는 거지. 물속에서 갈애를 느끼는 거, 갈애. (목마를 갈 자. 사랑애 자.) 물속에서 갈애,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 거지연습이에요. 있으면서 더더더. 더더 안 돼. 이익이 30%가지고 안 돼. 60% 안 돼, 100% 가야 돼. 더블로 가야 돼. 나중에 놔두다간 깡통계좌가 되어버리고.

 

그래서 거지연습은 욕심 부리고 있으면서도 자꾸 없다는 타령하고 이게 거지연습이오. 부처님한테 간절히 주십사하고 몰입해서 기도하는 것은 거지 연습이 아니다. 왜 그러냐? 이유는? 거지 연습이 절대 아니다. 부처님한테 주십시오.” 하는 것은. 다른 데 가서 맨날 얻어먹기만 하는 게 거지연습이지. 밥이랑 뭐랑 무조건 얻어만 먹고 밥 한끼 안 사고, 그러면 거지 연습 하는 거요. 빚지는 거요. 왜 거지 연습이 아니고 아주 거룩한 고귀하고 순박한 것이냐.

 

우리가 업을 얘기할 때 업이라 그러죠. 업을 얘기할 때 신구의 삼업을 얘기하죠. 신업_몸으로 짓는 거, 구업_입으로 짓는 거, 의업_생각으로 짓는 거. 이 업을 니까야에서 카르마라고 그래요. 이 업이 뭔지 아세요? 습관이에요. 우리 습관. 습관적인 거. 이것이 왜 기도가 요행수가 아니고 거지 연습이 아니냐? 몸으로 108배를 하고, 절에 가서.

 

입으로 염불하고,

생각으로 부처님의 공양 찬탄 공경하고,

부처님한테 기도할 때 108배하면서 입으로 염불하면서 생각으로 부처님의 찬탄을 하고 이게 얼마나 순수하고 고귀합니까? 이게 왜 거지연습이야?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냐. 이제 알았죠? 이건. 기도라는 것. 기도가 거지 연습 아닙니다. 기도를 이렇게 해서 자기가 복 짓는 방법, 스님들이 법문을 많이 듣고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이 되고 자비심이 늘어나고 그 마음 가지고 가서 밖에 나가서, 사회에 나가서, 직장에서, 모든 모임에서 복을 짓는 것이 진짜 복이에요. 복 짓는 방법을 모르고 가서 복 짓는 것은 생색내기요. 이름 내기요. 서툴러. 복 짓는 게. 그걸 유루복이라 그래. 새는 복이라고. 그 말씀은 뒤에 말씀드리고.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에 대해서 기도하는 건 거지연습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 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