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동훈스님_일대시교

(동훈스님의 일대시교) 5회 있어서 봅니까? 보아서 있습니까?(조견)

Buddhastudy 2016. 11. 29. 14:33


 

그래서 이 세상을 보는 것은 우리가 있어서 보느냐? 조견, 조견이라는 설명하려고 그러는데, 보아서 있느냐? 여러분 어떤 거 같아요? 사물이나 모든 걸 봤을 때,

 

있어서 봅니까?

보아서 있습니까?

 

보아서 있어요? 여러분들 공부 많이 하셨네요.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느냐? 이게 안목이에요. 내 안목이 어떠냐에 따라서 세상을 볼 수 있어요. 개구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만 안에만 볼 수 있고, 밖의 세상을 몰라. 그렇죠. 내 안목으로 얼마나? 공부하는 건 수행하는 거 기도하는 건 안목 넓히는 거죠. 그래서 있어서 본다가 아니고, 보아서 있다는 얘기는, 이건 무슨 말씀 드리려고 그러냐하면, 니까야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망견, 망념된 견해로 보면 밖의 세상도 방념되게 보인다. 색안경을 새까만 걸 쓰고 보니까 새까맣게 보인다. 중요한 얘기에요.

 

그래서 가관스럽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망념된 견해로 보면 세상은 망념되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거에요. 어디가서 자구 불평불만 많이 하는 사람은 에이비씨디 어느 장소 가서도 불평불만인거요. 그러니까. 그래서 돼지 눈으로 보면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으로 보면 부처로만 보인다. 그래서 조견이라는 것은 반야지혜로 통찰하는 것이다. 반야지혜라는 것은 색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공성으로 보는 것, 반야지혜라는 것은 본체의 세계에서, 그러니까 공성의 세계에서 보는 건데, 반야지혜로 통찰해라. 이게 쉬운 말은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 두 눈으로 오감으로 보는 세계가 아니라, 반야지혜로 통찰하면 이렇게 세상이 보아서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 모든 걸 만드는 거예요. 일체유심조야. 그죠? 같은 물건을 놓고 봐도 보는 사람마다 틀리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안목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