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 즉문즉설 2016 출가콘서트 1부_아웃사이더

Buddhastudy 2017. 1. 17. 20:27

 

01:28  

안녕하세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다 문제가 좀 있는 분들이에요.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오늘 같은 날 어디를 가야 됩니까? 서울 광화문으로 가든지, 안 그러면 서문 로터리로 가든지 해야지 오늘 같은 날 여기 오면 어떻게 해요. 이렇게 문제를 있는 사람들이 출가를 하면 문제지. 어떻게 방갑다는 소리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좀 편안하게 인사를 하고요, 앞에 한 10분 정도를 얘기를 해 달래요. 요청이. 그런데 저는 서두를 얘기를 잘 못해요. 물으면 얘기를 잘하는데, 그냥 혼자 하라 그러면 약간 좀 쑥스러워요. 그런데 이 쑥스러운 게 64이나 됐는데 아직도 안 없어지는 거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인정하십니까? .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또는 얼굴이 검든 희든. 신체가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성적지향이 이성애든 동성애든. 종교가 불교든 기독교든. 있든 없든. 사람들은 누구다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또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보면 그렇지가 못하죠. 행복하고 싶지만 현실은 행복하지가 못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 이런 얘기에요. 왜 그럴까?

 

그건 이제 얘기를 들어보면 알아요. 제가 물어봐요. “뭐가 문제에요?” 이러면 "애가 말을 안 들어요." 그래서 괴롭다는 거요. 남편이 매일 술 먹어요.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거요. 직장에 상사가 화를 내요. 직장 상사 때문에 괴롭다는 거요. 이렇게 내 괴로움이 다 남 탓이라는 거요. 그러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상사가 화를 안 내고, 아이가 말을 잘 듣고, 남편이 술을 안 먹고, 이렇게 따져보면 결국은 내 원하는 데로 되면 행복하다. 이 얘기죠. 맞습니까?

 

그러면 첫째,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데로 다 될까요? 안 될까요? 그러면 원하는 데로 되어야 행복하다면 원하는 데로 안 되면 괴로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세상은 내 원하는 대로 다 안 되잖아요. 그러면 될 때는 행복하고 안 될 때는 괴롭고. 그러니까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괴로웠다가 즐거웠다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 인생의 현실이에요. 이렇게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 이걸 윤회라고 그래요.

 

여러분들은 윤회,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죽어서 욕심 많으면 돼지가 되고, 미련하면 소가 되고, 독하면 독사가 되고, 이런 걸 윤회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런 생각은 인도의 전통사상, 힌두교의 윤회관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윤회라는 것은, 즉 윤회라는 용어는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헷갈리는 거요. 우리를 보고 윤회중생이라 할 때는 우리는 고와 락이 계속 되풀이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여기서 못 벗어나고 즐거웠다 괴로웠다, 괴로웠다 즐거웠다. 여기서 못 벗어난다. 이게 윤회, 전생 하는 존재들이에요. 우리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행복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롭다하는 이런 행복 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윤회할 수밖에 없는 거요. 그러면 내가 지금 추구하는 행복은 지속 가능한 행복입니까? 지속 불가능한 행복입니까? 지속 불가능해요.

 

그 행복은 반드시 괴로움으로 바뀌는 행복이에요. 그러니까 윤회한다는 말은 무조건 다 괴롭다는 게 아니라, 고락이 되풀이 되는데, 그 행복은 지소가능하지 못하다. 내가 아무리 지금 행복하다 해도 곧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다시 괴로움이 된다. 지금 내가 아무리 괴롭다고 해도 얼마 지나면 다시 그것이 행복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이것을 윤회한다 그러고, 중국에서는 이런 인생을 뭐라고 그래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이렇게 말하죠.

 

조금만 이렇게 관조해보면, 길게 관찰해보면 좋다고 반드시 좋은 게 아니고, 나쁘다고 반드시 나쁜 게 아니다. 좋은 것이 나쁜 것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쁜 것이 좋은 것의 원인이 될 때 뭐라고 그래요? 전화위복이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우리는 윤회중생이에요. 그러면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이런 행복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출가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행복은 이 세상에서 중생이 다 갖는 행복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라는 건 뭐냐? 지속가능한 행복이에요. 그 행복이 뭐로 바뀌지 않는다?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는 행복이에요. 그게 지속가능하다. 이런 얘기에요. 그렇게 되면 윤회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고락고락 되풀이되는데서 벗어나서,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고와 락이 있는데, 딱 잘라서 고는 버려버리고, 락만 딱 쥐고 있으면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이상세계, 천당이라든지, 극락이라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요.

 

그런데 이 고락은 분리될 수가 없습니다. 고락의 뿌리는 내가 원한다고 하는 욕망, 욕구의 뿌리를 두고 있어요. 그 욕구에 따라서 원하는 대로 되면 즐거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괴로움. 그래서 지속가능한 행복, 열반, 열반의 해석을 ", 기분이 좋다." 이게 지속가능한 게 열반이 아니에요.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입니다. 열반이 무슨 뜻이라고요? ‘괴로움이 없는이런 뜻이에요. 괴로움이 소멸되었다 해서 멸. 또는 적멸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면 이런 경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고락의 뿌리가 욕구이기 때문에. 욕구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 버리면, 고가 사라지는데 뭐도 사라질까? 락도 사라져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별로 좋아 안 해요. 고가 사라지는 건 좋은데 뭐도 사라진다고? 락도 사라지는 거요. 재미없죠. 그러니까 고락의 윤회로부터 벗어난다. 이걸 해탈이라고 그래요. 고가 사라진다. 이걸 열반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 인생이 추구하는 이상적 행복관이에요.

 

그러면 거기에 도달하려면 욕망으로부터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야 돼. 그런데 우리는 욕구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해요. 우리는 욕구를 따라가거나 이걸 쾌락주의라 그래요. 쾌락은 맨날 좋아야 된다. 이런 뜻이 아니라, 욕구를 따르는 거요. 욕구 충족을 위해서 욕구를 따라가는 것을 쾌락주의라 그래. 그런데 이 욕구라는 것은 충족하면 또 욕구가 늘고, 충족하면 또 늘고 해서 끝이 없어요.

 

그래서 충족이 되면 즐거웠다가 욕구가 느니까 충족이 안 되니까 괴로웠다가 또 충족이 되면 즐거웠다가 이렇게 반복이 된단 말이오. 그래서 욕구의 씨를 말려버리자. 그래서 욕구는 무조건 안 따라가요. 욕구를 억제하고 저항하는 거요. 이걸 뭐라고 그러냐? 고행주의라 그래요. 고행주의.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전통사상은 쾌락주의고, 브라마니즘은 쾌락주의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 이게 사문류라 그러는데, 이 사람들이 주로 고행주의가 많았어요.

 

그럼 부처님은 자란 환경은 브라만이지만 쾌락주의에 있었고, 본인이 이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거를 발견하고, 오히려 그 고행주의자들의 얘기를 듣고 굉장히 동조가 된 거요. 그래서 주류사회에서 성장해서 주류의 길을 안가고, 비주류 쪽으로 참가한 거요. 쉽게 얘기하면. 그랬는데, 극심한 고행을 하고도 해탈을 얻지 못했어요. 그래서 돌아본 거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좀 속된 말로 죽기 살기로 수행을 했는데도 해탈을 하지 못할까?

 

그래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더니 출가 전에는 욕구를 따라가는, 쾌락주의의 길을 걸었고, 출가 후에는 욕구를 억압하고 억제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쾌락만 욕구의 노예가 아니라 고행도 욕구의 노예에요. 왜냐하면 욕구에 대한 작용, 반작용이기 때문에. 둘 다 어쨌든 욕구에 대한 대응이잖아요. 그러니까 욕구에 대해서 대응을 하지 않는다. 이게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요.

 

그러면 요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따라가거나 억제하거나 둘 밖에 없잖아요. 거기에 새로운 제3의 길을 발견하신 거요. 그게 알아차림이라는 거요. 욕구가 일어날 때 욕구가 일어났구나.’ 알아차리는 거요. 욕구를 따라가면 반드시 과보가 생겨요. 욕구를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쌓여요. 이해가 되세요? 화가 난다고 화를 팍 내어버리면 과보가 생겨요. 사람이 나를 떠나버리든지, 이렇게 되죠.

 

그런데 그걸 참고 있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거요. 그러니까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잖아. 그래서 여러분들은 성질대로 했다가 남의 미움을 받게 되니까 이번엔 참아요? 안 참아요? 참는데 참는 거를 몇 번까지 참아요? 3번까지 밖에 못 참잖아. 주로. 어떻게 말합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터지는 거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게." 하면서 터지는 거요. 3번을 못 넘겨요.

 

그래서 우리가 작심3. 이런 말도 있죠. 3일을 못 넘기는 거요. 그래서 터지고 나면 또 후회해요? 안 해요?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니까 또 후회하고 다시는 안해야지.” 해서 또 참습니다. 참았다가 또 터지고, 또 후회하고 이게 지금 되풀이 되고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다만 알아차림. 알아차림은 ", 욕구가 일어나구나. 욕구구나."하고 알아차리니까 욕구에 끌려가지도 않고, 알아차리니까 억제도 안하는 거요.

 

예를 든다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안 피워야지.”하고 참지도 않는 거요. “피우고 싶어하는구나.” 이렇게. 눌리지 않고 놔두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사실은 현실에서 딱 부딪히면 우린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따라가든지 참든지. 명상하다 다리가 아프면 펴든지 참든지, 이 두길 밖에 없잖아요. 알아차림이라는 건 뭐냐 하면 통증을 알아차리는 거요. 통증이 있구나하고 통증을 그냥 느끼는 거요. 통증이 있으니까 싫어서 펴지도 않고, 통증을 억제 하지도 않고.

 

현실에서 보면 잘 안 돼요.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요. 그러니까 제 3의 길, 고행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니고 이 새로운 길, 이게 중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 제자에게 한, 첫 번째 말, 입에서 나온 첫 번째 법문이

 

수행자는

쾌락의 길을 가도 안 되고

고행의 길을 가도 안 된다.

두 양극 간을 버려라.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게 첫 번째 하신 말씀이오.

 

이렇게 하면 지속가능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기분이 막 좋고 할 때 마음이 들떠요? 안 들떠요? 들뜨지. 화가 나도 마음이 들떠요? 안 들떠요? 들뜨지. 그러니까 그거는 같은 거요. 들뜬 상태에요. 그래서 그게 되풀이 되는 거요. 그러면 알아차림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요. 그러니까 좋다고 들뜨지도 않고, 싫다고 가라앉지도 않고.

 

그래서 여러분들은 아마 그런 경지를 첫째는 체험을 해본적도 없고, 오직 체험이라는 건 기분이 쇄~ 한 거, 그것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데 그건 계속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행복이다. 라고 하는 행복관, 가치관을 갖는 한은

우리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가 없다.

 

이런 얘기요. 고락이 되풀이 될 뿐이다. 그래서 가치관이 전환이 필요한 거요. 그 가치관의 전환이 다른 말로 하면 또 출가에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의 가치가 뭐라고? 고락 중에 락만 있기를 바라는 거요. 필연적으로 고가 따라오는 거요. 그래서 우리는 이 집을 괴로우면 집을 나갔다가 또 다시 집으로 들어오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이런 거는 가출이라고 그래. 아시겠어요? 그런데 이

 

고락의 되풀이를

불살라 버리는 것.

집을 불살라 버리는 것.

이것을 집을 떠났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절에 들어와서 스님이 되어도 제가 볼 때는 열에 아홉은 주로 가출을 해요. 그러니까 여기 와서 또 살기 힘들면 또 어떻게 한다? 또 돌아가요. 집으로. 가서 또 귀찮아서 못 살면 어때요? 또 나와요. 이렇게 오고가는 거, 이거는 가출이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여러분들이 괴롭다 하는 것이 다 뭣 때문에이렇게 말하거든요. 그러는 한은 여러분들은 지속가능한 행복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여름이 되면 더워서, 겨울이 되면 추워서, 봄에는 꽃이 피어서 알레르기 때문에, 뭐 이렇게 날씨도 탓하고 온갖 걸 다 탓하게 된다. 그러니까 딱 관점이 바뀌면 여름에 수영할 수 있어서 좋고, 겨울은 스케이트 탈 수 있어서 좋고, 봄에는 꽃구경할 수 있어서 좋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서 좋고. 이렇게. 그래서 날씨를 갖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주어진 조건에

긍정적으로 대응을 하는 거요.

내 욕구를 중심으로 해서 안하고.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거요.

 

그런 삶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수행자가 된다는 거는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만 출가가 아닙니다. 이렇게 자기의 기존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의 길로 가면 출가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살면 자꾸 옆에 사람하고 비교해서 자꾸 따라가기 때문에 어려워요. 그래서 초심자일수록 어떻게 해야 된다? 요 세계로부터 좀 격리가 필요해요.

 

그런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 이 세상 세간과 출세간을 나눌게 없다. 어디서도 늘 자기를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면, 좀 심각해 졌네요. 그죠? . 여러분들 행복한, 그런 나에게 주어진 원래 권리, 행복할 권리를 반드시 찾으셔야 되요. 권리를 팽개치지 말고 남편 핑계대고 자식 핑계대고. 여러분들은 막 뭐라고 그러는데, 제가 들을 때는 저 사람은 정말 괴롭고 싶어서 못 살겠다는 사람이구나. “난 괴로워요.” “그 왜 괴로운데?” “어떻게 그런데 안 괴로울 수 있어요?” 자꾸 이러니까 그래그래. 실컷 괴로워해라. 아이고 그래 잘한다. 괴롭다. 괴롭다. 니 실컷 괴로워해라.”

 

나이 들어 괴롭다 그러지. 아직 어리다고 괴롭다 그러지. 결혼 못했다고 괴롭다 그러지. 결혼 했다고 괴롭다 그러지. 괴롭고 싶어서 뭐든지 다 괴로운 이유를 가져가는 거요. 그러니까 마흔 된 사람이 스님 아직 저는 장가를 못가서 괴로워요.” 그래. 그럼 난 64살 되었는데 그럼 나는 어쩌라고. 아니. 이혼을 했다고 괴로워요. 그래. 내가 볼 때는 나는 한 번도 결혼 안 해봤고, 너는 한번 해 봤는데, 누가 처지가 나아요? 해본 사람 처지가 낫잖아. 그런데 괴롭다고 그러니까. 괴롭고 싶어서 네가 그걸 갖고 괴롭다고 하구나.

 

지난번에는 어떤 청년이 애인이 딴 사람을 좋아해서 떠났다고 괴로워한다고 그래. 그래서 내가 , 너는 그래도 연애한번 해 봤네. 여기 젊은이들 중에 한 번도 못해본 사람 얼마나 많은데. 너 지금 여기 와서 자랑하는 거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거요. 이렇게 매사를 괴로움의 원인으로 보는 거를 사고에 있어서 부정적 사고라 그러고, 별 문제 아닌 거로 부는 걸 뭐라고 한다? 긍정적 사고라 그래.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긍정적 사고를 가지면 별 문제가 없어요. 별 문제가 없다. 이게 제일 큰 도요. 대화를 하다가 그러면 별 문제 아니에요.” 그래요. “그래. 맞아. 별 문제가 아니네요. 그게 공이에요.” 별 문제가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네. 이거. 그래서 어떤 여자 분이 남편 죽었다고 막 울어. 그래서 제가 염불도 해주고 위로를 해줘도 안 그쳐. 그러면 제가 가서 귀에다 대고 작게 얘기합니다. “아이고, 니는 좋겠다.” “왜요?” “시집한번 더 가겠네.”

 

남편이 죽었다.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지가 죽은 건데 그게 나한테 뭐가 문제에요?” 그러면 남편 죽고 어떻게 살아요?” 이래요. “, 그러니까 너는 죽은 남편 걱정 안하고 살 네 걱정하네.” “아니 남편은 지금 죽기까지 했는데 너는?” 지금 죽은 남편 걱정해요? 살 자기 걱정해요? 살 자기 걱정하니 그게 얼마나 이기주의요. 그런 사람 동정하면 되나? 안 되나? 안 돼.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문제가 있다. 이제 이런 거를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이 질문을 하세요. 질문을 하면 제가 만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아요. 어떤 질문을 해도. 그러면 스님은 뭐든지 다 아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갖는 고뇌라는 것은 원래 고뇌할 게 없는데 고뇌를 하는 거는 밤에 비단 요를 깔아주고 사라고 했는데 꿈을 꾸는 거요.

 

어떤 사람은 호랑이 꿈꾸고 무섭다 그러고, 뱀 꿈꾸고 무섭다고 그러고, 도둑놈 꿈꾸고 무섭다고 그래요. 춤은 천 가지 만 가지 다른 꿈을 꿀 수가 있지만 그 사람 괴로운 거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죠. 흔들어 깨워만 주면 되요. 호랑이 꿈 꾼다로 따로 처방하고, 뱀 꿈 꿨다고 따로 처방하고 이럴 필요가 있나? 없나? , 그건 잠꼬대기 때문에 흔들어 깨워 눈만 뜨면 ", 별일 아니네." 이 얘기에요.

 

그 꿈꾼다는 게 사로잡힘이거든요.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나면 한갓 꿈에 불과한 거요. 그러니까 제가 어렵겠어요? 쉽겠어요? 쉬워. 그래 괜히 아무 일도 아닌데 저보고 굉장한 사람처럼 취급을 해서 내가 가끔 미안해요. 난 아무것도 안하는데. 그냥 이렇게 흔들어서 깨워줄 뿐인데. 그렇게 여러분들이 인생을 좀 가볍게 살기를. 10분만하기로 했는데 많이 했나봐요. 스님이 설 나오시네.

 

...(생략)...

 

 

<행복한 나라에서 살 권리>

29:20

질문1) 나라가 최순실 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국민의 권리와 무너진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너무 싱겁다. . 옛날 왕조 시대는 나라의 주인이 누굽니까? 왕입니다. 천하가 강산이 왕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 왕의 은혜 속에서 사는 거요.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왕국이 아니에요. 민국이에요. 그러니까 대한제국이라고 할 때는 제, 왕의 나라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고 할 때는 어떤 나라다?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권자에요. 그러니까 국체가 다르다. 이 말이오. 그래서 헌법 1조에 어떻게 되어있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다 그 주권을 일상적으로 행사할 수가 없으니까 이걸 대통령한테, 또는 정치인에게 좀 위임을 하는 거예요. 잘 사용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힘이 되라고. 그런데 보니까 우리가 준 위임한 권력을 국가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안 쓰고 좀 사사로이 썼다. 이 얘기요.

 

그래서 우리가 그걸 알았어. 그래서 그걸 ", 돌려줘." 이렇게 된 거요. 그런데 보통 한 절반은 돌려 달라 그러고, 절반은 맡긴 거 놔두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요? 이건 좀 논쟁거리가 되겠죠. 그런데 보통 돌려 달라 할 때 2/3정도 돌려 달라 하면 무조건 돌려줘야 되요. 그런데 지금 얼마가 돌려 달라 그런다? 어제 여론조사 통계로 보면 93%가 돌려달라는 거요. 4%만 맡겨놓자는 거요. 3%는 잘 모르겠다는 거요.

 

그러면 이거는 절대다수 국민이 돌려달라는 거죠. 그러면 돌려줘야 돼요? 안 돌려줘야 되요? 돌려줘야 되요. 안 돌려주니까 이제 문제가 되는 거요. 안 돌려주면 결국 방법은 두 가지에요. 그러니까 국민은 이미 인정을 안 해. 위임한 권력을 회수하겠다고 이미 명백하게 의사를. 한 여론 기관도 아니고, 여러 여론 기관이 한 주도 아니고, 연달아 3주째 이렇다는 것은 이건 좀 객관성이 보장이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죠.

 

그러면 이건 돌려줘야 돼요. 돌려준다 하는 거는 자진사퇴를 한다. 이 얘기죠. 본인이 자진사퇴를 안한다. 이거요. 그러면 안할 때 방법은 타협을 할 거냐? 안 그러면 강제로 돌려받을 거냐. 이런 두 가지가 있어요. 보인이 하기 싫다고 하니까. 그러면 실질권력은 내놓고 이름만 가지고 있어라. 대통령 이름만 가지고 사인 같은 거 하고, 실질적인 권력행사는 국회에서 추천해서 만든 총리와 내각에 위임을 해라. 이선으로 물러나는 게 있고,

 

그것도 안 하겠다 그러면 방법은 탄핵을 통해서 강제로 하차시키는 방법이다. 이 얘기요. 쉽게 운전에 비유하면 운전을 맡겼는데 이 사람이 약간 정신이 없어. 그래서 우리가 다 위험해. 그래서 ", 운전대 그만 두고 내려오너라." 하니까 계속 잡고 있겠다 그래. 그럼 타협안은 뭐요. 끌어내리는 방법이 하나 있고, 달래서 그렇게 앞에 앉고 싶으면 조수석으로 옮겨 앉아라. 다른 운선수가 운전하고 너도 앞에서 앉아서 같이 운전하는 것처럼 해라. 이렇게 타협하는 안이 있는데, 이렇게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야 되는데,

 

이걸 우리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우리가 회수하겠다. 이거를 여론조사만 갖고 부족하니까 우리가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해줘야 돼요. 100만 명이 모여서 의사표현하면 보통 사람은 충분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4900만은 안 나왔잖아.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아이고, 일이 좀 복잡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200만이 나가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는 이런 일이 생겨났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집에서 댓글을 달아서 의사표현을 하든지, 글 쓸 줄 모르면 남 써 놓은 글에 '좋아요'를 누르든지, 안 그러면 길거리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표시를 하든지, 부산에서 하든지 서울 가서 하든지 적극적인 의사를 표현해줘야 이 문제는 해결 될 수가 있다. 다만 욕설을 해서는 안 되고, 두 번째 폭력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35:45

(질문2) 우리나라 이대로 괜찮을까요? 너무 화가 나는데 국민으로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 저는 지금 아주 좋은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생각해요. 국민들이 자기가 주인인데 주권을 장롱 속에다 넣어놓고, 주권을 늘 잃어버리고 살았어요. 그래서 여기 부산에 새누리당 말뚝만 박아놔도 눈감고 찍어주고 이렇게 몇 십 년을 해왔다. 이 얘기요. 그런데 이제 이 사건을 통해서 , 내가 주권자네.”하는 것을 알게 된 거요.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생까지 나와서 다 말을 하고, 중학생도 말을 하고, 고등학생도 말을 하고, 잠자던 청년들도 일어나서 말을 하고, 대학생도 말을 하고, 70 80된 노인들은 거의 그냥 깃발만 보고 찍었는데 이번에는 다 말을 하고 그래요.

 

제가 태어난 시골이 여기 울산이니까, 울산은 시골이니까 경상도 농촌 노인들 어떤지 알지 않습니까? 그분들도 제가 어떻습니까?”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요, 다음 선거 때는 엄마아버지는 해외에 여행 보낸데요.” 그래. 한 노인이 이래요. "스님, 대통령은 좋은 사람으로 수입해 오면 안 될까요?" 이렇게도 질문을 해요. 그래서 노인잔치하면 주로 노인들하고는 그저 건강문제, 죽어서 좋은데 가는 이런 얘기하는데 그 70 80 노인들 데리고 정치 얘기를 제가 한 시간이나 했다니까요. 그래도 다 재미있어서 잘들어요. 이만큼 의식이 깼잖아. 그죠?

 

그러니까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혼란스러울지 몰라도. 지금 언론의 자유가 있어요? 없어요? 있죠. 입 달린 사람 다 말할 수 있죠. 눈치보고 말해요 막말해요? 약간 포플리즘일까, 그 정도로 자유롭게 말하고 어린아이도 말하고. 그래서 몇몇 사람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회손 시켰지만 100만 명이 모여 평화적으로 시위하고, 여러분들 초불 들고 물결 이루는 거 봤어요? 북한 같으면 이건 몇 달 연습해야 되요. 그런데 연습 하나도 안하고 좍~ 하지. 쓰레기 하나 안 버리지. 외국 사람이 진짜 놀라요. 대한민국 굉장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굉장한 나라에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대해서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우린 저력이 있어요. 우리 월드컵 때 저력 보여줬잖아. 그죠? 그리고 요번에 아주 민주의식에 대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잘 될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기회가 아주 좋아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좀 더, 좀 긍정적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러나 쉽지가 않다는 건 알아요?

 

화를 벌컥 내고 때려 부수고 하다가, 또 제풀에 지쳐서 그만둬야 되요? 웃으면서 춤추면서 재미있게 오래오래 내려올 때까지 해야 되요? 그래.

 

 

<테마 2: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40:50

(질문1) 최근 법륜스님의 참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강의를 들었던 학생입니다. 혹시 스님께서는 타인에게 상처를 받은적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을 하셨습니까?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해요. 어떻게 사람이 사는데 남한테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있어요. 그거는 단식하는 사람한테 배 안 고파요?” 하고 묻는 거 하고 똑같지.

 

그러니까 상처받는 것도 많고요, 극복을 못해서 가슴앓이 할 때도 있고, 또 그래봤자 누구 손해다? 내 손해다. 이렇게 돌이켜서 극복을 한 적도 있고 그런데, 젊은 사람이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데, 저도 젊을때는 그랬는데, 자꾸 나이가 드니까 세월이 약인 거 같아요.

 

나이가 자꾸 드니까 젊을 때 심각하게 생각했던 게 별게 아니에요. 그래서 요즘은 크게 상처는 안 받아요. 약간 마음이 좀 좋지 않는 건 있어요. 그런데 크게 뭐 상처를 안 받아요. ? 지나놓고 보면 별일이 아니에요. 마음에 작용이 그 말에 집착하거나 소리에 집착하면 이 마음이 약간 경직이 되어서 심리적으로는 기분나쁨이 일어나는데, 그것에 사로잡힘에서 놔버리면 긴장이 풀어지면서 기분나쁨이 사라져버려요.

 

그래서 생겼다가 사라졌다 생겼다가 사라졌다하는 거기 때문에, 그걸 극복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없냐? 이러면 있다고 말하고, 그럼 극복했냐? 이러면 그건 심각할 때 극복했다는 말을 쓰지, 그냥 생겼다가 조금 있다 사라진 걸 가지고 극복했다는 말 쓰기가 뭐 하네요. 젊은 학생이 했다니까 질문은 됩니다만은 예. 그래서 여러분들도 조금 이렇게 경험이,

 

그러니까 상처로 간직하고 안고 있으면 까르마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다음의 경험에 악영향을 끼쳐요. 이게 요즘 말로 트라우마죠. 나쁜 영향을 주는 거요. 그러니까 한번 예를 들면 불신을 했다면 다음에 저 사람도 그렇지 않겠나.” 이러면 벌써 트라우마가 된 거요. 그런데 한번 경험을 해보니 별 거 아니냐. 그러면 다음에 그런 일이 나면 저래도 해 봤더니 별거 아니더라. 그래 그것도 별거 아닐 거야.” 이렇게.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해보니까 배신당했다고 여섯 번째 할 때 겁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다섯 번까지 해보니 별 거 아니오. 그래서 여섯 번째는 다섯 번 경험을 가지고 더 잘할 수가 있잖아. 그러니까

 

이 경험이

더 잘할 수 있는 쪽으로 작용을 하면

실패가 전부 성공으로 가는 길이 되고,

그 경험이 상처가 되면

이게 빚이 되는 거요.

 

그래서 저의 경우 보면, 옛날에 상처 입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패했던 것들이 저한테는 지금 굉장한 자산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지간한 거는 옛날에 세게 한 번씩 받은 거는 그 보다 적게 충격이 오니까 크게 문제가 안 된다. 이렇게 관점을 좀 바꾸면 저는 살만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해요.

 

44:55

(질문 2) 스님께서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저는 이런 질문 할 때 별로 할 얘기가 없어요. 솔직하게 말할 때, 그냥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을 갖고 이렇게 처리하고 살아가는데, 뭐는 중요하고 뭐는 덜 중요하고 이런 생각을 별로 안하고 살기 때문에. 그러면 모든 게 똑같나?” 그런 건 아니에요. 굳이 따져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저한테 이렇게 물으면

 

저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안 일어나게 이걸 막아야 되겠다. 그리고 통일의 길이 열리게 당장 통일된다는 게 아니라, 통일이 불가능한 쪽으로 안 가게, 가능한 쪽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는 거, 이걸 사실은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 많이 보내요.

 

그 다음에 사람이 굶어죽는다든지, 지진이 났다든지 하면 이런 구호활동 같은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걸 하다보면 여러분들 인생 질문 같은 거는 별로 그건 뭐 굳이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그런데 또 여기 와서 본인한테 얘기 들어보면 그것도 또 본인한테는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그래서 쉽게 얘기하면 인연되는 대로 한다. 그래서 저는 책을 내가 의도적으로 쓰겠다고 쓴 책은 없어요. 거의 그냥 필요에 의해서 했는데. 딱 한권 '새로운 백년' 그것만 목표를 갖고 대담을 해서 책을 썼거든요. 그게 주로 평화통일에 대한 얘긴데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