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1253회]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딸이 걸려요

Buddhastudy 2017. 1. 19. 20:28

  

아들이 장사를 하다가 빚이 2억 졌어요. 심리불안증도 있고 성격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얘는 아직 직장도 없고 빚은 그렇게 졌지. 지금 25평짜리 단독주책을 용도변경해서 남의 세를 줘서 2억 빚을 갚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저희 아들에게 넘겨주면 우리 딸이 가만히 안 있을 테고, 또 우리 딸한테 얘기를 하면 펄펄 뛸 테고, 그걸 놔두고 그냥 죽으면 죽은 뒤에 애들이 난리 날 테고 스님 어떡하면 좋아요?//

 

뭐가 강하다고? 직선이 강하다고? 직성, 성질이 더럽다 이 말이지. . 그걸 뭐 그렇게 고상하게 말해요?

그러면 우선 질문을 여러 개 했으니까, 내 답변 듣기 전에 염불로 노래를 한번 해 봐요. 관세음보살을 트로트에 넣어서 한번 해 보세요. 옛날 노래로 한번 해봐요.

 

5:58~

 

그래요. 그렇게 해도 돼요. 그렇게 아주 훌륭한 스승님이 아주 옛날에 1300년 전에 그런 식으로 했어요. 원효대사에요. 원효대사께서 원래 원효대사는 유명한 학승이에요. 그러니까 고상한 얘기를 많이 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주지직을 그만두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민들이 사는 동네, 요즘 말로하면 서민이고 옛날에는 천민들이 사는 동네, 이렇게 가서 그 사람들에게 정말 불교를 쉽도록,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아마 저처럼 이렇게 쉽도록 얘기했는데, 워낙 무식하니까, 그것도 못 알아듣고, 어렵다고 다 듣지를 않고 다 가버려요.

 

그러니 자기는 나름대로 굉장히 쉽게 한다고 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광대 있잖아요. 광대. 그죠. 이 광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그 천민들이 구름떼처럼 모여서 재미있다고 깔깔 대고 그러는 거요. 자기가 얘기하면 다 졸다가 가버리는데, 다 여름에 핫바지에 방귀 새듯이 다 새 나가는데, 광대들이 노는 데는 모이는 거요.

 

그래서 그걸 옆에서 가만히 옆에서 보고 연구를 해서 자기도 그 흉내를 냈어요. 그러니까 조롱박을 하나 가지고 아시겠어요? 그걸 두드리면서 그러니까네 무애의 노래를 불렀다. 그래요. 걸림 없는 노래.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가애 무가애고, 걸림 없는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유행가 곡에다 섞어서 부른 거요.

 

두 번째 무애의 춤을 추었다. 걸림 없는 춤을 추었다. 우리 여기 춤추려면 저도 그렇지만 약간 좀 부끄러워요? 안 부끄러워요? 부끄러워 몸이 부드럽지가 못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자기라는 걸 탁 내려놓고 걸림 없이 그렇게 춤을 춘 거요. 그럴 때 나오는 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른 거요. 그렇게. 지금 보살처럼. 그렇게 불렀더니 그 천민들이 너무너무 재미있다고 깔깔 대고, 그래서 1인 광대. 그런데 그 노래가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극락을 발원하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중생의 고통을 수렴했다.

 

그래서 신라사람 중에, 그 당시에 왕족이나 귀족이나 지식층만 불교를 알았는데, 다시 말하면 91%나 되는 상민이나 천민들, 소위 일반 민중들도 원효의 이러한 무애무를 부르고 무애의 춤을 추는 덕으로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의 명호를 알게 되었다. 이걸 민중불교라고 그래. 그런데 스님도 그거한번 흉내를 내보려는데, 도저히 나는 못하겠어. 자기는 타고났네. 타고났어. 저절로 나오네. 아주 잘했어요.

 

그래서 좋아. 질문을 3가지, 4가지해서 한 개만 해주려고 했는데, 노래 공덕이 있으니까, 제가 1번부터 다시 물어봐요. 하나씩 하나씩 해 줄 테니까.

 

직선이 강하다. 그거는 약간 신기가 있다. 이 말이오. 약간 신기가 있다. 자기 약간 신기가 있어. 신기를 좋게 말하면 약간 신기가 있다. 나쁘게 말하면 약간 마음의 상처가 깊어서 정신질환이 될 위험이 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직관력도 있고, 약간 자기 반 점쟁이쯤 되죠? 사람을 딱 보면, “저거는 또 말썽피울 인간이다. 저거는 밥값 안 낼 인간이다.” 내가 안 봐도 알아. 자기 대충 손님 오면 벌써 짐작하고 대응을 하는데, 약간 그렇게 신기가 좀 있어.

 

그러니까 저희끼리 서로 알아보는 거요. “너 여기 안 와도 된다.” 이 말이에요. “네가 신기가 있잖아.” 이런 얘긴데, 괜찮아요. 그런데 신 내림을 받아서 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종노릇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몸이 대게 아프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불교라는 것은

내가 누구의 종이 아니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누구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내가 사물을 보는 게 아니고, 내가 내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거기에 너무 자꾸 의미부여를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직관이 있는 건 좋은데, 너무 의미 부여를 하지마라. 자꾸 징크스를 자꾸 , 그게 그러다보니 그런 징조였다. 어젯밤에 꿈을 꾸니까 요번에 이런 내가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든지, 이런 생각을 가능하면 의미부여를 하지마라.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탁 내려놓고 고개를 흔들고, 지금 말한 대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조금 잦아든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러니까 그것도 자기가 약간 신기가 있기 때문에. 신기가 있다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들리는 소리에요. 그러니까 신의 소리라고 하기도 하고, 신이 들었다라기도 하고, 요즘 심리학적으로는 자기 무의식, 내면의 소리가 들린 거예요.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 밖에 가까이에 누가 있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을 하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래서 그건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냥 법당에 가서 자기가 이렇게 기도를 하니까, 자기 내면의 소리가 밖에서 신의 소리처럼 그렇게 들린 것뿐이다. 옛날에도 영험록 얘기하다보면 백일기도 하는 날, 비몽사몽간에 주로 그런 이야기하잖아.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어디를 가라. 그랬다. 허연 노인이 나타나서 뭘 하라 그랬다. 이런 영험담 얘기 나오잖아. 그죠? 그런 건데, 현대 의학적,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그게 자기 내면의 소리입니다.

 

이게 지금 까지는 인류역사에서 신의 소리라고 했다가, 부처님은 물론 이거는 내면의 소리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그러나 서양의학에서는 150년 전에 프로이드가 이것이 신의 소리가 아니라 무의식의 소리다. 그래서 꿈의 해몽이라는 책을 쓰고, 거기서부터 정신분석학이라는 게 나오기 시작을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너무 의미부여하지 마라.

 

옛날식으로 설명하면 신의 소리다. 이렇게 말하지만, 현대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자기 내면의 소리다. 그러니 거기에 너무 크게 의미를 두지 마라. 자꾸 의미를 두면 어떻게 된다? 약간 신 내림을 받는 쪽으로 가게 된다. 자꾸. 징크스에 자꾸 자기가 의미를 부여하는 거요. . 됐어요?

 

 

 

그 다음에 또? 보시를 많이 하라는 거는 액수를 말하는 게 아니고, 나무도 이렇게 키울 때 작은 나무는 그 나무뿌리 가까이에 거름을 줘야 되고, 큰 나무는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3미터, 5미터. 고목은 10미터밖에 거름을 줘야 되요. 왜 그러냐하면 뿌리가 멀리 뻗어있기 때문에. 나무 밑에 거름을 주면 오히려 나무가 썩는 역할을 하지, 뿌리가 그거를 제대로 흡수를 못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할머니나무라는 거는 고목나무 같아서 손자에게 거름을 줄때는 보이지 않게 줘야 되요. 그러니까 자기가 복 짓는 거는 자기가 하면 되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도 보이지 않는 복을 짓는데, 할머니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 복을 지어야 된다. 그래서 손자한테 유산을 물려주거나, 손자한테 재물을 물려주거나 이런 쪽 보다는 손자 잘돼라. 이런 거보다도, 항상 자기가 가진 재물을 절에 가든, 교회를 가든, 지나가다 불쌍한 사람을 보든, 항상 손자를 생각하면서 작은 돈이라도 꾸준히 베푸는 게 좋다. 움켜쥐지 말고.

 

그렇게 베풀면 그런 복들은 대부분, 내대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들 대를 건너뛰어서 손자 대에 나타난다. 그러니까 미끄럼을 많이 해 놔라. 그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널리 보시를 하세요.

 

..

 

되요. 왜냐하면 보통 보시하고 보시했다하고 자꾸 생색을 내면, 그 복이 탕감된다. 이래요. 실지로 그래요.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김밥할머니가 백만 원을 보시를 했다. 장학금을 냈다. 그러면 조그마한 단신 기사가 나요. 돈 많은 사람이 백만 원 냈다 그러면 기사가 안 나고,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이 백만 원 보시했다. 김밥 할머니가 백만 원 보시했다.’하면 단신기사가 납니다. 그런데 김밥 할머니가 백만 원을 보시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분이 원래 처음 한 게 아니고 지난 10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했다.’ 그러면 단신기사 10개 크기로 나요? 그거보다 더 크게 나요? 더 크게 난다. 이런 얘기에요. 예를 든다면.

 

그래서 묻어둬야 되요. 묻어둬야 된다. 복을 짓고 우리는 까발리잖아.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떠냐? 복은 요만큼 지어놓고, 이따만하게 지었다고 늘 선전하고, 죄는 이따만하게 지어놓고 요만큼 지었다고 거짓말 하고, 이렇게 보통 인간 심리가 그렇다. 복은 하나도 안 지어놓고, 복은 자기 다 달라 그러고. 죄는 엄청나게 지어놓고 자기 벌 안 받게 해 달라 그러고. 인과법칙에 맞지가 않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런 엉터리,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게 예수님이고 부처님이고 성인인데, 지금 교회나 절이 그런 어리석음을 도리어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성인은 복을 지어놓고 복을 받겠다는 거는 당연한 법칙이에요. 인연과보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더 수행자는 복을 지어도 지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잊어버린다. 이 말이 아니라, 그 복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야 그게 더 큰 복이 된다.

 

기독교로 설명하면 이 세상에서 지은 복의 보상은 아주 작고, 이 세상에서 그 보상을 안 받으면 저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께서 더 큰 복을, 헤아릴 수 없이 큰 복을 준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불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느냐. 내가 복을 지었다 하는 이 상을 내려놓게 되면 무주상보시라고 그래. 그 공덕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저 허공보다도 더 크다. 이렇게. 그러니까 아주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7가지 보석, 칠보로 이 허공을 가득 채워도 무주상보시의 공덕에는 못 미친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른 쉬운 얘기를 하면, 우리가 남을 위해서 돕거나 남을 사랑하거나 어떤 일을 해놓으면 우리는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어요? “너 내 공덕 알지?” 이런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런데 그게 안 돌아오면 기분이 나쁘고 섭섭해 져요. 그래서 베풀고 미워하게 되요. 사랑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기뻐요. 그러나 사랑이 미움이 씨앗이 되는 거는 사랑하기 때문에 아니라, 사랑의 대가를, 내가 사랑했으니까 너도 나를 뭐해라? 사랑해라.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베푼 거 없이 복을 받으려하고, 자기는 사랑하지 않고, 남으로부터 사랑받으려하면 이거는 범부중생, 어리석은 중생이고, 조금 사랑해 놓고 많이 받으려고 하면 이거는 인연을 짓고 받으려고 하니까, 인연의 이치는 아는 사람이니까 현명한 사람이다. 현인이다. 그러나 이 현인은 역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그게 돌아오면 다행인데, 안 돌아오면 괴로워진다. 배신감. 배반감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널 사랑하는 거는 사랑으로 끝나라.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마라. 이게 무주상보시오. 그러면 사랑하는 결과가 미움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이 얘기요. 우리가 설악산에 가서

 

, 산 좋으네.

이렇게 산을 좋아하면

내가 좋아요? 설악산이 좋아요?

 

아니 내가 설악산 좋아하면 설악산이 좋아야지 내가 좋아? 확실해? 내가 좋은 거?

 

, 바다야, 바다 봐라.

이러면 바다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꽃 봐라.

이러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누가 좋다? 내가 좋아.

 

그런데 바다를 사랑하고,

산을 좋아하고,

이래도 아무 부작용이 없잖아.

 

내가 설악산을

열 번이나 내가 좋다고 와줬는데

이 산이 인사도 안한다.

이런 사람 없잖아.

 

왜냐하면

산이 나를 좋아하라는

대가성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은 내가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데 넌 왜 안하니?” “내가 편지 3번이나 썼는데 너는 왜 한 번도 안 하니?” “내가 전화 두 번이나 했는데 왜 너는 답이 없니?” 이게 거래. 사랑이 아니라 뭐라고? 거래. 상거래를 하는 거요.

 

상거래를 하다 보니 밑졌다. 손해다. 자꾸 계산이 되는 거요. 그래서 손해났다. 이래서 미워하거든요. 그래서 상거래를 하지마라. 그건 장사지 돈만 주고받은 것만 장사가 아니라 사랑도 장사고, 좋아하는 것도 우리가 장사 속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밑졌다. 이게 배신이고 배반이고 그런 거요.

 

그러니까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는 원래 장사 속으로 하는 거 아닌데도 불구하고 중생의 이 습관이 워낙 깊이 배어서, 애도 커서 말을 안 들으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뭐라고 그런다?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말이 뭐요? 본전 생각난다 이 말이지. 그래서 주로 부모가 자식을 키워놓고 자식이 부모한테 제대로 안한다고, 이렇게 하는 거는 본전 생각 하는 거요. 그게 꼭 무슨 주식 투자하듯이 했다. 이런 결론 밖에 아니다.

 

그러니까 20살 까지 키우는 거는 부모의 의무고, 20살이 넘으면 의무가 해제되는 대신에, 즉 더 이상 안 도와줘도 되지만, 바라서는 안 된다. 간섭해도 안 되고, 바라서는 안 된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손자를 도우려면 그렇게 무주상보시를 해야 공덕이 크다. 자기가 재벌도 아닌데 도우면 얼마나 돕겠어? 롯데 여기 타워 같은 거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자기는 대신에 더 큰 공덕이 되려면 바라는 마음을 버려라.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흩뿌려라. 그냥 아무런 손자한테 공덕이 된다.’ 이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베풀면 없어지는 게 아니고, 다 누구한테 좋다? 손자한테 좋다.’ 어떻게 좋은 지 그런 것도 따지지도 마라.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좋은 것이 나타나는 건 여러 가지에요. 예를 들면 살생이, 누굴 죽였다. 그러면 과보는 내가 죽임을 당해야 되요. 아시겠습니까? 그게 단명보라고 그러는데, 그런데 이런 공덕을 쌓게 되면 단명보를 면한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왜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도 욕 얻어먹을 때 있잖아요. 나쁜 일하고 욕 얻어먹는 게 아니라, 무슨 일하고? 좋은 일을 하고 욕 얻어먹으면 기분 나쁘잖아. 그죠? 그런데 그때 고맙다고 그래야 돼. “아이고 감사합니다.” ? ‘좋은 일 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이런 말 들어봤어요?

 

나쁜 일하고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 아니오. 그냥 욕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이거는 말이 잘못된 거요. 앞에 단어가 하나 빠졌어요. 뭐하고?

 

좋은 일을 하고

욕을 얻어먹으면

오래 산다.

 

? 이 사람 원래 단명보, 일찍 죽을 운명인데, 예를 든다면 인연인데, 그 욕을 얻어먹으므로 해서 어떻게 되었다? 명을 길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공덕 보다 그보다 더 큰 공덕이 있어요? 없어요? 없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남이 욕을 해도 좋은 일을 하고 도와주고도 욕 얻어먹어도 이 인연의 이치를 알면 뭐한다? 빙긋이 웃는다. “네가 나를 욕을 해줘서 내가 지금 명이 길어지고 있다.” 이런 얘기에요.

 

그보다 조금 더 한 과보를 받으면 어떠냐? 제일 제대로 받으면 죽어야 되고, 그거보다 좀 감해지면 병고의 시달려요. 그런데 인연의 이치를 알면 병고에 시달린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병고에 시달려도 어떤 생각을 해야 된다? “그래도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러면 병고에 시달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다음에 그거보다 더 큰 복은 뭐냐? 욕 얻어먹으면 단명보를 면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공덕은 무슨 시험에 걸렸다. 이렇게 좋게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현상은 나쁘게 나타나는데, 그게 절대로 나쁜 게 아니라, 사실은 인연의 과보로 따지면 지옥에 떨어져야 될 것이 그 지은 인연으로 지옥에 안 떨어지고 이 세상에 와서 그래도 좀 몸 아픈 거로 때우고, 욕쯤 얻어먹는 거로 때운다면 그게 엄청난 공덕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좋은 일만 생겨야 공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인연의 이치를 모르는 거도. 재앙마저도 뭐다? 우리가 세상에서 말한 재앙이 뭐라고? 공덕인 줄 알면, 이 세상을 사는데 두려울 게 없어진다.

 

그러니 그런 이치를 모르면서 조금 시험에라도 걸리면 아이고 내가 베풀었더니 우리 손자한테 잘 되구나.” 조금 떨어지면 내가 그렇게 몇 십 년을 베풀었는데 와 스님이 거짓말 하노? 아무 공덕도 없네.” 이런 소리 하면 안 돼. 알았어요? 그러니까 딱 그저 베푸는 것을 끝내면 저절로 공덕이 된다. 이제 됐어요? 노래 한곡 하고 너무 많이 얻었다.

 

 

, 재산을 어떻게 할고? 그거 아들 주면 딸이 난리고, 딸 주면 아들이 난리일 거고, 안주고 내 죽으면 저희끼리 싸울 거고, 그럴 때 이 재산이 원수덩어리잖아. 그죠? 없으면 좋았잖아. 그럴 때는 누구 주면 좋다? 법륜스님을 주면 좋지. 그러면 자식은 싸움 안하고, 자기는 공덕을 짓고, 나는 그걸 받아서 저 북한의 굶어죽는 사람이나 인도에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걸 고민거리라고 그래.

 

그러니까 우선은 빚을 졌으니까, 그냥 조금 놔놓고, 아시겠어요? 그런데 부모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자식은 절대로 자립을 하지 않습니다. 명의가 둘이 되어있어요? 그럼 반은 아들 거네. 그래. 놔두세요. 그냥. 그러니까 유언으로 절반은 아들 거니까 절반 아들 거는 아들 가져가고, 절반은 유언으로 스님한테 드린다. 이렇게 유언장을 써놓으면 안 싸운다니까. 뭘 그걸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렇게 스님은 주기 싫다? 심보가 더럽다.

 

스님 법문 듣고 기도문 받아서 자기 좋아졌다면서 공덕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 안 해? 나는 늘 후불제야. 선불을 받는 거 아니잖아. 그렇게 공덕이 있었으면 나중이라도 좀 갚아야 될 거 아니오.

 

시간 있으면 될 거요. 괜찮아. 한번 놔둬보세요. 재산은 스님한테 주라고 했는데도 계속 딴 소리하고 있다. 그냥 죽으세요. 스님 앞으로 주고 죽든지, 그냥 죽든지, 그러면 저희야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그러면 스님한테 주라잖아. 걱정이 되면. 스님한테 주고 죽으라니까, 그걸 도저히 못하겠다니까 그냥 두고 죽어라. 이 얘기에요. 신기가 좀 있는 줄 알았더니 별 볼일 없다.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우선 생활 하세요. 아직 금방 안 죽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이 조금 더 가겠어. 그러니까 그냥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