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가족단톡방, 외로움만 쌓이네

Buddhastudy 2017. 2. 6. 19:51

 

 

저는 공무원이고 정년퇴직이 2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가족들하고 떨어져 생활하는데 퇴직에 가까워지니까 가족들과 관계가 더 좋아져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족 카톡방을 개설해놓고 아침저녁으로

가족들한테 안부인사도 하고 좋은 말씀도 올리는데

처음엔 꼬박꼬박 답장을 하다가 2개월 지나니까 며칠에 한번 올려주더니 3,4개월 지나니까 이제 답장이 없습니다.

1년 가까이 지났는데 요즘에는 가끔 서운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데, 이 얘기하기 전에 이렇게 공무원들을 뭐라고 그럴까? 그러니까 국가 정책의 어떤 변화 때문에 이렇게 이산가족을 만드는 거는 이건 제가 볼 때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첫째는. 이건 올바른 게 아니다. 그 기간을 충분히 가지고, 여러 가지 거기에 대한 교육이라든지 많은 것을 다 갖추어놓고 해야 되는데, 저는 우선 그게 개인을 만나보면 자기가 잘못해서 헤어지거나 이산가족이 생기거나, 자기가 이익을 추구해서 어디를 가거나 이게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는데 어느 날 명령이 떨어져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는 저는 국가가 굉장히 신중해야 된다.

 

제가 제주 강정마을 같은데 갔을 때나, 요번에 성주 사드배치 같은데 보면 그분들이 뭘 잘못해서 불이익을 받는 게 아니고,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국가라는 이름으로 그 주민들에 대해서 불이익이 오는 원하지 않는 이런, 어느 날 갑자기 내려때린단 말이오.

 

그러면 주민들은 생업에 종사해야 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12년씩 싸워야 되고, 아스팔트에 나가 앉아야 되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건 굉장히 신중히 해야 될 일이라는 거죠. 이것은 국가가 정말 이럴 권리가 있느냐. 이거는 왕조시대 때나, 북한 같은 나라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왕조시대의, 그러니까 봉건시대의 관습에서 아직도 권력자들이 못 벗어나고 있는 거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우선 여기 세종에 와 계셔서 이산가족 되시는 분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이럴 때, “가기 싫으면 사표 내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는 맞지가 않는 거요.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이 이렇게 오게 되었죠. 제 원칙은 내가 움직인다면 저는 부인이 내려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인이 내려 와야 된다. 부인은 자식은 두고, 그건 자식은 그냥 둬야 되요. 내려올래? 내려와서 여기 고등학교 넣든지, 중학교 넣으면 되고, 안 내려오겠다면 너희끼리 밥 먹고 지내라. 이런 원칙이 있으면 이런 고민이 안 되는데,

 

평소에 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늙은 남자보다는 젊은 남자가 더 좋은 게 아닌가. 그러니까 늙은 남자 떠나도 젊은 남자가 남아있으니까 거기 사는 거 아닌가. 내가 농담조로 얘기한다면 그런데. 자기가 이렇게 되었을 때 좀 섭섭하잖아. 그죠? 그런데 이걸 참는 거는 좋은 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애들보고 너는 왜 아빠가 이것도 해주는데 왜 안 보내나.” 이것도 맞지 않고, 올라가서 둘러앉아서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아빠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고, 국가에서 이런 정책이 바뀌어서 내가 가게 되었다. 나는 엄마와 너희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내가 떨어졌다. 그래서 내가 혼자 있어 보니 조금 외롭다. 그래서 너희들과 마음을 나누려고 카톡방이라도 매일 올리는데, 너희들이 바쁜 건 이해가 되지만, 답신이 안 오니까 아빠로서는 좀 섭섭하더라. 이렇게 마음을 좀 내놔야 되요.

 

그러니 해라가 아니라, 마음을 내놓으면. 너희들은 어떤가.

얼마나 권위주의로 살았길래. 그러면 두 가지 길이 있어요. 그래도 20살 밑이면 부모로서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그냥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내가 낳은 죄이기 때문에 키워야 되는데, 만약에 20살이 넘었다 그러면 자기도 대응을 하면 되요. 다음 달 용돈을 끊어버리면 되요. 그러면 카톡이 올 거 아니오.

 

아빠 왜 용돈 안 보내줘?”그러면 나도 답이 없는 거요. 그러면 34번 오면, 거기에는 답을 하지 말고, 내 답을 보내는 거요. 내 카톡을 보내는 거요. 그러면 애들이 답이 오면 그 다음에 나도 돈을 보내면 되는 거요. 그래서 한 달에 내가 10번을 보냈다. 그런데 답이 50% 왔다. 그러면 딱 용돈을 50% 보내고, 100% 왔다 그러면 100% 보내고, 안 왔다. 그러면 안 보내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항의를 해도 아무 대답을 안 하는 거요. 일체 거기 변명 같은 걸 하지 않는 거요. 아빠 왜 용돈 안 보내?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는 거요. 그렇게 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애들하고는 어떤 경우도

화를 내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어리든 크든.

 

왜냐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사이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대응책이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여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굳이 그거를 화를 내어서 하는 거는. 화를 낸다는 거는 둘이 동급이라는 얘기요. 싸운다는 거는 급수가 같다는 얘기거든.

 

그런데 부모가 자식과 급수를 같이 하면 안 되잖아요. 급수가 높아야지. 그렇기 때문에 그건 용돈을 안보내주는 것도 자기의 권리에 속하는 거요. 그거를 잘못 된다 이러지 말고, 그러니까 현명하게 하려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음부터 용돈을 안 보내는 거요. 그럼 저쪽에서 왜 안 보내요.” 해도 아무 대답을 하지 말고, 나는 그때 네가 내 이 답에 안 해주니까 나도 용돈을 안 보낸다.” 이러면 보복이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러면 부모가 자식한테 복수를 하면 되요? 안 돼요? 이거는 안 돼요. 아무대답을 안하는 거요. 일체 거기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안 하고,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 좀 봅시다.” 이러면 마음 나누기를 하면서, “아빠가 용돈을 안 보내주는데 우리 좀 섭섭해요.” 이러면 나는 카톡 보냈는데 너희가 말을 안 해서 좀 섭섭하더라.” 이래야지.

 

네가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 이렇게는 절대로 얘기하면 안 됩니다. 부모자식 간에. 이거는 바깥에서도 가능하면 안 해야 될 일이기 때문에. 이게 교육이에요. 약간 내가 좀 애하고 이렇게 해야 되나? 안 해요. 성인이기 때문에. 20살이 넘었기 때문에 사회교육이란 말이에요. 응당한 너도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부모 거를 공짜로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이 물질로 보상하든지, 다른 거로 보상하든지 해야 되는 거요. 그리고 내가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오면 나도 그만큼 돈을 보내고, 이렇게 하면 애들하고 마음 안상하고도 해결 할 수 있고, 마음 나누기해서 자기들이 내놓으면 나도 그만큼 내놓고, 이렇게 아무 얘기도 안하고 웃으면서, 집에 갔는데 애들이 뭐라고 뭐라고 그래도 딴 얘기를 해야 되요. 이게 선에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부처님이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너 왜 구걸하니?” 이러면 나는 이렇게 구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 안 해요. “너 화내니?” “너는 화내니?” 이렇게 말대꾸를 안 해요. 화재를 바꾸어요. 그러니까 아빠 왜 용돈 안 보냈어.” 이러면 학교 잘 다니나?” 이렇게. 전혀 동문서답을 하는 거요. 그래서

 

선을 동문서답이라고 그러잖아.

그게 동문서답이 아니고,

상대의 말귀에 넘어가지 않는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화를 벌컥 내면 왜 화내니.” 이렇게 안하고, “아이고 힘들겠다.” 이렇게 접근하는 거요. 그러니까 부모라면 그 정도 여유를 갖고 자기가 괘씸하면 이게 안 됩니다. 금방 내가 말려들어요. 확 튀어나온단 말이오. “너희 지금 1년 동안에.” 이렇게 나오면 , 아버지가 꽁한 사람이구나. 우리 그것 좀 안 보냈다고 고걸 딱 마음에 가지고 있다가 결국은 나오구나.” 이런 존재가 되면 권위가 없어지잖아. 그래서 전혀 엉뚱 짓을 하는 거요. 그러면서 이렇게 교육을 시킬 수가 있죠.

 

그러니까 그거는 아버지한테 잘하라가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서 살 때, 남한테 도움을 받았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 된다. 하는 교육에 속하기 때문에 이거에 대한 복수 문제가 아니고, , 얘들이 내가 너무 자식이라고 귀엽게만 키웠더니 사회교육이 잘 안되었구나. 이참에 내가 아이들하고 사회교육을 좀 해야 되겠다. 이렇게. 그러면 감정적이지 않잖아. 그죠? 이렇게 해야 되요. 이것이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사랑에 속하는 거요.